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선생님에 대한 인상이 완전하게 바뀐 것은 우습게도, 선생님이 너무 인상깊게 보았다는 드라마 이야기를 들었을 때였다. 넷플릭스에서 한국트 선생님에 대한 인상이 완전하게 바뀐 것은 우습게도, 선생님이 너무 인상깊게 보았다는 드라마 때문이었다. 넷플릭스에서 한국 드라마를 하나 보았는데, 경찰에 관한 이야기였고 너무도 감동적이었고 인상깊었다고 하셨다.
넷플릭스에 있는 경찰드라마라면 뭘까?
역시 선생님은 범죄물을 좋아하시나? 혹은 추리물이였을까?
제목이 기억나지 않으신다고 해서 라이프 온 마스, 보이스 같은 추리물을 대 보았고 포스터도 보여드렸지만 아니라 하셨다.
"기억은 안나지만 제목이 non sense라는 생각은 들었어. 드라마는 참 좋았는데 제목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질 않았거든. "
설마 하는 마음이었다. 잔잔하고 인간적이고 다소 지루할지도 모르는 휴머니즘이 가득한 그 드라마는 설마 아니겠지?
"혹시, 라이브인가요?"
"맞아! 그거야! 그거 너무 좋았는데, 시즌2는 나오지 않는건지 궁금해."
설마했는데 정말이라니! 놀란 마음은 이내 반가움으로 바뀌었다. 내가 너무 좋아했던 그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니. 그 사소한 취향을 공유하는 그 짧은 시간 이후로 선생님과 부쩍 친해진 느낌이었다.
하루키가 소설 속 인물을 통해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읽은 사람이라면 나와 친구가 될 수 있어."라고 한 것 처럼, 나 역시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 믿음은 이제껏 깨진 적이 없었다. 선생님은 나쁘지 않은 사람일거라고, 인간적인 사람일거라고,
그 다음부터 선생님과의 수업의 방향은 다소 바뀌었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아주머니는 더이상 수업에 나오지 않았고, 학생은 나와 내 친구뿐이었다.
우리는 칠판에 한국 지도를 그리기도 했고, 한글의 구성원리를 설명하기도 했고, 김치담그는 법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하루는 선생님이 한국전쟁 휴전이 언제인지 물어보셨는데 친구와 나는 서로 답을 맞춰 보고 있었다.
1950년에 시작한 거야 누가 몰라. 근데 그게 언제 끝났지? 52년인가? 아니면 53년에 끝났나?
우리 둘 다 확실하게 대답을 못하는 걸 보고 선생님은 황당해 하셨다.
"너네는 한국사람인데 어떻게 그걸 모를 수 있어?"
미국인 앞에서 조금 부끄럽기는 했다. 선생님은 휴전이 선생님의 아버지가 한국전쟁에 쓸 군사용품인지 무기인지를 관리하고 보내는 일을 하셨다고 했다. 1953년 여름에 전쟁이 끝났던 것을 정확히 알고 계셨다.
이제 영어는 더이상 선생님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선생님의 주제는 좀 더 심도깊은 철학이라든지 인생으로 넘어갔다. 선생님이 따뜻하고, 인간적이며, 선한 사람이라는 것을 너무도 순식간에 알게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마치 월간 '좋은생각' 같은 잡지를 읽는 것과 비슷했다. 진지한 것도 좋은데, 이야기가 너무 무거워지는 것이 싫었던 우리는 가벼운 농담을 곁들이며 화제를 돌리기 시작했다.
"선생님, 이 친구가 선생님 가방 너무 이쁘다는데, 어디서 구한거에요?"
선생님의 가방은 하얀 캔버스백으로, 뉴요커 잡지의 표지가 그려진 것이었다. 친구가 뉴요커 잡지의 표지를 좋아한다고 선생님 가방에 관심을 가지길래 슬쩍 이야기해본 것이었다. 뉴요커를 읽으시는 분일까.
"이거 산 건 아니고 잡지 구독자에게 주는거야. 혹시 원한다면 수업 마치고 내 차로 같이 가자."
의외의 답변이 돌아와서 친구와 나는 서로 마주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차에 가방이 많이 있다는 얘긴가? 혹시 뉴요커 판촉사원은 아니겠지? 차에 가방을 백개쯤 쌓아둔 건 아니겠지?
선생님이 잡지와 가방을 주겠다는 얘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우리는 수업이 끝나고 호기심 가득한 발걸음으로 선생님 차로 향했다. 넓은 주차장 중에서도 가로등이 닿지 않는 어두운 곳에 세워진 선생님의 차로 가면서 친구와 나는 어색함과 약간의 두려움같은 것을 동시에 느꼈던 것 같다. '우리가 둘이니깐 이렇게 겁없이 따라가는거겠지?'라는 말을 주고받으며, 우리는 농담으로 어색함을 채워나갔다.
차에 도착해 선생님이 차 뒷문을 열었지만, 거기에 백개쯤 쌓인 캔버스백이나 수북히 쌓인 잡지는 없었다. 선생님은 가방안의 짐들을 뒷자석 위에 무자비하게 와르르 쏟아내더니, 그 가방을 툭툭 털어 친구에게 건넸다.
정말?
자기가 갖고다니던 가방을 이쁘다는 한마디에 이렇게 그냥 준다고?
뭘 준대서 따라오긴 왔지만, 이렇게 자기가 오늘까지 사용하던 걸 덥썩 줄 줄은 몰랐다.
선생님은 웃고있었다. 까만 밤 어두운 주차장에서, 하얀 송곳니 두 개만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좀전까지도 늘 보여주던 웃음이었지만 그 전엔 미처 발견하지 못한 아름다움을 반짝 본 것 같았다, 2주전까지만 해도, 기묘하다고, 조금은 무섭다고 느꼈던 미소였는데 말이다.
정말 이걸 주는거냐 물었을때 선생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안될 건 뭐야. 모든 건 다 하나님에게 속한 거야.
내가 너에게 줘서 니가 행복하다면, 나는 그걸로 정말 행복해.
친구는 머뭇머뭇하며 가방을 받았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뒤돌아서 오면서, 친구도 나도 가슴속의 무언가가 북받쳐 더이상 농담같은 건 할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어두운 차 안에서 울컥 솟아오르는 무언가를 꾹꾹 눌러 삼켰다.
가방을 받은 건 친구였는데, 왜 내가 자꾸 눈물이 나는지 모를 일이었다.
아낌없이 나누는 선생님의 아름다움에 감동했기 때문이었는지,
움푹 패인 이마에 앞니가 없는 웃음을 기묘하고 보기싫다고 생각했던 나의 못남이 부끄러워서인지.
꾹꾹 눌러담았던 눈물은
결국 집 앞 주차장에 도착해서야 터져버렸다.
그렇게 울면서, 내 부끄러움이 조금은 씻겨져내려갔을 것이다.
농담이 전혀 웃기지 않아도
맞춤법을 자주 틀려도
그것은 하나 흠 될 게 없는 것이었다.
선생님이 드라마 라이브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추천하면서 꼭 같이 추천하고 싶은 영화가 드라마 [나의 아저씨]였다. 선생님을 만난것이 2018년 가을이었으니, 그 해 초반에 보았던 나의 아저씨에 대한 감동은 선명했다. 작년에 나의 아저씨가 넷플릭스에 공개되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이 로버트 선생님이었다. 현실에서 정말 있을법도 한데, 내 주변에서는 전혀 없는 반짝거리는 사람. 세상에서 무시도 당하고 오해도 받고 시련도 겪지만, 사실은 흔히 만날 수 없는 너무 귀한 사람.
그 해 크리스마스 인사를 끝으로, 더이상 연락을 이어가지 못했다. 바쁜 일상에 치이다보니 선생님의 안부를 묻는 건 뒷전이 되어버렸다. 코로나로 팬데믹이 왔을 때도, 텍사스에 한파가 닥쳐 며칠간 정전으로 고생을 했을 때도 선생님의 안부가 궁금했지만 연락을 따로 드리지 못했다. 혹시 나를 잊으셨으면 어떡하나, 따로 만날 것도 아닌데 연락하는 건 좀 부담스러운 일 아닐까하는 걱정도 없었던 건 아니다. 그보다는 연로하시기도 하시고 당뇨에 건강도 좋지 않으신 선생님께 무슨 일이라도 일어났을까 하는 걱정이 더 컸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 속 후암동 사람들처럼, 선생님은 지금도 그 자리에서, 늘 그랬듯이 따뜻하고 아름다운 사람으로 살아가고 계시리라 믿고 싶었다.
브런치에 선생님을 추억하는 글을 쓰다보니, 선생님의 안부가 궁금했는데도 연락을 못했던 내 부족한 용기가 부끄러워서 정말 오랜만에 문자를 보내보았다. 1초만에 울리는 진동에 깜짝 놀랐다.
Unable to receive message.
믿기지 않았다. 왜 문자가 전송되지 않는다는거지?
다시 한 번 문자를 보냈다.
다시 한 번, 1초만에 진동이 울렸다.
Unable to receive message.
이 전화번호로는 더이상 연락이 되지 않았다. 페이스북을 하셨던 게 기억나 오랜만에 페이스북에 들어가보았다. 다행히 부고는 없었다. 20201년 3월 3일 선생님의 생일에 무려 200명이상의 사람들이 축하메세지를 남겨놓은 것을 보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2020년 12월 5일. 선생님이 올린 마지막 게시물을 이후로 페이스북에서도 선생님이 글을 남긴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페이스북에서 보낸 메세지에서도, 선생님의 응답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