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소설]
예상하지 못했던 현상이라 놀랍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다. 선명하고 눈부신, 불꽃처럼 타오르는 그 빨간색이 불러낸 건 바로 내 몫에 대한 갈망이었다. 오래전 가슴 속 깊은 곳에 묻고 밀봉해 버린, 부정했기 때문에 살아낼 수 있었던 그 감정이 용암처럼 솟아올랐다.
신호등이 세 번이나 바뀌었지만 나는 횡단보도를 건너지 못했다. 발이 땅에 붙어버린 양 돈 가방을 가슴에 꼭 껴안고 망연히 서 있기만 했다. 내 것이라곤 없다고 믿었던 인생이지만, 정말 그런지 확인하기 위해 뭉치로 찾은 돈이었다. 점멸하며 줄어들던 신호등의 초록색 세모가 세 개쯤 남았을 때, 길 건너 자동차 전시장 안에 서 있는 빨간 자동차가 눈에 확 들어왔다. 숨이 멎을 것 같았다.
며칠 전 이십 년 만에 엄마가 내 앞에 나타났다. 기억 속의 엄마가 아니었다. 성형이라도 한 것일까? 부드럽게 흐르는 뺨의 윤곽이 낯설었다. 유일한 엄마의 흔적인 높은 광대뼈가 내게는 있는데 정작 엄마에게는 없었다. 파란색 스키니진 위에 베이지색 가죽 재킷을 입은 엄마는 나이보다 젊어 보였다.
“너희들을 사랑했어, 지금도 사랑해.”
엄마가 말했다. 밥알이 너무 많아서 마시기 어려운 식혜처럼 사랑한다는 말이 목에 걸렸다. 엄마는 사채업자에게 쫓기고 있다면서 울었다.
이십 년 전 아버지도 사채를 썼다. 빚쟁이들이 들이닥쳤을 때 집에는 나와 동생들밖에 없었다. 나는 열두 살, 둘째는 여덟 살, 막내는 여섯 살이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집과 선산까지 저당 잡혀 사업자금을 끌어다 썼다. 둘째는 말을 잃었고, 막내는 엄마를 찾으며 울었다. 그때 어떤 것도 내 몫이 아니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스쳐 지나가지 않고 뇌리에 깊이 박힌 이 생각 덕분에 살아낼 수 있었다. 엄마도 아버지도 나타나지 않았지만, 원망은 하지 않았다. 그립지도 않았다. 가족이라는 단어 조차도 내 몫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얼마 전 고시원에 불이 났을 때도 이 생각의 덕을 보았다. 한 벌 뿐인 양복과 구두까지 모두 불탔지만 괜찮았다. 어차피 내 몫은 없는 인생이었다. 죽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찜질방에서 기거하며 단칸방을 꿈꾸었다. 동생들 공부도 다 시켰으니 나만의 공간 하나쯤은 가져도 된다고 생각했다. 코 고는 소리나 시도 때도 없이 들리는 발소리가 없고 햇볕이 잘 드는 방이면 충분했다. 열심히 돈을 모았다.
카톡 카톡.
두 달 뒤면 방 한 칸을 가질 수 있는데 엄마는 돈을 달라고 계속 보챘다. 자식 걱정을 하며 눈물로 밤을 지새우는 엄마 따위 역시 내 몫이 아니었다. 내 삶을 이끌었던 ‘내 몫이 아니야’를 수없이 되뇌었다. 내 몫 같은 건 원래 없었음이 분명했다.
약속 시간 삼십 분 전이었다. 엄마는 아직 오지 않았을 거다. 두 발이 이끄는 대로 나는 전시장 안으로 들어섰다. 자동차의 보닛을 쓰다듬는 순간 아름드리나무들 사이로 쭉 뻗은 길이 눈앞에 펼쳐졌다. 길은 에메랄드빛 하늘과 이어져 있었다. 소실점 너머 새로운 세상이 나타날 것 같았다. 빨간 자동차가 소실점을 향해 질주했다.
전시 상품이라서 할인 폭이 크고, 현금으로 결제하면 추가 할인도 된다는 직원의 말이 귓속에서 우우 윙 하고 울렸다. 머리가 뜨거워졌다. 원격으로 조종당하는 로봇처럼 가방의 지퍼를 열었다. 오만 원권 다발을 꺼내서 하나, 둘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여러 장의 서류에 서명했다.
전시장 밖으로 차를 뺀 직원이 내 손바닥 위에 키를 올려놓았다. 손안에 쏙 들어온 검은색 키가 제법 묵직했다. 엄마의 얼굴이 키 위에 어른거렸다. 나는 엄마가 했던 말을 되돌려 주었다.
- 사랑해요. 사랑한다고요. 사랑했어요.
운전석에 앉았다. 시동을 걸고 가속 페달 위에 발을 얹었다. 빨간 자동차가 미끄러지듯 차도로 내려섰다.
(미니픽션, 2019, 좋은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