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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단조 Jul 27. 2016

우문현답

네 살, 마주이야기 #1

두살이 되기 전엔 아이에게 "A가 좋아, B가 좋아?"라는 선택의문문을 던지면 아이는 늘 후자가 좋다고 대답을 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맘때 그러하듯.


"지호가 좋아, 연우가 좋아?"

"연우"

"그럼, 연우가 좋아, 지호가 좋아?"

"지우"


하지만 두돌즈음 되니 아이는 판단력이 생기기 시작했고, 마냥 후자를 답하기보단 사뭇 진지한 고민을 하다 대답을 하곤 했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라는 질문은 아이들에게 물을만한 질문이 아니라고들 하지만, 거짓말은 못하면서 판단력은 생긴 두돌즈음 아이들의 반응을 살피기에 가장 재미있는 질문일런지도 모르겠다. 


어느날 아침, 아이랑 둘이 거울 앞에서 꼬옥 껴안고 애정행각을 벌이던 중이었다.


"우리 포도 정말 이쁘다. 그치?"

"응"

"엄마도 이뻐?"

"응"


그러던 중 내 장난기도 발동했다.


"그런데 말이야,  포도가 보기엔 포도가 이뻐, 엄마가 이뻐?"


아이가 어떻게 대답하든 난 "엄마는 포도가 더 이쁜데..." 라고 말해 줄 생각이었지만,

아이가 생존 애교를 부릴지, 아니면 본인이 더 예쁘다고 말할 지 궁금해졌다. 

이런 내 장난이 난처했는지, 아이는 처음에 질문을 못들은 척 딴청을 피운다.

그래서 한번 더 질문했더니 이번엔 질문이 되돌아온다.


"엄마, 엄마가 이뻐, 할머니가 이뻐?"

우리 둘이 얘기하는데 왜 할머니 이야기가 나온건지, 무슨 뚱딴지같은 화제전환인가 싶어, 다시 물었다.


"포도야, 엄마가 예뻐, 포도가 예뻐?"

그랬더니 아이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엄마, 엄마가 예뻐, 할머니가 예뻐?"


아이가 내 말을 잘 이해못한건가 싶어 서너번이나 반복해 물었으나

아이는 똑같이 서너번을 반복해서 엄마가 예쁜지, 할머니가 예쁜지를 묻고 있었다.


글쎄, 우리 엄마가 나에게 물었다면, 난 무어라 대답했을까.

엄마는 엄마대로, 나는 나대로, 우리 둘 다 이모습 그대로 사랑스러우니

그런 질문엔 대답할 수가 없는 게 당연하겠구나.


이렇게도 저렇게도 대답하기 힘든 질문을 던진 엄마에게 아이는, 

똑같은 질문을 되돌려주며 그것이 우문임을 깨닫게 해 주었다.


아이의 우문현답에 나는 기분 좋게 카운터펀치를 맞았다. 

앞으론 이런 난처한 질문, 안할게. ^^



g단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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