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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희 Apr 24. 2023

영혼 없는 육아

버티는 게 어디야

엄마는 아이에게서 그 어떤 불편한 상황에서도 도망갈 수 없다. 아무리 대충 편하게 하려고 해도 엄마는 매일 수없이 화가 올라오는 경우를 맞닥뜨려야 한다. 응가를 하고 도망가는 아이를 내버려 둘 수 없고, 밥 먹다 옷이 젖은 아이를 내버려 둘 수 없고, 어린이집 가기 싫다고 드러누운 아이를 내버려 둘 수가 없다. 코빼기 싫고 약 먹기 싫은 아이에게 억지로 할 수밖에 없는 그런 과정 속에 아이와의 마찰이 생기기 마련이다. 해결해야 하고 해내야 하는 정말 의무적인 일들로 인해 엄마는 ‘에라 나도 모르겠다’가 절대 될 수가 없다. 마지막까지 임무를 해내야지만 종결된다.



20개월 둘째는 하루종일 드러눕고 징징거린다. 36개월 첫째는 뭘 해달라는 요구사항이 참으로 디테일하다. 아이들이 귀여운 거랑은 별개로 엄마는 힘들고 지친다. 아이들이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며 떼를 쓸 때마다 나는 내 영혼을 지워버린다. 화가 나서 폭발하는 것은 엄마가 너무 모든 것에 애를 써서 아이를 돌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이에게 너무 시달리고 이성을 잃을 것 같은 날에는 ‘나는 감정이 없는 사람이다, 나는 영혼이 가출했다’라고 생각해 버리고 그냥 해야 할 일만 하면 훨씬 편해진다. 샤우팅 하며 무섭게 화내는 것보다 차라리 한숨 쉬고 무표정인 게 낫다.



엄마는 매일 수많은 위기 상황에 봉착한다. 한 명도 힘든데 엄마 혼자 두 명 이상을 감당하려고 하면 하루에도 뚜껑 열리고 꼭지도는 일이 몇 번이나 생긴다. 나도 연년생 육아를 하며 내 인내심의 한계를 매일 테스트받는 느낌이다. 하지만 아이와 실랑이를 하며 욱하는 순간마다 모두 화를 낸다면 상황은 더 힘들어진다.






아침에 어린이집을 보내는 시간에 마주치는 많은 엄마들에게서 “오늘 아침에 결국 또 화냈어요”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아침부터 화낸 자신도 싫고 아이에게 화낸 것도 미안하고 육아라는 것이 얼마나 못할 짓인지가 그 얼빠진 표정 하나로 다 설명된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고 많이들 얘기하지만 사실 특별한 방법이 없다. 일찍 일어나서 준비해도 결국 미적거리기는 마찬가지이고, 일찍 일어나도 결국 준비가 다되는 시간은 신기하게도 똑같다. 일찍 일어나도 결국 나갈 시간이 다되어 새로운 실랑이가 벌어진다.



이런저런 모든 극한의 상황에서 화내지 않는 가장 쉬운 방법은 아이를 영혼 없이 사무적으로 대하는 것이다. 엄마가 화가 나면 이미 언성이 높아지면서 아이가 더 말 안 듣게 만들어버린다. 엄마가 화가 나는 것은 엄마는 어떤 미션을 반드시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미션을 수행하는 것에만 이성적으로 집중하고 아이에게서 드는 감정을 빼면 훨씬 나아진다.



다른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꼭 해야 하는 일이 있는데 ‘하기 싫다, 너무 힘들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더 힘이 빠진다. 스트레스는 웃기게도 해야 하는 일을 실행할 때보다 실행하지 않을 때 더 쌓인다. 감정 없이 실행하는데 집중하면 하나씩 일이 해결이 되면서 결국 끝이 난다. 꼭 해내야만 하는 일이라면, ‘싫다’라는 감정을 빼고 영혼 없이 실행해 보자.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가야 한다면 어차피 가야 할 거 다른 생각 말고 그냥 가면 된다. 안 가면 ‘아~ 애 데리고 병원 가야 하는데~’라고 계속 생각하며 병원을 갈 때까지 내내 신경 쓰며 스트레스 더 받는다.    






지금 부모인 사람들이 어렸을 때는 가정에서든 학교에서든 자신의 감정을 크게 공감받지 못하고 자랐다. 별 탈 없으면 공부가 중요했고, 단체생활에서 개인의 감정은 존중받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예절을 중시하는 유교문화 속에서 어른에게 내 속내를 그대로 내보이지 못했다. 남을 의식하고 체면 차리는 일로 내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은 어려웠다. “울어도 괜찮아”라는 말보다 “울지 마”라는 말을 훨씬 많이 듣고 자랐다.


그런데 요즘의 육아는 ‘~구나’ ‘~구나’를 앵무새처럼 반복하며 아이의 감정을 충분히 수용해 주라고 하니 부모는 자신의 어릴 때와 괴리가 있는 이 부분이 어렵게 느껴진다. ‘라떼는’이라는 생각이 무의식 중에 튀어나오는 것이다. 나 때는 떼쓰면 맞았어, 나 때는 울면 뚝! 이라며 혼났어. 그렇게 자란 내가 부모가 되어 아이의 감정을 끝도 없이 받아주려고 하니 머리로는 알겠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거부감이 들기도 한다.


‘아이에게 이렇게까지 오냐오냐 해줘야 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올라오며 화가 나는 것이다. 처음에는 잘 받아주다가 부모의 입장에서 도가 지나치다 싶은 막판에 그만 좀 하라고 결국 욱하게 된다. 앞에 잘 받아준 노고가 말짱 도루묵이 되는 꼴이다. 아이에게 항상 온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대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러다가 오히려 내가 다칠 수도 있다. 더 이상 못해먹겠다 싶은 순간에는 영혼 없이 아이를 대하는 것이 현명하다.






요 며칠 편두통으로 컨디션이 영 안 좋았는데 남편도 감기몸살이 났다. 주말 내내 밖에 나갈 힘은 없고 치워도 치워도 어질러진 집에서 아이들과 계속 함께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아무리 내가 아파도 어디 도망갈 수도 없을 때, 아이들을 먹이고 씻기고 챙겨주는 건 안 하려야 안 할 수 없을 때, 내가 정리하는 속도보다 애가 어지르는 속도가 더 빠를 때, 나는 한 번씩 육아에 넌덜머리가 나기도 한다.



엄마가 컨디션이 온전히 좋은 날은 한 달 중 며칠이나 될까. 호르몬의 장난으로 생리 끝날 쯤부터 배란일까지 한 달 중 2주 정도 기본 컨디션이 좋다. 배란일이 되면 배란통부터 시작해서 생리 전 증후군을 겪다가 생리통까지 끝이 나야 몸이 가벼워진다. 내 경험상 아이에 대한 일관성 있는 육아는 엄마의 컨디션에서 나온다. 그러나 대자연의 지배를 받는 여자의 몸으로는 현실적으로 참 쉽지 않다. 거기다 이런저런 이유로 늘 피곤한 엄마는 몸도 기분도 다 괜찮은날이 정말 몇일없다.



내 몸 하나도 건사하기 힘든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날, 육아에 한계를 느끼날이면 최대한 영혼 빼고 육아를 해보자. 너무 힘들고 지치는 날에는 ‘이렇게라도 버티는 게 어디야’라며 나를 다독이고 좀비처럼 그냥 하는 것이 최선이다.



아이들이 싫어서 영혼 없는 육아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을 충분히 사랑하지만 육아에 수반되는 엄청난 신체노동과 감정노동은 별개의 것임을 뼈저리게 알기에 말하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얼마나 힘들까 생각하면서 말이다.



대충 한다고 해서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24시간 풀로 꿀뚝뚝 떨어지며 대하지 않아도 된다.

컨디션이 안 좋을 때는 영혼 없이 버티기라도 하고, 컨디션이 좋은 날 영혼을 듬뿍 담아 사랑해 주면 된다. 육아를 힘 빼고 편하게 할수록 나도 아이도 상처받지 않고 더 오래 사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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