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아직도...
도서관에서 책을 하나 뽑았다. 수필집이었는데 거기에는 아버지의 죽음을 맞은 딸의 이야기가 적혀있었다. 아버지를 암으로 보낸 딸은 슬퍼했다. 그녀는 오랫동안 슬픔 속에 빠져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아버지의 죽음이 슬픈 일이구나.'
난 아직도 아버지의 죽음이 슬플 것 같지는 않다.
너무나 사랑했던 사람은 떠날 때도 그만큼의 아쉬움을 남기는가 보다. 그래서 안타까운 죽음을 오래도록 생각하게 되는가 보다. 사랑을 준 것이 많아서 함께 했던 추억들이 그러워서.
하지만 나는 아버지와 그렇다 할 추억이 없다. 그렇다 할 감정적 유대도.
아, 얼마 전에 우연히 추억하나를 얻었다. 처음으로 아빠와 가게에 가서 순댓국을 먹었다. 그냥 담담히 별말 없이 각자의 순댓국을 먹었다. 계산은 내가 했다. 그것뿐이지만 아빠는 좋아했다.
얼마 전 나의 분노는 두려움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나는 무서워지면 화를 내는 사람이었다.
자유를 잃을까 봐 자유를 잃지 않기 위해서 화를 냈다. 나에게 찡얼거리는 소리가 견디기 힘들면 나는 그 소리가 두려워서 그만 멈추라고 아이에게 화를 했다.
화가 많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었다.
아직도 두려운 것이 너무나 많다. 그리고 그 두려움의 대부분은 감사하게도 아버지가 만들어주셨다.
전생을 보는 박진여 작가님이 말씀하시길, 이번 생에서 아무 이유 없이 삶이 괴롭거나 학대를 당하거나 버려지는 경우 이 전의 삶에서 내가 그들을 괴롭히고, 학대하고, 버린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렇다면 전생에서 아버지를 괴롭힌 쪽은 오히려 나였을까.
글쎄. 분명한 건 관계가 해소되지 않고 원한이 남아있으면 다음 생애도, 그다음 생에도 계속해서 반복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예수님 말씀대로 원수를 사랑하고 용서해야 함이 마땅하다.
아버지를 잃은 딸의 슬픔이 너무나 구구절절해서. 글을 읽다가 우리 아버지 생각이 났다. 아직도 잘은 모르겠다. 내가 진심으로 슬퍼할 수 있을지.
어렸을 때는 아버지가 늙고 힘없는 노인이 되면 갖다 버려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었는데, 그런 마음은 내려놓기로 했다. 그 정도로 만족한다.
아버지를 잃고 슬퍼할 수 있는 것도 행복인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글을 읽으며 생각했다. 나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오랫동안 슬픔에 잠겨보고 싶다.
*사진: Unsplash의Annie Sprat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