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숙박을 그리 즐기지는 않지만, 그래도 호텔에서 가장 기대하는 게 있다면 바로 오믈렛과 크로와상이다. 벨
기에의 작은 디자이너 호텔에서 먹던 쫄깃하고 파삭. 소리가 나던 크로와상은 파리의 어느 크로와상 맛집보다도 맛있었다. 오믈렛이라면 일본 나리타 H공항의 할아버지 조리사가 만든 것이 최고였다. 은퇴하실 나이를 훌쩍 넘기신 듯 보이는 할아버지는 귀가 잘 들리지 않으시니 크고 간단하게 주문을 해야 한다. '전부 넣어주세요.'
할아버지는 팬 위에서 부드럽게 저어가며 익힌 달걀에 버섯, 토마토 등의 재료를 황금비율로 넣은 후 반달모양으로 곱게 접어 얌전히 내 그릇에 담아주신다. 엄마의 계란찜보다도 더 그리운 음식이 된 그 오믈렛은 호텔 오믈렛의 판단 기준으로 굳게 자리잡았다.
3년 전, 크루즈 여행을 갔을 때였다. 조식시간 식당으로 내려가보니 시끌벅적하게 붐벼 차분하고 여유로운 식사를 할 분위기는 아니었다. 오고 가는 인파 속 길게 늘어선 줄의 끝에 서면서, 이 오믈렛도 크게 맛은 없을 거라고 단정해버렸다. 굳이 이유를 대자면 오믈렛을 굽는 총각도 너무 젊고 활기넘쳐 보였기 때문이랄까. 무심하지만 섬세한 손길로 구우시던 나리타 공항의 그 할아버지와는 내공이 비교도 되지 않을것이라고 생각해버렸다. 게다가 반숙일 때 살살 뒤집어 반달보양을 만드는 게 아니라, 부침개 부치듯 앞 뒤로 노릇하게 구운 후 가운데에 치즈를 넣어 접어버리는 방식에서는 부드러운 오믈렛을 기대하기 어렵지 싶었다.
하지만 자리에 앉아 오믈렛을 맛보았을 때, 이게 바로 이제까지 내가 기다렸던 또 하나의 오믈렛이구나 싶었다. 단단할 것 같았던 계란은 부드럽게 목으로 넘어갔고, 재료들간의 어울림도 좋았다. 특히나 멕시칸들이 즐겨먹는 할라피뇨도 넣었더니 계란 특유의 느끼함도 전혀 없었다. 딸은 몇가지 좋아하는 재료만 넣어 주문했는데 취향에 맞았던 듯 싶다. 첫 아침 이후, 크루즈에서의 아침식사는 논란의 여지없이 오믈렛으로 정해졌다.
오믈렛을 주문하는 줄은 은근히 길었고, 오믈렛을 굽는 장소는 몇 군데나 되었다. 아이를 데리고 이 북적북적한 줄에 서 있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기에, 우리는 다음날 아침 어느 줄에 서야 할까 눈치를 살폈다. 그 중 스시를 파는 집 옆의 오믈렛집의 줄이 가장짧아보였다.
그 집의 아가씨는 예쁘면서도 다부진 인상을 가진 20대 아가씨로 보였다. 구릿빛 피부를 가졌는데 국적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독특한 매력이 있는 아가씨였다. 고단할 법도 한데 언제나 입고리가 귀까지 올라갈 정도로 밝게 웃으며 주문을 받았다. 매일 아침 대단히 좋은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오믈렛을 주문하는 그 누구에게라도 그녀는 그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친절하고 자상하게 대했다. 처음에는 줄이 짧아 보여 가게 된 곳이었는데 그 다음부턴 매일매일, 그녀를 찾아 그 집으로 향했다.
늘 딸과 함께 가다가, 어느 날은 혼자 주문을 했더니, "아이것까지 두 개 만들어드릴까요?" 하고 나를 알아봐주기도 했다.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나를 기억해주고 챙겨주는 게 어디 보통 일인가!
"미소가 정말 예뻐요. 그 미소가 매일 아침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준 거 알아요? 정말 고마워요."
그녀는 그렇게 말해주어 너무 고맙다고 하며 활짝 웃었다. 미래가 더 창창할 것만 같던 젊음만큼이나 그녀의 적극성과 긍정적인 마음가짐이 탐났다.
그렇게 5박 6일중 4일내내 그녀의 오믈렛을 먹고 나니, 마지막 아침은 꽤나 서운할지경이었다. 그런데 마침, 딸의 오믈렛을 대신 주문하려고 갔을 때 그녀은 식당이 그리 붐비지 않았다. 내 뒤로 아무도 없었기에, 사소한 대화라도 조금 더 나누고 싶었다.
그녀가 먼저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이랑 같이 여행하시나봐요. 몇 명이나 같이 여행하세요?"
그녀의 웃음은 당당했지만 말투에는 부끄러움이 다소 묻어있었다. 오믈렛을 주문하며 짧은 대화만 나눌 때는 느끼지 못했던 것이었다. 영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자들끼리는 알 수 있는 말투이다. 내가 지금 하는 말이 상대에게 제대로 가 닿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머뭇거림 같은 것. 동병상련의 친근함이 느껴졌다.
"아이는 둘이고 남편까지, 모두 네 명이서 왔어요."
"좋네요. 크루느는 재미있었어요?"
"네. 아이들이 정말 좋아해요. 저도 이렇게 맛있는 음식들도 매일 먹고 푹 쉴 수 있으니 좋았구요. 집에 가면 요리하고 청소하고 빨래하느라 바쁜데 말이에요."
"아이들은 몇 살이에요?"
"아홉살, 그리고 막내는 두 살이에요. 세 살 다 되어가요."
"저희집 막내도 두 살이에요. 저는 아이가 셋 있답니다."
그 즈음까지 이야기했을 때 내 오믈렛이 다 되어 내 접시에 올려졌다. 이제 뒷 사람이 주문을 하려한다. 그녀는 뒤에 있는 사람에게 어떤 오믈렛을 원하는지 물어야 했을 것이므로, 내가 비켜서는 게 자연스러울 것이었다. 나는 그녀와 조금만 더 이야기하고 싶었고, 그녀 또한 그래보였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그녀와 아쉬운 눈빛을 주고받으며 터덜터덜 내 자리로 돌아왔다.
크루즈의 고객들 중 동양인 가족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직원 중에선 동남아시아인들이 꽤나 많았다. 같은 아시안이라서였을까, 그들은 우리 가족에게 호기심을 가지며 자주 말을 건넸다. 어디에 살고 있냐. 어느 나라 사람이냐.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나누어주었다. 한 번 배를 타면 반년이상 배에서 내리지 않는다는 이야기, 아내를 배에서 만났는데 아내는 고국에 있다는 이야기, 한 번의 긴 여행이 끝나면 고국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몇 개월 시간을 보내다 다시 배를 탄다는 이야기, 7년을 일했는데 3년만 더 일한 후 퇴직금을 갖고 고국에 터를 잡겠다는 이야기 같은 것들. 젊은 직원들에게선 세상을 향한 호기심과 야망이 느껴졌고, 연륜있는 직원들에게선 가족을 등에 업은 생업의 장엄함 또한 느껴지곤 했다.
오믈렛을 굽던 그녀의 다음 이야기를 나는 알지 못한다. 그녀와의 시간은 그것이 마지막이었으므로.
조금은 쓸쓸한 목소리로, 하지만 유일한 공통관심사가 그것이라는 듯 "저는 아이가 셋 있어요." 하던 그녀의 말은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다. 책장을 넘기지 못한 채 그 책을 반납해야 할 때의 아쉬움같은 거였을까. 부디 유쾌한 반전같은 것이 있기를 기대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 느껴지는 쓸쓸함같은 것이었을까.
아이는 평소와 달리 다른 음식을 많이 먹었는지 평소와 달리 그녀가 만들어 준 오믈렛을 남겼다. 나는 이미 아침식사를 마친 후였지만 아이가 남긴 오믈렛을 끝내, 꾸역꾸역 다 먹었다. 어쩐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그 어린 아이들 셋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지. 그녀는 아이들을 언제 한 번씩 볼 수 있는 건지. 마지막으로 아이를 본 건 언제였을지. 그녀에게 이 일은 어떤 의미인지. 그녀는 언제 아이들 품으로 돌아가게 될지.... 오믈렛을 주문할 때면 나는 여전히 그녀와, 그녀의 아이들을 떠올려보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