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글 Aug 10. 2022

숙박비가 아까운 가족의 여름 휴가를 보내는 법

일단 먹고 보자

여름휴가 시즌이 왔다. 외국계 회사였던 이전 직장에서의 휴가는 보통 2주였다. 덕분에 아이의 방학 기간과 맞춰 절반은 집에서 뒹굴거리며 보내고, 나머지 절반은 적당히 덜 붐비고 덜 비싼 여행지를 찾아 다녀왔다. 


하지만, 새로 옮긴 회사에서의 첫 여름 휴가는 그렇지 않았다. 최고 성수기인 8월 초에 쉬어야 했음은 물론이고 기간도 3일에 불과했다. 어디 가려고 조금 알아봐도 혀를 내두르는 숙소 가격 때문에 엄두를 내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했다. 그래서 내가 가족에게 던진 제안은 이거였다.


비싼 숙박비를 내고 잠만 자고 오는 것 대신에 그 돈으로 평소 먹고 싶었는데 가격 때문에 눈치 보고 못 먹었던 것을 먹으러 가자.

지금 사는 집도 월세를 내며 살고 있기 때문에 따지고 보면 매일 숙박비를 내면서 지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놀러 갔다고 또 숙박비를 쓰면, 이중으로 돈이 나가는 거 아닌가? 라는 이상한 계산을 머릿속에서 하면서 던진 제안이다.


결국, 어디 멋진 곳으로 가지는 않고 맛있는 것이나 실컷 먹는 것으로 타협을 봤다. 터무니없이 비싼 성수기 숙소 비용도 문제였지만, 북한에서도 이들 때문에 섣불리 남쪽으로 못 내려온다는 중2 아이가 집에 있는 것도 절반의 이유라고나 할까.


그렇게 해서 3일간 다녀온 여러 맛집들. 숙박비가 아까운 가족들이 여름휴가를 보낸 방법이다.


DAY1

첫날의 메뉴는 해산물 좋아하는 아이가 점심과 저녁 메뉴를 선택했다. 점심에 간 곳은 회전 초밥집이다. 평소 대기줄이 엄청 길어서 갈 엄두를 못 냈던 초밥 맛집인 '갓덴스시 잠실점'을 방문했다.


회전 초밥은 가끔 가는데, 갈 때마다 나는 접시가 쌓일 때마다 개수를 파악해서 누적 금액이 얼마나 나오고 있는지를 신경 쓰는 타입이다. 하지만, 이번 방문의 컨셉이 플렉스이기 때문에 접시의 색은 신경 쓰지 않고 먹고 싶은 메뉴가 내 앞에 오면 그냥 집어 들고 먹었다.


그곳에서 먹은 것 중 아주 일부의 사진들.

보통은 손을 벌벌 떨면서 집어올 황금색 접시도 먹고
메뉴판에서 비싸 보이는 것만 따로 시키기도 하고
한 번으로는 부족해서 더 시키기도 했다.

다 먹고 나서 계산을 하는데, 생각보다는 많은 비용이 나오지 않았다. 초밥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닌 내가 좀 적게 먹어서 그런 것일까.


밥을 먹었으니, 후식을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후식은 평소 거들떠도 보지 않는 곳으로 갔다. 바로 고급 초콜릿을 판매하는 고디바(GODIVA)로 가서 나와 엄마는 초코 아이스크림을 먹고, 아이는 아래 보이는 초콜릿 24개가 들어있는 것을 하나 골랐다.

하나에 얼마냐.....


평소 비싼 음식점 거의 안 가는 편이다 보니, 자리를 만들어줘도 가지 못하는 우리 가족이다. 저녁으로 간 곳은 집에서 걸어서 가면 있는 애슐리 퀸즈다. 나는 쳐다보지도 않는 민트 초코가 이번 달의 메인 테마인 상태.

애슐리는 평범


DAY2

둘째 날에는 어디를 갈까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운 좋게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진행하고 있는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티켓이 생겨서 오전에 그곳을 갔다가 이태원에 가는 코스로 정했다.


점심에 들른 곳은 이름만 들어보고 뭔지 제대로 알지 못했던 '후무스'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곳이었다. 후무스가 병아리콩으로 만드는 것이라는 것도 모르고 갔었는데, 생각보다 굉장히 맛있어서 다음에 또 가도 괜찮겠다는 생각이다.

5가지 맛의 후무스가 제공된 플레이트
함께 시켰던 양갈비

함께 시켰던 양갈비는 시즈닝도 잘 되어 있고, 먹기 딱 좋은 상태로 익혀 나와서 이것도 역시 괜찮았다. 아이 엄마와 내가 가장 만족했던 식사가 바로 이곳에서 먹은 것이다. 해산물 러버인 아이는 첫날 점심이 가장 좋았다고 했다.


아이 먼저 지하철 타고 집으로 보내 버리고, 둘이서 오붓하게 찾아간 곳은 맥심플랜트라는 카페. 지하 3층부터 지상 3층까지 모두 하나의 카페다. 맥심에서 운영하는 곳이라 커피의 맛이 남다르겠거니 생각했지만, 생각보다는 평범했다.

시설이 어마어마했던 카페


저녁은 소박하게 감자탕을 먹었다. 비싼 거 먹어도 된다고 해도 고르는 게 딱 이 정도 수준이다.

감자탕 3인분

그런데 평소 시켰던 메뉴가 '소'였던 것 같다. 이번에 3명이 갔다고 '중'을 시켰더니 고기만 먹다가 배가 불러서 다른 것은 먹지도 못했다. 다른 곳보다 고기가 아주 실해서 괜찮은 집이다.


DAY3

마지막 3일째의 메뉴 선택권은 나에게 있었다. 평소 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다른 가족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거나 아예 먹지 않는 음식이어서, 평소 먹고 싶은 것을 먹지 못하는 불쌍한 처지에 놓여있다.


이날도 마음대로 선택하고 싶었으나, 같이 간 사람들이 안 먹는 사태는 피해야 하니, 선택한 것은 카페 가서 브런치 겸 먹으면서 책 보고 블로그 하고 그러고 오는 것을 택했다.

뷰 맛집이어서 베이커리가 부족
카페에 앉아 편히 글을 쓰며 지내는 디지털 노마드는 언제..

뷰 맛집이어서 베이커리나 브런치 맛집은 아니었던 점이 조금 아쉬웠던 뷰66 미호점. 노아스카페, 노아스로스팅이었던 이름이었는데 뷰66으로 이름을 완전 바꾼 듯하다. 비만 안 오면 한강 뷰가 정말 끝내주는 곳이다.


마지막 만찬으로 선택한 곳은 하남에 있는 '미뜸'이라는 곳이다. 방송에도 나왔다는데, 해물장과 솥밥으로 유명한 곳이다.

하남 미뜸, 해물장

해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나의 선택권인 날에도 가족을 먼저 생각해서 고른 집. 지나고 생각해 보니 왜 이런 선택을 했지. 크림소스 맛있는 집을 찾아갔어야 했는데 말이다.

무난하게 맛은 있었던 듯

무난하게 맛은 있었는데, 가격 대비로 생각해 보면 조금 아쉬웠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3일을 먹고 싶은 것을 먹으러 가 보자고 하면서 숙박비 대신 밥값으로 쓰기를 끝냈다. 정산을 해 보니, 아주 좋은 호텔에서 1박 하는 비용보다도 적게 쓴 것 같기도 했다. 


좋은 것, 비싼 것도 먹어본 사람들이나 먹는 것 같다. 소박하고 평범한 입맛을 지닌 가족은 자리를 만들어줘도 결국 가는 것은 비슷하다. 저렴하게는 '싸구려 입맛'이라고 표현하고, 조금 순화해서 '보편적인 입맛'을 가진 가족의 여름휴가는 이렇게 지나갔다.


생각보다 얼마 안 나오는 것을 확인했으니, 다음에도 외식을 한다면, 굳이 비싸 보인다는 핑계를 대면서 안 갈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 좋은 경험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브런치가 뭐라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