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서 버틴 임신, 출산, 육아의 시간
아기가 낮잠을 잘 때 뿌연 미세먼지 사이로 밖을 바라보면 세상이 두렵기만 했어. 아기를 보는 일은 조금씩 수월해졌는데 정작 내 마음은 자리를 잡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지. 불안에 떨었고 감염되지 않기 위해서 집착했어. 그리고 온종일 집에만 있었어.
백신 미접종자가 어디엔가 있기는 할 텐데 내 주변 지인 중에는 하나도 없는 것 같았어. 백신을 맞았냐고 물어보는 자체가 예의에 어긋난 질문처럼 느껴졌어. 백신접종을 완료한 사람 들 중 일부는 카톡 프로필에 스티커를 붙여놔서 그걸 보고 알 수 있을 뿐이었지. 코로나 확진자는 점점 많아지고 미접종으로는 어디도 갈 수가 없게 되자 나는 밖에도 잘 나가지 않고 집에서 핸드폰을 했어.
정부는 거의 반강제적으로 백신을 맞힐 생각인 것 같았어. 끝인 줄 알았던 2차 접종의 효력은 이제 ‘6개월’ 뿐이었고 3차 접종을 하라는 거야. 정부는 미접종자에게 미운털이라도 박힌 것처럼 구석으로 강력하게 몰아갔어.
왜 그렇게 백신을 강요했는지 모르겠어. 밖에 나가보니 지자체에서 백신을 맞으라는 스티커를 프린트해서 버스정류장에 붙여놨더라고. 백신접종이 선택이라는 건 말뿐이었고 강요도 그런 강요가 없었어.
직장에서는 누가 백신을 맞았고 백신을 맞지 않았는지 조사해서 퍼센트를 냈어. 남편의 사무실 사람들은 3차 백신을 맞으러 갔어. 3차 접종을 하지 않은 사람은 다시 미접종이 되는데 그러면 애초에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들처럼 식당 출입이 금지 돼버리거든.
“1차는 아스트라제네카, 2차는 화이자, 3차는 모더나를 맞았으니까. 나는 보호막이 3중이야. 너는 왜 안 맞아?”
신랑의 친한 직장동료는 3차 백신을 맞고 와서 자랑스럽게 말했어. 병원에서는 그때그때 있는 백신을 놔주는 모양이었어. 처음에는 백신 간의 교차 접종이 되는지도 의문이었지만 지금은 어떻게 맞아도 상관이 없었어.
나와 같은 사람을 만나서 뭐라고 마음을 털어놓고 싶었어. 인터넷 검색을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백신 패스 반대카페가 있었어.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된 카페였지. 기쁜 마음에 카페에 가입했어.
카페에서 미접종자를 만날 수 있다는 위로는 잠시뿐이었어. 점점 백신 부작용에 대한 글이 많이 올라왔고 뉴스도 나왔어. 어떤 글은 진짜 같았지만 다른 글은 가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 백신이 위험하다는 글을 읽으면 불안감이 더해져서 안절부절못했어. 왜냐하면 나는 미접종자였지만 우리 친정 식구들은 백신을 2차까지 전부 맞은 뒤였거든.
울먹이며 집에 전화했어. 할머니가 가장 먼저 3차 접종대상에 있었어. 백신이 그렇게 위험하면 그걸 감수하고 3차를 맞아서는 안 될 것 같았어. 아기를 낳고 100일이 돼서야 처음으로 증손자를 안아볼 수 있었던 할머니.
아기에게 코로나를 옮길까 봐 백신접종이 시작되자마자 가서 주사를 맞고 “난 아무렇지도 않다.” 웃으면서 돌아오셨던 할머니. 우리 할머니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기를 누구보다 간절히 바랐어.
백신을 3차까지 맞아도 사람들은 코로나에 걸렸어. 그러면 도대체 왜 백신을 맞아야 하는 거야. 그리고 백신을 맞지 않으면 왜 아무것도 못 하게 하는 걸까.
가슴이 답답하고 화가 났다 슬펐다를 반복했어. 각종 글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핸드폰만 붙들고 있는 시간이 많아졌지. 그러고 나서 아기를 보면 도대체 이 험난한 세상에서 아기를 어떻게 키워내고 살려내야 하는지 눈앞이 캄캄했어.
어느 날은 가슴이 답답하고 먹먹해서 아기를 재워놓고 눈물이 흘렀어. 무엇보다 답답한 이 집에서 나가고 싶었어. 때마침 신랑이 일찍 들어왔고 나는 일상적인 인사를 하며 옷을 벗는 신랑에게 소리쳤어.
“나 도저히 집에 못 있겠어!”
방바닥에 주저앉아서 애꿎은 머리를 엉망으로 잡아 뜯었어. 눈물이 뚝뚝 바닥에 떨어졌어. 누가 와주지 않으면 현관문을 열고 밖에 나가는 일마저 마음대로 할 수 없었어. 마치 집에 묶여서 주변만 왔다 갔다 하는 강아지 같았지. 신랑이 오고 자유를 얻은 나는 곧장 외투만 대충 걸친 채 현관으로 뛰어나갔어.
초조하게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가 바깥으로 나가 찬 바람을 쐬는데 분을 못 이겨서 소리를 지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어. 무작정 걸었어. 성큼성큼 걷고 걸으면서 소리 내서 울었지. 이렇게 두 발로 걸어서 어디든 가고 싶었어.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이렇게 넓은데 왜 나는 오늘도 집 근처를 맴돌고 있는 걸까.
대학교 때 생각만 해보고 가지 못했던 몽골 초원의 한 마리 말이 되고 싶었어. 넓은 들판과 넓은 하늘 쏟아지는 별들. 정말 별들이 쏟아지듯 많이 보일까. 여기에선 하늘을 올려다봐도 별 하나가 보일까 말까인데. 아이처럼 울면서 어둠 속을 정처 없이 걷다가 볼이 차가워지고 발걸음이 서서히 느려질 때쯤 집으로 돌아왔어.
어느새 집에 있는 게 너무나 익숙해져 버렸어. 결혼하기 전엔 종일 돌아다니다 집에서 잠만 잤는데. 그런 일들도 모두 추억이 되어버렸어. 이제는 너무 익숙한 공간이자 내가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되어버린 집. 그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해야 했어.
꿈에서 기차를 탔어. 커다란 짐을 챙겨 고속열차에 오르니 대학교 때 친구들이 인사를 건넸지. 목적지가 어디인지도 알지 못한 채 설레는 마음만 안고 기차에 앉아 있었어. 왠지 먼 곳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탄 것만 같은 느낌이었어.
집에 묶여버린 나는 구천을 떠도는 영혼처럼 핸드폰 속에서 세상을 떠돌아다녔어. 친구들이 주말에 어딜 다녀왔는지 SNS를 봤고 자극적인 인터넷 기사를 누르며 괜히 눌렀다고 후회했지. 인터넷에서 나는 훨씬 자유로웠어. 진짜 내가 존재하는 곳은 어딜까. 그러다 잠이 들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