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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희 Apr 10. 2023

마지막 남은 물고기가 죽었다.

생물을 키운 다는 것.

마지막 남은 한 마리의 물고기가 오늘 죽었다. 마음이 안 좋다.


일 년 전 아이의 두 돌 생일 선물로 마트에서 작은 물고기 4마리와 어항을 샀다.

천 원짜리 파란색 물고기 두 마리,

2천 원짜리 주황색 물고기 두 마리.

갑자기 사느라 담당직원도 없이 암수도 모르고 대충 샀다.  


물고기를 식탁 위에 두고 키우면서 늘 보게 됐다. 물고기멍을 때리는 게 재밌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파란색 물고기 한 마리가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다.

주황색 물고기 두 마리가 합심을 해서 파란색 물고기 한 마리를 계속 따라다니며 공격하고 있었다.

그렇게 그 물고기는 시달림을 당하다 죽어버렸다.


처음 맞닥뜨린 상황이라 좀 당황스러웠다.

동물의 세계는 원래 약육강식인거지..? 하며

혼자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래도 따돌림당하는 걸 보긴 본 터라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내가 방관자처럼 느껴졌다. 학교폭력을 당하는 친구를 보고도 도와주지 않는 느낌이 들어 마음이 안 좋았다.



그렇게 물고기는 세 마리로 줄었다.

며칠이 지나자 주황색 물고기 두 마리는 하나 남은 파란색 물고기를 쫓아다니며 못살게 굴었다.

괴롭힘을 목격하고는 얘는 살려야지 싶어서 곧바로 파란색 물고기를 다른 작은 어항(유리컵)에 분리시켰다.

그런데 혼자 마음 편하게 지낼 줄 알았던 파란 물고기가 또 죽어버렸다.

이번에는 혼자 남겨져서 외로워서 죽은 건가..? 그냥 죽어도 자연의 이치려니 하고 분리하지 말고 같이 지내게 내버려두었어야 했을까 생각하며 또 마음이 안 좋았다.



그렇게 물고기는 두 마리로 줄었다.

같은 종족 주황색 물고기 두 마리가 남았으니 이제는 잘 지내겠지 했다.

그리고 둘은 몇 달 동안 별 탈 없이 잘 지내 보였다. 아무래도 주황색 물고기 하나가 확실히 드세긴 했지만...

예전에 파란 물고기를 공격하던 그런 느낌은 아니었다. 자기들끼리 노는 건가? 싶은 정도였다.  


물고기를 키우며 두 마리 시체처리를 하다 보니 더 이상 애정이 가지 않았다.

아이의 관심도 시들해졌다. 열심히 갈아주던 어항의 물도 점점 귀찮아졌다.

어항에 이끼가 끼이고, 식탁 위에 두었던 어항을 구석으로 치워버렸다.

물고기밥만 생각날 때마다 주고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어느 날 어항 청소도 할 겸 물도 좀 갈아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유심히 보았다.

그런데 물고기가 한 마리만 남아있었다. 제일 드센 그 주황색 물고기 한 마리만.

다른 한 마리는 죽었는지 어쨌는지 바닥에 깔린 돌을 뒤져 시체를 찾아보았다.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도 일말의 흔적도 없었다.

남편에게 얘기하니 "아마 잡아먹힌 게 아닐까"라고 했다.

하... 나는 또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싶어 너무 마음이 안 좋았다.



마지막 남은 한 마리 물고기를 오래 살리기 위해 다시 애정을 쏟았다.

사실 어항 속 평화를 깨뜨린 제일 미운 물고기이지만, 지가 그냥 그렇게 태어난 걸 어쩌겠냐 싶었다.

지도 뭔가 괴로움이 있어서 그랬겠지 하며 조금이라도 불쌍한 마음을 가졌다.

그렇게 '너라도 잘 지내야지' 하며 우리 아이들에게도 자주 보여주고 잘 보살피려 애썼다.


어제까지도 밥 먹는 걸 보고 멀쩡했던 그 마지막 물고기가 오늘 아침에 보니 죽어있었다.

어항 바닥에 깔린 돌 밑에 끼인 채로.


아침부터 속상해하는 나를 보며

남편은 "원래 수명이 그 정도일 수도 있잖아. 어쩌면 오래 버틴 거야."라고 위로를 해주었다.

제발 나 때문에 죽은 게 아니라, 그 아이의 생명력이 일 년 정도였길 바래본다.

    

생명을 키운다는 것은 천 원짜리 물고기 한 마리도 마음이 너무 무겁다.

어린시절 학교앞에서 삼백원을 주고 산 병든 병아리가 삐약거리다 죽었을 때,

슬프긴 했지만 돌아서면 금방 까먹어버렸었는데.

이제는 내가 엄마가 되서 그런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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