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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요가 수행자 Jun 30. 2023

미안하다 초록아. 아직도 살아 숨쉬는 너에게.

식목일에 받았던 화분을 말려버렸다.

시골에서 태어났지만 식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집에는 딱 하나의 화분이 있었는데요. 신혼집의 분위기를 내 보고자 산 '몬스테라'입니다. 난이도가 쉽다는 말에 샀는데 어찌나 쑥쑥 자라던지요. 화분이 너무 좁아서 분갈이도 한번 했습니다. 더 커다란 화분에 일부를 옮겨심었어요.


임신하고 아이낳고 키우다보니 자연스레 화분은 멀어졌습니다. 그 사이 분갈이 까지 해서 두개가 되었던 몬스테라는 다시 화분 하나에서 간신히 생명만을 유지하고 있을 뿐입니다. 물도 제대로 주지 않았음에도 살아남은 몬스테라의 생명력에 존경을 표합니다.




오늘은 몬스테라가 아니라, 다른 친구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 친구는 4월 5일 식목일에 우리집에 왔습니다. 동동이가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가끔 뜻밖의 선물을 가져오는데 바로 이 초록색 식물이 그랬습니다.


이름은 '천냥금' 동동이의 첫 식목일 식물 되시겠습니다. 초록의 반짝거리는 잎에 빨간 열매를 달고 있던 녀석입니다. 동동이는 화분을 받은 그날 앉아서 빨간 열매를 모조리 따 버렸습니다. 입에 넣지는 않았으니 다행입니다.


겉흙이 마르면 물을 듬뿍 주라고 써 있던 녀석. 물을 주는 사람은 우리 집에서 저 하나 뿐입니다. 신랑은 집에 있는 시간이 극도로 적을 뿐더러 집에 있는 몬스테라를 치워버리자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래도 오랜시간 정이들어 치우지는 못했습니다만.


우리집 식물들의 생명은 제 손에 달려있습니다. 흙을 만져보는 수고로움 대신 잎사귀가 축 쳐지면 한번씩 물을 듬뿍 주었습니다. 몬스테라와는 달리 단 며칠만 물을 주지 않아도 잎사귀가 축 쳐지더라고요. 그래서 물을 주면 또 하루만에 탱탱하게 잎사귀가 차 올랐습니다.




그런데. 6월 초. 며칠을 다른 지역으로 놀러갔다 오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저는 천냥금이 그 자리에 있다는 것도 까먹어 버렸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고개를 들어 화분을 봤을 땐.



아... 처참했습니다. 이미 강을 건너간 것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잎은 물기하나 없이 말라있었습니다. 다시 물을 줘도 일어나지 못 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순간 정말 화분을 버려야 하나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정말 마지막으로 물을 줘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른 잎들을 모두 털어내고 싱크대로 갔습니다. 그래 혹시 모르잖아, 살아있을지도. 그렇게 물을 듬뿍 주었습니다. 그리고 기다려 보았습니다.




며칠이나 지났을까. 살아있는 잎이 있습니다. 다시 잎사귀에 물이 돌아서 살아난 아이들이 있는겁니다. 앙상한 줄기만 남았지만 아직 죽은 것은 아닙니다.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래 죽일뻔 했어 정말. 하지만 죽이진 않았구나 아직은 아냐.



작은 화분에 담긴 식물도 이럴진데. 사람이라고 다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 약간의 희망만 있다면 될거에요. 삶을 살아가기 위한 아주 약간의 희망이라도.


글을 쓰면서 다시 물을 듬뿍 줬습니다. 예쁘게 키웠으면 참 좋았을 텐데 아쉽기도 합니다.  내가 널 이렇게 만들어서 미안해. 앞으로는 더 자주보자. 초록아 미안해.




https://blog.naver.com/gmj4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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