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허리케인 하비 두번째 이야기
2층, 3층에 사는 사람들은 아파트 게시판에다 우리집을 오픈해줄테니 대피하라고 적어두기도 했고, 직접 괜찮냐고, 우리집으로 올라오라며 아랫집을 찾아가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대도시인데다, 아파트에서는 1-2년만 살다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이웃집과 크게 교류하며 살지도 않는 분위기인데 이렇게 어려울 때 도와주는 모습이 놀랍고도 뭉클했다.
우리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평소 2층집과 오며 가며 인사하는 사이였을 뿐인데, 이 때 신세를 톡톡히 지게 되었다. 아파트에 몇 없는 한국인 가족이라 친하게 지내고도 싶었지만 맞벌이를 하는 부부이고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집으로 초대하는 등의 큰 왕래는 없었던 터였다. 처음엔 집에 물이 들어올 것 같으니 몇 가지를 2층집 앞 복도에다 좀 대피시켜놓아도 되겠냐는 부탁을 드렸는데 흔쾌히 집으로 초대를 해 주셨다. 처음엔 아이들을 대피시켜놓고 노트북과 카메라같은 귀중품 몇 개만 맡겼다가 결국은 침구까지 들고 올라갔다. 물이 언제빠지나 더 차오르려나 기다리다가 결국은 이틀동안 2층집에서 숙박을 하게 된 것이었다.
친구 하나는, 집이 허리까지 잠겨서, 아이 셋을 데리고 보트를 타고 나와 대피소로 갔단다. 그러다 다시 시댁으로, 결국은 모텔로 가서 한참을 살았다. 친구가 보내준 집 사진을 보니 가구가 물 위로 둥둥 떠 있었다. 아는 분은 전기도 끊기고 차가 잠기고 집도 곧 잠길것 같아서 걸어서 친척집으로 이동중이라고도 했다. 나 역시 아이들을 데리고 물을 허우적 허우적 건너 대피소로 가는 장면까지도 상상했는데, 가족 하나 없는 이 곳에서 2층집이 우리의 안락한 대피소가 될 줄이야! 처음엔 조마조마하게 물이 차오르는 걸 지켜보다가, 2층집의 따뜻한 대접을 받다 보니 마음이 많이 풀렸다. 어떻게 되든, 해결할 방법은 있을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생겼다.
너무 미안해하는 나에게, 2층집 동생은
"우리가 이런 일 당했다면 언니는 안도와주셨을거에요?" 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그럼그럼. 당연하다마다.
이 은혜는 평생 못 잊을 것이다.
다행히, 우리 아파트는 주차장만 잠긴 후 물이 서서히 빠져 큰 재난을 면했다. 바닥과 벽 사이의 모서리로부터 물이 찔끔찔끔 나왔고, 냄새도 한동안 불쾌했지만 그래도 집이 완전히 잠긴 게 아니라 천만다행이었다.
행운이 따랐으니 마땅한 사회적 도의도 있는 법. 2층집께 받은 은혜를 다른 이웃에게 갚을 기회가 있었다. 근처에 사는 동생네 가족이었는데 허리케인으로 아파트 지붕이 무너져 집에 살 수가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결국 집으로 불렀는데 그게 거의 한달가량 가게 될 줄은 몰랐다. 방 두개짜리 좁은 아파트에 일곱명이 지지고볶고 어떻게 지냈는지 지금은 기억도 안난다. 하지만 확실한 건, 배 부르고 등 따실 땐 불가능한 일일지라도 비상상황이면 무슨 일이든 가능하다는 것.
친구집은 다행히 침수가 된 건 아니었지만 침수가 되어 정말로 '무소유'가 된 이들을 보면 가슴이 아팠다. 이웃의 주택가의 절반정도는 이런 상황이었다. 온갖 가구와 가전들이 망가진 채 집 앞에 버려진 걸 보면, 저 집도 잠겼구나 하고 마음이 아팠다. 한글학교 아이들 중에선 필기도구나 가방을 안가져 오는 아이들도 많았다. 집에 있는 모든 물건이, 책이며 학용품이 모두 물에 잠겨 몸만 빠져나왔다고 했다.
맥가이버인 고모부는 이후로 반년동안 주말에 쉬지 못하고 친구집들을 돌아다니며 침수된 집을 고쳐주었다. 다행히 고모네 집은 피해를 입지 않았지만 이웃의 이 집 저 집 모두 피해를 입었고, 업자를 구하는 일도 쉽지가 않아 고모부가 나선 것이다. 4년뒤인 지금, 고모부는 은퇴를 하셨고 새로운 집을 알아보고 계신데 가능하면 북쪽으로, 허리케인의 영향을 받지 않는 동네로의 이사를 알아보고 계신다.
하비 이후로 2년은 계속 동네에서 집을 헐고, 다시 짓는 일을 지켜볼 수 있었다. 새롭게 짓는 집들은 다시는 물 따위가 범접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듯, 계단을 10개씩 올려 거대한 성같은 집을 올리고 있었다.
이 고질적인 홍수를 왜 시 차원에서 해결할 수 없는지 그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건축설비업을 하셨던 아빠는 도대체 매년 이런 크고 작은 홍수가 발생하는데 왜 해결을 안하는지 도저히 이해를 못하셨다. 나도 왜 이렇게 같은 재난이 반복되는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석유관이 지나가서 배수로를 제대로 확보하기가 어렵다는둥, 여러 시가 협력해야 할 일인데 예산을 서로 잘 안내놓는다는 둥 사람들마다 의견도 분분하다. 정치인들은 분명 뭐라도 하고 있겠지? 한국이었다면 뭐라도 했을테지만, 투표권도 없는 이방인인 나는 그저 관망하며 내 몸 하나 건사할 뿐이다.
하비로 인해 물의 무서움을 모두가 제대로 알게 되었을 것이다. 상습침수지역이 아닌, 몇십년간 한 번도 침수되지 않은 지역들까지도 모조리 침수되었으니 그게 꼭 남의 동네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모든 모임은 물론이거니와 학교도 운동경기도 허리케인 예보가 있는 순간 모두 자연스럽게 취소되며 도시가 멈춘다. 한 번은 교육청이 예보를 얕보고 휴교를 하지 않았다가 학교로 가는 길이 잠겨버려 아이들이 밤까지 학교에 갇혀있은 적도 있었는데, 하비를 겪고도 그러냐며 불만이 쇄도했다.
설사 예보가 빗나가 해가 쨍쨍 빛난다해도, 휴스턴에서는 유비무환형 휴교에 불만을 품어서는 안되는 일이다.
1250억달러의 피해를 내고, 3만명의 이재민을 낳고 100명 이상의 생명을 뺏아가 휴스턴 최악의 허리케인으로 기록되어버린 하비. 이로 인해 휴스턴은 특별 재난지역으로 선포되었으며, 연방 재난 관리청에서 예산이 떨어져 집이 잠긴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복구 보조금을 지급했다. 가장 침수 정도가 심했던 지역이 우리 동네인지라, 이케아나 가구점에서는 우리동네 우편번호를 넣으면 가구 구입시 할인을 해 주었으며, 우리 지역 교육청은 이날 이후부터 지금까지도 계속 무료 급식이 제공되고 있다.
그것이, 우리가 휴스턴에 살면서 겪게 될 가장 최악의 재난일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그로부터 4년후, 예상치도 못했고 겪어보지도 못했던 초유의 재난이 지난 2월에 일어나게 되었고 또다시 재난지역으로 선포되었다.
그 피해액은 허리케인 하비때보다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는데....
(다음 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