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살, 마주이야기
전업육아모드.
처음에 아이를 일본에 데려왔을 때 힘들었던 게 바로 어린이집 도움 없는 전업육아모드였다.
워킹맘들은 내가 아이를 손수 키운다고 말하지만, 사실 생후 10개월까진 친정엄마가 도와주셨고, 그 후에는 아이돌보미 선생님께 간간히 도움을 받았고, 아이가 좀 더 커서는 어린이집도 보냈으니 사실상 아이를 홀로 키운 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낯선 땅에서의 전업육아모드가 좀 버거웠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직장에 딱 하고 떨어진 기분,
예정된 시간에 아이가 잠을 자지 않으면 상사 눈치보며 퇴근못하는 기분이랄까?
그래도 다행인 건 아이에게 큰 '기대'란 걸 하지 않기에 '얜 도대체 왜이래?'하는 푸념을 하지 않고,
사람을 관찰하는 일은 원래 좋아했던 터라 아이의 행동을 하나하나 관찰하고 지켜보는 재미도 있으니 감사한 일이다.
특히나 두돌이 지나고부터, 하루하루 새로운 말을 내뱉는 아이에게서 육아의 재미를 찾았다.
직장 다녔으면 몰랐을 그 깨알같은 재미에 빵빵 터질 때도 많고, 아이가 잠든 후 혼자서 생각하면서 키득거릴 때도 있다.
혼자 육아를 담당했을 때 아이는
엄마가 한 말, 영상을 통해 본 말, 그리고 가끔 만나는 사람들에게 들은 말을 통해 '말'을 배웠지만
최근엔 한국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나 배운 말이 무척 많이 늘었기에,
내가 해주지 않았던 말을 아이에게 듣는 재미도 아주 쏠쏠하다.
어느 날은, 스케치북을 찾은 아이가 하는 말
"엄마, 그링그리 하자."
"응?"
"그링그리."
"그링그리가 뭐야?"
"그링그리 하자. 그링그리. 그림그리. 엄마 그링그리 몰라?"
스케치북을 들고 이야기하는 아이의 의미는 파악했지만 저 말이 어디서 나온 말일꼬 신기해서 계속 물어봤었더니 아이는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림그리. 그링그리. 그림그리 하는거. 색연필로 그링그리 하자."
아이가 한 오십번쯤 말했을까.
그링그리인지 그림그림인지 그링그링인지 블링블링인지...... 자꾸 반복하니 단어가 재밌다.
말하다가 그 단어가 저도 재밌는지 실실 웃어가며,
때로는 알아듣지 못하는 - 사실은 계속 듣고 싶어서 일부러 못알아듣는 척 하는- 엄마를 책망하며....
아!!! 알아냈다.
친정엄마가 대구 사투리로 "그려"를 "그리"로 말씀하신다.
"그림 그려." 하는 말을 "그림 그리."로 말씀하신 것.
아이는 명사+동사로 이해하지 않고 통째로 명사로 인식했던 건가보다.
외갓집에서 습득해온, 아이 말속에 깨알같이 숨어있는 사투리가 반갑다!
g단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