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서 버틴 임신, 출산, 육아의 시간
도현님의 책 추천 목록을 받고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어. 종이책은 주로 밥 먹는 시간에 읽었어. 낮잠 시간에 마음먹고 앉아서 책을 펼치기에는 할 일이 너무 많았지. 그 시간에 아기 밥도 해야 했고 무엇보다 누워서 잠깐 쉬어야 오후에 쓰러지지 않을 수 있었어.
아이 주도 이유식을 열심히 한 보람이 있었어. 아이는 손이건 숟가락이건 스스로 밥을 입으로 집어넣었고 그 시간에 눈으로 책장을 훑으면서 밥을 먹을 수 있었거든. 밥 먹을 때만큼은 고상한 BGM을 틀어놓기도 했어. ‘아기 상어’나 ‘바나나 차차’가 아닌 영화음악이나 조용한 재즈를 틀어놨어. 물부터 한 컵 들이키고 나면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어.
아기는 얼마나 밥을 빨리 먹는지 어느 날은 내가 채 숟가락을 들기 전에 밥을 다 먹고는 요거트며 과일을 달라고 떼를 썼어. 그러면 겨우 내 밥을 챙겨 먹으며 책은 손에도 못 대는 날도 있었지. 그렇게 잠깐씩만 책을 봐도 페이지는 넘어가서 며칠이면 책 한 권을 읽을 수 있었어.
도현님이 나에게 해주고 싶은 수많은 이야기가 있었겠지만, 결국 책 몇 권으로 추려졌어. 가장 먼저 내가 읽은 책은 ‘Zerolimits’라는 영어 이름을 가지고 있는 ‘호오포노포노의 비밀’이라는 책이야. 평소 도서관이나 서점에 갔으면 절대 읽지 않았을 책을 살포시 열어 보았어.
그 시기의 나는 모든 걸 ‘0점’으로 되돌리는 일이 시급했어. 혼란스럽고 무서운 세상에서도 밖으로 나가야 살 수 있는 사람이었거든. 질병과 폭력과 자유의 제한과 차별 그리고 편견까지. 고립된 아기 엄마가 바라보는 무시무시한 세상을 다시 0으로 되돌려 놓아야 했어. 아무것도 없는 무한한 가능성의 세상으로.
예전의 세상은 얼마나 가슴 떨렸는지 몰라. 밖에 나가서 누굴 만날지 기대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20대의 세상은 말이야. 유모차를 끌고 밖에 나갔을 때 다른 사람이 나에게 어떤 악의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걸 진심으로 믿을 수 있기를 바랐어. 그리고 그건 내가 변해야 하는 일이었지.
아기를 데리고 자주 들렸던 서점에서 보기만 하고 내려놓았던 책을 손에 들었어. 이제는 방역 패스 때문에 도서관도 갈 수 없으니 책이라도 사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 그리고 계산대로 가서 그대로 계산해 버렸어. 인터넷에서 사면 10% 정도 더 싸게 살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지금 중요한 건 유모차에 책을 넣고 터덜터덜 걸어가서 바로 식탁 위에 올려놓을 수 있냐는 거였어.
‘오래된 질문’이라는 책은 옥스퍼드 대학교 생물학 명예교수가 한국 사찰을 돌며 스님과 이야기한 내용을 정리한 책이야. 불교 신자도 아니고 불교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음에도 남편을 통해 이 책을 읽게 되었어. 집에 종이책이 있었지만 밀리의 서재에 오디오북이 있어서 유모차를 끌면서 오디오북으로 들었지.
오디오북으로 책 한 권을 읽은 건 처음이었어. 책은 노블 교수와 네 명의 스님들이 번갈아 가며 ‘삶은 왜 괴로운가?’ ‘나는 누구인가?’ ‘마음은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말해주는 방식으로 되어있었어.
평소와 같은 삭막한 거리 쌀쌀한 날씨였지만 귓가에 울리는 목소리가 있으니 마음이 차분했어. 차가운 기계음이 아니라 성우가 5시간 32분에 걸쳐서 책 내용을 모두 읽어주니 스님이 나를 앉혀놓고 차 한잔 내려주면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지.
스님이 말하길 사람들은 모두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아니래. 손바닥에 연결된 손가락처럼 함께 연결되어 있다는 거야. 그러니까 너와 나도 구분할 수 있는 게 아니고 결국에 같은 하나의 존재래.
이 부분은 유모차를 끌면서 들었어. 아기가 잠들어 주어서 감사하게도 카페에 가서 녹차 라떼를 마실 수 있었지. 새로 오픈한 지 얼마 안 된 카페에는 손님이 나밖에 없었어. 주인아주머니는 녹차 라떼를 시키자 달콤한 녹차 마카롱을 하나 갖다 주셨어.
“이것도 드셔보세요.”
‘감사합니다.’ 하고 시키지도 않은 마카롱을 받았어. 따뜻한 라떼를 한 모금 넘기고 초록색 마카롱을 까서 입에 넣으니 너무 행복하더라. 귀에서는 여전히 스님이 나에게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어.
“우리는 정반대로 알고 있어요. ‘너는 너고 나는 나야. 너와 나는 남남이야. 인간은 인간이고 자연은 자연이야.’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남남이니까 자연히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게 되고 타인에 대해서는 경쟁자나 적대자로 여기게 됩니다.”
“결론은 하나예요. 나와 타인과 세계는 하나이니, 모두 더불어 살아야 한다.
우리는 오직 더불어 살기 위해 모든 열정을 바쳐 노력해야 합니다.”
녹차라떼를 절반 정도 마셨을 때 아기가 울면서 일어났어. 아기에게도 먹을 것을 조금 쥐여 준 뒤에 남은 걸 후루룩 마셔버렸지. 카페를 나오면서 스님의 말이 자꾸만 머리를 어지럽게 맴돌았어. 스님은 참 아무렇지도 않게 어려운 말을 술술 뱉어냈어.
“오른손과 왼손은 나라는 몸을 기준으로 보면 서로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손으로 보면 두 개인 거예요. 그럼 이걸 하나라고 할 수 있을까요, 둘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유모차를 끄는 내 오른손과 왼손을 내려다보면서 아무래도 구분할 수 있는 것 같은데 생각하다가 그냥 한번 믿어보기로 했어. 다른 사람들 역시 나 자신이라고. 아기 엄마에게 공짜로 마카롱을 하나 내어준 사장님이 나 자신이라고 믿어보려 하니 한결 마음이 편안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