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장롱 문을 열고 가장 비싸고 좋은 옷을 찾는다. 얼마 전에 준호가 선물해준 명품가방을 들고 큰맘 먹고 장만한 뾰족구두를 신는다. 어머니에게는 준호와의 데이트 약속을 핑계로 준호에게는 어머니와의 여행을 간다고 사전에 양해를 구했다.
서울역에서 기차표 발권 후에,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기차 플랫폼으로 내려가는 통로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은 한결 우아하다. 아버지가 없어도 우린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며, 오히려 아버지가 연락하지 못 할걸 후회하게 만들 것이다. 벨소리가 울린다. 준호다.
-오늘 어머님이랑 여행 간다고?
-요즘 많이 우울해하셔서, 고향 가려고요.
-저번에 몸이 아프시다더니 마음고생 하셨나보네.
-하나밖에 없는 딸이 결혼한다니깐 마음이 복잡하신 것 같아요.
-딸 가진 어머니 마음이 오죽하겠어. 조심히 다녀와.
-예, 다녀와서 연락드릴게요.
데이트를 못해서 아쉬운 척하며 준호의 전화를 끊는다. 내 옆에 계시지 못한 어머니와 기차를 기다리는 지금의 날씨가 맑다. 아버지를 찾으러 가는 길이 아니라 여행가는 길이었다면 기분 좋은 날씨다. 기차를 타고 전라남도 영암 대불역으로 출발한다.
아버지의 고향 영암은 목포 아래 지방으로 바다가 맞닿아 있는 곳이다. 가방 속에 어젯밤 앨범에서 챙겨온 40년 전 유년 시절 아버지의 사진을 본다. 바다를 벗 삼은 소년이 기타를 허리춤에 끼고 엘비스 프레슬리를 포즈를 따라하며, 익살스럽고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환하게 웃고 있다.
아버지는 왜 많고 많은 지방 중 하필 고향으로 내려갔을까? 채권자들이 제일 먼저 의심했을지도 모를 그곳에 10년 전에 내려간 아버지가 이해되지는 않는다. 창밖 너머의 풍경은 도시를 벗어나고 있다.
대불역 도착, 아침에 출발한 기차가 점심을 넘기고 있다. 역사 안에 시골 특유의 쾌쾌함과 바다의 시큼한 내음이 내 배고픔을 삼킨다. 역 근처에 있는 부두 안으로 들어가는 컨테이너 박스를 나르는 트럭이 도로를 채우고 바다를 넘어갈 제품을 쉴 틈 없이 찍어내는 공장들이 농지 위에 시멘트를 발라 채워졌다. 도시의 풍경과 닮은 산업단지로부터 버스정류장으로 눈길을 돌린다.
아버지가 있다는 영암시장에 도착할 버스 노선을 찾는다. 한참을 기다리고 기다려서 보이는 버스는 주위의 ‘아따’, ‘거시기’를 연발하는 승객들을 태우고 움직인다. 논밭을 지나고, 바다를 스쳐서, 산비탈을 넘어 터널 속을 통과하는 긴 시간 동안 많은 승객들은 썰물과 밀물처럼 서서히 빠지고 몰아친다. 저 멀리 장터가 가까워졌는지 흥겨운 노래자락이 울린다.
도착한 영암 시장은 각종 해산물 판매 센터가 즐비한 서울에 수산시장과 비슷하다. 나는 시장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카바레 간판을 훑는다. 어디선가 익어가는 튀김 냄새, 부침개, 맑게 우러난 육수로 만든 잔치국수가 가던 걸음을 잡는다.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고급 옷의 핏을 살려 불편한 자세로 시장 바닥에 쪼그려 앉아서 할머니에게 국수 한 그릇을 주문한다. 아주머니는 이미 삶은 국수 위에 멸치로 우려낸 육수를 붙고 파와 지단을 고명으로 얹어 김가루를 뿌린 뒤 내민다. 막상 음식을 보자 우아함을 시장바닥에 던져 버리고 게걸스럽게 먹어 치운다. 다 먹은 후, 명품가방에서 꺼낸 지갑에서 돈을 계산한다.
-니 시방, 이 근방 가스나 아니쟤~
-예 맞아요, 혹시 이 근처 카바레 있어요?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할머니가 나를 훑는다.
-가스나가 그런데 들락거리면 못써
-거기 가려고 하는 게 아니라 사람을 찾으려고요.
-아따, 거시기 찾으라고 돌아댕겨잉~이불가게 위에 있는 카바레 씨부리는거 아니쟤?
옆에 있는 반찬가게 아주머니가 말을 거둔다.
-읍내에 생긴 나이트에 밀려서 거기 망한지가 언제인데요.
-망해부렸어?
아줌마가 큰 칼로 김치를 내려친다.
-망한지 5년 넘었죠. 아가씨 아마 거기 노래 연습장으로 바꿨어, 노래방 주인이 카바레 주인이니깐 가서 물어봐.
-예 감사합니다.
몸을 일으키자 다리를 쪼그리고 앉은 탓에 쥐가 나서 뒤뚱거리며 걸음을 옮긴다. 2층 노래 연습장에 들어서자 꿍짝 메들리가 흥겹게 울린다. 카운터를 보는 남자가 나를 흘긴다.
-1시간에 만원
-사람을 찾으러 왔어요.
아저씨는 흥이 돋았는지 콧노래를 부르다 말고 나를 쳐다본다.
-누구?
-홍일수씨 아세요?
-시방 모라고라? 홍일수?
-카바레 있었을 때 근무하셨다고 하셨는데, 기억 안 나세요?
-카바레? 홍씨? 기억이 안 나버려~
-예, 감사합니다.
서울에서 5시간 넘게 기차탄 후, 버스 타고 1시간 넘게 들어온 이 도시에서 아버지 행적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인가? 허탕치고 가려는 뒷걸음을 돌리고 다시 한 번 물어본다.
-서울에서 오셨고요. 기타를 잘 치세요. 예전에 음반 내셨는데, 모르세요?
-홍씨? 엘비스홍 씨부리는 건가벼?
-아! 아마 그럴 거예요. 아버지가 엘비스 프레슬리를 좋아하셨거든요.
-나도 못 본지 꽤 되버렸지라~ 옛날에 여기서 기타를 허벌나게 치고 했지~
-아시는 건 없으시죠?
한참을 고민하던 아저씨가 무릎을 친다.
-맞아. 아따 홍씨가 요 앞 횟집에도 일했부렸어. 나이도 적지 않는 친구가 낮에도 거시기하고 밤에도 거시기해부렸지. 싸게 싸게 가보라잉~
-감사합니다.
인사를 나누고 노래방을 나온다. 육십을 바라보는 아버지가 채신머리없이 엘비스 타령이라니, 실마리가 보이는 아버지의 단서를 찾아서 서둘러 계단 아래로 내려온다. 시장 입구에 있는 횟집에 도착하자 가게 앞에 다른 지방에서 온 손님들이 아저씨가 생선회 손질을 끝나길 기다린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안에 계시던 아주머니가 머리를 추스르며 밖으로 나온다.
-어서 오세요. 어떤 거 찾으세요?
-저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혹시 홍일수씨 아세요?
-홍일수? 그 사람이 누구요잉?
-여기 2층 카바레에서 밤에 일하시고 낮에 횟집에서 일하셨다고 들었는데요. 한 10년 전에요. 아! 그리고, 기타 잘 치시고요.
아주머니가 곰곰이 기억을 떠올려 아버지를 찾아내자 호들갑 떨며 남편에게 묻는다.
-그 아재인가보네. 악착같이 일하던 아재 있잖아, 나이는 한 오십 되고
-홍씨 안본지 꽤 됐는데, 그때 우리가 사정이 어려워서 잘랐지, 저기 건너편 사거리에 있는 중국집에 가봐, 거기서 배달하는 거 몇 번 봤어.
-예 감사합니다.
중앙의 노랑 선마저 흐릿한 사거리를 빠르게 오고 가는 차를 피하며 달음 박차듯 건넌 후 한자가 써진 홍등이 있는 중국집으로 간다. 중국집 앞 짜장면 배달하는 배달 장수가 오토바이 시동을 걸고 있다. 나는 조심스럽게 중국집 안으로 들어간다.
-저기요.
흰 밀가루를 손에 잔뜩 바른 중국집 주방장이 손을 털면서 나오다가 나를 신기한 듯 위아래로 훑는다.
-홍일수라는 사람을 찾으러 왔는데요.
-누군디요잉?
-10년 전에 카바레에서 일하고, 횟집에서 일하고, 여기도 근무했다고 하더라고요
-10년 전에 여기 중국집 없었재, 사장님이 나와야 알 것 같은딩, 아따 큰일이네~ 문 닫을 때 나오실텐뎅~ 잠시만 기다려 봐요잉~
통통한 주방장은 감기지도 않는 왼쪽 눈으로 윙크를 하며 손을 앞치마에 털면서 전화기의 번호를 누른다.
-사장님, 홍일수씨 아셔부려요잉?
나를 바라보며 큰소리로 수화기 너머의 상대방의 말을 전한다.
-모르시다는 데요.
-예전에 카바레에도 일하고 횟집에서 일한 엘비스 홍이라고 한번 물어봐 주세요.
전화기 너머의 상대방에게 말을 잇는다.
-나짝이 쪼카 반반한 가스나가 엘비스 홍이라고 씨부리는데요. 잉~야, 야, 예, 알겠구먼잉~
아버지 이름보단 엘비스 홍이라는 가명이 여기서는 잘 통한다. 주방장이 수화기를 내려놓은 후 머리를 단정하게 손질하면서 약간 거만한 자세를 취한 채 느끼한 어투로 서울말을 한다.
-뒷골목으로 한참 들어가서 좌회전에 있는 정수기 회사 배달원으로 일했다고 하시네요.
-감사합니다.
주방장이 하얀 잇몸을 보이며 웃자, 황급히 인사를 하고 중국집 밖으로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