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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자의 마지막 한마디

아무것도 모르는 사원의 아우성

by 저스틴두잇

퇴사를 팀에 알리고 팀장님을 포함한 여러 선배님들과 면담 아닌 면담을 했다. 4년 차에 접어들었던 내가 회사 생활도 잘 적응하고 이제는 업무도 충분히 잘한다고 판단해서였는지 내 퇴사가 너무나 당황스럽다는 표현을 많이 들었다. 역시 퇴사를 결정하고 정확한 톱니바퀴 하나가 되었을 때 나의 가치는 이 회사에서 더 빛이 났던 거 같다.


면담 내용은 뻔한 이야기들이었다. “회사 밖은 더 지옥이다”, “퇴사는 도망가는 거다”, “사업하고 망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너 진급한다” 뭐 이런 종류의 걱정이자 퇴사 만류가 있었다. 그런데 재밌었던 것은 그런 와중에도 평소 가깝지 않았던 분들 중에서 조심스럽게 다가와 응원한다고 지금이 아니면 그 도전도 못한다고 자신은 나의 도전이 부럽다고 말해주는 분들도 계셨다.


비교적 큰 조직의 회사를 다녔기에 나의 퇴사 소식은 빠르게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누군가는 비트코인으로 대박 나 회사를 그만둔다고 했고 누군가는 여러 이유에서 철없는 선택 정도로 치부했다. 내가 다녔던 회사에서 워낙 흔치 않은 퇴사였기에 정말 다양한 소문이 돌았지만 나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이 조직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나에 대한 사실이 아닌 소문이 돌거나 나랑 대화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나를 평가하는 게 화나고 억울했지만 이제는 알았다. 소문을 이야기하는 사람 중 정말로 내 인생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은 없다. 그저 지루한 톱니바퀴의 한 바퀴에서 새로운 자극이 필요할 뿐이다.


업무 특성상 충분한 인수인계가 필요했기에 3개월 전에 퇴사를 알렸고 그 기간 동안 나는 나의 업무를 성실하게 정리했다. 감사하게도 나의 팀원들은 모두 나의 마지막을 잘 배웅해 주려고 애써 주셨고 그랬기에 3개월이라는 인수인계 기간 동안 누군가의 눈치를 보거나 싫은 소리를 주고받는 시간 없이 행복하게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그리고 정말 마지막이 되었을 때 인사팀 소속의 나 역시 다른 인사팀 담당자와 최종 면담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그날이 비교적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3년 반 가깝게 회사를 위해 일했던 사람이 퇴사 절차를 밟기 위해 다양한 서류에 서명을 하고 퇴사 사유를 작성해야 하는 자리였는데 그 시간이 너무 불편했기 때문이다. 나와 한 팀에서 일했던 동료들과 같은 조직체계에 있었던 많은 사람들이 있는 사무실 공간의 복도 한편에서 담당자와 면담하고 서류를 작성했다.


내가 퇴사 사유를 적는 내용은 지나가던 팀장님들이 퇴사 인사를 하면서 읽기도 했고 다른 선후배들도 지나가면서 나의 어깨를 치며 인사를 하거나 가볍게 눈인사도 주고받을 수 있는 정도의 위치였고 누구나 내 등뒤를 지나다니며 내 서류를 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어쩌면 내가 듣기 불편한 퇴사사유를 적지 않기를 바라는 의도에서 배치한 것일까?라는 생각도 잠시 했지만 내가 일했던 조직이라면 그보다는 그저 업무적 편의였을 것으로 생각되어 별 다른 불만도 표시하지 않고 묵묵히 서류를 작성했다.


같은 조직의 구성원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나의 동료의 80% 이상을 나는 좋은 사람들이라고 느끼고 생각했다. 그렇게 좋은 사람이 많은 조직에서 일했다는 것은 늘 나의 자부심이다. 다만, 인사라는 조직이 정말로 내부고객인 회사의 구성원들을 위한 마음을 가지고 있냐 라는 질문을 한다면 나는 선뜻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나 역시 그보다 더 긴 시간을 그 조직에서 일했다면 똑같은 방식과 마음으로 일했을 것이다. 나라고 특별한 인간은 아니다.


결국 원인은 더 깊은 곳에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아무리 좋은 구성원이 일을 해도 그 사람들의 행동에 가치를 매기는 사람은 임원들이었고 임원들은 누군가를 성장시키고 회사의 성장을 위해 옳은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이라고 나는 느끼기 어려웠다. 그저 1년 계약이라는 파리목숨의 시간을 갱신하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선택과 결정을 한다고 나는 감히 느꼈다. 그게 이 조직의 가장 큰 문제였고 나는 그 문제를 퇴사 사유에 그대로 작성했다. 아무도 나의 퇴사사유 따위를 주의 깊게 보지 않겠지만 조직과 회사를 사랑했던 나의 마지막 한 문장은 진실이어야 했다.


‘퇴사하는 당신의 조직에 문제점이 있다면 어떤 게 있나요?’

‘우리 대부분이 조직의 성장과 구성원의 성장을 위해 일한다고 느껴지지 않습니다’

‘조직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이 조직이 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임원 모두를 바꿔야 합니다’


대책은 알아서… 난 퇴사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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