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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Feb 27. 2021

진분홍색 같은 그녀

처음 생긴 앞마당에 기념으로 사과나무, 배나무, 복숭아 세 그루의 묘목을 심었다. 자라나는 나무의 크기를 생각하지 못하고 간격 없이 심은 나무들의 행렬에 의해 메말라버린 복숭아나무, 초록 잎 무성하게 자라 버린 사과나무와 배나무에 끼인 채 점점 야위어만 갔다.


마치 내 오래된 벗처럼


그녀를 처음 만난 건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우연한 제비뽑기로 내 뒤편 대각선에 앉은 외동이라는 그녀는 이기적인 우리들 사이에 어울리지 않는 이타적인 사람이었다. 그녀는 선생님의 신랄한 현실감각도, 경쟁심을 가진 아이들 사이에 오묘한 감정의 실타래도 품어주는 사람이었다. 늘 타인을 챙겨주는 사소함, 자신보다 남을 위해주는 착한 성심, 사회복지사가 되어 어려운 이들을 돕고 싶다던 그녀의 꿈이 그녀와 정말 닮았다고 생각했다.



봄이 지나갈 무렵, 한 번도 피지 않았던 복숭아나무에 작은 잎사귀가 돋아난다.

죽어가던 복숭아도 계절을 알고 있었다.



19살이라는 푸르름, 지나가던 사소한 것들이 크고 작게 울리는 그때, 모두가 서툴렀고 어리숙했다. 어디선가 오는지도 모르는 수많은 매개체에서 전해오는 은밀하고 버거운 인생의 무게, 그 위태로움 속에서 서로 좌절하며 이끌어주던 우리는 참 예뻤다.

공부를 해 보겠다고 12시에 총무에게 문자를 보내기로 약속하고 보내지 못한 사람들에게 500원씩 걷거나 쉬는 시간에 영어단어를 매일 10개씩 외운 후 시험 본 다음 서로의 답안지를 채점해 보기도 했었다. 그렇게 쌓인 돈으로 1시간에 5000원인 노래방에 가서 흥겹게 놀았다. 그때 인심 좋은 노래방 주인은 교복을 입은 채 맹렬히 달리는 우리를 보고 1시간을 추가해주기도 했다.

풍류를 좋아했던 우리는 자율학습시간이면 MP3에 담긴 곡을 공유하거나, 긴 머리카락으로 숨긴 이어폰으로 몰래 라디오를 듣기도 했고, 너무 학교 생활이 갑갑해서 책상 위에 공부한 듯 책을 펴 놓고 몰래 땡땡이쳤다가 혼나기도 했다. 그렇게 얼싸 앉고 놀던 우리는 기적 따위 없는 성적표를 받아 들고 각자의 대학으로 갔다.

그녀 또한 그녀의 꿈이 바라는 대로 서울 내에 사회복지학과로 진학했다.


그렇게 친했던 우리는 그렇게 멀어졌다.


다른 아이들은 대학에 다니며 첫 연애를 경험하는 동안, 삼수를 핑계로 세상과 단절되어 있던 나에게 그녀는 생일 축하한다는 문자와 전화로 자신의 대학생활을 틈틈이 알려주던 맘 착한 친구였다. 늘 언제나 잘 될 거라는 위로와 함께, 산다는 것은 늘 힘들다는 듯이 쓸쓸하고 외로웠던 나의 존재를 늘 기억해 주었다.

드디어 내가 대학에 들어가고 어두운 터널에서 빠져나왔을 때, 그 친구는 대학을 졸업하고 몇 군데 재단의 계약직을 전전하다가 무료봉사를 강요받은 끝에 결국 공무원 준비생이 되었다. 맨 처음에는 두 문제로 떨어졌으며 내년에는 합격할 것 같다고 너스레 떨던 친구였지만 그 연락도 점점 차츰 뜸해지더니 메신저에서 친구의 이름이 사라졌다.

매해, 그녀의 생일날마다 나는 그녀에게 문자를 할지 말지 망설여진다. 혹시나 내 말 한마디에 그녀의 자존심을 상처 내고 부담을 줄까 봐 나는 썼던 글을 몇 번이고 지우고 다시 쓰다가 끝내 보내지 못했다.

나는 그 친구의 너털거리는 웃음이 그리워졌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인생의 무게를 훌훌 털어버리던 너그러움,



활짝 필 것 같은 복숭아꽃이 시들 거리 더니 작은 잎사귀가 몇 번이고 떨어지고 떨어져서 흙에 묻힌다.

여름이 되자 뜨거운 햇빛에 복숭아꽃은 존재마저 사라지고 앙상한 나뭇가지만 흔들린다.



그녀를 다시 본 건 서른 무렵에 다른 친구의 결혼식장에서였다. 예전과 다르게 웃음기가 사라진 채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그녀에게 반가워서 손을 흔들었지만, 그녀는 나를 보자 입은 굳게 다물었다. 계속 화제를 돌리며 관심사를 바꿨지만, 제일 궁금한 공무원 시험 합격 여부는 차마 물을 수 없었다. 몇몇의 동창들이 오고 가고 그녀에 대해 정확한 정보가 없던 누군가가 그녀의 근황을 물었을 때, 그녀는 최대한 침착한 표정으로 5년째 공무원 준비 중이며 나이에 쫓겨서 잠시 회사로 돌아갔지만 차마 꿈을 포기할 수 없어서 재 도전 중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녀의 입은 웃고 있으나 눈은 그러하지 못했고 옆에 앉은 나는 그녀에게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한참을 헤맸다.

나 또한, 구조조정에 오르락 내리락으로 맘고생 중이었다.



다음 해 봄이 지나갈 무렵 복숭아꽃을 움튼 초록 새싹이 마른 나뭇가지에 돋아난다.

작년에 활짝 피지 못한 복숭아꽃이 잊지 않고 계절을 알려준다.  



시간이 한참 흘러서 작년 봄,

나의 생일을 축하해준 메시지 중에 반가운 이의 이름을 보게 되었다.


그녀였다.


그녀는 재작년에 늦었지만 아동기관에 정규직으로 채용되었고, 이름조차 외울 수 없는 수많은 아이들의 삶을 보살피며 살아가고 있었다. 이제 사회인이 되었다며 멋쩍은 그녀의 기쁜 소식에 나는 한없이 축하해주었다. 그때 이후로 그녀는 동창모임에 참석하기도 했다.

팀 사람들끼리 살을 누가 가장 많이 빼는지 내기했다면서도 손에 와플을 놓지 않은 채 다이어트할 예정이라는 상반된 언행에 까르르 고등학생처럼 웃는 그녀를 보면서,


그녀는 이렇게 웃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필요했을까?

독방에 갇혀서 얼마나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시험대 위에 올려야 했을까?

그리고 그렇게 올라간 시험대에서 어떤 마음으로 내려왔을지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부디 그녀의 상흔이 잘 아물기를,

각박한 세상이 그녀를 패배자로 만들었을 뿐 그녀가 부족한 탓이 아니라고 말해 주고 싶다.



봄에서 여름이 되어가고 복숭아나무에 진분홍색 꽃이 만개했다. 붉게 여문 꽃잎이 예쁘다.


복숭아나무도 그러하듯, 사람에게도 만개할 때가 있나 보다.

그녀의 예쁜 마음이 모두의 손끝에 물들어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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