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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요가 수행자 Jun 22. 2023

아이고야 내 발가락

새끼발가락의 소중함에 대하여


밤 10시 무렵 사달이 났다. 동동이가 애착이불을 달라고 징징거리고 있을 때 바닥에 있는 이불을 주워 올리기가 싫어서 발로 뻥 차버렸다. 그런데 왼발 옆에는 동동이가 좋아하는 분홍색 뽀로로 소파가 있었고 순간 나는 발가락에 강렬한 통증을 느끼며 쓰러지고 말았다.


아악 소리가 절로 났다. 일어나고 싶어도 일어날 수가 없었다. 두 눈이 번쩍 할 정도로 너무나 아파서 그대로 방바닥에 누워있었다. 통증이 오는 곳은 왼쪽 새끼발가락. 도대체 어떻게 소파를 걷어차면 이런 통증이 오는 걸까. 나는 그대도 고개를 파묻고 누워있었다.


동동이가 우는 소리를 내는 엄마를 보더니 다가왔다. 다행히 엄마가 소리를 지르고 아프다고 쓰러졌는데 놀란 기색은 아니었다.


"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괜찮을 거예요."


그래. 지금 이 순간을 위해  머릿속에 쏙쏙 집어넣어 놨겠지. 동동이가 하는 그 귀여운 말에 대답도 못하고 그저 통증이 가라앉을 때까지 누워 있었다.




서서히 발을 들어 봤는데 왼쪽 새끼발가락의 각도가 오른쪽이랑은 좀 다른 것처럼 보였다. 무섭게 부어오르는 것은 물론이요. 왼쪽 발을 잘 디딜 수도 없었다. 급한 불을 끄자는 마음으로 냉동실에서 얼음팩을 하나 꺼냈다.


얼음팩을 해봐도 아팠다. 시간은 벌써 10시가 훌쩍 넘어 동동이를 재워야 하는데 어쩐다냐. 한참을 앉아서 얼음팩을 대고 있었다. 아프다고 하니 동동이는 "엄마 아파요?" 하고 혼자 침대에서 뒹굴뒹굴했다.




내일은 기차를 타고 친정에 가기로 되어있는 날이었다. 젠장. 이 발을 해서 어떻게 서울역까지 가지. 거실에서 방까지 걸어가는데도 바닥을 잘 못 딛겠는데. 당장 병원부터 가야 하는 거 아닌가.


하지만 친정에서는 허리 수술을 앞둔 89세 증조할머니가 오랜만에 동동이를 볼 날을 기다리고 계셨다. 차마 못 간다고 전화를 걸 수가 없었다. 그래 자고 나면 괜찮아지겠지.




걱정스럽게 네이버에 '새끼발가락 골절'을 검색해 보았다. 웬걸. 나처럼 어이없게 새끼발가락이 잘못된 사람들이 나왔다. 어떤 사람은 새끼발가락에 핸드폰을 떨어뜨렸다가 골절이 되었다고 했다. 블로그 주인장이 말했다.


"빨리 병원에 가세요. 새끼발가락에 멍이 들었으면 이미 부러지거나 금이 간 거일 수도 있어요!"


새끼발가락이 부러져서 반깁스를 한다면 낫는 기간은 3주쯤 걸린다고 했다. 한 달 동안 운동도 못하고 깁스를 하고 어기적 어기적 걸어 다닐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수영은 이제 실력이 좀 붙어서 평형에 들어섰고 요가는 한참 날아다니고 있었다.


 9월에는 드디어 꿈에 그리던 요가 자격증반을 신청하려고 마음먹고, 원장님에게 말까지 해두었는데. 새끼발가락 하나 때문에 모든 것이 잘 못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몰려왔다.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온몸에 오한이 들기도 하고 발이 찌릿거려서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어떻게 꺾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발등까지 아파왔다. 선잠에서 깨면 발에 깁스를 하는 생각을 하다가 '아닐 거야 내일이면 다 나을 거야.' 하고 희망고문을 했다.


밤늦게 들어오는 신랑에게 발가락이 얼마나 아픈지 잠결에 떠들다가 진짜 잠이 들었다. 다음날이 되니 붇기는 조금 빠진 듯했다. 심지어는 어정쩡하게 발을 디딜 수도 있었다. 기차는 서울역에서 11시 출발. 집에서 적어도 9시에는 출발해야 했다.


아빠 없이 아기랑 둘이 가는 1박 2일 여행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는데 발가락이 아프니 짜증부터 올라왔다. 대충 짐을 싸는 동안 옷을 입지 않으려 도망다니는 아이에게 잔소리가 나온다. 내 옷은 챙기지도 않았다. 그냥 입은 옷이 전부. 그래도 기저귀랑 두유는 가방 한가득 넣었다. 뭐 내 옷이야 어떻게 되겠지.


그렇게 발을 절뚝거리며 현관을 나섰다.





사진: UnsplashKlara Kuliko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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