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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이 깃든 곳, 10년이 지나도 그대로

동동이와 손잡고 떠난 춘천 여행


대학 생활을 강원도 춘천에서 했습니다. 서울에서의 화려한(?) 생활을 꿈꾸던 당시의 저는 춘천에서 대학 생활을 한다는 것에 상당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딜 가도 조용하고 대학생이라고는 교대, 강원대, 한림대가 끝이었습니다. 소개팅도 대학 축제도 기대할 수 있는 범위가 참 좁았죠.


학교 안에서는 누구나 자전거를 타고 다녔습니다. 바구니가 달린 자전거 한 대면 어디든 달려갈 수 있었습니다.




졸업이 가까워질 무렵 친구들이 물었습니다.


"졸업하면 춘천에 다시 올 거야?"

"아니 난 절대 안 올래."


그렇게 대답했던 것이 나의 대답이었는지, 아니면 친구들 중 누군가의 대답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 시절의 춘천은 답답하고 한가하고 재미없는 그리고 임용고시를 공부해야만 했던 공간이었습니다.




졸업을 하니 춘천에 갈 일이 없어졌습니다. 첫 발령이 났을 때도, 서울 임고를 준비할 때도, 인천으로 옮겼을 때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후에도 춘천에 갈 일이 없었습니다.


신랑이 출장 간 사이 동동이와 여행을 떠나려고 마음먹고 '전주 한옥마을'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전주 가는 기차표는 이미 매진. 그렇게 생각난 곳이 춘천입니다.




4년 동안 살았던 곳이어서 여행 준비도 하지 않았습니다. 일주일 전에 북스테이를 예약한게 전부입니다. 또 춘천에는 고모도 있어서 역까지 마중 나와주신다고 하셨어요.


그렇게 둘만의 첫 여행지는 춘천이 되었습니다. 여행이 뭐라고, 이 낯익은 곳에서도 새로움이 느껴집니다.





알았던 동네를 오랜만에 여행하는 것. 10년이면 많은 것이 변했을 만도 한데, 춘천은 여전히 그대로 입니다.


다문화 멘토링을 할 때 자주 왔었던 담 작은 도서관까지 걸어가 봅니다. 도서관에 가던 골목도 덥고 습한 여름의 날씨도 여전합니다.



도서관에 들어가니, 멘티와 함께 보드게임을 했던 베이커리도 있습니다.


이곳에 동동이와 함께 오다니, 그때도 참 좋았던 도서관인데 우리 동네에도 이런 멋진 곳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어요.


도서관에서 블럭놀이 하는 동동이


집에 가기 전 마지막으로 교대에 가볼 일만 남았습니다. 학교는 어떻게 변했을까요? 여전히 그대로일까요?


교대에는 가을이면 노란 은행나무가 참 유명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말도 없이 은행나무 윗부분을 싹둑 잘라버려서 엄청나게 속상했던 기억이 납니다.


10년 만에 다시 만난 은행나무는 다시 윗부분이 예쁘게 자라났군요.


이젠 학생도 줄어들고, 교사들도 줄어들어 (특히 강원도는 더) 결국 교대는 국립대와 통합될 거라고 하더군요. 그런 이야기는 학교 다닐 때부터 있었지만 이제 진짜 현실이 될 것 같아요.



자취생이 되어 자주 들락거렸던 학교 앞 마트는 편의점이 되었네요. 항상 가면 계산해 주시던 할아버지가 어렴풋이 기억이 납니다.




학교 앞에서 택시를 타고 교대생이 된 것처럼 다시 남춘천역으로 향합니다. 택시 트렁크에는 휴대용 유모차를 싣고 동동이 손을 꼭 잡습니다.


손자 두 명을 대학생까지 키웠다는 택시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남춘천역으로 향하는 길.


"그래서 애 키우는 건 정말 지긋지긋 해. 잠도 못 자고 씻기고 먹이고."


태어난지 5일 된 갓난쟁이를 손수 키워냈다는 택시 할아버지의 육아 푸념을 들으니 왠지 모르게 오히려 웃음이 납니다.


기차에 오르니 에어컨 바람이 참 시원합니다. 추억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게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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