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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요가 수행자 Aug 23. 2023

나라는 모자란 인간에 대해

낮잠, 낮잠 그놈의 낮잠

오늘 참 기분이 좋았었거든요. 그런데 한 순간에 모자란 인간이 되어버렸습니다. 30개월 동동이가 낮잠을 안 자서 화를 냈거든요.


넷플릭스 시리즈 곤도 마리에의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를 따라 집정리를 해 보려고 마트에서 50리터짜리 쓰레기봉투를 사가지고 들어왔습니다.


12시 30분에 하원하는 동동이를 차에 태우고 한 바퀴 빙 돌면 보통 차에서 쓰러져서 잠을 잡니다. 그런데 동동이가 영 잠을 안 자는 거예요. 어제는 버티다가 5시에 유모차를 타고 나가서 잠이 들었어요.


그래서 오늘은 기필코 차에서 재우자는 마음을 먹었죠. 이게 문제였어요.




잠은커녕 뽀로로 이야기를 틀어달랍니다. 하나 틀어주니 이번에는 다른 이야기로 틀어달랍니다. 크게 틀어달랍니다. 잘 안 들린다고요.


어제 집에서 힘들었으니까 제발 차에서 재우자는 생각으로 돌고 또 돌았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짜증이 폭발하고 말았어요.


"이야기 안 틀어! 자라고 제발 자!"


아이는 뽀로로 이야기 듣겠다고 울고 저는 차를 타고 빙빙 돌다 치지고. 결국 어쩌겠어요. 집으로 들어가야지요.




집에 와서도 분이 안 풀려서 엄마는 안방에 있는 침대에 누워서 잘 테니, 너는 네 방 침대에 가서 자라고 이야기하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침대에 혼자 누워있는데 거실에서 동동이가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소리가 납니다. 그러다가 검은콩 두유를 먹어도 되냐고 문을 열고 묻습니다. 두유를 꺼내다가 식탁 위 고구마를 발견했는지 접시를 가져와서 까달라고 합니다.


"나는 못 까니까 엄마가 까줘."


그렇게 고구마 세 개를 연달아 까먹고 나니 이제 다시 책을 읽어달라고 합니다. 거실로 나가서 책 몇 권을 읽어주고 다시 말해봅니다. 좀 자라고.




동동이가 하품을 몇 번 하더니 어느새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냥 두었더니 나오지 않습니다. 20분쯤 지났을까. 방에 들어가 봤더니 바닥에서 베개를 베고 잠이 들었습니다.


4시 30분. 12시 30분에 하원을 했으니 3시간이 흘러있었습니다. 도대체 3시간 동안 무엇을 했단 말인가. 동동이를 재워놓고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나도 하지 못한 채 그냥 시간만 흐른 느낌입니다.


이 산란한 마음. 오늘 아무것도 못했다는 자괴감. 내가 고작 낮잠 가지고 이렇게나 화가 났다는 것까지 다 합쳐서 자리에 앉습니다. 저의 두 번째 명상 타임입니다. 더 돌아다녀봤자 마음만 산란할 뿐이니까요.




잠깐의 자유시간이 생겼습니다. 한 시간 동안 이런저런 일들을 합니다. 사야 하는 물건을 장바구니에 담아놨습니다. 그래도 마음을 못 가라앉혀서 하소연이라도 해보자고 글을 쓰는데 핸드폰 알림이 옵니다.


생리 3일 전.


아, 생리 전 증후군이었어. 그래. 이제 알겠다. 하지만 이렇게 까지 했어야 해? 때 마침 비가 퍼부어 옵니다. 저기압이었네. 비가 오려고 그랬던 거지. 그래도 이렇게까지 화낼 일은 아니잖아.


후회할 걸 알면서도 컨트롤이 안되어서 혼자 잠 잘 자는 30개월 아기에게 화를 내다니. 수면 분리한 지는 오래되었고, 최근 며칠 사이에는 밤에 책 읽어주고 나오면 혼자 자는 기특한 아이인데. 이 엄마라는 모자란 인간이 화를 냈다니.


내일의 낮잠시간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오늘처럼 화를 내지는 말아야지 하고 다짐해 봅니다. 4시까지 버티면 그때 잠을 자니까. '그때까지 한번 참고 버텨 보자.' 하는 마음을 먹어봅니다. 그래도 슬프긴 합니다.



사진: Unsplashzhenzhong li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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