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사투 17화

우렁각시

[감성 에세이]

by 이현신

내가 사는 연립주택 일 층에는 원룸이 다섯 개 있다. 몇 년에 걸쳐 근처 대학교에 재학하는 학생들이 드나들었다. 분리수거 방침을 지키지 않는지 먹다 남은 피자와 빵, 치킨 등이 나뒹구는 바람에 지저분할 뿐만 아니라 스산하기까지 했다. 구청에서 배포한 쓰레기 분리수거 지침과, CCTV 촬영 중이라는 협박성 문구까지 붙여 놓았지만, 청소업체가 와서 건물 청소를 하는 날만 깔끔하게 치워져 있을 뿐이었다.

오늘도 먹다 남은 햇반과 생크림 케이크가 시멘트 바닥 위에 흩어져 있다. 구겨진 휴지가 비죽이 나와 있는 검은 비닐봉지 옆에는 담배꽁초도 몇 개 떨어져 있다. 나는 혀를 끌끌 차며 골목길로 나섰다. 세탁소를 지나 과일가게에서 왼쪽으로 꺾었다. 전봇대 위에는 전선이 실타래처럼 얽혀 있고, 아래에는 쓰레기봉투가 전봇대를 둘러싸고 있다. 자동차가 옷자락을 스칠 듯 가까이 지나갔다. 대학가인 우리 동네의 좁은 골목은 언제나 산만하고 지저분했다.

울타리 너머로 집집이 피어 있는 꽃들을 보며 걸었던 적이 있었다. 오래전이었고, 만리타향 먼 객지에서였다. 인사말 한마디 배우지 못한 채 남편을 따라 간 곳은 바르샤바라는 낯선 도시였다. 난생처음 정원이 있는 집에서 살게 되었다. 현관 앞 정원에는 빛나는 연두색 잔디 위에 색색의 장미꽃이 피어 있었고, 뒷마당에는 살구나무 두 그루가 서 있었다.

어느 화창한 여름날 오후였다. 어디선가 물 떨어지는 소리가 촤악 하고 들렸다. 후다닥 일어나서 창밖을 내다보니 옆집의 곱슬머리 아저씨가 하늘을 향해 호스를 쳐들고 있었다. 호스에서 나온 물은 하늘로 치솟았다가 철조망 담장을 넘어 우리 집 정원으로 쏟아졌다. 그해 여름 바르샤바에는 사흘에 한 번씩 밤에만 비가 내렸다. 나는 정말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 집 정원으로 떨어지는 물을 보며 비로소 최근 이 주일간 비가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정원에 물을 뿌린 적도 없었고, 잔디를 깎아주어야 한다는 것도 몰랐다. 잔디는 언제나 저만큼의 키만 가지고, 장미는 저절로 싱싱한 줄 알았다.

장미가 지고, 달리아도 졌다. 바람이 점점 서늘해지더니 은색 구름이 밀려왔다. 해를 볼 수 없는 날이 많아졌다. 십일월이 되자 짙은 납빛 하늘에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눈발은 굵어졌다 가늘어졌다 멎었다 내렸다 했으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도시를 찾아왔다. 판자로 눈을 미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우리 집도 눈을 치워야 하는데, 생각하며 현관문을 열면 어느새 눈들은 옆으로 밀려나 있었다.

매일 아침 되풀이되는 일이라 나는 남편이 눈을 치웠다고 생각했다. 남편의 수고에 보답해야 할 것 같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내가 키운 콩나물로 국을 끓이고, 비빔밥을 만들었다. 그런데 남편은 비빔밥을 비비지 않고 그냥 먹었다. 밥과 오이, 밥과 콩나물, 밥과 당근…, 이런 식으로. 나물과 나물 아래 있는 밥을 수직으로 떠서 먹고 있었다. 비빔밥을 저렇게 먹는 남편이 눈을 치웠을 리가 없었다. 도대체 눈은 누가 치우는 걸까?

자명종을 새벽 네 시에 맞춰 놓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섯 시쯤 자동차가 집 앞에서 멈추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커튼 뒤에 몸을 숨기고 바깥을 살폈다. 부츠를 신고 모자를 푹 눌러 쓴 남자가 대문 창살 사이로 손을 넣어 잠금을 푸는 것이 보였다. 남자는 발걸음을 죽이며 현관 앞으로 다가와 눈을 쓸기 시작했다. 소리 나지 않게 조심조심 눈을 쓸어서 대문까지 길을 만들어 놓고는 차를 타고 사라졌다. 집주인 할아버지의 차였다.

이사하던 날, 할아버지가 네가 살던 곳에도 눈이 많이 오느냐고 영어로 물었다. 나는 노우라는 한마디밖에 하지 못했다. 나의 노우는 눈이 오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많이 오지 않는다는 의미의 노우였다.

할아버지는 눈이 오지 않는 나라에서 온 나를 위해 매일 새벽 도시의 끝에서 달려와서 눈을 치우고 돌아갔던 것이다. 그때 나는 옆집 아저씨에게도, 할아버지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몰래 숨어서 지켜보기만 했다. 말이 통하지 않아서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기도 어려웠지만 벅찬 감정을 오래오래 즐기고 싶기도 했다. 입 밖으로 말을 내뱉는 순간 마법이 풀리면서 각박한 현실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마저 들었다.

버스정류장으로 가던 나는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돌렸다. 과일가게와 세탁소를 지나 집으로 갔다. 종량제 쓰레기봉투 한 장과 음식물 쓰레기봉투 한 장을 들고 계단을 내려갔다. 쓰레기를 분류해서 담고 비질하는 데는 채 십 분도 걸리지 않았다. 빗자루와 쓰레받기와 고무장갑을 집에 가져다 두고, 손을 씻고 다시 나가려면 서둘러야겠지만 깨끗해진 건물 앞을 보니 뿌듯했다. 가슴 가득 기쁨이 차오르는 것 같았다.

학생들은 앞으로도 쓰레기를 마구 버릴 것이다. 그런들 대순가? 내가 치우면 된다. 아침잠을 희생하는 것도 아니고, 먼 길을 달려가지 않아도 된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 듣지 못하고 몇 달 동안 눈을 치워 준 할아버지가 있었다. 나는 할아버지 덕분에 행복했었다.

할아버지는 더불어 사는 삶의 행복을 아셨다. 이제 내가 받은 관심과 사랑을 나눠 주려고 한다. 할아버지가 뿌리신 배려와 헌신이 비로소 싹을 틔운 셈이다.

이타적인 사랑에는 이런 힘이 있다. 언제 어디서 어떤 꽃을 피울지 모른다. 먼 훗날 학생 중 한 명이 연립주택에서 살았던 시간을 회상하며 행복한 시절도 있었다고 기억할지도 모르고, 또 다른 학생이 먼 훗날 어딘가에서 우렁각시가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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