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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요가 수행자 Jul 17. 2024

신랑이 출장 간 첫날밤엔 무슨 일이?

2주 뒤에 만납시다 그대여

오늘 새벽 남편이 캐리어 두 개와 배낭 하나를 매고 집을 나섰다. 오늘부터 출장. 자그마치 한 달의 절반을 동동이와 단 둘이 보내게 되었다. 잘 가, 조심히 가. 인사를 하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글쎄, 처음으로 느꼈던 건 약간의 홀가분함. 남에서 가족이 되어 6년을 함께 살았고 이렇게 오래 떨어져 있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니 아주 조금은 다시 혼자가 된 기분도 들었다.


동동이랑 둘이 지내는 동안 집안일은 온전히 나의 몫이니 좀 깨끗하게 살아보고 싶어서 정리도 어느 정도 해냈다. 이제 둘이서 살아가면 되는 것.


원래도 신랑이 집에 오랜 시간 머물지는 않았다. 근데 뭔가 떨어져 나간 느낌이 든다.




신랑이 가고 나면 뭔가 짜릿한 걸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겨우 생각해 낸 건 도서관에 일주일 연체된 책을 반납하러 가는 것이었다.


겨우 도서관에 가니 동동이는 책을 읽어달라고 무한반복, 점심시간이 다 되어 생각해 낸 것이라고는 신랑이 어제 먹고 싶어 했던 중국집에 가는 일.


어른하나 아이하나, 둘 뿐이니 시킬 수 있는 메뉴라고는 고작 짜장면 한 그릇. 그래도 둘이 먹는 거라고 곱빼기로 시켰는데 안 그래도 될 뻔했다.


짜장면을 먹고 집에 가는 길 동동이가 묻는다.


"아빠는 회사 갔나? 언제 오지? 밤에 오나?"

"열 다섯 밤 지나고 오잖아."

"아빠는 안 됐다. 식당에도 못 오고."




빈 집에 들어와서 잠깐 쉬는데 뭔가 허전하다. 평소와 별로 다를 것이 없는데. 누군가가 매일 밤 집에 돌아온다는 것만으로도 기다린다는 기쁨 같은 것이 있었나 보다.


동동이도 집에 와서 아빠를 부르다가, 장난을 치다가, 진짜 없는 것을 알고 포기해 버렸다. 저녁을 먹고 왠지 이대로는 잘 수 없어서 밖으로 무작정 나갔다.


정서진에 가서 바다라도 보면 좀 나을 것 같았는데, 동동이가 음악분수를 보러 가잔다. 여기 사는 6년 동안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분수. 그 분수를 보는 날이 바로 오늘인가 보다.




분수의 첫 곡은 아모르파티. 신나는 트로트로 시작된 분수는 그 뒤로도 우아한 움직임과 함께 노래를 들려주었다.



분수를 보는 동안 뭔가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일상에서 벗어난 틈새로 부는 바람이랄까?



찬찬히 생각해 보니 신랑의 2주 출장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더라. 그때는 씩씩하게 혼자서 잘만 지냈는데 괜히 이가 생기고 나니 더 2주의 출장이 길게만 느껴진다. 둘이 잘해나갈 수 있을까?


동동이는 음악분수 앞에서 신나게 춤을 췄다. 심지어는 발라드에도 맞춰서 뛰었다. 그리고 나에게 말했다.


"엄마, 춤춰!"


그래, 알았어. 춤을 춰보자. 뭐 인생 뭐 있냐. 둘이서 같이 신나게 보내보자. 2주 동안!



우리는 그렇게 분수 앞에서 알 수 없는 움직임으로 춤을 췄고 땀에 흠뻑 절어서 집에 돌아왔고, 씻자마자 아무 생각 없이 잠이 들었다.




* 사진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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