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좋은 사람

by 나무

주말 저녁, 클럽 안에는 음악을 좋아하는 연인, 친구, 부부, 가족들로 북적거리는 탓에 좌석이 부족하다. 늘 앉던 자리에 음악을 안주 삼아 맥주 한 병을 마시고 있을 때, 30대 초반의 남자분이 주위를 살피며 다가온다.

남자: 여기 자리 있어요?

나는 없다는 뉘앙스로 고개를 좌우로 돌리자, 남자가 맞은편에 앉는다.

남자: 여기 인터넷에서 분위기 좋다고 소문나서 처음 와봤는데, 정말 자리가 없네요.

나 : 예~ 오늘 특히 관객이 많네요.

웨이터가 다가와서 남자분에게 메뉴판을 내민다. 웨이터는 나와 남자를 번갈아 본 후 미심쩍은지 미간을 쭈그린다. 나에게 대뜸 묻는다.

웨이터: 상현이랑 썸 타는 거 아니었어요?

나: 예?

웨이터: 상현이랑 매일 문자 한다면서요.

나: 상현 씨가 어디서 노래하는지 궁금해서요.

웨이터: 이거 이거 김칫국 마신 거 같은데......, 왠지 걱정되는데요.

나: 왜요?

웨이터: 오늘 당신에게 들러주고 싶다고 며칠 전부터 노래 준비했거든요.

나: 아, 그래요?

남자: 저도 이분이 마시는 맥주로 주세요.

웨이터: 알겠습니다. 손님.

때마침 상현이 무대 위로 나오자 웨이터는 서둘러 주문을 마무리한다.

웨이터: 제가 말했다는 거 비밀인 거, 알죠?

나는 긍정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인다.

무대 위에서 기타를 조율하는 상현을 응시한다. 웨이터와 무슨 얘기를 나눈 걸까? 나를 좋아한다는 말을 했을까? 아니면 우는 모습을 들켰던 부끄러운 기억을 얘기했을까? 이제는 괜찮다고 아무렇지 않다고 여겼는데, 그의 얘기에 기대보다 우려가 앞선다. 섣부른 상상이 내 가슴의 생채기를 낸 탓에 두근거림마저 냉담하게 식는다.

상현이 무대에 앉아, 마이크의 높이를 조절한 후, 고정한다.

상현: 몇 달 전에 우연히 알게 된 친구가 있습니다. 늘 제가 노래하는 곳에 찾아 온 친구, 아는 거라고는 노래를 좋아한다는 거, 그리고 노래를 듣는 순간에는 항상 생각에 잠긴 듯,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친구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묻고 싶었지만 묻지 못했습니다. 다만, 지금 제가 해주고 싶은 단 하나가 있습니다. 상현이가 아영이를 위해 신청합니다. 토이의 좋은 사람입니다.



오늘은 무슨 일인 거니

울었던 얼굴 같은걸

그가 너의 마음을 아프게 했니

나에겐 세상 젤 소중한 너인데

자판기 커피를 내밀어

그 속에 감춰온 내 맘을 담아

고마워 오빤 너무 좋은 사람이야

그 한마디에 난 웃을 뿐

혹시 넌 기억하고 있을까

내 친구 학교 앞에 놀러 왔던 날

우리들 연인 같다 장난쳤을 때

넌 웃었고 난 밤 지새웠지

네가 웃으면 나도 좋아

넌 장난이라 해도

널 기다렸던 날, 널 보고 싶던 밤

내겐 벅찬 행복 가득한데

나는 혼자여도 괜찮아

널 볼 수만 있다면

늘 너의 뒤에서, 늘 널 바라보는

그게 내가 가진 몫인 것만 같아

토이_ 좋은 사람




‘네가 웃으면 나도 좋아’라는 부분에 나는 피식하고 웃음이 터져 나온다. 노래가 끝날 때까지 입가에 흘리는 웃음을 손으로 가리느라 바쁘다. 정말 오랜만에 웃어본다.

노래가 끝나자 관객들이 박수 친다. 앙코르를 부르는 관객들의 호응에 빠른 템포로 노래가 다시 시작한다. 슬픈 노래인데도 흥겨운 탓에 관객들도 따라 부른다. 나도 조용히 읊조린다.

몇 곡의 노래가 끝난 후, 상현이 하직 인사를 하고 무대 밖을 벗어난다. 다른 기타리스트가 무대 위를 꾸민다. 앞에 앉는 남자가 나를 지긋이 바라본다.

남자: 아영 씨가 당신인가요?

나: 예, 맞아요.

남자: 남자친구가 센스가 있네요.

나: 남자친구는 아니에요~

남자가 미묘한 관계를 알겠다는 듯이 웃는다.

남자: 부럽습니다. 저도 얼른 여자친구를 만들어야죠.

나는 생전 처음 보는 남자에게 나란 사람을 들킨 탓에 부끄러워진다.

상현: 노래 잘 들었어?

상현이 내 옆에 서 있자, 남자가 맥주를 다 마시고 황급히 자리를 비운다.

남자: 남자친구분이 오셨네요.

남자가 자리를 비우자 상현이 앉는다.

상현: 누구야?

나 : 처음 본 사람이에요. 자리가 없어서요.

상현: 그렇군, 노래는 어땠어?

대답 대신 웃자 그가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본다.

상현 : 궁금한 거 하나 있는데 물어봐도 돼?

나 : 예 물어보세요.

상현 : 나이가 몇 살이야?

나 : 비밀인데요.

상현 : 난 89인데

나는 생각보다 어려서 깜짝 놀란다.

나 : 제가 누나인데요.

상현이 옷 매무새를 바로 잡고 급 존칭을 쓴다.

상현 : 몇 살이신데요?

나 : 88년생이죠.

상현 : 아, 나 빠른 생일이야. 친구네, 친구. 이젠 말 놔~ 늙어 보이게 말 높이지 말고

나 : 노력해 볼게요.

상현 : 빨리 빨리~ 상현아 불러봐

나 : 상...... 현아.

상현 : 응, 친구 왜 불렀어?

상현이의 능청맞음에 나는 한참을 웃는다.

상현이와 나, 오늘 친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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