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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신 Jul 10. 2021

코발트블루 폴란드 접시

[감성에세이]

        

 볶은 당근과 양파, 버섯, 지단을 곱게 썰어 접시에 가지런히 담았다. 재워두었던 쇠고기를 볶으며 미친년처럼 혼자 웃었다. 전방에서 복무 중인 아들이 포상 휴가를 나온다며 잡채를 꼭 만들어두라고 전화했다. 아들은 세상에서 엄마 잡채보다 더 맛있는 게 없더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삶은 당면에 준비된 재료를 넣고 버무리는데 텔레비전 화면에 붉은 글씨로 속보가 떴다. ‘북한 탄도 미사일 발사’. 헉, 아들이 못 오게 되면 어쩌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어서 북한의 미사일 도발 배경과 파장에 대한 패널들의 토론이 시작되었다. 

 나는 찬장에서 코발트블루 빛 폴란드 접시를 꺼냈다. 잔잔한 들꽃이 활짝 핀 양귀비꽃을 빙 두르고 있는 큰 접시다. 아들이 어렸을 때 우리 가족은 바르샤바로 이사했다. 옆집에는 눈매가 선하고 나이 지긋한 여의사가 살았다. 두 집의 정원 사이에는 담장이 없었다. 달팽이나 무당벌레를 관찰하는 아들에게 그녀는 쿠키나 초콜릿을 주고는 했다. 

 어느 날 아들이 잡채가 먹고 싶다고 했다. 한국 당면이 없어서 소면처럼 가느다란 중국 당면으로 비슷하게 맛을 냈다. 아들은 옆집 할머니에게도 주고 싶어 했다. 제대로 된 잡채도 아니고, 폴란드 사람 입맛에 맞지 않을 수도 있어서 잠깐 망설였지만, 아들의 마음 씀씀이가 기특해서 접시에 예쁘게 담아주었다. 쿠키가 가득 담긴 접시를 들고 돌아온 아들은 할머니가 너무 좋아하면서 자기 뺨에 뽀뽀를 몇 번이나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할머니 집에 아주 많은 새가 있더라면서 저녁 내내 새 이야기를 했다. 

 겨울이 되자 매서운 추위 때문인지 감기가 낫지 않았다. 콜록대는 내게 그녀가 매일 허브차를 끓여주었다. 잡채를 받고 좋아하더라는 아들의 말이 생각나서 또 가지고 갔다. 그녀는 잡채 만드는 방법을 물었다. 나는 손짓발짓 보태가며 열심히 설명해 주었다.

 온종일 내린 눈으로 무릎까지 푹푹 빠질 만큼 정원에 눈이 많이 쌓였던 어느 오후였다. 거실 창밖으로 정원을 가로질러 우리 집으로 오는 그녀가 보였다. 얼른 현관문을 열었다. 사색이 된 그녀가 번역 좀 해 달라며 편지 한 통을 내밀었다. 뜻밖에도 한글 편지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은혜’로 시작되는 편지였다. 북한에서 온 편지라는 걸 단박에 알았다. 그녀는 간절한 표정으로 내 입만 쳐다보고 있었다. 첫 장은 장군님에 대한 칭송이 전부여서 통역해 줄 말이 없었다. ‘친애하는 큰어머님께로 시작하는 다음 장에서 비로소 본론이 나왔다. 편지에서 지칭한 큰어머니는 여의사였고, 편지를 보낸 사람은 그녀의 첫사랑 남자의 딸이었다.

 젊은 시절 그녀는 바르샤바 공대로 유학 온 북한 남자를 사랑했다. 어느 날 갑자기 남자가 본국으로 소환되면서 생이별을 했다고 한다. 수년이 지난 후 마침내 북한에 있는 남자의 주소를 알아냈다. 편지가 제대로 전달될지 몰라서 안부만 짧게 물었다. 석 달 뒤에 받은 회신에는, 자기는 이미 결혼했으니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억장이 무너졌으나 남자가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쁘고 고마웠다. 강제로 송환된 사람들이 무시무시한 처벌을 받았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남자는 새를 아주 좋아했다. 그녀는 남자를 생각하며 새를 키웠다. 의사들 사이에 북한에서는 의약품이 턱없이 부족해 마취제 없이 수술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녀는 남자와 남자 가족을 위해 약품을 보냈다. 언젠가는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실낱같은 희망에 기대어 긴긴 세월을 살아냈다. 

 편지에는 ‘큰어머님께서 수십 년간 보내 주신 약과 생필품을 요긴하게 썼습니다.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장군님 생일에 스픽스 마카우라는 희귀한 앵무새 한 쌍을 바치겠다는 큰 어머님의 청원이 수락되었습니다. 이제 큰어머님은 평양에 오실 수 있습니다. 아버지와 큰어머님의 재회를 진심으로 바랍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다 듣고 난 그녀가 순간 휘청했다. 나는 얼른 그녀의 팔을 잡았다. 그녀는 남자의 부고인 줄 알았다고 했다. 한글을 모르는 그녀에게 남자가 한글 편지를 보낼 리 만무했으니 말이다. 두 눈에 눈물을 글썽대며 그녀가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가슴이 먹먹해져서 나도 그녀를 마주 안았다. 평생 한 사람만을 그리며 살아온 여인의 애틋한 심장 소리가 온몸으로 느껴졌다. 그녀의 곁으로 돌아오지 못한 남자도 가여웠고, 아버지의 연인을 큰어머니라고 부르며 두 사람의 재회를 기원하는 남자의 딸도 애처로웠다. 사람을 사랑하고 그리워한다는 건 얼마나 아름답고 슬픈 일인가. 

 다음날 그녀가 파란 접시에 잡채를 담아서 가지고 왔다. 남자가 잡채를 만들어 준 적이 있었는데 이제 만드는 법을 알게 되어 기쁘다고 말했다. 감사의 표시라며 코발트블루 빛 폴란드 접시를 내게 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가족은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녀가 평양으로 가서 남자에게 잡채를 만들어 주었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코발트블루 접시 안에는 푸른 눈이 슬펐던 그녀와 사진 속에서 웃고 있던 잘생긴 북한 남자와 아버지가 옛 연인과 재회하기를 바라는 이름 모를 아가씨가 여전히 있었다. 나는 폴란드 접시에 아들을 위한 잡채를 담았다. 파안대소하는 김정은의 얼굴이 텔레비전 화면을 가득 채웠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김정은이 무슨 짓을 하든 아들은 내게 올 것이다. 그래서 내가 만든 잡채를 먹을 것이다. 잠시만 떨어져도 이토록 보고 싶은데 그녀는 그 긴 세월 동안 사무치는 그리움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좋은 생각, 20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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