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서 버틴 임신, 출산, 육아의 시간
신랑은 예전부터 지구가 멸망하는 재난 영화를 참 좋아했어. 그래서 바쁘고 정신없는 와중에도 누군가 짧게 요약해 놓은 영화의 줄거리를 유튜브에서 찾아봤지. 신랑은 지구가 멸망하고 우리 가족만 평화롭게 살아남으면 좋겠다고 말했어. 마치 그곳이 평화로운 어딘가 인 것처럼 말이야. 자기는 꼭 살아남을 거라고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가족을 구해낼 거라고 했지.
글쎄. 난 좀 회의적이야. 그런 영화를 보면 내가 한순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먼지 같은 사람 중의 하나일 거라고 생각해. 파도가 휩쓸고 간 건물의 사람들, 부서진 자동차 사이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사람들, 카메라가 너무 멀리에서 찍는 바람에 거기 사람이 있었는지 보이지도 않는 사람 중에 하나. 그런데 아기가 생긴 뒤로는 이 험난한 세상에서 아기만은 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신랑이 오랜만에 집에 있는 주말에 드라이브를 갔어. 목적지는 공항 고속도로를 따라갈 수 있는 김포 롯데몰이었지. 쇼핑몰에는 항상 사람이 많았어. 특히 유모차를 끌고 온 가족들이 많아서 다들 비슷한 생각으로 여길 오는구나 했어. 구경을 하고 푸드코트에서 파는 대왕 유부초밥을 포장해 오면 집에 오는 길이 그렇게 뿌듯할 수 없었지. 서쪽 끝으로 향하며 겹겹이 내리깔린 노을을 보면 마음이 조금 설렜어.
그런데 이제는 대형 쇼핑몰, 마트에도 방역 패스가 적용된대. 일주일의 계도기간이 있어서 일주일 동안은 갈 수 있지만 그 뒤로는 입장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거야. 심지어는 쇼핑몰에서 근무하는 미접종자가 있으면 근무는 가능하지만 물건을 구매할 수는 없다는 황당한 규칙도 있었어.
나와 신랑은 계도기간이 끝나는 마지막 주말에 어디를 갈까 고심 끝에 목적지를 결정했어. 우리가 찾아간 곳은 집 근처 아웃렛이었지. 대형브랜드에서 운영하는 아웃렛이 아니어서 괜찮지 않을까 했지만, 출입문마다 방역 패스 안내 문구가 붙어있었어. 정말 이 수많은 출입문을 닫고 하나의 문만 열어놓은 채 입장을 시킬까 의문이 들었어.
“이런 데는 관리가 잘 안 될지도 몰라. 그러면 다시 오자.”
신랑은 그렇게 말하며 아무래도 허술한 출입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어. 딱히 살 물건이 있던 게 아니어서 구경만 하고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지. 원래 사람들이 그렇잖아. 가지 말라고 하면 더 가고 싶은 거.
때는 바야흐로 2021년. 지구 멸망이 꼭 영화 속 이야기인 건 아닌 것 같았어. 올해가 가고 내년이 무사히 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 연말이었지만 기분이 들뜨지 않았어.
세상은 멸망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가고 있는 것 같았어. 신랑과 함께 봤던 ‘차이 나는 클래스’에서 최재천 교수가 나왔어. 동물의 세계를 연구하고 싶어서 유학길에 올랐던 학생은 이제 머리가 하얗게 센 진화 생물학자가 되었지.
최재천 교수는 코로나 종식은 어렵다고 말하며 강의를 시작했어. 퇴치나 종식 대신 일상을 복원해야 한다고. 가장 시급한 문제는 생물 다양성의 감소라고 했어. 기후변화 때문에 얼어있던 영구동토층이 녹으면 앞으로 더 많은 바이러스가 깨어날 거라고도 했지.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현재 상황에 대한 '짚신벌레 비유'였어. 시험관 안에서 키우는 짚신벌레가 1분에 한 번씩 두 배로 분열하는데, 시험관의 절반쯤 찼을 때 걱정하는 짚신벌레 학자가 나타난다는 거야. 이대로 가면 다 죽는다고. 하지만 대부분은 ‘아니, 아직 공간이 절반이나 남아 있는데 저 사람은 괜히 그래.’라고 말한대.
“그들에게 얼마나 남았을까요? 1분 후면 두 배가 되고 꽉 차서 다 죽어요.”
최재천 교수는 담담히 말했어. 이번 세기 내에 인류가 멸망해도 당연한 결과라고. 그 강의를 듣고 나니 인구는 너무 많고 생물 다양성은 점점 사라져서 지구가 곧 멸망할 것만 같았어.
넷플릭스 ‘돈 룩업’이라는 영화에서는 바이러스는 아니었지만 혜성이 지구로 날아왔어. 많은 사람이 다가오는 혜성을 믿지 않았지. 그래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과학자를 연기하며 위를 보라고 그렇게 소리를 치지만 사람들은 결국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못해.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 싸우면서 누구의 말을 듣고 의지해야 하는지 갈팡질팡하는 모습이 너무 비슷했어.
이 무시무시한 세상에서 아기를 제대로 지켜낼 수 있을까. 내가 낳은 생명을 살려내는 것이 아주 어려운 일처럼 느껴졌어. 이번 바이러스의 위기를 넘긴다고 해도 더 무서운 바이러스가 나타나면 그때는 어쩌지.
밖에 나가면 마스크를 쓰고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로 유모차를 끌었어. 나는 주변 사람들이 무서웠어. 그들을 믿을 수 없었지. 낯선 사람은 이제는 새롭고 흥미 가는 누군가가 아니라 적대적인 타인이 되어버리고 말았어. 그들은 마치 인터넷 세상에서 바이러스를 품고 돌아다니는 낯선 아바타들 같았어.
사실 제대로 아는 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 싸울 때 누구 말을 믿어야 하는지 판단도 서지 않았지. 전문가들이 백신의 안전성을 강조해도 그게 맞는지 알 길이 없었어. 스마트폰을 몸의 일부처럼 사용하지만 정작 어떤 기술이 사용되는지 알 길이 없는 것처럼, 바이러스나 백신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았어. 그저 누군가의 말을 듣고 ‘그렇겠지.’ 우르르 쫓아가는 것밖에는.
* 사진: Unsplash의Javier Miranda
완결까지 월, 수, 금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