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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요가 수행자 Jul 01. 2023

장마가 벌써 시작되었다고요?

아니 벌써 장마?

장마가 시작된 줄 몰랐습니다. 태풍이 온 다음처럼 좀 이상한 바람이 부는 건 알았지만요. 어쩌다 장마가 오는지도 모르게 되었냐면 바로 뉴스를 보지 않는 까닭입니다.


텔레비전이 있긴 해요.  거실에 있는 건 아니고 침대방에 있는데 마지막으로 켠 게 언제인지 가물가물합니다. 리모컨도 어디 있는지 몰라요. 이렇게 오랫동안 보지 않으니 그냥 치워버릴까 생각도 듭니다.


아니 그러면 "핸드폰으로도 뉴스 안 봐요?"라고 물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네이버만 들어가도 뉴스들이 줄줄이 나오잖아요. 하지만 어느 순간 네이버 뉴스를 끊어버렸습니다. 혹시 네이버에 들어가더라도 찾아야 할 것만 후딱 찾고 나옵니다. 아시다시피 네이버에는 너무나 자극적인 기사들이 많습니다.




코로나 때 집에서 핸드폰으로 뉴스를 열심히 봤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뉴스를 보면 볼수록 세상이 '살기 힘든' '끔찍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는 걸요. 살인사건, 사고, 부정부패, 이상한 일의 연속이었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이 모든 사건들이 터져 나온다는 게 놀랍기만 합니다.


그 이후로 뉴스를 끊었습니다. 그래서 텔레비전도 안 보고 인터넷 뉴스도 안 보니 장마가 온 지도 모르게 된 것입니다. 블로그에서 친구의 댓글을 보고 비로소 장마가 온 걸 알았습니다.


아, 다음 주 제주도 비행기 예매했는데 지금 장마가 왔다고?


여행에 비가 올 수 있다는 건 좀 아쉽긴 합니다만. 그래도 비 오는 여행의 재미가 있겠지요? 미친 듯이 덥지는 않을 거니까요.


제가 이 이야기를 지인들에게 했더니, 어떻게 그걸 모르냐며 웃더군요. 그런데 저는 지금이 좋아요. 장마인걸 몰랐다고 해서 다시 뉴스를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세상에 얼마나 따스하고 아름다운 일들이 많은데. 자극적인 살인사건으로 눈길을 돌리고 싶지는 않아요. 차라리 그냥 모르는 편이 낫습니다. 그 편이 단조롭고 편안한 일상을 살아가는 데에는 더 도움이 되니까요.




어제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려서 집에만 있었습니다. 그러다 동동이가 늦은 낮잠을 자고 저녁을 먹은 뒤에 밖에 나가자고 했어요. 8시인가 9시쯤 되었는데 온통 캄캄했습니다. 하루종일 집에만 있으니 답답한 마음이 들어 흔쾌히 유모차를 끌고 나갔습니다.


밖에는 안개비가 내리고 있었어요. 아무것도 오는 것 같지 않지만 가로등에 비친 빛을 보면 아주 작은 물방울이 흩뿌려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비에는 우산을 안 써도 될 것 같은데. 집에 가서 씻으면 되지 하고 그냥 걸어봅니다.  


비가 온 뒤라서 아파트 1층의 정원에는 개구리 울음소리가 가득했어요. 최근에 듣기로는 관리실에서 작은 연못의 물을 몽땅 빼버렸다고 했거든요. 개구리울음소리가 듣기 싫어서요. 그런데 어느 때보다 우렁차게 울고 있었습니다.


그래, 관리실에서 아무리 물을 빼도 하늘에서 쏟아지는 물을 막을 수는 없지.


개구리가 우니 정말로 장마가 온 느낌입니다. 집에 들어와서 6월 말까지만 수확하는 달콤하고 말랑말랑한 황도 복숭아를 깨물어 먹었습니다. 장마가 언제인지는 잘 몰랐지만, 동동이와 함께 축축하고 습한 여름을 제대로 즐기고 있습니다.






사진: UnsplashRaimond Klavins


https://blog.naver.com/gmj4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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