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안으로 한참 들어가서 좌회전이 무슨 의미 인지, 정수기 간판도 보이지 않는 골목길을 헤매다가 전봇대에 붙은 나이트 포스터를 본다. 왕년에 잘나가던 가수들의 얼굴이 큼지막하게 한가운데에 박히고 그 옆에 이름 모를 가수들이 자잘하게 자리를 채운다. 지나가는 사람이 없는지 주위를 살피다가 포스터 종이를 찢어서 가방 속에 넣는다. 멀리 있는 가게 앞에 정수기 물통이 길가에 나와 있다. 물통 앞에 가보니, 정수기 간판도 없는 가게 안에 정수기 물통만 빼곡히 채워져 있다. 언제 돌아올지도 모를 가게 주인을 기다리며, 가게 앞을 서성인다. 한참이 지나서야 엔진 소리가 골목길을 메우고 멀리서 빈 정수기 통을 실은 트럭이 다가온다. 나는 다소곳이 앉았던 손수건을 치우며 일어서서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사람을 찾으러 왔는데요.
-누구?
-홍일수라는 사람이요.
-아~ 엘비스홍 찾으러 돌아 댕기는 가시내가 있다고 시장통에 소문이 파다 하더마잉~ 엘비스 홍하고 둘이 무슨 관계여? 나이를 보아하니 내연의 관계 같지는 않은디, 돈 뜯겼재?
-아니요. 그냥 아는 사람이에요.
-아는 사람을 뭣땜시 찾아돌아댕겨잉?
-아버지세요.
-아따, 홍씨 딸이구먼잉. 어쩐지 묘하게 홍씨 닮았다 싶었어잉~ 홍씨가 나이가 먹어서 그러재, 인물이 훤하긴 했지잉.
-어디 계신지 아세요?
-저기 부두 앞에 공업지구 공사판에서 일하는 거까지 봤는디. 그게 홍씨의 마지막이었어부려.
-어디인데요?
-기차역 앞인디, 여기서 좀 멀어잉~ 내가 태워 줄 테니깐 잠깐 기다려봐잉~
아저씨는 빈 정수기통을 내려놓고 물을 가득 채운 정수기통을 트럭위에 올려놓는다. 아저씨는 작업이 끝나자 나에게 보조석에 앉으라고 권한 뒤, 운전석에 앉는다.
-홍씨 딸이라니깐 징하게 반갑구머잉, 홍씨가 우리 집에서 3년간 거시기했지라~
-예.
-사정이 어렵지만 않으면 계속 거시기 하는 건디. 호형호제하고 지냈는디~ 뭐, 맴이 짠하게 됐지
-다들 사는게 그렇죠.
-홍씨가 딸 얘기를 씨부랐는디, 공부 잘하고 얼굴도 예쁘고 착한 딸내미 있다고 칭찬을 허벌나게 했어잉~
-예~
-아따 왜이리, 늦게 내려온 겨잉~? 아버지 찾으러 넘 늦게 온 거 아니여?
-바빠서요.
-그럼, 못써~ 홍씨가 얼매나 욕봤는지 알어잉? 빚 갚고 서울 가겠다고잉~ 잠도 쪽잠자면서 매일 쉬지 않고 일해서 허벌나게 돈 벌었지. 엄청 욕봤서잉~
집 한 칸 없는 고향으로 내려와 남들보다 바지런히 일했을 아버지의 고단함도 아물지 않는 내 상처에 비해 별 것 아닌 것처럼 치부해버린다. 아버지 본인이 집안을 풍비박산 내고 떠돌아다니는 신세라면 당연히 이 정도의 성의는 사람이라면 해야 할 도리다. 만약 편안하게 무대 위에서 기타 줄을 튕기고 있었다면 내가 벼랑 끝까지 쫓아가서 무슨 짓을 했을지 모를 노릇이다.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 눈에야 아버지가 딱하지, 내 입장이 되면 그 누구도 아버지를 옹호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의 침묵이 부담스러우셨는지 정수기 아저씨는 빠르게 화제를 돌리신다.
-공업지구 개발도 끝나서 홍씨가 거기 있을지 모르겠부려~ 나도 소식 끊긴지가 벌써 5년째여~ 홍씨가 채권자들 땜에 전화번호를 매번 바꾸더라잉~ 홍씨 그 나이에 참 안됬부렸어라잉~
-예~
나는 성의 없이 대답하고 창문 너머의 바다를 구경한다. 정수기 아저씨는 손으로 왼쪽 방향을 가리킨다.
-저기 컨테이너 건물이 홍씨가 일한 공업지구 건설 시공사이니 싸게싸게 들어가서 물어봐잉~
-예, 감사합니다.
-홍씨 만나면 정수기 정사장이 궁금해 한다고 전해줘잉~
-예, 태워다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의 트럭에서 내리다가 높은 굽 때문에 휘청한다. 다행히 중심을 잡고 컨테이너를 향해 걷자, 보도블록이 채워지지 않는 틈새로 굽이 빠져든다. 진흙을 벗어나기 위해 발을 세게 휘두르자 스타킹에 시커먼 오물이 묻는다. 쭈그려 앉아 손수건으로 오물을 닦아내고 컨테이너 문고리를 돌린다. 문고리는 돌아가지 않고 잠겨 있다. 문을 두드려 보고 누구 없는지 재차 물었지만 컨테이너 빈 공간에서 헛헛한 소리만 울릴 뿐이다. 옆에 나 있는 창문으로 가서 내부를 살펴보니 가구나 사람이 없는 그곳에 창문 틈으로 오고 가는 빈 메아리만 공허함을 채우고 있다.
공장이 메워진 도시는 굴뚝으로 시커먼 매연을 뿜고 있다. 외벽이 말끔히 정돈 된 거리는 주말이라 보이지 않는 사람 탓에 유령 도시처럼 생기를 잃었다. 차디찬 바닷바람이 도시의 곳곳을 누비다 내 뺨을 스친다.
아는 이 하나 없는 막막한 이 도시에서 아버지를 찾을 길을 잃어버렸다. 길가를 따라 한참 걷다가 문뜩 떠오른 나이트 광고지를 가방에 꺼낸 후, 다가오는 택시를 향해 손을 흔든다. 택시 뒷좌석에 앉자, 선글라스 낀 택시 아저씨가 백미러를 조정하며 나를 쳐다본다.
-어디로 모실까요?
나는 나이트 광고지를 보여주며 묻는다.
-여기 나이트로 갈수 있을까요?
-예, 손님, 알겠습니다.
택시아저씨는 드라이브 모드로 기어를 변경한 후, 어색한 서울말로 묻는다.
-여기 분이 아니신가보네요.
-예, 서울에서 왔어요.
-서울에서 왜오셨어요?
-사람을 찾으러 왔어요.
-아따~ 엘비스 홍씨, 따님이구려~
정수기 정사장님에게 엘비스홍이 나의 아버지라고 말을 한 지 10분 만에 낯선 이가 아는 척을 해서 당황했다. 택시 아저씨는 나의 표정에 아랑곳없이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푼다.
-홍씨 참~ 성격 좋은 사람이었어라~ 그리고 보니, 저기 저 고기 집에서도 거시기 했었지라~
택시 아저씨가 가리킨 곳은 시골에서 보기 드문 2층짜리 고기 집이었다.
-몇 년 전만 해도 논밭이었는디~ 여기도 개발의 바람이 불어서 산업단지들이 들어서고 아파트도 생기고 참 많이 변해부렸어라~ 그나저나 왜 홍씨를 찾아? 홍씨 집에 안 갔어?
-예, 안돌아오셨어요.
-채권자들에게 쫓겨 다니더니만 뭣일 생긴 건 아닌지 모르겠부려~ 내가 4~5년 전쯤 추운 겨울, 야심한 시각에 홍씨가 급히 역에 태워달라고 부탁을 하더라고잉~ 옷도 제대로 못 걸친 상태였지~ 아마~
-그래서요? 그 후로 못 보셨어요?
-그 후로 홍씨 소식 들은 사람이 없지라~
-아~ 그렇군요.
-근디~ 왜 나이트에 가남? 온 김에 놀다 갈려고잉?
-아니요, 역으로 가주세요, 혹시 아시는 분이 있을까 싶어서요.
-나이트 가봐, 처자, 홍씨가 노래 허벌나게 잘해부려서잉~ 여기서 유명한 사람이었지라~ 내가 소싯적에 같은 중학교를 댕겼는디, 얼굴도 곱상하니 생겨가지고 여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장난이 아니었지라~ 갑자기 스무 살에 서울 가서 가수 되겠다고 떠난 양반이 오십줄 넘어서야 허름한 차림으로 나타났을 땐 말이 허벌나게 많았어잉~ 소싯적부터 같이 떼 지어 다니던 친구들이 여기 나이트에서 거시기 하니깐, 혹시 연락 닿을지도 모르니 한번 가보자고잉~
-그래요?
-온김에 가봐잉~ 내가 노래는 못해도 음악적 감각이 쪼매 있는디, 홍씨가 운만 텄으면 성공 했버렀지라 ~ 암만~ 아! 저기 나이트
택시기사 아저씨가 택시를 세우더니 안전벨트를 풀고 운전석에서 내린다. 나도 택시에서 내리자 아저씨가 서두르신다.
-싸게싸게 가자께~
아저씨는 달려가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나도 뒤따라서 탄다. 가려진 커튼 너머에 보이는 나이트는 규모가 있다. 아저씨가 문지기 웨이터와 귓속말을 주고받더니 웨이터가 나를 훑는다. 그리고는 아저씨는 내게 OK 싸인을 보낸다.
-으메~ 두근두근 하구머잉~ 대기실도 가보고잉~
웨이터가 안내한 곳은 천막으로 가려진 무대 뒤편에 가수들 대기실이었다. 무대 뒤편은 각종 기구와 악기들로 한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만하게 초라하고 협소했다. 대기실 안은 대기 중인 여자 무용수가 간신히 몸을 흔들며 남자 무용수와 호흡을 맞추고 화장하는 여자, 모서리에서 옷을 갈아입는 남자, 물을 마시며 목을 푸는 여자, 기타의 음정을 조율하는 기타리스트가 뒤섞여 발 디딜 틈이 없다. 웨이터가 떠나가고 택시 아저씨는 그들 사이를 기웃거리며 한 중년 남자를 향해 손을 내민 후, 시키지도 않는 트로트 노래를 흥에 취해 부른다.
-아따~ 미스터 박씨 아니여~난 님을 버릴 수 없어라~ 난 님을 찾고야 말리라~꿍짜라 꿍짝짝
그 중년 남자는 낯선 남자가 자신의 노래를 부르자 당황하다가 이내 인자한 미소를 짓는다.
-싸인 해 드릴까요?
-싸인은 저번에 받았지라~이쪽이 엘비스 홍씨 딸이라는디, 아버지를 찾으러 돌아 댕기는 걸 내가 데려 왔지잉~
미스터 박씨는 벌떡 일어나 나에게 다가온 후, 나를 응시하더니 말없이 돌아선다. 나는 용기내서 한마디 건넨다.
-저희 아버지가 어디 계신지 아세요?
-몰라.
-전 딸이에요. 알려 주실 수 없으신가요?
-자네가 홍씨 딸이라는 걸 어떻게 믿지? 자네 노래 잘해? 기타를 칠 줄 알아?
나는 말문이 막힌다. 내가 부정하고 외면하고 싶은 아버지의 딸이라는 걸 증명해야 한다니, 문뜩 그의 손의 쥔 기타를 보자 어린시절 기억이 떠오른다.
내가 초등학교 때, 일 끝나고 돌아오신 어느 날 아버지는 나에게 쇼파에 앉으라고 권한 후 무릎에 작은 기타인 우크렐라를 올려놓으셨다.
‘나중에 크면 기타 치는 법 알려 줄게’
아버지의 손길에 따라 한음씩 누르고 기타 줄을 내리쳤다. 노래가 끝나자 내 머릿결을 쓰다듬으셨던 따스한 아버지, 나에게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기타를 사주겠다는 기억, 그 어떤 약속도 아버지는 지키지 못하고 떠났다.
-아니요. 할 줄 몰라요.
미스터 박씨는 가보라는 손짓으로 나를 내쫓는다.
-홍씨 딸 아니지? 아닌 것 같았어. 어느 채권자 심부름이야?
내 가방 속에 있는 가족관계 증명서로 아버지의 딸이라는 걸 증명할 수 있을까? 미스터 박은 분명 서류를 날조했다고 의심할 사람이다. 아니면 혈연관계를 증명할 수 있는 유전자 검사를 하면 얼마나 소요될까? 문제는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아버지의 유전자 채취가 어렵다. 아니면 어머니께 전화해서 내가 아버지 딸이 맞는다고 확인을 받을까? 어머니에게 아버지가 재혼했다고 거짓말을 한 상황에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니면 포기하고 서울로 올라가고 싶지만 준호에게 한 거짓말이 내 발목을 잡는다. 아버지가 좋아하던 노래, 아버지가 즐겨 부르던 노래를 떠올려야만 한다. 한 겨울밤 단칸방 생활을 청산하고 새 집으로 이사하던 그날, 아버지는 달빛이 비추는 창가에 서서 노래를 불렀다.
[I've lived a life that's full / 난 나의 인생을 충실하게 살아왔고,
I traveled each and every highway / 살아오면서 수많은 일을 겪어왔습니다.
And more much more than this, /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I did it my way / 난 내 삶을 내 방식대로 살아 왔다는 겁니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부른 My WAY라는 곡, 그 당시의 아버지께서는 자신의 무책임한 도전이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는 걸 모르셨다.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벌인 무모한 도전, 예견된 실패, 자식을 낳는다고 모두가 아버지가 되는 것이 아니다.
노래가 끝나자 택시 아저씨가 손뼉을 친다.
-겁나게 노래 잘하버려잉~ 홍씨 딸 맞네. 맞아.
미스터 박씨는 게슴츠레 나를 훑는다.
-그 노래 어떻게 알지?
-아버지가 좋아하는 곡이에요.
-잠깐 보자.
미스터 박씨는 대기실 서랍장에서 수첩을 찾는다. 주머니에 있던 천원을 꺼낸 후 볼펜을 찾다가 화장대 앞에 있는 아이라이너로 번호를 적는다.
-너희아버지 익산으로 갔다. 기계부품 만드는 공장에서 먹고 자고 한다면서 딱 한번 전화 왔었어, 빚쟁이들에게 쫓겨 인사도 없이 떠난 게 벌써 5년 전이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소식도 없네.
-네.
미스터 박씨는 멀리 있는 무대를 바라본다.
-아버지 미워하지 마라. 일수에게 저 무대는 평생 포기할 수 없는 꿈이었어. 단지, 일수는 저 무대를 서보고 싶은 거뿐이야.
나의 심장이 내려앉는다. 헐벗은 채 꽁꽁 언 땅을 디디고 있던 소녀, 차가운 눈발에 생채기가 나고 온몸이 결빙된 소녀를 버티게 한 건 아버지를 향한 화(火)였다. 누구에게 뺨을 맞으면 아버지를 원망했고 누구에게 무시당하면 아버지에게 분노했다. 나를 버리고 간 아버지가 10년간 내게 해 준 건 미움의 대상이 되어 준 것뿐, 언젠가 돌아올 아버지에게 평생 후회와 죄책감에 살도록 창살을 씌우는 그 날이 오길 바라며 슬픔을 삼켰다. 나의 울분을 아무것도 모르는 아버지의 친구라는 작자가 내 분노에 대해 논할 이유는 없다. 남모를 이에게 내 감정을 숨기며 애써 웃어 보인다.
-감사합니다.
-조심히 가라.
미스터 박이 대기실로 돌아가고 나는 저 무대가 불에 타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택시기사 아저씨가 다가와서 역으로 데려다 주겠다고 하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무대 위로 화(火)를 질렀을 것이다.
대불역에서 서울역으로 가는 기차표를 끊는다. 차디찬 바닷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는 플랫폼 위, 기차를 기다리는 스무 살의 아버지가 보인다. 기타를 들고 호기롭게 기차에 몸을 싣는 소년의 옆 칸에, 옷도 차려 입지 못한 채 겁에 질린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황급히 기차에 오르는 50대 후반의 아버지가 보인다.
기차 창밖 너머에는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짙게 깔린다. 낯선 번호의 벨이 울린다.
‘안녕하세요. 해피해피 재혼정보 회사입니다. 고객님이 보내주신 정보는 확인 완료했습니다. 지금 상대방 분을 매칭 중인데요. 후보군 3분이 계십니다. 프로필 사진과 간단한 이력서를 보내 드리오니 참고하셔서 적합하신 분을 회신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전화가 끊기고 문자가 온다. 문자에는 중년남자 세 분의 사진과 변호사, 교감선생님, 건축가라는 직업이 명시되어 있다. 나는 건축가라는 분의 이력서를 본다. 명문대학교 건축학과 졸업, 대기업 건설회사에서 20년간 근무 후, 현재는 작은 건축사무소에 운영, 내 거짓말에 실존하는 사람이 있다. 3번 건축가로 문자를 회신하자 답신이 온다.
‘접수 완료. 내일부터 제 지시사항에 따라 주십시오.’
다행히도 이젠 아버지를 찾을 필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