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는 용서와 다릅니다.
글쓰기 모임에서 지난 시간에는 모방 시를 쓰게 했다.
많은 고민 끝에 짧은 인연의 모방 시를 썼고, 이번에는 모방 시를 바탕으로 자전적 에세이를 쓰기로 했다. 나는 또 고민을 했다. 모방 시의 주인공인 아빠와의 기억이 그리고 일화가 별로 없다.
처음부터 내가 선택을 잘 못 한 걸까 라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 고민 끝에 쓴 글이다.
아빠. 아버지.
무엇이라 불러도 어색하기만 합니다.
그 이름을 당신을 향해 불러 본 지 오래되어서 그런 것일 겁니다.
이 세상 빨리 등지고 가셔서 그곳에서는 자유를 느끼며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집안의 가장이고 아빠라는 존재는 누군가에게는 따뜻하고 둥지 같은 존재일지 몰라도 제게는 허울뿐인 둥지이고 안식이 되지 못하고 춥기만 했습니다.
저에게 아버지는 권위만 있는 철없던 아버지로 기억합니다.
집보다는 밖으로만 돌던 아빠. 어린 자식들 버리고 자유롭게 사셨던 아빠.
술과 담배, 사람, 여자 좋아했던 아빠. 그렇게 살다 간경화로 합병증까지 와서 몇 년 투병하시다 젊은 나이에 이 세상 떠나셨던 아빠. 시작도 끝도 마음대로 하시고 떠나셨습니다.
아빠에 관한 기억은 10살 전후의 단편적 장면들만 떠오릅니다. 그래서인지 저에게는 애틋함도, 그리움도 없이 무감하기만 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제가 아버지를 온전히 가져보지 못한 공허함에 오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아빠라고 하는 단어를 생각하고 아빠를 떠올리면 어릴 적 꾸었던 꿈이 떠오릅니다.
아침에 서럽게 울면서 눈을 뜨던 기억이 납니다. 죽음에 대해서 처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드넓고 파릇파릇한 들판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바람은 살랑살랑 불고 넓은 들판이 너무 좋아 나는 팔짝팔짝 뛰놀았습니다.
뛰어놀다 아빠를 보니 멀리 떨어져 뒤돌아 있었습니다. 나는 아빠를 향해 ‘아빠!’를 외치며 달려갔습니다. 아무리 불러도 뒤도 보지 않는 아빠 참 야속했습니다.
얼마 있다 아빠는 앞으로 쓰러졌습니다. 아무리 불러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어린 나는 무서워 울기만 하고 가까이 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잠에서 깨어보니 베개가 흥건했습니다. 옆을 보니 아빠가 자고 있었습니다.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나는 무서워 엄마를 찾아 방을 나와 보니 엄마는 부엌에서 밥을 하고 있었습니다.
엄마에게 차마 말할 수 없었습니다. 어린 제가 감당하기에 너무 슬퍼서 말이 나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날의 꿈은 내게 아빠라는 존재를 기억하며 깊게 느끼게 했습니다. 슬픔과 두려움 속에 아빠를 처음으로 마음에 새겼습니다.
어린 시절 아빠와 재미있게 놀던 기억보다는 늘 눈치 보았던 기억이 많이 납니다.
밥 먹다 소리 나게 먹는다고 큰소리쳐서 놀랐던 기억, 심부름 갔다가 슈퍼 앞에 강아지가 무서워서 못 들어가고 기다리다가 강아지가 가고 나서야 가게에 가서 물건을 사 왔더니 늦었다며 혼났던 기억, 동생들도 못 본다고 타박하며 혼났던 기억, 늘 제멋대로였던 아버지 기억입니다.
좋았던 기억은 무엇인지 한참 생각해야 했습니다.
어릴 적 계곡에 친척들과 같이 놀러 가서 놀다가 수영 가르쳐 준다고 물에서 아빠와 있다가 물에 빠졌던 기억, 어릴 적 맛있는 음식을 손수 해주어서 맛있게 먹었던 기억, 과일가게를 하면서 내가 제일 좋아했던 사과를 가져왔었던 기억, 아플 때 옆에서 잠깐이지만 달콤한 사과 숟가락으로 갉아서 먹여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이런 기억이라도 잊지 않고 회상하는 것은 조금이라도 가져봤다고 하는 어린 치기에 아버지를 향한 자라지 못한 마음은 아닐까 합니다.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제가 기억하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양가적인 이유는, 아마도 사랑받고 싶었던 마음과 동시에 상처받았던 마음이 함께 자라났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친척들이 모여 아버지 이야기를 하면 똑같은 소리만 합니다.
“너희 아빠는 사람 좋아하고 술 좋아하고 그래도 마음은 약했어!”
“너희 아빠가 매일 사람들 불러서 밥 먹고 놀았지. 장난도 잘 쳤어!”
“그래도 아이들은 이뻐했어! 우리 아들들 삼촌이라면 껌뻑 죽는다.”
이런 이야기는 친척들이 모이면 늘 합니다.
친척들이 모여서 아버지를 회상하며 하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그 이야기 속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아빠가 정신 차리고 가정생활 잘 꾸리셨으면 할머니 고생 덜하셨을 것이고, 그렇게 원하시던 손주 왕래하면서 사셨을 텐데!”
“아빠는 불효자야! 빨리 돌아가셨고 할머니 혼자되셔서 고생하는 거 안 보여?”
“아빠는 우리를 버린 사람이야! 정신 차리고 살지 못했지.”
“아빠 같은 사람이랑 결혼해서 산다고 하면 살아지겠어?”
나는 아버지와 대화해 본 적이 없습니다.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떤 마음으로 사셨는지, 그리고 자식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았는지, 살아가는데 무엇이 힘들었는지 직접 듣지 못하여 알지 못합니다. 차마 이런 생각과 마음마저 없었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어느덧 제 나이가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50대 초반의 나이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세월은 유수처럼 흐르고, 저도 늙어가는데 내 마음속 아버지는 여전히 어린 사람입니다. 미숙하고, 불안하고, 어딘가 외로운 사람. 아버지를 향한 내 기억은 온기가 아닌 냉기로 남아 있습니다.
한 사람을 기억하는 것이 왜! 다를까?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볼 때 서로 좋았던 건 없습니다. 똑같이 회상하는데 각자의 마음에는 온기가 또는 냉기가 들어있습니다.
저는 정말 아버지의 진짜 모습이 무엇이었는지 지금에 와서 궁금합니다. 사람이 태어나 무작정 살아지지는 않습니다. 분명 이유가 있고 의미가 있는데 아버지는 어떤 의미로 사셨을까? 물론 의미가 있다고 해도 아버지의 행동과 삶이 용서받는 것은 아니지만, 한 사람이 이 세상에 살다가 죽음에 이르렀는데 그 마음은 어떤 것이었는지 조금이나마 알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이해는 용서와 다릅니다.
나는 아버지를 용서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해하고 싶습니다. 아버지는 어떤 외로움 속에서 술을 마셨고, 어떤 미숙함 속에서 가족과 거리를 두었을까?
내가 지금 아버지의 나이에 가까워지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건, 그만큼 세상을 살았고 어떤 누구도 그냥 세상에 살다 가는 사람은 없다는 생각에 미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아닌 한 사람을 이해하려는 시도입니다. 이 과정 끝에는 나의 어린 마음의 치유와 내면을 더 깊게 보게 되는 계기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이 또 다른 깊은 사랑의 형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런 저의 마음이 아빠에게 일찍이 닿았으면 좋았겠지만, 우리의 만남과 인연이 빨리 시작되고 빨리 끝났기에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원망과 분노가 남았습니다.
정리하지 못하고 가신 길 남은 자들은 아빠를 생각할 때 마무리되지 못한 마음으로 기억합니다.
이 세상에는 없지만, 부디 그곳에서는
늘 갈망하던 아빠의 행복과 자유를 누리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