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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글 Nov 10. 2021

글쓰기 주제를 고르는 방법

손 글씨는 힘들어

 엄마와 아이가 글을 쓸 때마다 옆방으로 도망치던 생활은 끝이 나고 아빠인 나까지 참전하여 본격적으로 글 쓰는 가족이 되었다. 첫 주제는 나에겐 매우 어려웠으나 두 번째 주제는 조금 할만했다. 그 주제는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애국가 가사를 만들어보자.'라는 것으로 정해졌다. 우리 집에는 거실에 TV가 없는 집이어서 거실 한쪽 끝으로 큰 테이블을 놓았는데, 그곳에 모두 둘러앉아 각자 글쓰기 공책을 펼치고 연필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렇게 글을 쓰고 나면 서로의 노트를 돌려보면서 한 번씩 읽어주는 게 가족 글쓰기의 마무리다. 애국가는 글자수 50글자 조금 넘는 정도에 불과하기는 하지만, 노래에 맞춰 적당한 가사를 넣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코로나로 인해 외출도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게 지금까지 이어질 줄 몰랐지만, 그때도 이미 충분히 오랜 기간 집에서만 머문 지 오래되어 자연스레 개사에는 코로나 관련 내용이 들어갔다. 글을 쓰고 난 후 서로의 글을 보면 한 가족인데도 생각이 전혀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말과는 다른 느낌으로 확실한 차이를 느낀다.




 글을 매일 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글 쓰는 가족이 되기로 한 우리의 목표는 그저 소상한 일기 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주제를 정해서 글을 써보는 것이었기 때문에 더 어렵기도 했다. 물론, 일기를 쓰는 것도 쉽지 않기는 마찬가지지만. 우리 가족이 선택한 방법은 글쓰기 주제를 골라서 써 볼 수 있도록  여러 가지 글쓰기 주제를 제시해 주는 책을 활용하는 방식이었다. 이런 책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우리가 선택한 책은 "초등학생이 좋아하는 글쓰기 소재 365"였다.


초등학생이 좋아하는 글쓰기 소재 365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지만 이곳에 있는 주제들 어떤 것을 제시하더라도 거침없이 글을 써 내려갈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이라면 이미 작가 수준의 필력을 갖추고 있지 않을까. 우리 가족은 매일 저녁 한 테이블에 둘러앉아 365개의 주제 중 하나를 골라서 글을 쓰기로 했다. 하나를 고르는 방법은 최신 IT 기술의 도움을 받았다. 한글은 못 알아듣게 세팅된 구글 홈 허브에게 "오케이 구글, 랜덤 넘버 비트윈 원 앤 쓰리 헌드레드 식스티 식스"라고 외치면 친절하게도 숫자 하나를 골라준다. 그렇게 선택된 주제는 우리 가족이 그날 써야 하는 주제가 된다.


 (랜덤 번호를 뽑는데 365가 아닌 366으로 한 이유는 366이 나오는 경우에는 그날의 글쓰기를 건너뛰자고 한 아이의 제안을 받아들여서 했던 것이다. 아이뿐 아니라 나 역시 가끔은 366이 나와주기를 기다렸던 적이 많다.)


 주제에 따라서 글의 형식이나 표현도 바뀌어야 하는 경우가 많이 있어서 다양한 글을 써 보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우라가 써봤던 주제들은 대략 아래와 같은 것들이다. 


거울과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이길 수 있는 방법

가정 통신문 만들기

수도꼭지를 틀었는데 초코 우유가 나온다.

현관문을 여니 기자들이 모여 있다.

빨래를 제외하고 세탁기로 할 수 있는 유용한 일


 다양한 주제들이 많이 나왔는데, 제시되는 소재들이 일반적인 글로 쓰기에는 어려운 것들이 많아서 어떤 것은 에세이처럼, 어떤 글은 소설처럼 썼다. 책의 제목에 초등학생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데다 제시되는 소재들을 가볍게 휘리릭 읽으면 굉장히 가벼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막상 저 주제가 주어지고 글을 쓰라고 하면 쉽게 글을 쓰기는 힘들다. 


 이 주제들로 글을 쓸 때는 공책에 연필이나 볼펜으로 글을 썼다. 회사에서 업무 노트를 쓸 때 펜으로 글을 쓰기는 하지만, 짧은 메모를 하는 것과 긴 글을 쓰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긴 글을 직접 수기로 쓸 일이 없으니 공책 한 페이지는커녕 반 페이지를 쓰는 것만 해도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연필로도 써보고 볼펜으로도 바꿔보고 했지만, 손이 아픈 것은 어떻게도 해결이 안 됐다. 사실 손이 아픈 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나와 아이가 심각한 악필이었다는 거다. 힘들기만 한 게 아니라 글씨까지 못쓰니 이건 총체적 난국이었다. 그래서 내가 먼저 선포를 했다. 도저히 손으로는 못 쓰겠다고. 그렇게 하여 우리 가족의 글쓰기는 새로운 플랫폼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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