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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Oct 07. 2024

7.해피해피재혼클리닉

지영에게 전화를 건다. 모터 소리가 들리고 지영은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을 내뱉으며 전화를 받는다. 

-상류층 사회 맛보니깐 어때? 

-그게 문제가 아니고, 지영아, 나 어떡하나?

-무슨 일 있어? 부모님 보려 갔다 오더니 목소리가 힘이 없네, 너 반대하시냐?

-그건 아니고, 아버지 얘기를 계속 물어보시는데 거짓말이 양심에 걸려서, 이번에는 같이 별장으로 여행가자고 하시더라.

-잘 됐네, 너 맘에 들어 한다는 소리잖아. 착한 척 양심 타령 하지 마. 그들의 입장에서 결혼은 M&A합병이야. 자식들이 결혼해서 얻을 수 있는 이윤이 있는지? 매출액은 얼마나 되고 손익은 나고 있는지 보는 거라고, 투자하기 전에 설명회 하잖아. 너희 집 재무제표를 보고했다고 생각해, 오히려 너희 아버지가 건축가라고 해도 그쪽 집에 비해 기우는 집안이잖아. 아마 그쪽 집에서 흡수합병 해야겠다고 생각했을걸. 그러니깐 자기 별장으로 가자고 한 거겠지.

-계속 거짓말할 수 있을까? 나중에 아닌 걸 알면 속았다고 생각할 거 아니야. 오빠네 부모님 속이는 건 걱정되네.

-솔직하게 얘기했다면 부모님이 널 좋게 봤겠니? 만약 말도 안 되지만, 아버지가 노가다 하시는 것까지 이해해 주셨다고 치자. 부모님 이혼까지 얘기할 거야? 왜 부모님 따로 사는지도 구구절절하게 과거 상처까지 들먹이면서 신파 찍을 거야? 그리고 지금 어디에 계시는지도 모른다고 말할 수 있어?

-그건 말 못하지.

-한국 사회에서는 부모 없는 자식은 사람 취급도 안 해. 네가 사실을 얘기하는 순간, 넌 헤어지고 퇴사한 후 취집을 위해 아버지 직업 속인 된장녀로 SNS에 매장되었을 거야.

-그렇겠지.

-그럼, 죄책감 가질 필요 없어, 속물처럼 사는 게 낫지, 너 가난이면 이젠 지긋지긋하지 않아?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 이번에 눈 한번 질끈 감고 잘해봐. 이런 기회 평생에 다신 없어.

-그래, 맞아. 평범한 사람 그 누구도 내 가족을 이해하지 못할 거야. 나도 받아들여지지가 않아.

-그나저나 그쪽 부모님 이번 결혼 포기하시는 거 같다. 대부분 그런 집에서 몰래 사람 붙여서 여자 과거를 사전 조사하거든. 남자가 있었는지, 집안은 어떠한지, 학교생활은 어땠는지 등 조사하는데, 너에게 묻는다는 건 아직 조사가 안 들어갔다는 얘기인데, 오히려 운이 좋은 거야. 빨리 아버지나 찾아봐.

-알겠어. 그나저나 어머니는 재혼 안 하신다고 하고, 아직 흥신소에서 소식도 없고. 큰일이야.

-내가 적은 업체 중에 제일 하단에 있는 업체가 있을 거야. 거긴 맞춤 서비스도 가능해.

-맞춤 서비스?

-결혼생활의 끔찍함을 아는 중년 남녀가 서로 마주보고 앉아서 커피를 마신다고 생각해봐. 설레겠어? 오히려 어색하잖아. 그래서 자연스럽게 만남을 유도하는 거지. 예를 들면 어머니가 쇼핑하는 것을 좋아한다면 쇼핑하다가 우연히 만나서 자연스럽게 친해지는 거야.

-괜찮네, 선 같지 않아서 어머니가 부담스럽지 않고.

-그치, 한번 전화해봐

-알았어.

-지금 못된 짓 하는 거 같아서 맘이 불편하지? 나도 이렇게까지 해서 결혼해야 하는 건가 자책도 많이 했는데, 그래도 부자 남자 만나서 마음 졸이며 살지 않으니깐 좋다.

-결혼하니깐 좋아?

-응, 평일 오전에 느긋하게 브런치 먹고 요가하는 게 일이야. 한 달 전만 해도 짜증나는 회사생활에 언제 사표 써야 하는지 고민했을 텐데, 지금은 까마득한 옛날 얘기 같아. 너도 결혼하면 같이 브런치 먹자.

-응

-담에 보자.

그녀의 거친 숨소리가 사라진 핸드폰을 한참동안 귀에 대고 서있다. 뒤를 돌아서 우리 집 창문을 보자, 집 안에서 새어나오는 붉은 전등 빛이 어머니의 존재를 알린다. 무거워진 다리를 이끌며 대문을 넘어 현관문을 연다. 현관에서 굽이 높은 뾰족 구두를 벗어버리자 뭉쳤던 다리의 혈액이 온몸에 돌면서 쓰려진다. 몇 분이 지나고 몸을 일으켜서 어머니에게 인사드리려고 방문을 열자 방 벽에 기대어 곤히 주무시고 계신다. 이불을 깐 후 어머니를 눕혀 드리고 전등불을 끄고 나오려는 찰나, 테이블 위에 수첩을 본다. 수첩에는 아버지를 찾은 흔적이 보인다. 수많은 전화번호가 지워지면서 휘갈겨 쓴 글씨들, 어지럽게 흩어진 휴지조각과 뒤섞인 약봉지, 도대체 나는 무슨 일을 버리고 있는 것일까? 나를 버린 나의 아버지, 어머니에게 몹쓸 짓을 했다는 자책과 후회가 들다가도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방향에 울분을 참는다. 

나는 방으로 들어와서 지영이가 알려준 재혼 중매 업체에 전화를 건다. 전화기 너머의 ARS음성이 넘나든다.

‘안녕하십니까? 해피해피 재혼 클리닉입니다. 재혼 막막하시고 답답하셨죠?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 재혼 클리닉에 가입하시면 모든 일을 일사천리로 도와 드립니다.’

-여보세요~ 재혼 클리닉입니다.

-예 안녕하세요. 저희 어머니 재혼문제를 상의하려고 전화했습니다.

-어머님 재혼 쉽지 않죠. 이미 볼꼴 못 볼꼴 다 본 이상, 더 이상 남자와 부딪치며 살고 싶지 않으실 거예요.

-예, 맞아요.

-이럴 땐 자연스럽게 유도해 드리면 됩니다. 어머니 신상에 대한 100문제의 답을 상세하게 자세히 적어주십시오. 그래야 최적의 상대를 최적의 장소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혼증명서와 증명사진도 보내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혹시 홍씨 성을 가지신분으로 가능할까요?

-그럼요 가능하죠. 항목에 있으니 기재해 주시길 바랍니다.

전화 통화가 끝나고, 책장에 쌓인 대학교 전공 서적을 본다. 명문대 경영학과 1학년 어느 날 야간 근무를 끝내고 새벽 2시에 집에 들어와서 아침에 제출해야 할 리포트를 쓰던 기억, 너무 졸려서 잠깐 앉은 채로 잠이 들었는데, 시간은 지나가고 새벽녘에 일어나 비몽사몽으로 내 허벅지를 볼펜으로 찔려가며 울면서 쓰던 리포트, 매 학기가 바뀔 때마다 선배들이 쓰던 책을 찾아 돌아다니며 헌책방을 뒤적거리던 상처뿐인 과거가 살을 도려내듯 쓰라리다. 나의 상흔이 나를 채찍질다.

다음날 아침 식탁에 엄마는 미역국을 담는다. 나는 미역국이 올라간 밥상을 보면서 아버지의 생신 일자를 기억한다. 서로가 말하지 않지만 부재중인 아버지를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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