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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Oct 11. 2024

11.어머니의 소개팅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양장차림의 사람들이 예술을 논하며 기념품 가게 앞을 지나친다. 미술품을 확대해 놓은 벽화가 수놓아 있는 미술 전시회장 입구로 들어간다. 전시회장 안은 선과 도형이 어긋난 다양한 그림들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큐레이터가 왜 이게 예술인지 설명을 하고 있다. 그림을 감상하던 어머니가 하품을 한다.

-갑자기 왠 그림이야?

-엄마 기분 전환 하라고 모셔왔지.

-내 눈에는 다 그게 그건데.

-아니야~ 잘 봐~ 미세하게 달라.

나는 어머니에게 그림에 이목을 집중시키면서 동시에 내 핸드폰의 문자 메시지가 오기를 기다린다. 내 핸드폰에 문자 메시지가 도착한다.

‘전시회 도착 완료’

어머니와 만날 상대방의 자제분을 찾느라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저 멀리서 아버지와 딸이 걸어오는 것이 보인다. 어머니가 다른 방향으로 이동하려고 하자, 나는 어머니를 붙잡고 성급하게 말을 내뱉는다.

-엄마 이 그림 어때 느낌이 오지 않아?

-무슨 느낌? 그냥 기다란 막대기 같네. 이거 보니깐 집에서 손질 못한 대파가 생각나네, 오늘 저녁은 대파나 송송 썰어서 계란 풀고 뜯어놓은 북어 넣어서 북어국이나 해먹어야겠다.

정말 어머니다운 발상이다.

-자세히 봐봐~ 뭔가 느껴지는데.

-귀찮다~ 너나 자세히 봐라~ 계속 같은 곳을 맴돌았더니 다리가 아프다. 나 저기 가서 앉아 있을게~

61세 건축가 양반과 따님은 어느새 어머니 뒤에 서있는다.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어머니를 붙잡는 척하면서 살짝 밀자, 어머니가 중심을 잃으면서 뒤로 두세 발자국 밀려난다. 어머니가 자연스럽게 건축가 양반과 부딪치면서 바닥으로 쓰러지신다. 두 분이 멋쩍어 하기에 나는 대신 사과를 한다. 

-죄송합니다. 다치신 데는 없죠?

나는 어머니를 일으켜 세운다는 게 그만 손이 미끄러져서 어머니가 건축가 양반을 엉덩이로 깔고 뭉개는 형태가 되어 버렸다. 

-에구머나~ 어떡하나~

엄마는 황급히 일어나서 깔고 뭉갠 남자를 바라본다. 남자는 몸에 충격이 컸는지 간신히 몸을 일으킨다.

-괜찮으세요? 많이 다치신 거 아니에요?

내가 옆에서 호들갑을 떨자 엄마는 불안했는지 연신 건축가 양반에게 고개를 숙인다.

-죄송합니다. 제가 중심을 못 잡아서~

건축가 양반은 손으로 먼지를 털어내고는 웃는다.

-아닙니다.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죠.

내가 옆에서 선수를 친다.

-혹시 모르니깐 제가 연락처를 드리겠습니다. 내일 병원에 다녀오시고 연락 부탁드립니다.

나는 자연스럽게 명함을 건넨다. 건축가 양반이 내 명함을 주머니에 넣고 가볍게 인사를 한 뒤 자신의 방향으로 걸어간다. 옆에 있었던 딸이 나와 미묘한 시선을 교차한 뒤 나는 어머니를 쳐다본다. 건축가 양반은 허리를 손에다가 기대고 한 발짝씩 떼며 사라진다. 

-많이 다쳤을라나 큰일이네.

-괜찮을 거 같은데.

-아니야, 우두둑 소리가 들렸어, 저 양반이 너에게 의료비를 과다하게 청구하면 어떡해, 알고 보니 사기 조직 이런 것 아니야? 일부러 내 뒤를 지나갔거나?

-설마, 점잖으신 분 같은데.

-아니야~ 너가 요즘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몰라서 그래, 어쨌든, 연락 오면 알려줘.

-알았어. 

어머니는 다행히 의심하지 않는 듯하다. 

-나 북엇국 먹고 싶다. 집에 가자~

목적 달성했으니 서둘러 미술관을 벗어난다. 자동차를 타고 시동을 걸자, 건축가 딸에게 문자가 왔다. 

‘작전 성공’

스킨십은 첫 만남에 이루어 져야 한다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작전을 생각해낸 재혼컨설팅 업체가 의심스럽지만 어쨌든 두 분의 강렬한 첫 만남 씬은 잘 마무리되었다.


낮이 길어진 밤의 어귀, 은은한 조명으로 분위기를 낸 레스토랑 가장자리 테이블에서 준호와 스테이크를 썰고 있다. 웨이터가 다가와 빈 와인 잔을 채우고 나는 와인의 향기에 목을 축인다.

-혹시 다음 주에 시간돼?

-응, 괜찮아.

-엄마가 어차피 양가 합의된 거면 얼른 결혼식 준비를 서두르자고 하시네.

-결혼식 준비?

-이제 4개월 후면 아버지 은퇴하시잖아. 그전에 결혼식을 올려야 하는데, 상견례하고 웨딩홀 잡으면 예약을 못한다고, 웨딩홀 예약을 먼저 하는 게 어떻겠냐고 물으시네.

-그렇긴 하지.

-그럼, 웨딩홀 준비만 해놓고, 연주네 부모님께 인사드리러 가자, 섭섭하시지 않게.

-응, 알았어.

고기를 씹는 내내, 오늘 처음 만난 건축가 양반과 어머니가 빨리 서로에 대한 호감이 생기는 방법에 대해 머릿속을 굴린다.


월요일 날, 오후 1시부터 회의실안 전략본부 주관 하에 향후 미래 시장에 대한 보고회가 있었다. 전략본부 내에 각 팀별로 대표자를 선발하여 발표하였다. 1팀은 최과장, 2팀은 김준호대리, 3팀은 이차장이셨다. 1팀의 발표가 지나고 2팀 김대리가 프레젠테이션 발표를 하자, 중역 분들은 흡족한 듯이 김대리를 바라본다. 물 흐르는 듯이 흘러가던 보고는 회장님이 김대리의 날카로운 분석을 칭찬하며 끝났다. 송전무는 회사 입사이후 처음으로 전략본부 전체 회식을 한다며 각 팀장에게 지시를 내린다.

터덜거리며 자리로 돌아온 최과장은 자신의 머리를 쥐어짜자, 옆에 있던 부장이 다독인다.

-제 분석이 맞지 않습니까? 김대리는 PPT만 현란하게 만들어서 중역 분들 현혹시키는 겁니다.

부장이 다독인다.

-이미 끝난 일 가지고 서운해하지 마, 다음에 잘하면 되지.

-김대리 하여간 맘에 안 들어.

옛날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투덜거리는 최과장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사무실 밖으로 나간다. 핸드폰에 건축가 양반에게 문자가 왔다. 

‘약간 인대가 부은 것 외에 외상은 없습니다. 약을 먹고 물리치료 받는 것으로 해결했으니 병원비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는 급히 답변한다.

‘아닙니다. 당연히 저희 어머니가 상해를 입힌 겁니다. 병원비가 부담스러우시다면 식사 대접으로 대신해도 될까요?’

‘식사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저희가 불편해서 그렇습니다. 저희 어머니도 다시 뵙고 사과드리고 싶어 하시고요.’

‘예, 알겠습니다.’

‘금요일은 어떠세요?’

‘괜찮습니다. 금요일 날 뵙죠.’

건축가와 긴박했던 문자를 마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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