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에서 미끄러진 순간

요가 강사 자격증반 2주 차 후기


화장실에 맨발로 들어가는 걸 좋아합니다. 슬리퍼가 있어도 맨발로 들어가서 손을 씻거나 이를 닦거나 합니다. 그러던 제가 이번에 큰코다치고 말았습니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한 발을 내딛는 순간 빙판 위를 미끄러지듯이 쭈욱 미끄러지고 말았습니다. 오른발로 내디뎠는데 왼쪽 무릎을 세게 박아버렸습니다. 어떻게 넘어졌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찰나의 순간이었습니다.


바지를 걷어보니 무릎이 새빨갛게 부어오른 것이 보였습니다. 오후 1시부터 요가 수업 들으러 가야 하는데, 12시를 막 지나고 있었습니다.




어찌나 크게 소리를 질렀는지 남편이 와서 괜찮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한참을 앉아 있었습니다. 괜히 근육이 놀랐을 때 움직이면 더 아프거든요.


그나마 다행인 건 새끼발가락을 다쳤을 때보다는 확실히 덜 아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뼈에는 문제가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동동이는 이번에도 해맑게 웃으며 다가와 "엄마 괜찮아?" 묻고는 사라집니다. 역시 아들내미입니다.




30분 동안 안정을 취하며 누워있었습니다. 그런데 순간 행복하더라고요. '얼마 만에 이렇게 편안하게 누워있는 거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잘 쉬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아이를 낳고는 조금의 시간의 여유라도 생기면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해야 속이 편안해요. 그래서 쉬지 못하고 하루를 보내는 일이 잦았습니다. 명상 10분도 일부로 시간을 내서 해야 할 만큼요.


최근에는 집정리를 한다고 이틀에 한 번씩 집을 탈탈 털어내니 또 얼마나 힘들었게요. 아침에는 운동하고 오후에는 글 쓰고 동동이가 돌아오면 온갖 잡동사니를 털어서 정리하고요. 신랑 오기 전까지 마무리해서 깔끔한 집을 만듭니다.


그런데 누워있으니 너무 행복한 겁니다. 내가 이러려고 넘어졌나. 그런 생각까지 듭니다.




5시간 동안 하타 요가 자격증 수업을 듣는 날이 바로 오늘입니다. 이 무릎을 해서 어떻게 수업을 들을지 막막했지만 그래도 수업을 들으러 갔습니다.


지난 시간 숙제를 먼저 합니다. 무릎이 닿지 않는 수리야 A 시퀀스를 앞에 나가서 해 봅니다. 잘했는지 못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가장 쉬운 과제를 주신 덕분에 빨리 끝낼 수 있었습니다.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되었는데 어찌나 신경이 쓰이던지요. 집에 있던 진통소염제를 바르기는 했지만 엎어진 지 1시간도 안돼서 요가 수련을 하니 아직도 부기가 빠지지 않아서 뻑뻑했습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참여하고 싶었던 수업인데 이렇게 나일론 환자가 되어있으니 참 한심할 따름입니다. 사실 그 미끄러운 화장실 바닥의 주범은 저였어요. 제가 머리를 감고 물을 쫘르륵 흘리고 나왔거든요.




온몸이 쑤셨어요. 오른쪽 골반도 아프고 엉덩이 허리도 아프고. 그런데도 그 몸으로 계속 요가동작을 하다 보니 어느새 좀 덜 아픈 느낌이 드는 거예요. 수업이 진행되고 점점 어려운 동작이 나오는데 무릎이 서서히 아프지 않게 되었습니다.


긴장했던 근육이 이완되고 마지막 사바아사나. 열어놓은 창문으로 갑자기 소나기가 쏴아 들이치며 내립니다. 빗소리가 폭포수 떨어지 듯 우렁차게 들려옵니다. 아, 좋다.




그렇게 오늘의 수련도 끝이 납니다. 무릎을 다쳤지만 참 좋은 수련이었습니다. 하루만 쉬고 월요일부터는 요가 수업을 들으러 가도 될 것 같은 느낌입니다.


요가 수업이 끝나고 주차장을 빠져나오면서 제가 좋아하는 노래를 크게 틀었습니다. 아리아나 그란데의 7 rings입니다. 제가 영어를 다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맘에 드는 가사가 있습니다.


I WANT IT, I GOT IT

내가 원하는 건 다 가질 거야.


차 안에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나는 할 수 있다! 할 수 있어! 내가 다 해낼 거야!"




집에 와서 무릎을 걷어봤는데 멍이 거의 들지 않았습니다. 피멍이 들겠구나 생각했는데 심하게 부딪힌 쪽만 약간 퍼레졌습니다.


그날 아주 편안하게 잠이 들었고, 다음날 새벽 3시 40분에 벌떡 일어나서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무릎이 이만해서 정말 다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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