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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Feb 27. 2021

너의 풍경

회사 이동으로 야근을 끝낸 어느 늦은 밤, 나는 운전을 하고 집으로 간다. 어둠이 짙게 깔리고 사이드에 가로수 불이 한산한 도로를 비춘다.  창밖 너머로 도시의 불빛으로 만들어낸 야경이 눈에 들어온다.


3년 전 뉴욕에 갔었을 때가 떠오른다.


구조조정이 끝나고 넘어온 다른 영업팀, 갑작스러운 수요 증가로 걷잡을 수 없는 매출이 오르고, 내가 맡은 업체에서 희소식이 들리면서 무게는 감당하기 힘들어졌다. 업무도 많고 요청도 집요해져서 일에 치여 사느라 매일 야근과 주말근무도 자청하는 그때, 모든 관계가 일그러지고 내 자존심을 지우며 버티려고 애썼으나 의지를 잃은 나는 추락했다.


마치 바닥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어둠이 나를 삼키고, 죽음의 공포가 나를 짓눌렀다. 일을 하다가 갑자기 울컥해서 울거나, 길을 걷다가 별 이유 없이 서러워지거나, 회사 사무실이 있는 15층에서 밖을 내다보면서 여기서 떨어지면 어떨까?를 생각했다. 죽음의 공포는 나를 무기력하게 모든 감각을 마비시켰다. 인간의 생체라면 의례해야 하는 행위들이 정지되어 버렸다. 음식을 먹지를 않았고, 잠이 오지 않아서 정신의학과에서 처방받은 수면제를 먹어야 겨우 잠이 들었다. 온몸의 신경이 마비되어 죽을 거 같은 느낌, 내 몸의 세포들이 파괴되어가고 있었다.


여름휴가도 가지 못한 9월 말, 나의 사정을 딱하게 여긴 멀고 먼 지인의 도움으로 아무 생각하지 말고 미국에 오라며 연락을 해주었다. 무작정 모든 것을 내 팽개치고 싶었으나 여름휴가를 가더라도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그들의 협박에 그 모든 짐까지 짊어지며 비행기 티켓을 끊어서 뉴욕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휴가도 반납하고 사느라 번번한 해외여행을 가보지 못한 나에게 가장 큰 일탈이자 좌절감이었다.


14시간이라는 장거리 여행, 비행기에 오르는 것이 처음이라 모든 것이 낯설었다. 비행기 타기 직전 새벽까지 일하느라 잠을 못 잤고, 비행기 내에서도 업무 걱정에 잘 수가 없었다. 이틀 내내 잠을 못 잔 탓에 두통이 오고 속이 메쓰꺼워진다. 나는 계속 통로 쪽에 서있기 위해 자주 왔다 갔다 했다. 그때 앉은 내 옆자리의 남자, 나보다 한 살 어린 영국에서 왔다는 그가 살뜰하게 나를 챙겨주었다. 승무원에게 부탁에 약도 챙겨주고 잠을 잘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내가 잠을 들지 못하고 뒤척이자 본인이 영국에서 대학을 졸업했고 새로운 직업을 찾기 위해 미국에 지인을 만나러 가는 길이라고 알려주었다. 그의 호의 덕분에 나는 처음 뉴욕이라는 도시에 착륙했다. 영어가 서툰 나를 대신하여 내가 가야 할 교통편을 대신 물어 봐주고, 나와 함께 버스를 기다려 주기도 했다. 평소 같으면 감사함에 보답할 생각 했을 테지만 그때는 너무 지쳐버려서 생각이 들지 않았다. 뉴욕을 자주 왔던 그가 혹시 뉴욕에 다시 오면 가이드를 해줄 테니 연락을 달라며 내 연락처를 물어봤고 나 또한 뉴욕을 머무를 생각이 없지만 그의 연락처를 저장했다.


고속버스터미널은 생각보다 멀었다. 뉴욕은 영화처럼 비가 내리고 있었고, 길을 찾다가 핸드폰은 물에 젖어버렸고, 차마 버리지 못한 채 가져온 노트북으로 내 짐은 너무 무거웠고, 지인이 알려준 집은 고속도로를 한참 타고 주를 몇 번이나 넘어가야 했고, 고속버스가 도착한 후에도 차를 끌고 마중 나와 준 지인의 차를 타고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서 마주한 숙소, 난 그 숙소에서 그동안 못 잤던 모든 잠들을 몰아서 잤다.

잠에서 깨어보니 미국에서의 시간도 나흘이 지나가고 있었다. 물에 젖은 채 액정이 깨져 있는 핸드폰은 방전된 채 꺼져버렸다. 가져간 충전기도 문제가 생겼는지 충전이 되지 않는다. 물에 젖은 탓인지 인터넷이 문제인지 회사 노트북도 연결되지 않았다. 그게 그와 인연의 끝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지인의 집안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앉아 있는 것이 안타까운지, 나를 데리고 근처 레스토랑에 가서 밥을 사주었다. 오랜만에 낯선 곳에서의 향기가 해방감을 가져가 주었고, 나는 그날 처음으로 느끼한 파스타를 싹싹 긁어서 먹었다. 내 입은 만족 했으나 내 속은 그러지 못했다. 결국 모든 것을 비워내고 나서야 진정이 되었다.


일주일이 다 되어가자 집 근처 산책을 다니고 먹는 것도 나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시 이틀 후면 집으로 돌아가 그들을 마주 대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걱정 때문에 다시 잠이 오지 않고 먹는 것도 편하지 못했다.


지인이 사준 충전기가 핸드폰을 충전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가 보내 준 메시지와 사진을 보게 되었다. 나는 그가 보여준 뉴욕의 거리를 걷고 싶어 졌다. 어쩌면 다시 뉴욕에 못 올 것만 같은 느낌, 어쩌면 내 인상에서 마지막 여행이지 않을까 라는 우울한 생각이 들었다. 그 우울함이 지푸라기 같은 감정을 이끌어 냈다. 지인의 집에서 가까운 공항에서 뉴욕으로 나는 예정 대비 일정을 하루 앞당겨서 떠났다.


그리고 한국으로 출발 하루 전, 늦은 오후 그를 만났다. 그가 꼭 보여줄 것이 있다고 나를 데려간 곳은 브루클린 다리였다. 다리 아래는 빠르게 차들이 지나다니고 나와 그는 그 위를 걸었다. 다리 넘어서 자유의 여신상도 보이고 끝없이 펼쳐진 바다, 그리고 어디서 오는지 모르는 불빛이 보인다.  다리의 끝에 도착할 때쯤 어두운 껌껌한 밤이 되었고 잘 알지 못하는 그는 묵묵히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던 나의 슬픔을 위로해 주었다.


'뒤돌아 볼래? '


뒤를 돌자 삭막한 도시의 풍경이 야경이 되었다. 생경한 듯한 삶의 지표도 끊임없이 나를 몰아세우던 내 못난 자신도, 모든 것을 짊어 지려했던 나의 삶의 무게가 가벼워졌다. 마치 이 광경을 보기 위해 내가 존재한 것처럼, 반대적으로 이 광경에 비해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아까 본 느낌이랑 다르지? 삶은 이런 게 아닐까?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어.'


그는 내게 자신의 삶의 일부를 들려주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외로운 삶이었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영국 변두리 도시로 가게 되어 이방인으로 그들과 겉돌았던 삶들,

아름다운 풍경 속에 그의 삶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 어쩌면 우리의 모든 삶의 무게는 평이하고 공평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찰나 들었다.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 이 다리에서 만나자. 그때까지 우리 힘내자.'


차가운 공기가 얼린 내 빰, 바다 내음, 황홀한 야경이 있는 그곳, 뉴욕이라는 그리운 것이 내 마음속에 새긴다. 그것이 살아야 할 이유는 아니지만, 다음에 꼭 살아남아서 그 광경을 다시 보고 싶다는 삶의 의지가 생겼다.


물론 한국에 돌아온 후 마주한 그들을 보면 뉴욕은 허상에 불과했지만,

이틀간 휴가도 반납하고 일을 했지만 여름휴가 내내 일하지 않았다고 악을 쓰는 그들의 이기적이고 상투적인 고발에 나는 인사팀에 불러갔다.

인사팀에서는 내가 이틀간 밤을 새워했던 업무들과 떠나는 날 월요일 새벽까지도 보낸 메일을 보면서 더 이상 질책하지 않았다. 오히려 인사팀에서는 그것을 빌미로 내가 사내 왕따를 당한다고 보고 했고, 그렇게 다른 팀으로 이동했다. 그들과 멀어지자 나의 세계는 고요해졌다.


3년이 지난 지금 문뜩 생각이 들면, 그때의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던 것 같다.

블루클린 다리가 아니라, 그 무엇이었어도,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굴레에서 나라는 존재는 살아야 할 이유가 절실하게 필요했다.


아마 나는 간절하게 살고 싶었다.


그때, 잘 알지도 못하는 그가 자신의 시간을 내어 주며, 내게 익숙한 나의 풍경에 알록달록 예쁜 색을 입혀주었다.


나를 죽도록 미워한 이도 있지만,

나에게 받을 것 없이 넘치도록 주려고 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비용도 받지 않고 나를 미국에 머물게 해 준 지인도,

아무 이유 없이 나의 우울함을 받아 준 그도,

회사에서 나쁜 소문이 돌 때마다 나을 응원해준 이도,

집에서 나의 존재를 소중하게 여겨준 가족도,


홀로 세상에 버려졌다고 여긴 나는

사실 참 사랑받고 있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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