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단조 Apr 06. 2021

아파트가 물에 잠기기 시작했다.

2017년. 휴스턴에 닥쳐온 허리케인 생존기(?)

 "You're going to get in trouble."

(너희 이제, 곤란해지겠는데...)


아침 7에 일어나 놀라서 현관문을 열고 후다닥 뛰어나가 집 앞을 살피자, 이웃집의 할머니가 걱정스런 눈빛으로 하신 말씀이었다. 밤새 뜬눈으로 지새다 아침에 알람소리도 듣지 못하고 깜빡 잠이 들었나보다. 어제까지만 해도 주차장이던 건물 앞은 이미 물바다로 변해있었다. 이제 10cm만 더 차오르면, 우리집까지도 물이 들어올 터였다. 


전날부터 수많은 경보와 속보를 들으며 나는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해두었었다. 늘 집 앞에 대던 차는 3층 주차장으로 올려두었고 여권 및 중요한 서류들을 지퍼백에 넣어 챙겨놓았다. 값나가는 물건들이 뭐가있나 살펴보며 싱크대 위로 올려두었고, 아침에 일어나서는 매트리스까지도 식탁위로 올려놓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집에서 제일 값나가는 물건이 이 매트리스였다니!!


우리집에만은 제발, 물이 한 방울도 들어오지 않기를 바라던 간절함은, 동이 터오자 '올테면 와보라지.' 하는 체념으로 바뀌고 말았다. 더 이상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식탁위에 누워있는 매트리스도, 물이 많이 차오르면 소용없을 것이었다. 가구들은 물에 둥둥 떠다닐 것이므로. 이미 바로 옆에 살고 있는 이웃 아파트는 1층이 허리까지 침수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곧 우리집 일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


집집마다 어떻게든 물을 막아보겠다고 입구를 막는 등 수를 쓰고 있었지만, 눈도 아니고 물이 이렇게 쉽게 막아질 리 없었다. 




이 곳 휴스턴은 공식적으로 6월 1일부터 11월 30일까지가 허리케인 시즌이라고 한다. 보통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태풍이 올 때 바람으로 인한 피해가 더 큰 편인데, 휴스턴에서는 바람보다는 침수 문제가 더 잦고, 고질적이라 한다. 단기간에 폭우가 쏟아지면 우선은 도로가 잠기고, 도로에 세워진 차들이 잠기고, 그 다음엔 집이 잠긴다. 침수이력이 있는 동네라면 집에 계단을 높이 올려 집을 다시 짓기도 하지만, 누구나 그렇게 집을 다시 지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침수된 벽을 뜯어내고 대충 내부 리모델링만 진행해서 살다가, 거듭 침수가 되는 일도 흔하단다.


미국으로 오기 전, 일본에서 4년을 사는 동안 우리 가족은 늘 지진에 대비해야했다. 이방인인 나와는 달리, 일본사람들은 언제나 준비된 모습이었다. 복잡한 쇼핑몰에서 지진이 오면 동시다발적으로 모든 사람들의 핸드폰에 경보 알람이 울렸고, 몇 초 후에는 보란듯이 지진이 오며 건물이 흔들렸다. 점원들은 마치 이럴 줄 알고있었다는 듯, 차분하게 '진열장으로부터 떨어져주세요.'라고 외치며 차분하게 손님들을 안내하는 동시에, 엘레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의 사용을 막았다. 물건들이 떨어지기도 하고 유리그릇들이 챙챙 부딪히는 소리도 나는데 모두들 한치의 동요없이 아주 차분하게 지시를 따르고 있었다. 불안하고, 무서워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람은 나 뿐인 것만 같았다. 그렇게 자연재해에 너무도 의연하게 대처하는 일본인들과 휴스턴 사람들은 확실히 달랐다. 지진은 모두에게 똑같이 찾아오지만, 비는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기 때문일까. 사람들은 우왕좌왕했고, 뒤늦게 텅빈 주유소와 마트를 들락거렸으며 생수를 평소의 5-6배 가격으로 판매하는 상점까지 생겨났다. 고속도로에서 잠긴 도로로 다이빙 하는 차들도 뉴스에서 보였고, 이른 아침 잠긴 차를 보고 뒤늦게 후회하며 어떻게든 차를 빼보려는 사람들의 표정은 착찹해보였다. 하룻밤 새 모든 것을 포기하고 넋을 놓은 우리같은 아파트 1층 사는 사람들보단 2층 사람들이 한결 여유있어 보였고, 아랫동네보단 윗동네가 나을 것이었다.


우리 가족은 당시 휴스턴 2년차 새내기였지만, 일본에서 하던 버릇대로 물도, 캔 음료도, 랜턴과 촛불도, 부탄가스도 미리 마련해 두었다. 단수에 대비해 일회용기와 일회용 젓가락, 숟가락 등도 준비하고 욕조에 물도 받아놓았다. 단전에 대비해 냉동실에 생수병을 잔뜩 얼려두었고 보조배터리도 미리 충전했다. 단전이나 단수는 보통 하루 이틀이면 해결되는 편이기에 하루 이틀만 버틸 식량이면 된다고 했다. (이 말은 이로부터 4년후인 2021년 휴스턴의 새로운 기록을 갱신하며 거짓으로 판명나게 되었지만.) 

하지만 그런 준비물이 있다고 든든한 건 아니었다. 집으로 물이 차들어오지만 않는다면 못 먹고, 전기를 못 쓰는 건 아무런 문제도 아닐 것 같았다. 



이제 집 앞 주차장은 거대한 강으로 변했다. 이 혼란을 틈타 주차된 차의 창문을 깨고 귀중품을 확인한 도둑들도 들끓었는지, 주차장의 차들은 몇십대나 창문이 깨진 채로 발견되었다. 어차피 폐차해야할 차들이지만 불운이 두개나 겹쳤다. 차에서 깨진 유리들은 이 거대한 강 바닥에 가득할 것이었다. 이 물길을 타고 911 보트가 임산부와 환자들을 구조하러 여러번 왔다갔다 하기도 했다. 홍수가 일어나면 악어나 물뱀들이 떠밀려 주택가로 오는 일도 있다고 했다. 


(계속)

이전 09화 바다 위에서 오믈렛을 만들던 그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