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단조 Apr 04. 2021

제인 선생님 2

선생님의 메일을 읽고 나서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수업을 못하게 되다니 그럼 나는 이 외로운 휴스턴에서의 시간을 또 어떻게 보내야 하나 하는 이기적인 걱정도 들었다. 한국에서 긴 여름을 보낸 후, 미국으로 돌아오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 때마다 제인선생님을 떠올렸는데 이제 제인 선생님을 만날 수 없다니! 

또 한가지의 걱정은 선생님의 건강이었다. 당장 부고를 듣더라도 크게 이상할 것 없을 정도로 연세도 있으시고 거동도 불편하셨다. 하지만 수업을 진행하실 때 만큼은 정정하셨는데, 이제 더이상 할 수 없다고 하시니 걱정이 앞섰다. 남편도 없이 혼자 사시는 선생님에게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건강이 나빠지신걸까. 병세가 악화되어 마지막 순간을 맞고 계신 건 아니겠지. 거동이 불편하시다면 평소에도 도와줄 이가 필요할텐데, 내가 도움이 될 순 없을까. 


답장버튼을 누르고서, 한참동안 깜빡이는 커서를 바라보았다. 썼다 지웠다, 또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지만 결국은 하얀 화면의 반짝이는 커서로 돌아오고 말았다. 선생님에 대한 내 감정과 감사를, 내 인생에 들어온 선생님의 의미를 단번에 정리할 수 없었다. 그 감사에 더한 걱정을 편지로 적을 능력이 내겐 없는 듯 싶었다. 


그렇게 두 주쯤 지난 후, 우연히 그 수업을 함께 들었던 일본인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건강상의 문제라고 하셨어. 그래도 그렇게까지 심각하신 건 아니래. 주일날 교회는 계속 나올 수 있을 정도이시니 말이야."

그래도 선생님의 건강이 심각하게 악회된 건 아니라니 안심이었다. 


관절염으로 인해 주차장에서 엘레베이터까지, 엘레베이터에서 또 2층 교실까지 올라가는데도 한참이 걸리셨던 선생님. 보라색을 좋아하셔서 머리끝부터 발끝도 모자라 지팡이까지 보라색을 짚고 다니시던 선생님. 손가락이 굽어 글씨도 쓰기 힘들다시던 선생님. 되돌아보면 당장 그만두신다해도 무리는 아니었는데, 나는 정정하신 마음가짐과 올곧은 내면만 바라보느라 선생님의 약해진 껍데기를 애써 모른척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두 달동안, 나는 수시로 임시보관함에 들어가 선생님께 편지를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때론 너무 단조롭게 느껴져 내 감사의 마음이 녹아나지 않았고, 때론 너무 진지해서 무거워서 보낼 수 없었다. 때론 눈물이 나서 글을 마무리지을 수 없었고, 다시 만나고 싶다는 말이 부담이 될까봐 보낼 수 없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메일을 쓰고 나면, 그게 영영 마지막이 될까봐, 혹시나 답장이 오지 않을까봐 겁이 나서 보낼 수 없었다. 


그렇게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어느날, 미국에도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대혼란의 상황이 벌어졌다. 마트마다 물과 생필품이 동이나던 상황이었다. 이 때다 싶어 선생님께 안부 메일을 썼다. 


잘 지내시는지,

선생님과 수업하던 그 시간이 무척이나 그립다고. 

내가 미국생활에 발 딛는 데 큰 도움이 되어주셔서 참 고맙다고. 

건강은 어떠신지, 거동은 괜찮으신지, 

마트에서 장보기도 어려워진 요즈음인데 장보는 데는 문제 없으신지,

언제라도 가서 도와드릴 수 있으니 연락을 달라고 말이다.


메일을 보내고 나선 불안함에 수시로 메일함을 들락날락거렸다. 메일이 오면 핸드폰에 알림이 올텐데도, 혹시나 내가 놓쳤을까 싶어서 재차 확인했다. 그렇게 3일을 기다린 후, 선생님의 답을 받았다. 답메일의 제목만 보고도, 안도의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내가 무슨 걱정을 했던거지....


선생님은 관절염이 심해져서 여전히 거동이 불편하시다고 하셨다. 하고싶은 건 못하지만, 정말 필요한 건 할 수 있는 수준이라 감사하다고 하셨다. 마트에서 장보기는, 온라인으로 주문하는 법을 익혀서 잘 활용하고 있다며 걱정할 것 없이 쉽게 하고 있다고 하셨다. 제안을 해줘서 정말 고맙지만, 아직까진 그렇게 큰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고, 언제라도 도움이 필요할 때 내 제안을 기억하겠다고 하셨다. 


"날 생각해줘서 고마워. 니 덕분에 예전의 좋은 추억이 생각나 행복하네."



여전히 전세계는 물론, 미국의 코로나바이러스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이제 65세 이상 대부분의 노년층은 백신접종을 하셨을 터였다. 이제 나도 며칠 후면 백신 2차접종까지 마칠텐데, 그럼 꽃 한 다발, 과일 한 바구니를 사들고 선생님을 방문해 인사라도 한 번 드릴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선생님께 이메일을 보낸 지 딱 1년이 지난 때였다.


제인선생님, 안부인사 드려요. 잘 지내시나요?

이번주에 문득, 선생님 생각이 나서 연락을 드려요. 

지난 겨울추위에 집은 괜찮으셨나요? 

관절염은 좀 어떠세요?


저는 잘 지내요. 저희 남편은 지금 출장중이구요, 저희 막내는 벌써 초등학교 PreK에 다녀요. 아이가 한 살 때 선생님을 처음 만났는데, 진짜 시간 빠르죠?


같이 성경공부 하던 H 기억하시죠? 그 친구는 작년 요맘때 일본으로 돌아갔어요. 하지만 일본에서도 매주 온라인으로 하고 있는 성경공부에 참석하고 있어요. 


제가 기도해드릴 건 없는지, 도와드릴 건 없는지 궁금해요.

이젠 아이들이 학교에 가서 평일 오전시간은 좀 여유가 있거든요. 

보고싶어요. 얼굴보고 인사라도 드리고 싶구요. 부담없이 알려주세요!


메일을 보내놓고, 선생님의 답이 오기를 기다렸다. 작년처럼 조바심이 나지는 않았다. 작년에도 3일만에 답이 왔으니, 느긋하게 기다려야지 하고 맘먹었다.


선생님의 메일을 기다리며 선반위의 식물들을 보다가 가슴이 철렁했다. 식물 키우기엔 영 소질이 없는 나이지만, 3년전 수업을 마치고 제인 선생님께 선물로 받은 골든 포토스는 죽이지 않고 잘 키우고 있었다. 잘 번식시킨 건 아니지만, 그래도 죽이지는 않고 살려는 두었단 말이다. 그 옆으로는 고모에게 받은 골든 포토스 화분 두 개가 더 있어서 외롭지 않게 두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난 두 달, 남편의 긴 출장으로 집안 이곳저곳에 신경을 못써 그랬나, 선생님께 받은 골든 포토스가 축 쳐져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절반은 누렇게 잎이 뜨고, 절반은 여전히 초록이었지만 힘이 없었다. 급하게 물을 주고, 햇볕도 쐬어주며 선생님의 답장을 기다렸다. 


이메일함을 열어보아도, 새로운 메일은 오지 않고 오렌지색 글씨만 보일 뿐이었다.

"4일 전에 보냈습니다. 후속 조치를 하시겠습니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선생님의 미들네임까지 넣어 부고란을 뒤져보았다.

제발 선생님이 나오지 않길 바랐고, 바람대로 선생님의 이름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교회에 전화해서 직접 확인할 용기는 차마 생기지 않았다. 

혹시나 하고 선생님의 메일을 기다려볼 뿐이다.

이전 04화 제인 선생님 1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