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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신 Jul 10. 2021

배려라는 꽃

[감성에세이]

 내가 사는 연립주택 일 층에는 원룸이 다섯 개 있다. 입주자는 근처 대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다. 지난 몇 년간 들고난 학생이 많았지만, 건물 앞 풍경은 한결같다. 먹다 남은 피자나 빵, 치킨, 커피가 나뒹군다. 냄새도 나고 파리도 꼬인다. 덕분에 공동출입구 옆은 언제나 지저분하고 스산하다. 구청에서 배포한 쓰레기 분리수거 지침과 CCTV 촬영 중이라는 협박성 문구까지 벽에 붙여 놓았으나 소용이 없다. 일주일에 한 번 청소업체가 건물 청소를 하는 날만 깔끔하게 치워져 있을 뿐이다. 

 오늘도 예외 없이 먹다 남은 햇반과 생크림 케이크가 시멘트 바닥 위에 흩어져 있다. 아무렇게나 쑤셔 넣은 냅킨이 비죽이 나와 있는 검은 비닐봉지 옆에는 담배꽁초도 몇 개 떨어져 있다. 여전하구먼! 나는 속으로 구시렁거리며 골목으로 나섰다. 세탁소를 지났다. 과일가게 모퉁이에 서 있는 전봇대에는 각종 통신선과 전선이 실타래처럼 어지럽게 얽혀있고, 전봇대 밑에는 쓰레기가 켜켜이 쌓여 있다. 21세기 서울이 맞나 싶을 정도로 지저분하고 더럽다. 검은색 SUV 차 한 대가 옷자락을 스칠 듯 지나갔다. 골목은 좁은데 차들은 모두 크다.  

   

 집집이 피어 있는 꽃들을 보며 기분 좋게 걸었던 적이 있었다. 오래전이었고, 만리타향 먼 객지에서였다. 인사말 한마디 배우지 못한 채 남편을 따라간 곳은 바르샤바라는 낯선 도시였다. 난생처음 정원이 있는 집에서 살게 되었다. 단철 울타리와 현관 사이에는 철마다 예쁜 꽃이 피었다. 튤립이 지고 나면 장미가 피고 장미가 지기 전에 아네모네가 피었다. 꽃들은 빛나는 연두색 잔디 위에서 자신의 자태를 한껏 뽐냈다. 뒷마당에 있는 살구나무는 이 층 창에 닿을 정도로 키가 컸다. 달콤하고 향긋한 살구를 따서 먹기도 하고 잼도 만들었다.

 어느 화창한 여름날 오후였다. 어디선가 물 떨어지는 소리가 촤악 하고 들렸다. 후다닥 일어나서 창밖을 내다보니 옆집의 곱슬머리 아저씨가 하늘을 향해 고무호스를 쳐들고 있었다. 호스에서 나온 물은 하늘로 치솟았다가 철조망 담장을 넘어 우리 집 정원으로 쏟아져 내렸다. 사흘에 한 번씩 밤에만 내리던 비가 열흘 정도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정원의 화초에 물을 준 적이 없었다. 잔디를 깎아주어야 한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잔디는 언제나 그만큼의 키만 가지고 있었고, 장미는 저절로 싱싱했다. 갑자기 잔디와 장미와 이름 모를 꽃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장미가 지고, 아네모네도 지고, 달리아도 졌다. 바람이 점점 서늘해지더니 진줏빛 구름이 몰려왔다. 하루하루 낮아지는 구름이 해를 가렸다. 십일월이 되자 짙은 납빛 하늘에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눈발은 굵어졌다가 가늘어지고, 잠시 멎었다가 다시 내렸다. 하루도 빼지 않고 판자로 눈을 미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우리 집도 눈을 치워야 하는데 생각하며 현관문을 열면 어느새 눈들이 옆으로 밀려나 있었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남편이 매일 눈을 치우는 걸까? 수고했다고 말하려고 남편이 밥을 먹고 있는 식당으로 갔다.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직접 키운 콩나물로 국을 끓이고 비빔밥을 만들었다. 그런데 남편은 비빔밥을 비비지 않고 먹고 있었다. 밥과 오이, 밥과 콩나물, 밥과 당근……. 이런 식으로. 나물과 나물 아래 있는 밥을 수직으로 떠서 먹는 모습에 기가 찼다. 비빔밥을 비비지 않고 먹는 남편이 눈을 치웠을 리가 없었다. 

 도대체 눈은 누가 치웠을까? 우렁각시가 왔다 갔나? 나는 알람을 새벽 5시에 맞춰 놓고 잠자리에 들었다. 알람이 울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자동차가 멈추는 소리가 들렸다. 전등을 켜지 않고 가만히 바깥을 살폈다. 부츠를 신고 벙거지 모자를 쓴 남자가 단철 울타리 사이로 손을 넣어 대문의 잠금장치를 푸는 것이 보였다. 남자는 발걸음을 죽이며 현관 앞으로 다가와 눈을 쓸기 시작했다. 소리 나지 않게 조심조심 눈을 쓸어서 대문까지 길을 열어 놓고는 차를 타고 사라졌다. 집주인 할아버지의 차였다. 첫인사를 하던 날, 네가 살던 곳에도 눈이 많이 오느냐고 할아버지가 영어로 물었다. 나는 ‘노우’라는 한마디밖에 하지 못했다. 눈이 오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많이 오지 않는다는 의미의 노우였다. 눈이 오지 않는 나라에서 온 사람을 위해 할아버지는 매일 새벽 도시의 끝에서 달려와서 눈을 치우고 돌아갔다. 

 그 시절 나는 우리 집 정원에 물을 뿌려준 옆집 아저씨에게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눈을 치우고 간 할아버지에게도 고맙다고 말하지 못했다. 몰래 숨어서 그들의 행동을 지켜보기만 했다. 말이 통하지 않아서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기도 어려웠지만 벅찬 감정을 아끼면서 오래오래 즐기고 싶기도 했다. 말을 하는 순간 마법이 풀리면서 각박한 현실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나는 발걸음을 돌렸다. 과일가게와 세탁소를 지나 집으로 갔다. 종량제 쓰레기봉투 한 장과 음식물 쓰레기봉투 한 장을 들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고무장갑과 빗자루와 쓰레받기도 물론 챙겼다. 쓰레기를 분류해서 담고 비질을 하는 데는 채 십 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빗자루와 쓰레받기와 고무장갑을 집에 가져다 두고 손을 씻고 다시 나가려면 서둘러야겠지만 깨끗해진 건물 앞을 보니 기분이 상쾌했다. 

 학생들은 앞으로도 쓰레기를 마구잡이로 버릴 것이다. 그런들 대수겠는가? 내가 치우면 된다. 아침잠을 희생하는 것도 아니고, 먼 길을 달려가야 하는 것도 아니다. 수도세를 걱정하지 않고 옆집 정원에 물을 뿌린 이웃이 있었고, 고맙다는 말 한마디 듣지 못하고 몇 달 동안 눈을 치운 할아버지가 있었다. 나는 그들의 마음 씀씀이 덕분에 행복했었다. 두 사람이 뿌린 배려와 헌신이 이제야 싹을 틔운 셈이다. 내게 깃든 그들의 마음을 나눠 주려고 한다. 이타적인 사랑에는 이런 힘이 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꽃을 피울지 모른다. 먼 훗날 연립주택 일 층에서 살았던 시간을 행복한 시절이었다고 회상하는 학생이 있다면, 배려라는 꽃 한 송이가 또다시 피어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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