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이가 시려 3년 만에 치과를 찾았다. 어금니 옆으로 뭘 먹을 때마다 음식물이 끼어서 워터픽으로 물총을 쏴 찌꺼기를 빼야 시원하더니 맨 끝으로 사랑니가 돌출되었단다. 삐뚤게 나와서 씹는 데 도움을 주는 것도 아니고 충치도 조금 있어서 빼내는 게 낫겠다고 하셨다. 충치 치료하러 갔다가 사랑니를 뺄 줄이야…. 이를 뺀다는 말에 덜컥 겁이 났다. 사랑니를 빼면 엄청 아프고 붓는다는 후기들을 17년째 보고 있었다.
20살 무렵부터 주변에서 사랑니를 뺐다는 친구들이 많이 있었다. 진정한 사랑을 할 때 뺀다는 사랑니, 나는 사랑니가 나오지도 않았을뿐더러 사랑니가 엑스레이에 보이지도 않았다. 나는 아직은 사랑을 모른다고 생각하고 조금은 섭섭한 감정들이 들기도 했다. 누구보다 사랑은 내가 제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사랑니도 안 빼본다니, 나이는 성인이 되었지만, 젖비린내가 날 것만 같은 나였다.
눈은 감고 입은 다 벌리지 말고 반만 벌리고 있어야 한단다. 마취한 탓에 아픔은 느끼지 않았지만 이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끝이 났단다. 의자에 앉은 지 몇 분이 채 되지도 않았던 시간이었다. 의사 선생님이 치아를 보고 가란다. 탁자 위에는 엄지손톱만 한 치아가 놓여 있었다. 치아가 엄청 크네요…. 라고 말하니 선생님이 씩 웃어주셨다.
마취가 꽤 오래갔다. 2시간이면 풀릴 줄 알았던 마취는 3시간이 훌쩍 넘게 이어졌고, 오른쪽 볼은 퉁퉁 부어올랐다. 약을 먹지 않고 버텨보려고 했던 내 계획과는 다르게 욱씬욱씬 쓰린 잇몸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서 끼니때마다 약을 챙겨 먹어야 했다. 약을 먹어서 그런 건지 온 힘을 줬던 긴장이 풀려서 그런 건지 온종일 잠을 잤다. 잠든 줄 모르게 앉아있다가도 누워있다가도 잠이 들었다. 다음날이 된 지금도 입을 크게 벌리지도 못하고 부기가 가라앉지도 않았다.
사랑니와 사랑의 관계를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사랑하는 것과 헤어짐을 경험하면서 어른이 된다고 하는데,
사랑니를 잃어본 사람들 많이 느낄 수 있는 고통과 시련들이 꼭 이별과 닮아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