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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단조 Mar 15. 2021

미스터 로버트 1

나의 특별한 영어선생님

저녁 일곱시. 어수룩하게 해가 넘어가는 시간이다. 

영어를 무료로 가르쳐주는 성당이 있대서 오랜만에 친구랑 저녁외출을 했다. 어딜가도 아이와 함께 다니는 나에게는 특별한 일이었다. 남편들이 일찍 퇴근해 아이를 봐주었고, 어두워지면 외출하기도 무서워지는 미국 대도시의 밤에, 친구와 함께 숨어들 곳을 찾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나선 것이다. 하지만 그 두근거림은 금세 당황으로 바뀌었다.

 

성당에서 운영하는 사립학교의 건물 입구로 들어섰더니 한쪽엔 철장으로 된 셔터가 내려와있었고 - 여기서부터 어쩐지 불안했다 - 반대쪽에 불이 켜진 사무실앞으로는 질서없는 긴 줄에 선 사람들의 이야깃소리가 복도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영어는 단 한마디도 들리지않았다. 이들은 대부분 스페인어를 쓰고 있었는데, 우리가 이 사람들을 살피듯 이 사람들도 흘끔흘끔 우리를 쳐다보았다. 호기심으로 가득 찬, 적의는 없는 선한 눈빛이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그 어디에서보다 '튀는 이방인'임이 분명했다. 


"잘못 온 것 같아."

"그래도 어떻게 나온건데, 돌아가긴 그렇지?"


되돌아갈 기회를 놓친 친구와 나는 잠시 후왁자지껄한 사무실 구석의 테이블에 앉아 레벨테스트를 보게 되었다. 중학교때 영어 시험문제 푸는 것 같은데? 하면서.  

우리의  테스트지를 채점하던 봉사자들은 갸우뚱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너무 레벨이 높아서 들어갈 반이 있을까?" 

"이 사람들 여기서 가르쳐야 될 것 같은데?"


에이 설마. 내 영어가 짧아 잘못들은 것이리라. 생각했다. 

잘못 온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돌아가기엔 여기까지 온 게, 시험본 게 아까우니까. 오늘만 어떻게든 버텨보자 하고 불편한 시간을 견디고 있었다. 친구와 불안한 마음을 한국어로 속닥여가며 불안한 마음을 다듬고 있는데, 저기, 우리 선생님이라는 분이 나타나셨다. 


조명이 역광으로 비춰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커다랗고 새까만 실루엣이 성큼성큼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남자 선생님이구나. 가까이 다가와 손을 내밀고 악수를 청했을 때, 가까운 거리에서 고개를 들어 선생님의 얼굴을 보았을 때, 나도 모르게 가슴이 철렁했다. 


무.섭.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지금 돌아보면 전혀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 얼굴인데, 나는 도대체 영화의 어떤 장면을 떠올리고 그런 생각을 했던걸까. 

선생님의 이마에는 움푹 패인 자국이 있었다. 찰흙조형물에 돌을 하나 툭 던져 생긴 듯한 움푹 패인 자국. 쉽게 살아온 인생은 아니었을것이다. 웃을때 보이는 두 개의 송곳니. 이렇게 두 개의 송곳니만 남은 사람은 살면서 처음 만났다. 노년에 이를 다 잃고 틀니를 해야 했던 할머니의 잇몸만 남은 이를 본 적은 있지만, 60대의 나이에 이렇게 이가 두개만 남아버린 사람은 길에서 만나는 노숙자 외에는 정말로 처음보았다. 아마도 그것때문에 낯선 마음을 무서움으로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내셔서 나도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했지만, 영어선생님으로 마주하기에 친근한 인상은 아니었던 기억이다. 


선생님은 교실로 우리를 안내하는 내내 이런 저런 농담을 하셨다. 교실로 가는 복도는 너무도 길게 느껴졌다. 


이렇게 사무실에서 멀어져 깊숙하게 학교 안으로 들어가도 괜찮은걸까?  

이대로 걸어들어가서 다시 못돌아오는 건 아니겠지? 

너 없었음 혼자는 절대 못들어갔을 곳이야. 

일단 가보기나 하자. 


친구와 한국어로 속닥이며 선생님이며 이 학교가 무섭다는 공통의 첫인상을 확인했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에, 통하는 농담을 주고받을 누군가가 있다는 것에 안도할 뿐이었다. 


교실에 도착한 후 우리는 수업인지 잡담인지 모를 대화를 시작했다. 친구와 나, 그리고 또 한명의 멕시칸 아주머니였다. 선생님은 농담을 끊임없이 했다. 농담인지 뭔지도 잘 모르겠는,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였다. 한국말로 들어도 웃음으로 반응하기 힘든 이야기었을텐데 영어로 대화는 이어졌으니 수시로 Sorry? Pardon? 하며 고개를 갸웃하는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비어있는 앞니 사이로 발음이 새어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도 쉽지 않았다. 차라리 웃지도, 웃기려 하지도 않으시면 좋겠다고 우리는 눈빛으로 속삭임으로 뒷담을 나누었다. 얼마  지나지않아 이 순간을 수치스럽게 기억할 줄도 모르고 말이다. 


웃을때마다 이가 남은 송곳니 두개밖에 보이지 않아 기묘하게 보이는 미소가 전혀 이상해보이지 않는 데도, 앞니가 없는 선생님의 발음에 익숙해지는 데도, 어- 어- 하고 말 사이를 잇는 버릇이 바보스럽지 않게 느껴지는데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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