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투하나 바꿨을 뿐인데..
어제 남편이 라면을 먹는데 맛있어 보이길래 냉큼 젓가락을 챙겨 와 한입 뺏어 먹었어요. 원래 뺏어먹는 한 젓가락이 제일 맛있잖아요. 그런 저를 쳐다보며 갑자기 이러더군요. “여보야 진짜 신기해. 나 요즘 화가 없어졌어. 예전에는 여보가 라면 한 젓가락만 뺏어먹어도 화가 났었어. 근데 방금은 뺏어먹는 거 봐도 아무렇지도 않더라. 회사 사람들도 요즘 나보고 좀 유하게 바뀐 것 같다고 그러네. “
예전에는 남편이 화가 많은 사람이었어요. 제가 많이 혼나는 편이었습니다. 남편 말로는 제가 자꾸 화를 나게 만든다고 하는데, 저는 솔직히 남편이 갑자기 어떤 포인트에서 화를 낸 건지 모를 때도 종종 있었어요.
남편의 화가 사라진 이유를 제 입장에서 나름 생각해 봅니다.
1. 자존감이 높아져서 2. 둘째 낳고 에너지 아낌 차원에서 3. 아내가 짜증을 안내서
이 세 가지가 제가 내린 결론입니다.
연애시절 남편을 만나고 백마 탄 왕자님을 만난 마냥 뿅~가버려서 만난 지 백일만에 집에다 결혼한다고 말했었더랍니다. 콩깍지 제대로 씌었죠. 철부지 딸내미가 못 미더우신 아버지는 2년간 결혼을 결사 반대하셨어요. 남편이 마음에 안 들었다기보다 하나뿐인 딸을 시집보내기 싫으셨던 거겠죠. 남편에게는 저보다 더 힘든 시간이었지 싶습니다. 잘 나가던 모임도 한동안 안 나갔었거든요. 정말 서로 사랑한 것과는 별개로 연애 기간 내내 남편은 버럭 남이었어요. 그 후 결혼하고 애 둘쯤 낳고 나니 이제는 자존감이 많이 올라가신 듯합니다. 좋은 아들로, 좋은 사위로, 좋은 남편으로, 좋은 아빠로 인정받게 되었으니까요. 여자들보다 남자들이 인정에 대한 욕구가 훨씬 크잖아요. 자존감이 낮을수록 자신이 별로 인가 싶고 상대방으로부터 무시받는다는 생각에 더 화를 쉽게 내게 되는데, 자존감이 높아지니 확실히 화가 잘 안나는 거죠.
둘째 아이 태어나고 우리 부부는 극적으로 안 싸우게 됩니다. 첫째 아이 하나만 육아할 시절까진 많이 싸웠어요. 어른은 두 사람인데 케어할 아이는 한 명뿐이니 눈치 싸움, 기싸움이 생기더라고요. 아이가 응가를 하면 누가 출동할 것인가. 아이가 새벽에 엥~하고 울면 누가 출동할 것인가. 아이가 둘이면 각각 한 명씩 도맡아 하면 되기 때문에 그런 일로 옥신각신 안 하게 되었네요. 그리고 부부싸움하면 에너지 소모가 크다는 걸 알기에 갈등이 생겨도 최대한 원만하게 지나가려고 서로 노력하게 됩니다. 남편도 나도 다툴 힘까지는 안 남아 있거든요. 어떻게든 에너지를 아껴야 살 수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깨닫게 됩니다. 아이들 앞에서 싸우기도 좀 그렇고요.
세 번째 이유 아내가 짜증을 안내서. (별표 백개)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 열 가지 해주는 것보다, 싫어하는 것 한 가지를 안 하는 것이 부부갈등을 줄이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 내가 무슨 말을 했을 때 항상 남편이 발끈하게 되는 때는 언제인지 생각해 보니 제가 짜증 내는 말투로 말할 때더라고요. 신경질적인 말투, 직설적인 말투, 짜증 내는 말투들 때문에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말의 내용과 감정은 결국 제대로 전달이 안되고 있었어요. 의사소통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말의 내용보다 말투, 표정, 눈빛, 제스처 등 비언어적인 요소들이 훨씬 중요한데 그걸 계속 놓치고 있었습니다. 말투 때문에 본의 아니게 오해를 만들고 결국은 나만 손해인 상황을 만든 거죠. 남편과의 사소한 다툼들이 너무 피곤해져서 짜증 내는 말투를 고쳤더니 남편의 화를 사라지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다른 상황들은 내가 바꿀 수 없지만 내 말투는 내가 바꿀 수 있잖아요.
남편과의 갈등을 줄이는 키포인트는 바로 ‘말투’입니다. 김범준 작가님의 <모든 관계는 말투에서 시작된다> 책에서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격이 떨어지는 말투, 짜증 섞인 말투, 직설적인 말투, 징징거리는 말투, 신경질적인 말투, 무시하는 말투, 남과 비교하는 말투를 주의하라고 합니다. 나와 가장 가까운 가족인 남편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더더욱 중요합니다. ‘말투’란 ‘말을 하는 버릇이나 모습’을 뜻합니다. 말투는 버릇일 뿐 본성이 아니니 얼마든지 고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깨끗한 곳에는 쓰레기를 잘 안 버립니다. 깨끗한 곳은 계속 깨끗하게 유지시키고 싶어 하죠. 쓰레기를 하나만 버려도 티가 잘나고, 버리면서도 죄책감을 많이 가지게 됩니다. 반대로 더러운 곳에는 쓰레기를 쉽게 버려요. 말투도 똑같습니다. 서로 간의 대화가 따뜻하고 공감 어린 좋은 말투로 계속 이루어진다면 과격한 말투는 쉽게 나오기가 어렵습니다. 짜증 내고 신경질적인 말투가 한번 시작되면 서로가 더 쉽게 버릇처럼 내뱉게 됩니다. 정말 말투만 살짝 다듬어도 부부갈등은 현저하게 줄어들어요.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신경 써야 합니다.
평소에는 괜찮은데, 이미 열받아서 할 말을 할 때가 문제예요. 말투가 곱게 안 나가죠. 가는 말투 안 고우니 오는 말투도 안 고와요. 열받을 때 쏘아붙이는 말투로 할 말 다 하고 싶으면 남편한테 하지 말고 차라리 글을 쓰세요. 분노를 어떻게든 표출하고 싶으면 일기장에 적으세요. 그럼 내가 왜 열받았는지, 진짜 열받을만한 일인지,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가 정리가 됩니다. 힘든 상황을 훨씬 잘 헤쳐나갈 수 있는 지혜가 생깁니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해소도 많이 되고요. 열받아서 짜증 내는 말투로 남편에게 말해 봤자 상황은 더 악화됩니다. 남편과의 대화는 반드시 서로가 괜찮을 때, 맨 정신일 때 ‘좋은 말투’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시기 바랍니다. 둘 중 한 명이라도 안 괜찮을 때 나누는 말들은 비극적 결과를 초래하기 쉽습니다.
여행 덕후다 보니 아이들 데리고 여행을 자주 다닙니다. 첫째 80일부터, 둘째 50일부터 여행 다녔어요. 어린아이 둘 데리고 여행한다는 게 쉽지가 않아요. (지금은 제주도 신라호텔 스위트룸 공짜로 준다고 해도 그다지 안 가고 싶어요.ㅎㅎ)
아이를 동반한 여행은 극기훈련으로 돌변하면서 결국 부부 싸움이 일어나게 됩니다. 아이 없이도 여행 가면 한 번쯤 싸우게 되는데 말이죠. 몇 번 반복하다 보니 요령이 좀 생겼습니다. 여행 가기 전에 설레고 서로가 기분 좋을 때 주의사항을 좋은 말투로 꼭 알려줍니다. “여보야 내가 짠 여행이지만 맘에 안 드는 게 있을 수도 있어. 애들 때문에 힘든 상황도 많을 거야. 그래도 즐거우려고 여행 가는 거니까 우리 절대 싸우지 말자.” 상대방도 싸우고 싶어서 싸우는 거 아니잖아요. 싸우기 싫은 마음은 누구나 같습니다. 식당 가기 전에도 “여보야. 애기 의자 있고 애기 먹을 게 있어서 고른 집이야. 맛집은 아니지만 맛있게 먹자.”라고 미리 좋게 말하면 상대가 수긍도 하고 기대치가 낮아져서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어요.
숙소, 교통, 식당 알아본다고 고생했고 애들 짐 싼다고도 고생했는데, 가서도 남편과 싸우면 정말 슬프죠. 여행은 즐거우려고 가는 거잖아요. 서로가 괜찮을 때 미리 약을 팍팍 쳐 두고 가면 힘든 상황이 닥치더라도 몇 번은 고비를 더 잘 넘게 됩니다. 인내심이 더 크게 발휘하게 돼요. 집에 오는 길에 “두 번 다시 여행 가나 봐라”는 막을 수 있어요. 얼마 전에 큰맘 먹고 3박 4일로 두 아이와 멀리 강원도 가족여행을 다녀왔어요. 고비가 한 스무 번쯤 있었지만 딱 한번 싸웠습니다. 다녀와서 남편이 그러더군요.
“다음 달에 또 놀러 갈까?”
말투에서 비롯되는 남편과의 갈등이 많습니다. 말의 내용보다 더 중요한 것이 말투입니다. 남편에게 내 의견을 효과적으로 전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얻고 싶다면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말투는 하지 쓰지 말아야 해요. 쓸수록 더 쉽게 써지고, 안 쓸수록 더 잘 안 써지는 게 나의 습관과 같은 '말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