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인생이 뭐 이럴까?
글쓰기 모임에서 가장 슬프거나, 절망, 실패에 관한 글을 쓰기로 했다.
전에 쓰던 글이 아빠와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여서 이번에도 아빠를 연상하게 되었다.
나에게 처음 죽음을 맞이하게 한 사람이다. 어린 시절에 갈무리되지 않았던 감정을 쓰는 게 쉽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어리지만 나의 젊은 시절 이런 생각도 했구나! 하는 기특함도 있었다. 이번 글을 통하여 나의 정리되지 않은 감정,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게 되었고, 떨쳐내지 못한 마음을 내려놓게 되었다.
마지막, 그리고 남은 자들
한여름의 태양이 무척이나 따가운 날, 나는 방에서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한가로이 티브이를 보며 있었다.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받을까? 말까? 고민하다 받았다. 뜻밖의 사람이었다. 내 위로 5살 차이 나는 배다른 언니였다.
“희연아, 아빠 얼마 남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정신이 오락가락하시는데, 정신이 돌아오면 엄마를 찾으셔. “
“엄마한테 말해서 와줘."
”내가 엄마한테 뭐라고 말해? 기대하지 마. 지금 와서 왜 엄마를 찾아? “
나는 전화를 끈고 고민했다. 엄마한테 뭐라고 말해야 하나?
나는 엄마에게 아빠가 마지막까지 온 것 같다고 했다. 아빠가 마지막 엄마를 찾고 있다고 가보자고 했다.
엄마와 고속버스를 타고 아빠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 왔다.
병실에는 뼈만 앙상하게 남아있고, 링거줄은 여러 개 꽂혀 있는 아빠를 마주하게 되었다.
우연인지 병실에 내가 들어섰을 때 눈을 뜨셨다. 나를 한참 보다가 말하는데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내가 듣던 첫마디는 “엄마는?” 이였다. 보고 싶었고, 후회됐다면 진작 말이라도 하고 용서라도 빌지 이게 무슨 짓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엄마는 무덤덤하게 들어오셔서 “나 왔어요”라고 했다. 아빠는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는데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그 한마디를 죽음을 앞에 두고서야 했다. 엄마는 무어라 답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그래요. 걱정하지 말아요!’라고 말했던 것도 같다.
그 후 몸 상태가 안 좋아져서 중환자실로 옮기게 되었다. 중환자실에 링거줄은 더 많이 끼워 있었고 호흡기까지 했다. 병원에서 더는 할 것이 없다고 했다. 마지막을 준비해야 했다.
엄마와 나는 남은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병원에 나와 고속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고속버스에서 30분가량 지났을까 전화가 왔다.
언니의 전화였다. “아빠 가셨어!” 한마디를 했고, 나는 “응”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전화를 끊고 엄마에게 아빠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엄마는 담담해하셨다.
나는 그동안 아빠가 돌아가셔도 눈물이 나지 않을 그거로 생각했는데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떨어졌다. 집에 도착해서 여동생을 데리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내 나이 25세, 아빠 나이 53세 젊고 젊은 나이에 나는 부모의 죽음을 맞이했고, 아빠는 젊은 나이에 이 세상과 작별했다.
장례식장에 들어서자, 할머니가 계셨고, 고모들이 나를 보고 왔냐고 하며 절을 하라고 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왜 그랬을까? 나는 “잘해 준 것도 없으면서, 오래 살지도 못하고 빨리 죽으면 어떻게 하는 거야!”라고 소리쳤다. “뭘 잘해줘서 나에게 무슨 절을 받느냐?”라고 떠들어 댔다. 누구도 나를 말리지 않았다. 고모가 “그래 안다. 그래도 가셨으니 보내 드려야지”라고 했다.
나는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바란 것이 없었는데 죽어서도 나에게 자식의 자리를 바라는 것이 화가 나고 억울하기만 했다. 그렇게 삼일장을 치르면서 많은 이들이 다녀갔다. 기억나는 사람도 있고 모르는 사람들도 많았다. 자식 앞세운 할머니는 덤덤하시기만 하셨다.
고모들은 모여서 오빠 이야기를 했고, 조카들은 삼촌 이야기에 밤을 새웠다.
나와 동생들은 할 이야기도 마음도 없었다. 그저 시간이 가기를 바랐다.
우리는 삼일장을 마치고 사십구재에서 보자는 말을 하고, 나는 동생과 함께 집으로 돌아와 내리 12시간 잠만 잤다. 잠을 자고 일어나 생각해 보니 실감 나지 않았다.
나의 일상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참 이해하기 어려웠다. 나와 피를 나눈 사람일진대, 이렇게 아무런 영향이 없다는 것이 너무나 허무하기만 했다.
시간이 흘러 사십구재를 지내기 위해 할머니 댁으로 향했다. 할머니 댁에 들어서는데 희한한 광경이 벌어져 있었다. 그동안 아빠의 병시중 들고, 돈벌이도 해서 병원에도 다니게 했고, 그동안 모든 걸 맞춰서 산 여자가 고모들에게 구박을 받고 있었다.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고모들은 이제 나가라고 했던 것 같다. 사십구재 모든 행사를 마치고 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그 여인이 보였다. 너무나 초라하고 가엾기까지 했다. 아버지라는 사람은 도대체 몇 사람의 인생을 망친 것일까? 정말 정이 안 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생각했다. 이 자리에 가장 가엾은 사람은 누구인가? 힘없는 사람은 누구인가? 어떤 인연으로 아빠를 만났는지는 모르지만, 그 여인도 가정을 버리고 아이 버리고 아빠와 같이 산 것으로 안다. 좋을 것으로 생각하고 살았겠지! 그러나 아무도 인생을 알 수 없듯이 두 사람 다 좋게 흐른 것은 아니었다. 아마도 예견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끝이 좋지 않으리라는 것을…….
나는 엄마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맞는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해줘야겠다는 생각에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지금 상황에서 엄마가 제일 좋은 것 같아”
“오늘 보니 그 아줌마가 제일 불쌍하더라. 고모들한테 모진 소리 듣고 찬밥신세더라고.”
“너무하지? 그동안 병간호 해주고 돈도 벌면서 옆에서 모진 소리 들었을 텐데 끝이 안 좋다. 그래서 엄마는 이 꼴 저 꼴 안 보고 살았으니, 엄마가 제일 편한 것 같다고, 그리고 옆에 자식들도 있잖아.”
여자의 인생이 뭐 이럴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여성들의 삶이 주도적으로 살아지는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우리는 누군가의 인연에 엮여서 그 실타래를 감고 때론 풀기도 하며 살아가는 것 같다. 그러나 여자, 여성은 각자의 실타래가 누군가에 의해서 감기기도 하고 풀리기도 하고 그것이 자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타인에 의해서 환경에 의해서 때론 가장 나약한 나로 인해서 실타래가 감았다 풀어졌다 한다. 정녕 나만의 의지로 실타래를 감을 수 없는 것인가? 세상에 나아가 단단한 나만의 실타래를 만들어야 내가 내 의지로 죽음에 이르기까지 내 실타래를 감아질 수 있을 텐데….
아버지의 죽음으로 여러 삶을 보게 되었다. 엄마의 삶, 할머니의 삶, 상간녀의 삶, 자식들의 삶, 형제간의 삶 모두 제각각이다. 그 안에 평안하고 즐거웠고 행복했던 사람들은 없었다. 무엇으로 인한 것인지……. 그 안에서 내 삶을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부터 세상에 조금 더 씩씩하게 나아가길 바라고 좀 더 주도적으로 살아가길 생각해 본다. 지금까지 씩씩하게 잘 살아왔지만, 앞으로의 나는 내가 진취적으로 도전하며 살아가리라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