아빠가 병원을 바꿨다.
그는 여전히 투병 중이다.
나의 터전이 있는 대학병원 J의 의사는 유독 불친절했다. 두번째 병이 나타났을 때, 아빤 서울로의 내원을 망설였다. 이미 첫번째 투병 당시 항암을 하기 위해 오갔던 그 지옥이 생각났으리라.
이번 병원만큼은 집 근처에서 다니고 싶어. 그럼에도 우린 걱정이 됐다. 병원마다 차이가 그리 크겠냐만은, 계속 서울에서 치료를 하고 싶었다. 그게 독이 됐을까. 우리의 불안에 그는 결국 서울과 집 근처 병원 내원을 병행했고, J 대학 병원 교수에게 들키고야 만 것이다. 그는 아빠를 쳐다보지도 않았고, 매서웠다. 제대로 된 진단 없이 약만 줬다. 그렇게 아빤 약에 중독됐다.
우리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이번에도 다시 서울로 가보자. 서울에서 암 수술 받을 때 좋았잖아. 이번 병 역시 서울에서 발견된 거잖아.
하지만 그를 설득하기란 쉽지 않았다.
암 추적 검사로 인해 지난주 주말 서울에 올라온 그. 다리를 잠식하고 든 고통에 그는 괴로워했다. 다리가 말을 안들어. 정신은 멀쩡한데 육체가 움직이지 않는다, 이야말로 큰 고통이 있겠는가. 다음주엔 그냥 서울 안 올래. 너무 힘들다. 60 평생 동안 거의 울지 않던 그는 투병 이후 눈물이 늘었다. 너무 아파서. 너무 힘들어서.
병원에서부터 기차역까지. 그는 휠체어를 타야 움직일 수 있었다. 집으로 향하는 기차 좌석에 앉기 까지. 그리고 집에 도착하기 까지. 얼마나 많은 이의 도움이 필요했던가.
이후 엄마에게 듣기론, 아빤 기차에서 공황으로 자꾸만 헛소리를 했다. 저 사람이 날 찍는 것만 같아. 제발 제발 약을 줘. 그렇게 수시간 동안 엄마를 들들 볶았다.
이후 전화를 걸자 아빤 다신 서울로 가지 못하겠다고 했다. 사설 구급차 아니면 안갈래. 아빠 그거 100만원이야 한번에 갈 수 있어? 온 가족이 매달려 그를 설득했다. 제발 서울 한번만 다시 가자. 제발. 약이 달라질 수도 있는 거잖아.
그렇게 고심하던 그가 오늘 다시 서울에 다녀왔다. 그의 병원 내원을 위해 온 가족이 매달렸다. 언니는 연차를 내고 고향까지 내려가 그를 모셔왔으며, 엄마는 옆에서 그를 보살폈다. 좀 전에 진료가 끝이 났다.
그는 여전히 투병 중이다.
그럼에도 변함없는 사실은
그는 삶의 의지가 강하고,
우린 그런 그를 사랑한다는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