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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글 Nov 08. 2021

온 가족이 글쓰기 위해 한 자리에 앉다.

Feat. 도망가봐야 옆방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서늘한 공기가 집안을 가득 채우고 있을 때가 가끔 - 사실은 종종 - 있었다.


 '아, 오늘도 글쓰기 싫다고 한바탕 난리가 났었구나'


 이런 예상을 하면서 집으로 들어가면, 엄마와 아이 둘이서 공책을 앞에 놓고 열심히 뭔가를 쓰고 있는 광경을 목격하곤 했다. '매생이 채널(자세한 것은 이전 글 참조)'을 보는 동안은 유튜브 영상에서 알려주는 주제와 어떻게 글을 써 내려가는지 알려줬기 때문에 아이 혼자서 글을 썼다. 하지만 영상이 매일 올라오던 것은 아니니까, 엄마와 아이가 글을 거의 매일 쓰기 위해서는 따로 주제를 정할 필요가 있었다. 글쓰기를 매일 하는 것도 어렵지만 주제를 정하는 것이 더 어렵다. 그러니 주제 정할 때부터 다툼이 시작되어 냉랭한 분위기에서 글쓰기를 시작했던 것이다.

 

 그런 냉랭함의 한 켠에는 둘만 글쓰기를 하고 있고, 옆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넷플릭스나 유튜브를 보고 앉아 있는 아빠의 존재가 아주 큰 비중을 차지했다. '직장에 출근했다가 퇴근해서 피곤한 건 마찬가지 상황인데 왜 나만 혼자 이렇게 아이 교육에 신경을 쓰고 있어야 하느냐'의 포스가 느껴지는 엄마의 뒷모습에서 오는 부담감에 둘이 글 쓰고 있는 거실을 피해 옆방으로 도망 다니던 것의 내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열심히 피해 다녀봐야 한 지붕 아래에 있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둘이서만 글쓰기를 한 지 시간이 좀 지나서, 옆방으로 피하는 것도 불가능한 날이 오고야 만다. 그 당시에는 공책에 직접 손글씨를 써 가면서 글쓰기를 했는데, 아이 엄마가 안 쓰는 공책 앞에 아빠의 이름을 적고는 여기로 와서 오늘은 무조건 같이 쓰라며 연필과 함께 나에게 내밀었다. 그날의 주제는 '시간의 소중함을 알려주는 명언을 써라. 단, 자기 생각을 써라.'라는 주제였다.


 막상 주제를 보고 나니 머릿속이 텅 빈 느낌이었다. 그냥 글쓰기라면 어느 정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명언을 만들어 보라고 하니 더 어려웠다. 평소 책을 많이 읽던 사람도 아니고, 명언을 잘 기억하는 사람도 아니다 보니 더욱 그랬었다. 한참을 고민하다 쓴 것이라고는 "그렇게 급하면 어제 갔어야지."라는 인터넷에서 많이 본 문장 하나를 적는 것에 그쳤다. 허접하게 시작하기는 했지만, 그렇게 아빠도 참가하여 온 가족이 함께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빠인 나까지 모두 참전하는 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지만, 기왕 해 보기로 한 것 함께 잘해 보겠다고 마음을 먹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글을 쓰는 것이 아닌 우리의 글쓰기 연습이라 생각하면서 글을 쓰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주제를 정하는 것이 어렵지, 주제를 정하면 어떻게든 글은 써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글을 쓰면서 마음속 한 켠에는 '어라? 내가 생각보다 글을 좀 쓰는가?' 하는 자만심이 생기기도 했다. (그 생각이 현재까지 이어져서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이렇게 되기까지 불과 1년이라는 시간밖에 안 걸렸다.)


 글 쓰는 가족이라고 뭔가 대단히 거창한 목표를 가지고 시작한 것은 아니다. 아이를 논술 학원에 보내봤지만 생각보다는 효과적이지 않았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집에서 글쓰기로부터 시작된 것뿐이다. 이렇게 온 가족이 글쓰기 위해 한 자리에 모인 지 어느덧 1년이 되어간다. 가족 글쓰기는 상당히 많은 것을 변화시켰는데, 가장 많이 바뀐 건 아빠인 나다. 1년 전에는 생각하지도 못했을 브런치에 글 쓰는 내 모습이다. 보잘것없는 글 실력이지만, 우리 가족처럼 누군가 가족이 함께 글쓰기를 시작한다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렇게 우리 가족 글쓰기의 좌충우돌 에피소드를 이어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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