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요가 수행자 Jul 09. 2023

우중충할 땐, 마음에도 제습이 필요해요.

오늘 당신의 마음은 어떤가요?

에어컨을 틀어야 하는 날씨가 되었습니다. 에어컨을 켰다 껐다 하지 않고 계속 켜 놓는 것이 전기세가 더 적게 나온다고 해요. 그래서 에어컨을 틀어놓고 거실에서 자는데 에어컨 조명이 너무 눈이 부셔서 밤이면 그냥 에어컨을 꺼 버리게 되는 것 같아요.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어요. 여행 내내 흐리고 비가 왔습니다. 맑은 하늘과 바다는 볼 수 없었어요. 어딘가 모르게 우중충한 하늘, 습한 공기 그리고 흐린 날의 회색빛 바다뿐이었지요.


제주도는 더 습하다던데 사실이더군요. 차에서 에어컨을 틀고 있다가 주차장에 내리면 눅눅하고 습한 바람이 훅 끼쳐옵니다. 온몸이 다 축축 쳐지는 느낌이었어요. 제가 묵은 숙소 중 하나는 에어컨과 별도로 '제습기'가 있었어요. 그래서 틀어놨더니 하루 동안 물을 두 통이나 비워냈습니다.




집에 오래된 제습기가 있는데요. 여름마다 쏠쏠한 역할을 하고 있어요. 비록 덜덜거리고 소리가 심한 편이긴 하지만 틀어 놓으면 쭈글쭈글해진 벽지가 쫙 펴집니다. 제습기를 틀고 잠시 후 쪼르르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면 좀 짜릿하기도 해요. 한 통가득 물이 차 있는 걸 보면 뿌듯하고요.


제습기가 돌아가는 동안 훈훈한 바람이 나오지만 공기는 훨씬 가뿐해집니다. 솜이불을 햇빛에 바짝 말린 느낌이랄까요? 습기만 없앴을 뿐인데 가뿐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참 좋은 것 같아요. 그래서 신랑이 무거운 제습기 치우자고 해도 베란다 구석에 잘 모셔서 보관을 했답니다.




가끔은 마음도 물을 가득 먹은 듯 축축해질 때가 있어요. 슬픈 거랑은 좀 다르게 무거운 느낌이에요. 어디를 가도 시무룩하고 걸음을 걷는 것도 좀 힘들죠. 웃음도 지어지지 않아요. 뭐가 문제일까 생각해 보면 왜 그런지 모를 때가 더 많아요. 아무 이유도 없는데 기분이 좀 처지는 거예요.


그런 날, 어쩌면 문제는 나 자신이 아닐 수도 있어요. 오늘의 날씨가 너무 습하고 더워서 잠시 축 젖은 이불처럼 늘어진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괜히 우중충한 나를 돌아보는 것보다는 제습기를 트는 편이 낫다고 생각해요. 틀고 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하면서 잠시 기다리는 거죠. 혼자 있는 집이어도 괜찮으니까 에어컨을 시원하게 틀어봐요. 그리고 잠시 기분이 좋아질 때까지 기다리는 거예요. 어차피 에어컨은 껐다 켰다 하는 게 더 돈이 많이 나오니까요.




어제는 하루 종일 미세먼지도 있고 덥고 습해서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만 있었어요. 그러다가 저녁 6시쯤 되어서 동동이와 유모차를 끌고 나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밖에는 미세먼지 없는 맑고 시원한 바람이 불고 있었어요. 습기도 없어서 현관문을 나서면서 "오. 시원해."라는 말이 절로 나왔어요.


물론 햇볕 아래는 여전히 더웠지만 그늘을 골라 다니며 걸을만했습니다. 물가에 유모차를 세워놓고 다리 밑에 앉아 있으니 지금이 7월이 맞나 싶게 선선했어요. 축축한 기분이 바뀌는 건 한 순간이었어요. 한 순간 스치는 바람처럼.


마음의 습기를 쫙 빼내서 담으면 얼마나 나올까요? 시원하게 세면대에 쏟아부을 수 있다면 가뿐할 것 같은데 말이죠.


오늘의 습기가 나를 눅눅하게 만들 수는 있어도 내일의 나는 또 다른 공기 속에 있을 겁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여름도 항상 끝이 나니까요.


오늘도 보송하시길 기원합니다.



*사진 unsplash



작가의 이전글 당신의 경제적 독립기념일은 언제인가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