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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MIND Apr 05. 2022

사회실험

최종적으로 어떠한 선택을 할 지는 이성적인 생각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얼마 전 한 사회실험을 보았다. 밤에 어두운 골목길에서 한 여학생이 지나가는 사람에게 자신의 집이 이 근처인데 무섭다고 같이 가줄 수 있느냐고 물어본다. 인적이 드문 거리인데다 간헐적인 신호등만 위치해있는 골목길이기에 여학생이 위험하다고 판단하기 쉬운 상황이다. 이런 질문을 받아도 모른 체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이를 도와주는 사람도 있다.


 위 사회실험을 지켜보며 처음에는 당연히 여학생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도움을 청하는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당연했고, 도와줄 수 있는 여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위 사회실험에 대한 새로운 질문이 나의 판단을 뒤흔들었다. 위 사회실험에 조건을 추가하면 여학생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판단은 오히려 잘못될 수 있다.


 내가 택할 수 있는 첫 번째 방법은 여학생을 도와주기 위해 길을 같이 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 여학생은 안 좋은 상황으로 나를 유인하기 위한 미끼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내가 여학생을 의심하지 않고 도와주었지만 오히려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선의를 위해 한 행동이 자신의 안전에 해를 가하는 사항이다.


 두 번째로 택할 수 있는 방법은 여학생을 무시하고 도와주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여학생이 미끼일 수 있는 상황을 대비할 수 있지만 여학생이 위험에 처할 수 있는 상황을 대비할 수는 없다. 즉, 나 자신의 안전을 위해 타인의 위험을 도와주지 않는 것이다. 물론, 타인을 도와주기 위한 사람의 여건이 마땅치 않다면 도와주지 못 할 수 있다. 그러나 도와줄 수 있음에도 도와주지 않는다면 윤리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세 번째로 택할 수 있는 방법은 여학생에게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다른 길을 제시하거나 경찰을 부르는 등의 방법이다. 나 자신의 위험과 여학생의 위험을 동시에 대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다. 그런데 이는 여학생에게 새로운 위험을 제시할 수도 있다. 여학생은 어두운 밤에 혼자 있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학생이었다. 그런데 타인이 다른 길로 가자고 제안하거나 혹은 다른 사람을 부른다면 여학생의 입장에서 새로운 위험이 될 수 있다.


 윤리적으로도, 전략적으로도 어떠한 선택이 우월전략인지 쉬운 답이 아니다. 여학생의 질문에 응답할 수 있는 방안들은 모두 각각의 장단점이 있고, 위험을 얼마나 감수해야 하는지 판단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여학생이 미끼인 상황도 드물 것이고, 여학생이 정말 위험에 처하는 확률도 낮다. 해외처럼 밤이 되면 갱단이 돌아다니거나, 치안이 보장되어 있지 않은 환경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도와주지 않으면 그 여학생은 집으로 귀가하지 못 할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떤 판단을 내리는 것이 가장 이로운 선택일까?


 우선 가장 합리적으로 보이는 방법은 세 번째 방법이다. 도와주는 사람과 여학생 모두의 안전을 도모하고, 최대한 위험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도움을 받는 사람의 환경을 무시할 수 있는 방법이다. 만일, 집까지 향하는 보다 안전한 길이 있다면 애초에 여학생은 그 길로 갔을 수 있다. 그러나 그 길도 위험하거나 또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에 여학생은 집으로 갈 수 없는 상황일 것이다. 여학생에게 새로운 길을 제안하는 것은 여학생에게 새로운 위협일 수 있다. 도와주는 사람도 지인이 아니라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학생을 위해 경찰을 부르는 선택을 할 수 있다. 112를 누르고 스피커폰을 통해 대화 내용을 공유한다면 여학생도 안정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두 가지를 마저 고려해야 한다. 첫 번째는 여학생이 애초에 미끼였다면 경찰을 부르는 것은 그들에게 위협적일 수 있다. 오히려 그들이 도망가는 여지를 줄 수도 있지만, 도와주는 사람이 타겟이 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할 수도 있다. 두 번째는 여학생이 112를 부를 수도 있었다는 점이다. 물론 길을 가기 위해 경찰을 부르는 것이 매우 행정적인 낭비라고 생각하여 부르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의 신변에 위협을 느낀다면 경찰을 부르는 것이 안전하다. 그럼에도 부르지 않았다는 것은 여학생이 다른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결국 경찰을 부르는 것도 여학생이 원하는 상황이 아닐 수도 있다.


 최종적으로 어떻게 선택할지는 이성적인 생각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실제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본인이 자연스럽게 판단하는 그 방법으로 여학생을 도와주거나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 사회실험을 통해 살펴볼 수 있는 상황은 매우 흥미롭다. 다른 사람은 제4의 선택지를 선택할 수도 있다. 한 번쯤 위와같은 고민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Artist 'Boseok' with Gallery M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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