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억울한 일이 생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실수로 사람을 칠 수도 있고, 반대로 남에 의해 손해를 보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의 일들은 간단히 서로 사과하고 용서하며 간단하게 마무리된다. 그러나 말로써는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하면 감정이 상하고, 잘잘못을 따지게 된다. 이때 사람들이 많이 하는 말 중 하나가 법대로 하자는 말이다.
법대로 하자고 말하는 사람은 법이 이 사건을 해결해줄 수 있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법대로 하자고 말한다. 법은 정의롭고, 정의로워야 하기 때문이라고 전제하는 것이다. 그런데 법이 정의로운지, 그리고 정의로워야 하는지 애매한 경우도 있다. 법은 강자의 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법이 정의롭지 않다고 생각하거나 법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는 법의 개념(concept)에 정의 또는 도덕관념이 들어있는지에 대한 해석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법이 정의로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법이 개념적으로 도덕관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당연히 사람을 죽이면 안 되기 때문에 이를 법이 처벌하는 것이고, 도덕적으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면 안 되기 때문에 법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반대로 법이 정의로워야 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법이 개념적으로 도덕관념을 갖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살인자를 처벌하는 것은 그를 처벌하기로 사람들끼리 합의했기 때문이고, 다른 사람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도 이를 사전에 법으로써 합의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전자처럼 생각하는 것을 자연법적 사고라고 하고, 후자처럼 생각하는 것을 법실증주의적 사고라고 한다. 자연법적 내용들을 미리 법으로 규정해둔다면 둘의 차이는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사람마다 자신의 도덕관념을 갖고 있고, 이것에 대한 합의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에서 발생한다.
예를 들어, 근처에 행인이 갑자기 쓰러지면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 도덕적으로 마땅할 것이다. 주변의 생명을 구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시되고 숭고한 행위이다. 따라서 사람이 쓰러졌을 때 도와주겠다고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법적으로 의무가 된다면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단순한 의무를 넘어서 이를 위반하면 처벌까지 되면 반대하는 사람들이 증가할 것이다. 이는 사람마다 도덕관념이 다르다는 의미이다.
일반인들끼리 도덕관념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일상생활에서는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서로가 도와주면서 삶을 유지하고,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서로의 자유를 지켜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법관에게 자연법적 사고가 허락되고, 그 자연법적 사고의 기준이 서로 다르다면 판결에서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어떤 법관은 근처에 행인이 쓰러졌을 때 도와주지 않는 것을 의무로 보고, 이를 위반했으니 살인죄가 된다고 판단할 것이지만 어떤 법관은 이를 부정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법실증주의적으로만 판단해서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단순히 법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도덕적인 행위가 법적 판단을 벗어난다면 사람들은 법을 지키지 않을 것이고 결국 사회가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람을 죽여도 처벌받지 않는다면 해도 되는 행위가 아니다. 그러나 법실증주의적 사고에 의하면 살인죄를 처벌하는 규정이 없다면 아무리 연쇄살인범이라고 하더라도 이 사람을 처벌할 수 없다.
법이 도덕적이어야 하는가, 도덕적이지 않아도 되는가에 대해서는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가 자신만의 생각을 가질 수 있고 그러한 판단이 틀렸다고 말할 수 없다. 다른 생각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어떤 결론을 내리든 그 결론의 문제점을 해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법은 정의로워야 한다고 주장해도 문제가 발생하고, 정의롭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도 문제가 발생한다. 결국 이러한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한 사회 내에서 합의가 이루어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Artist 'Boseok' with Gallery M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