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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단조 Mar 18. 2021

미스터 로버트2

나의 영어 선생님


미국에 와서 3년간, ESL (English as a second language) 수업을 하는 곳을 몇 군데 찾아다녔었다. 그 중 두 군데는 꽤 오래 다녔다. 그러면서 고정관념같은 것이 생겼다는 것을 이 성당에 와서야 알아차렸다. 


자원봉사를 하시는 선생님들은 대부분 60세 이상의 마음 넓으신 할머니들일것이다.

무료 ESL수업을 들으러 오는 사람들은 배우자를 따라 타지로 이제 막 오게 된 사람들일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그 고정관념은 완전히 무너졌다. 이곳에 영어를 배우러 오는 이들의 대부분은 멕시코 등의 남미에서 이주한 이민 1세대들이었다. Hi라는 인사에도 쑥스러워하는 눈빛이 역력한 이민 새내기들도 있었고, 이 곳 생활에 이미 익숙한 이민 10년차도 있었다. 그들은 모두 생업에 종사하다 퇴근후 해가 지면 이곳에 모여들어 기초 영어 문법을 배우고 있었다. 영어를 못해도 그들은 '스페인어'만으로도 충분히 이곳에서 일을 하고 생활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제야 뒤돌아보니 내가 의식하지 못했을 뿐 내가 만나는 히스패닉(라티노)들 중에서도 영어를 못하는 사람들은 많았다.  내가 살고있는 아파트의 유지 보수 관리팀 영어로 어느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한 분은 많지 않다. 대부분은 What is the problem? I'll fix it. Don't worry.  수준의 기초 영어만 구사하신다. 손가락으로 가리키기만 해도 기막히게 문제를 알아차리고 맥가이버처럼 뚝딱. 문제를 해결해주고 가시니 영어를 못하는 것이 문제가 될 리 없다. 오히려 이 팀은 모두 스페인어를 하기 때문에 스페인어를 못하는 사람이 일한다면 오히려 버티기 힘들겠다 싶다. 

아파트의 계약업체인 창문이나 청소업체에서 나오시는 분 중에서도 영어를 쓰시는 분을 만나기 쉽지 않았다.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기면 출장 직원은 매니저에게 전화를 해 매니저와 내가 통화를 하고, 매니저가 다시 직원에게 지시를 하는 식으로 의사소통을 하곤 했다. 


멕시코와 국경을 마주한 텍사스는 인구의 대략 40%가 히스패닉이라고 한다. 공식언어가 없는 미국의 특성상 학교에서든 은행에서든 어디서든 서류 한 면엔 영어, 다른 면엔 스페인어가 적혀있다. 

거리에서든 쇼핑몰에서든 흔히 스페인어를 들을 수 있다. 스페인어를 쓰는 사람들끼리는 서로 알아보는 눈이 있는건지, 그들끼리는 첫 눈에 바로 스페인어로 대화를 시작하곤 한다. 마치 한국인들이 이 미국 땅에서 일본인, 중국인을 다 걸러내고 한국인을 한 눈에 착 알아보고 안녕하세요. 하는 것과 비슷하려나.  

스페인어를 잘 하는 사람들이 영어까지 잘하면 더 유리하겠지. 히스패닉이 아닌, 60%이 사람들과 소통하려고, 이들은 영어를 배우러 그 저녁에 이 자리까지 나와있는 것이었다. 




로버트 선생님이 어느날 대화중 문득, 이런 이야기를 했다.


"너도 더 배우고 싶은 게 많긴 하겠지만, 너는 남을 가르쳐 본 경험도 많잖아. 이렇게 기초도 모르는 학생들이 많은데, 가르쳐보고 싶은 마음 없어? 니 영어면 충분해."

 

교육을 전공했고, TESOL과정을 이수했고, 한국에서 초등 아이들에게 영어도 몇 년이나 가르쳤던 나이지만 영어를 배우러 온 내가, 한국사람도 아니고 남미 사람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라니, 웃음부터 나왔다. 어린 아이도 겨우 떼놓고 나오는 밤시간인데, 하루종일 아이를 돌보다보면 피곤해서 한국어로 말하기조차 힘들어지는데, 그래도 한국어라면 몰라, 내가 한국사람도 아닌 히스패닉에게 영어를 가르친다고? 

황당해하며 손사래를 쳤다. 


Why not?


그러게. 안되는 이유는 너무도 많았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꿈틀거렸다. 하기싫다고 할 수 없다고 끊임없이 외쳐대는 소리가 있었는데, 그것은 마음의 다른 소리를 감추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어쩌면 그 날은 이번 학기의 마지막 수업이 될 것이었다. 선생님은 다음주부터 교도소로 봉사활동을 가셔서 3주간 자리를 비우실테고, 3주 후엔 공식적으로 마지막 수업이 있지만 그 날은 다음 학기를 위한 기말고사를 보는 날이었다. 우리 반에서 더 올라갈 레벨은 없었고, 따로 시험을 칠 이유도 없었다. 게다가 연말 약속도 잡혀있어서, 아무래도 이 날이 마지막이 될 것 같았다. 같이 다니던 친구가 못 나온다고 해서 나도 쉴까, 잠깐 고민했지만 그래도 선생님과 마지막 인사는 하고싶었다.  

 

수업에 들어가보니 예상대로 학생은 나 혼자였다. 수업을 시작하려는데, 누군가가 선생님을 복도로 불러냈다. 알고보니 옆 반의 선생님이 못나오셨는데 그 반에서 선생님을 기다리는 학생이 무려 열다섯. 혹시 합반이 가능한지를 묻는 것이었다. 


내가 거절해도 다른 선생님들이 있으니 괜찮아. 나도 너랑 1대 1로 이야기 하는게 정말 좋고. 그러니 부담갖지 말고 니 의사를 정말 솔직하게 얘기해줘. 혹시 합반해보고 싶은 마음 있어? 혹시 너도 다음에 언젠가 이런 사람들을 가르쳐보고 싶은 생각이 있다면 오늘 만나보는 것도 좋고 말이야.


나도 꽤나 피곤한데 무리해서 나온 날이었기에 1대 1로 두 시간 이야기 하는 것도 조금은 부담스럽게 느껴졌기에 그러자고 했다. 솔직히 그대로 집으로 돌아가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로버트 선생님의 선한 열정을 지켜볼 날은 오늘뿐이었다. 가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은 마음이었다. 그래서 선생님을 따라 옆교실로 들어갔다. 


학생들은 갸우뚱하며 나와 로버트 선생님을 쳐다보았다. 예상대로, 로버트 선생님은 그 반의 유일한 흑인이었고, 나는 그 반의 유일한 아시안이자 유일하게 스페인어를 모르는 사람이었다. 학생들은 반갑다는 듯 박수를 치고 환호를 보냈다. 이게 뭐 그리 신날 일이라고! 일을 막 마치고 온 듯 작업복을 입고 있는 이들도 있었고,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듯 젊고 어린 아이들도 있었다. 피곤해보였지만, 이상하게도 생기가 넘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배우는 영어라는 것은 I like yellow pants. 수준의, 내가 중학교에서 배웠던 기초영어였다. 그들은 그런 기본은 한 번도 배워본 적이 없다는 듯, 어렵게 어렵게 연습문장을 만들어 나갔다. 선생님이 부연설명을 했지만 부연설명은 연습문장을 만드는 일보다 그들에겐 오히려 더 이해하기 힘들어보였다. 선생님의 말은 허공에 맴돌았고, 그들은 스페인어로 떠들기 시작했고, 선생님은 끝까지 스페인어를 하지 말라며 영어를 고수했다. 이토록 산만하게 흩어져버리는 수업을 지켜보며, 교실 뒤편에서 나는 기도하는 심정이 되었다. 


부디, 로버트 선생님에게 힘을 주세요. 지치지 않도록.... 


오늘 로버트 선생님을 처음 본 그 학생들은, 로버트 선생님에 대해 어떤 인상을 받았던걸까. 처음 내가 그러했던 것처럼, 조금은 이상하다고 생각했을까. 조금은 무시하고 조롱하며 친구들과 스페인어로 떠들어댄 건 아니겠지.... 


불과 지난달까지만 해도, 내가 그랬다. 수업하시는 선생님 뒤에서 친구와 함께 선생님의 뒷담화를 했다. 


설마 약사는 아니겠지? 약사라면 대반전이다. 그치?

뭔말이야. 영어도 어려운데 발음이 새니깐 뭔말인지 더 모르겠어. 

이 사람 영어 잘 하는 거 맞긴 맞겠지? 


이제와 왜 그랬나 변명을 하자면, 그는 칠판에 단어를 쓸 때 자주 철자를 틀리곤 했다. 잃어버리다는 단어인 lose를 loose(헐거워진) 이라고 쓴다든가, 무신론자인 atheist를 athest 라고 쓰는 식이었다. 수업을 하다가도 수시로 주제를 벗어나기도 했는데, 자연스러운 노화의 현상이라 보기엔 심할 정도로 자주, 방금까지 하던 이야기를 잊곤 했다. 한 학기 등록을 한 수업이긴 했지만,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나온 귀한 시간을 낭비하게 되는 건 아닐까 회의가 들기도 했다. 차라리 친구와 카페에 가서 수다를 떠는 것이 훨씬 가치있을 것 같았다. 

둘째주까지도 그랬다.  예의없이 대한 적은 없지만, 재미랍시고 친구와 그런 농담을 주고받곤 했다. 


선생님에 대한 시선이 완전히 바뀐 그 날 이후로, 나는 선생님을 만날때마다 그 날의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로 해맑게 웃는 이 학생들이, 부디 선생님을 욕하지는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수업이 끝난 후 선생님은 나에게 와서 어깨를 툭툭 치며 함께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긴 복도를 걸어나오며 이야기했다.


"어때? 정말 가슴뛰는 일 아니야? 이 아이들을 도와주고 싶은 생각이 있으면 언제라도 얘기해. 부담갖진 말구."


내 마음속에 약간은,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는 것을 선생님은 눈치챈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로서는 새로운 도전에 대한 두려움이 문제가 아니었다. 저녁까지 남아있을 체력과 정신력, 내가 모르는 언어 가운데서 미아가 될 것 같은 두려움이 문제였다. 그리고 이것들은 내가 차마 선생님에게 얘기할 수 없는 핑계다. 


선생님은 이 성당에서 40분이상 떨어진 위성도시에 살고 있었다. 퇴근시간이면 아마도 1시간 반은 걸릴 터였다. 어떤 이의 집에서 거처하며 집 관리를 맡아주는 '집사'로 일하고 계신다고 하셨다. 이 성당을 다닌 지는 몇십년이나 되었는데, 몇 번의 홍수로 인해 결국은 멀리 살게 되었단다. 일을 마치면 매일 저녁 성당에 와서 미사를 드리거나 기도를 하거나 영어를 가르치고, 또 매일 저녁 40분 거리를 운전해 집으로 돌아가는 일상을 보낸다 하셨다. 15분거리에 살면서 나 하나 바로세우기도 힘들어 허우적거리며 매일을 버티는 내가, 선생님 앞에서 무슨 핑계를 댈 수 있겠나. 


같이 주차장으로 걸어나왔다. 이런저런 겉도는 이야기를 나누다 선생님 차 앞에 섰다. 선생님은 슬며시 주위를 둘러보더니 좀 전에 한 학생에게 받은 스타벅스 병커피 한 잔을 나에게 건네주었다. 


"그 학생이 보면 안되는데, 미안하지만 내가 커피를 안마시거든. 넌 이 커피 마셔? 선물받은 걸 주는 건 좀 그런가?" 


나는 고맙다며 커피를 받아들었다. 이제 정말 헤어질 인사를 해야 할 시간인데 쉽사리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나 이제 기도하러 갈건데 성당 가본적 있어? 구경 한 번 해볼래?"


성당을 가본 게 아마 스물 세살무렵 호주 혹은 뉴질랜드에서였을것이다. 가까운 교회를 찾지 못해 성당으로 들어갔는데 성당은 처음이라 도무지 언제 서고 앉는지를 몰라 눈치만 살피다 나온 기억이었다. 

그냥 헤어지기 아쉬웠던 터라, 그러자고 하고 함께 성당 건물로 들어갔다. 잔잔한 음악이 울려퍼졌고, 차분한 조명과 엄숙한 예배당이 보였다. 그 옆에는 그리 크지 않은 기도실이 있었다. 때는 밤 9시경이었으나 열명도 넘는 사람들이 띄엄띄엄 앉아 기도를 하거나 고요히 앉아 있었다. 선생님은 앞쪽 의자에 앉아 10분정도 기도를 드렸고, 나는 고요하게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선생님은 어떤 기도를 드리고 있을까 생각하면서.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이 될 것이다. 같은 도시에 산다지만 서로 겹치는 동선은 없다. 겹치는 친구도 없다. 우연히 마주칠 일도 없을 것이다. 더 읽고싶지만 오픈 엔딩으로 끝이나버린 소설처럼, 로버트라는 책은, 그렇게 아쉬운 채로 끝이날 것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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