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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민 Nov 20. 2021

민주적 사회주의자가 그린 동물농장

《동물농장》을 읽고

 주로 전집을 통해 접하게 되는 세계 문학들을 나는 잘 읽지 않았다. 이해가 어려웠기도 했고 당시에는 재미도 그다지 없었기도 했지만, 사실 성인 독자를 대상으로 쓰인 책을 청소년이 반드시 읽어야 하는 것처럼 강요하는 사회도 문제였으리라. 그러나 《동물농장》은 우화적 요소 덕분인지 어렸을 때부터 몇 차례씩 읽어 왔다. 심지어 공산주의나 혁명이 무엇인지 전혀 모를 때부터.


 하지만 《동물농장》에 대한 생각을 쓴다는 건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러시아혁명, 스탈린과 트로츠키, 그리고 공산주의를 이야기하지 않고 《동물농장》을 논하는 것은 불가능한데 나는 아직 이에 대한 공부나 배움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간단히 생각을 써보자면, 《동물농장》은 단순히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자체를 비난하는 소설이기보다는 부패하는 국가 관료제를 비판하는 소설이다. 러시아혁명 이후 스탈린 체제를 직접적으로 비판하기는 하지만, 그 비판은 나폴레옹과 그 부하 돼지들에 집중된다. 메이너의 연설 묘사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념에 대해서는 비교적 긍정적으로 서술되는데, 작가도 자신을 민주적 사회주의자라고 밝혔던 점을 고려하면 비판의 주요 지점을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동물농장》은 나폴레옹의 대안으로 스노볼을 내세우지도 않는다. 오히려 쫓겨나기 전 스노볼의 연설이나 풍차 설립 계획이 근거가 다소 부족하다고 말한다. 풍차만 세우면 삶이 확 나아진다는 말은 지나치게 낙관적이고 낭만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사과를 돼지에게만 배급하는 안을, 평소에는 항상 대립하던 나폴레옹과 스노볼이 갈등 없이 통과시키는 모습은 '동물농장'의 실패가 나폴레옹만의 부패가 아닌 돼지 관료제의 부패라는 체제 자체의 실패임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결국에는 시민의 참여가 아닐까 싶다. 단순히 관료제를 견제하는 참여를 넘어서, 자신과 공동체의 일을 직접 토론하고 결정하고 행동하고 성찰하는 직접적인 참여 말이다. 국가라는 기제를 사용하는 방향만 바꾸면 세상이 나아진다는 환상에서 벗어나, 작은 단위에서부터 직접 변화에 참여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혁명이다.


 《동물농장》에서도 이러한 요소를 찾을 수 있다. 돼지들이 부패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다른 동물들은 불만을 드러내려고 했다. 비록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몰라서, 존스의 복귀가 겁나서, 나중에는 돼지와 개가 무서워서 그들은 침묵함으로써 돼지와 개의 '개돼지'가 되어 버렸지만, 분명 동물들은 계명을 다시 확인하는 등 비판적 의식의 단초를 보여주었다. 만약 침묵하지 않고 목소리가 나왔다면 '동물농장'의 결말도 달라졌을 것이다.


 책 《동물농장》의 결말은 돼지와 인간의 모습이 구분이 안 간다며 끝나지만, 애니메이션 <동물농장>에서는 동물들이 다시 한 번 반란을 일으키며 끝난다고 한다. 물리적 반란까지는 아니더라도, 세상을 바꾸기 위해 국가에 기대기보다는, 국가와 경쟁할 수 있는 기제를 찾아보는 작업들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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