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너무 무서워요

코로나에서 버틴 임신, 출산, 육아의 시간

챕터 4. 그리고 그 후 : 여전히 새로운 날은 오고. (2022.2~)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을 때 나에겐 도움의 손길이 절실했어. 하지만 그 도움이라는 게 무엇인지, 누구에게 구해야 하는지도 알지 못했지. 이 두렵고 무서운 세상에서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는 방법밖에 없는 것 같았어.


그러다가 기상 모임에 있는 도현님이 나와 같은 백신 미접종자라는 걸 우연히 알게 됐어. 이제부터 혼밥을 해야 한다며 채팅방에 투덜대는 걸 봤거든. 맞아, 나에게 유도분만의 비법을 알려주셨던 바로 그분이야.


도현님과 어떻게든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우리는 겨우 채팅방에서나 안부를 물었을 뿐 제대로 전화 통화를 한 적도 없는 사이였어. 현실에서 만났다면 학교 부장님쯤 되었을 애매한 나이 차이가 났지. 지금 무슨 일을 하는지도 잘 모르면서 무작정 연락하기가 애매했어.


그러던 중에 좋은 미끼가 던져졌어. 도현님이 최근에 읽은 책 중에 주제를 알 수 없는 이상한 책이 한 권 있었던 거야. 카톡으로 그 책이 도대체 무슨 책인지 물었어. 그러자 도현님은 할 이야기가 많다면서 1시간은 족히 걸리니 통화 시간을 확보하라고 했지. 그 말이 얼마나 반갑던지 카톡을 보면서도 실실 웃음이 났어.




아기가 낮잠을 자는 사이 조용히 옷방의 문을 닫고 핸드폰에 무선이어폰을 연결했어. 아주 떨리는 순간이었지. 얼마나 이 순간을 기다렸는지 몰라. 우리 가족 말고 미접종자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반가웠는데 그 사람과 마음껏 통화를 할 수 있다니 말이야. 그동안의 한을 마음껏 쏟아놓을 작정이었어.


표면상으로 보면 우리는 분명 책 이야기를 하려고 전화를 했어. 그런데 나는 전화를 받자마자 도현님의 “잘 지냈어요?” 하는 목소리를 듣고 눈물을 뚝뚝 흘리고 말았지. 잘 지내지 못했어요. 잘 지낼 수가 없었어요. 입으로는 반가움에 웃고 있었지만, 눈으로는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봤어.


“무서워요. 세상이 너무 무서워요.”


가장 밑바닥의 마음은 두려움이었어. 무엇이 두려운지 정확히 알지도 못하고 덜덜 떨고 있었지. 밖에 나가는 건 두려웠고 혼자 있는 건 너무 외로웠어. 바이러스가 판치는 세상을 무서워하면서도 누군가 나와 이야기 나눠주길 간절히 원했지.


“뭐가 무서워요? 코로나에 걸릴까 봐? 안 걸려요. 안 걸려. 그거 아직도 숫자 놀음하고 있는데 진짜 일부 사람들만 걸리는 거예요. 괜찮아요.


또 뭐가 무서워요? 내 생각에는 너무 밖에 안 나가서 그래. 어린이집은 가요? 얼른 어린이집에 보내고 자기 시간을 가져봐요. 좋은 어린이집이 나타날 거예요. 걱정하지 마요. 걱정하면 그대로 된다니까?”




도현님의 폭풍같이 내려 꽂히는 말을 들은 뒤 약간의 정신을 차릴 수 있었어. 이렇게 부정적인 사람이 아니었는데. 괜찮다고만 생각했던 나는 생각보다 많이 망가져 있었나 봐. 고장 난 수도꼭지에서 새어 나오는 것처럼 줄줄 흐르는 눈물을 멈추질 못했어. 북받친 감정이 쉽게 사그라지지 않아서 코를 훌쩍거렸지. 좀 진정이 되고 나서야 원래 물어보려고 했던 책 이야기를 꺼냈어.


“그, 그래서 그 책은 뭐예요?”


전화를 끊고 나니 가슴이 후련했어. 이렇게 긴 전화 통화를 하는 동안 깨지 않고 잘 자준 아기에게 새삼 고마웠지. 도현님은 나에게 유튜브 링크와 함께 읽으라며 책 몇 권을 추천해 주셨어.


사람들 사이에 커다란 장벽을 세웠던 코로나는 오히려 먼 곳에 있는 사람과의 거리감을 무너뜨렸어. 평생 딱 한 번밖에 만난 적이 없는 사이. 오로지 인터넷 채팅방에서만 7년을 만났던 우리는 한 통의 전화 통화로 더없이 가까워졌지. 가장 친한 친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마음을 다 토해내고 나니 도현님에게는 더 숨길 것도 없어져 버렸어.


물론 그 이후에도 코로나는 계속 늘어나 전 국민의 1/3이 걸려버렸고, 그 시점에 이르러서는 도현님의 가족과 우리 집도 코로나를 피해 갈 수 없었지. 하지만 더는 무서움에 덜덜 떨지 않았어.


*사진: UnsplashCrina Paras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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