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이성질체

[중편소설]

by 이현신

1


기차에서 내린 성민을 맞은 건 흙 내음이 섞인 서늘한 바람이었다. 이마를 덮는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며 성민은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걸었다.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오거리가 나왔다. 오거리와 처음 맞닥뜨렸을 때 몹시 당황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쪽으로 가 보기도 하고 저쪽으로 가 보기도 하며 한참을 헤매다가 농협은행이 자리한 곳이 오거리의 중심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요양원 가는 버스 정류장도 은행 앞에 있었다. 성민은 편안한 마음으로 은행 앞 돌 벤치에 앉아서 30분 간격으로 다니는 버스를 기다렸다. 지난 삼 년 동안 머물렀던 곳으로 기쁜 소식을 전하러 가는 길이었다.

몸피의 두 배는 됨직한 커다란 보퉁이를 이고 버스를 타러 오는 아낙네들이 많았다. 마지막으로 버스에 오른 성민이 뒤쪽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자 부르릉거리며 버스가 출발했다. 폭이 좁은 하천을 건너자 들판이 나타났다. 물 마른 빈 논은 황량했고 앙상한 우듬지 위에 앉아 있는 새는 쓸쓸하고 외로워 보였다. 산자락을 따라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버스가 천천히 달렸다. 시골 버스는 속도를 내지 않는다. 기사는 어느 승객이 어디서 내리고 어디서 타는지 이미 잘 알고 있어서 내린다는 신호를 하지 않아도 알아서 섰다. 낯선 승객은 대부분 ‘라파 요양원’ 앞에서 내린다.

요양원 간판 건너편에서 내린 성민은 서둘러 길을 건넜다. 작은 회오리바람이 무용수가 턴을 하듯 빙빙 돌며 허공을 비스듬히 가로질렀다. 좁은 도로 양편의 옥수수밭에서 황토 먼지가 날아올랐다. 지금은 빈 들판이지만 여름이면 사람 키보다 큰 옥수숫대가 열병식에 참여한 군인들처럼 빽빽하게 서 있었다. 성민은 지난여름과 지지난해 여름과 그 전해 여름을 떠올렸다. 대군을 사열하는 총지휘관처럼 고개를 빳빳이 든 채 옥수수밭 사이를 걷는 재미가 제법 좋았다. 옥수수밭을 지나면 고구마밭이다. 버려진 자투리땅에 요양원 원장인 우 목사가 고구마를 심었다. 붉은빛을 띠는 황토밭에서 자란 고구마는 크기는 작았으나 달고 맛있었다. 요양원 식구들이 한여름 내내 간식으로 먹을 만큼 소출도 넉넉했다.

고구마밭을 지나면 얕은 내리막이 시작된다. 완만하게 구부러진 길 끝에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직사각형 벽돌 건물 두 동이 서 있다. 건물 자체는 볼품이 없지만, 벽돌의 붉은색은 뒤편의 솔숲과 그런대로 조화를 이루었다. 왼쪽에 있는 건물은 식당과 남자 숙소고 오른쪽 건물은 예배당과 여자 숙소다. 성민이 처음 왔을 때는 식당 건물이 없었다. 예배당이 식당도 되고, 교육실도 되고, 회의실도 되고, 접견실도 되었다. 남녀 환자 숙소도 물론 같은 건물에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겨울이었다. 기말고사 때문에 밤잠을 설친 탓인지 음식을 삼킬 때 목이 뜨끔뜨끔했다. 통증이 귀 쪽으로 뻗치는 느낌이 들었을 때 성민은 편도선이 또 말썽이구나 싶었다. 감기약을 사 먹으며 기말고사 기간을 버텼다. 겨울방학이 시작되었으나 병원에는 가지 않았다.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맞아 친구들과 남해로 바다를 보러 갔다. 드넓고 푸른 바다를 보며 해변을 걷는 동안 통증은 사라졌으나 목구멍에 이물질이 걸린 느낌은 계속되었다. 집으로 돌아온 이후 목소리가 갈라졌다. 피곤해서 그런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성민의 쉰 목소리를 들은 아버지가 왜 진작 병원에 가지 않았느냐고 화를 내며 병원에 데리고 갔다. 이런저런 검사를 하고 결과를 기다렸다. 후두암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바로 수술 날짜를 잡았다.

환자복을 입은 성민은 주사를 놓으러 온 간호사에게 주치의를 불러 달라고 부탁했다. 무슨 수술을 하는지 의사에게 직접 듣고 싶었다. 반드시 들어야 했다. 아버지가 수술받는 게 아니지 않는가. 왜 당사자의 의사는 물어보지 않는가. 성민은 주치의에게 자신의 상태에 대해 최대한 자세하게 말해 달라고 했다.

“후두를 모두 절제하는 ‘후두전절제술’을 할 겁니다. 이 수술을 하면 후두의 중요한 기능들을 모두 잃게 되어 코나 입으로 숨 쉬는 것이 불가능하고, 정상적인 발성 기능도 정지됩니다. 목 앞에 구멍을 뚫어서 숨을 쉬고 발성도 식도로 해야 합니다.”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스프링 인형처럼 몸통 위에 얹힌 얼굴을 달랑달랑 흔들며 살아야 한다는 말 아닌가. 깊이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바로 병원을 탈출했다. 피시방에서 게임을 하며 며칠을 보내다 소주 한 병을 벌컥벌컥 마신 후 집으로 들어갔다.

“아버지. 도저히 수술 못 하겠습니다. 목 안의 기관을 모두 제거하면 어깨 위에 그냥 얼굴이 얹혀 있는 거잖아요. 그런 꼴로 살기 싫어요.”

태산처럼 무거운 침묵이 한동안 이어졌다.

“그래, 너는 어쩌고 싶으냐? 어쨌으면 좋겠냐?”

“검색해 보니 천연 치유로 암을 고치는 데가 있대요. 거기 가 보고 싶어요.”

그러라고 말하는 아버지의 눈빛이 휑했다. 엄마가 후두암으로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그날 알았다. 아버지가 서둘러 병원에 입원시켰던 이유였다. 성민은 유전이라서 암으로 죽어야 한다면, 그게 신의 섭리라면 그냥 죽어주겠다고 억지를 부렸다.

성민을 요양원에 데려다주며 아버지가 말했다.

“언제라도 돌아오고 싶으면 와야 한다. 너무 늦으면 안 된다.”

성민과 라파 요양원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라파는 치유하다라는 의미의 히브리어다.


2


언덕길을 내려온 성민이 식당으로 갈지 예배당으로 갈지 망설이는데 식당 쪽에서 고성이 들려왔다. 뒤이어 그릇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화들짝 놀라서 황급히 식당 안으로 뛰어들었다. 깨진 그릇과 쏟아진 음식 옆에 한 교수가 반듯이 누워 있었다. 원복 씨가 안절부절못하며 “교수님, 교수님”을 외치고 있었다. 밥을 먹던 사람들이 웅성대며 일어섰다. 목사님을 모셔 와야 한다며 뛰어가는 사람도 있고 한 교수 옆으로 다가가 몸을 흔드는 사람도 있었다.

한달음에 달려온 우 목사가 김 기사를 빨리 부르라고 말했다. 성민이 숙소 이 층으로 달려가서 김 기사를 데리고 왔다. 병원으로 가는 차에 성민도 함께 탔다. 김 기사가 급하게 차를 몰았다. 한 교수의 몸은 이미 축 늘어져 있었다.

펜 라이트로 한 교수의 눈동자를 살핀 의사가 이미 숨졌다고 말했다. 심폐소생술을 하기에도 늦었다며 사망 선고를 했다. 요양원을 거쳐 간 사람 중 죽은 사람이 훨씬 많지만, 요양원 안에서 사람이 죽은 건 처음이었다. 가족에게 사망 사실을 알려야 하는데 우 목사에게는 아무 정보가 없었다. 이름 석 자와 전직 교수였다는 거 외에 아는 게 없었다. 어느 대학에서 가르쳤는지조차 몰랐다. 우 목사는 암이나 불치병으로 온 환자가 아니라서 보호자나 가족에 관해 묻지 않았다고 했다.

성민과 김 기사가 한 교수의 다이어리 이너포켓에서 찾아낸 건 주민등록증과 신용카드였다. 이름은 한덕수, 나이는 65세. 그런데 빼곡하게 글씨가 적혀 있는 다이어리 어디에도 연락처가 적힌 주소록은 보이지 않았다. 옷장과 서랍도 뒤져보았다. 휴대폰이 없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다이어리에 전화번호 하나 없는 건 이해하기 어려웠다.

“쯧쯧,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인간미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인간하고 누가 친하게 지내려 하겠어. 여기서도 아무도 상대하려 들지 않았잖아.”

당뇨로 발가락을 두 개 자른 뒤에 요양원 일을 도우며 지내는 김 기사가 말했다.

“글쎄요, 나도 늘 혼자 있었잖아요. 나도 정나미 떨어지는 사람이었어요?”

“너는 환자였으니까. 그리고 열심히 농사도 짓고 설거지도 하고 했잖아. 이 인간은 사람들이 자기를 떠받들어야 한다고 여겼어. 그놈의 교수가 뭔지. 나는 배웠다는 인간들이 더 싫어.”

“가족이 있기는 있을까요?”

“모르지 뭐. 주민등록증 갖다주면 경찰에서 알아서 하겠지.”

“경찰요?”

“가족이 없으면 무연고자 되는 거잖아.”

성민은 늘 죽음에서 달아나려고 했기 때문에 주검에 대한 처리를 산 사람이 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무연고자라는 단어가 어쩐지 짠했다. 자신이 암 선고를 받았을 때보다 머릿속이 더 복잡했다.

성민과 우 목사는 한 교수의 주민등록증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머리숱이 많아서 그런지 훨씬 젊어 보였다. 작은 소읍이라 병원이든 파출소든 우 목사와 요양원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없었으므로 문제가 복잡해질 일은 없었다.

“네가 한 교수 방을 써. 사람이 죽어 나갔으니 누가 그 방에 가려고 하겠어.”

“기쁜 소식을 전하러 왔는데 이런 일이 생겨서….”

“하느님 뜻이지. 그분이 하시는 일을 우리가 어찌 짐작이나 하겠나.”

우 목사는 심리학 공부를 먼저 하고 신학을 해서 그런지 예수 믿고 천국 가자는 말 따위는 하지 않았다. 쌍꺼풀진 동그란 눈이 귀여워서 카리스마와 거리가 멀었지만, 아이처럼 맑고 투명한 그의 눈은 사람을 진솔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입소자들과 농담 따먹기도 잘하는 편이어서 인기도 있었다. 목회하려면 가족은 없는 게 낫다고 생각해 결혼하지 않았다고 했고, 예수님도 목수였다면서 요양원 건물을 손수 지었다.

요양원에서는 과거를 묻지 않는다. 너나 할 것 없이 목전에 닥친 죽음을 피하는 데만 관심을 기울인다. 요양원에 와서 많은 사람과 만나고 헤어졌다. 그리고 헤어진 사람 거의 전부를 다시 보지 못했다. 만나려는 의지나 만나고 싶은 욕망도 없었다. 성민 역시 끝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는 중이어서 타인에게 시선을 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끝이 아득하게 멀어졌다는 소식을 가지고 왔는데 뜻밖에도 한 교수가 죽었다. 한 교수는 엄밀한 의미에서 환자가 아니었으므로 모두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었다.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으나 어쩐지 서운하고 허망했다. 성민은 한 교수 방으로 짐을 옮겼다. 삼 년이나 있었기에 자잘한 짐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세수하고 자리에 누웠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한 교수의 다이어리를 펼쳐 들었다. 일기라기보다는 비망록에 가까웠다. 도피처를 찾아서 요양원에 왔다는 문장으로 시작되었다.

- 암에 걸리지도 않았고 불치병 환자도 아닌 내가 천연 치유 요양원에 온 이유는 은둔할 곳이 필요해서다. 서울이 싫다. 오래전에 이곳에 왔던 지인이 있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지명수배 중인 죄인일지라도 요양원에서는 편히 머물 수 있다고 했다. 요양원에 온 사람들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도 없고 인터넷도 하지 않아서 전쟁이 나도 모를 확률이 높다고 했다. 서울에서 벗어나야겠다고 결심했을 때 불현듯 지인의 말이 떠올랐다. 고혈압 약을 복용하고 있다고 말함으로써 입소 심사를 가볍게 통과했다. 나는 다만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스스로 선택한 고립이라는 말이다. 내 삶에 충실했을 뿐인데 아내는 내가 끔찍하게 싫다고 했다. 내가 얼마나 치열하게 나 자신을 채찍질하며 살았는지는 오직 나만이 안다. 나보다 부모를 잘 만났거나 머리가 좋은 인간들이 많았다. 언제나 그들의 등을 보며 달려야 했던 나는 하루의 목표, 한 달의 목표, 일 년의 목표를 세운 다음 목표를 달성하면 더 높은 목표를 세웠다. 놀이나 유흥은 즐긴 적이 없었다. 절제야말로 나의 가장 큰 무기였다.

- 나의 도덕성과 권위가 손상된 게 무엇보다 견디기 힘들다. 단 한 번 일탈했다고 해서 누가 내게 돌을 던질 수 있다는 말인가. 정말이지 그건 실수였다. 내 인생은 가족, 다시 말해 아내와 딸에게 바쳐진 인생이었다. 가정의 행복이 침해될까 두려워서 부모 형제와도 거리를 두었다. 아내가 나를 경멸할까 봐 두려웠고 존경받는 아버지가 되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 인생의 전부를 잃은 지금 나는 괴로움의 포로가 되어 있다. 성실하고 치열하게 살아온 내 곁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휴대폰도 없이 요양원에 숨어 살면서 죽어가는 사람들과 어울려야 하는 내 신세가 너무 가련하다. 이곳 사람들과 어울리기 싫다. 그들은 부박하고 나약하다. 대화의 결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귀담아들을 말도 없고 해 줄 말도 없다. 나는 가능하면 말을 섞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생존 투쟁이란 말은 성공하려고 애써야 한다는 의미일진대 여기 와 있는 사람들은 죄다 낙오자 같다. 그런데 나는? 나도 낙오자인가?

-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이곳의 자연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는 사실이다. 방안으로 은은하게 스며드는 소나무 향기는 마음을 가라앉히는 효과가 있다. 재재거리는 새들의 지저귐에 귀를 기울이거나 철 따라 피는 꽃을 보며 잠시 편안해지기도 한다. 건물을 조금만 잘 지었으면 한결 쾌적할 텐데. 햇빛은 잘 들지만 허술한 창틈으로 바람이 숭숭 들어오고 차음재를 쓰지 않았는지 방음도 잘되지 않는다. 돌이켜 생각하니 내 고향 마을도 이런 곳이었다. 솔밭과 햇빛과 새들이 있었다. 애석하게도 어린 시절에는 단 한 번도 고향 마을이 아름답다거나 머물고 싶다거나 하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언제나 고향을 떠나는 꿈을 꾸었다. 성공이란 고향에서는 이룰 수 없는 꿈이었으니까.

한 교수의 비망록은 시작부터 재미없었다.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병원으로 가고 오느라 고단하기도 했다. 내일 하루를 시작하려면 억지로라도 자 두어야 하는데 우 목사의 떨리던 눈빛이 계속 떠올랐다. 요양원 안에서 사람이 죽은 건 처음이라 그런지 몹시 심란해했다. 성민은 우 목사를 좋아한다. 그가 요양원을 차린 과정은 말 그대로 한 편의 드라마였다.

목사 안수를 받은 후 우 목사는 목회 방향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한다. 큰 교회의 월급쟁이 목사는 미래가 보장되긴 하나 결정권이 없고, 부흥사는 매력적이긴 하나 교회의 부흥은 전적으로 하느님 손에 달려 있다고 믿기에 부흥 전문가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교회를 개척하는 건 힘들어도 소신대로 사역할 수 있다. 어디서 어떻게 개척을 시작할지를 놓고 기도하던 중 마태복음 9장 6절과 7절 말씀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병자들을 돌보라는 계시라고 믿었다. 의학의 발전이 대단하다지만 여전히 불치병 환자들이 많고, 시한부 선고를 받은 사람들도 많다. 목표를 정하고 다시 백 일 기도를 시작했다.

초등학교 동창 모임에서 목회에 대한 포부를 밝힌 다음 날이었다. 중견 기업 사주의 아들인 친구가 찾아왔다. 친구는 실성한 고모 때문에 고민이라며 하소연했다. 초등학교 다닐 때 몇 번 본 적 있는 그의 고모는 어린 눈에도 참 예쁘고 고운 여자였다. 그 참한 분이 실성했다니… 믿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 형제들이 돌아가면서 고모를 돌보았는데 이제 한계에 도달했어.”

“고모님 주 증상이 뭔데?”

“집을 나가는 거야. 창문을 뜯고 탈출하기도 하고. 실종 신고를 몇 번 했는지 기억도 못 할 정도야. 전라도에서 발견되기도 하고, 강원도에서 발견되기도 하고. 폐쇄 병동에 입원시켜야 하나 의논 중이야.”

“왜 그리 되신 건데?”

“시어머니가 시집살이를 심하게 시켰다는데. 워낙 귀하게 자라서 그런지…, 모르지 뭐. 본인만 알겠지”

아들 넷 낳고 얻은 막내딸이라 부모님 사랑이 말할 수 없이 컸고, 오빠들도 여동생을 공주님 모시듯 했다고 한다.

“저기, 네가 우리 고모님 돌봐 드리면 안 될까? 환자들을 위한 목회를 하고 싶다며?”

“내가?”

“그래, 너라면 안심하고 맡길 수 있을 거 같아. 기도로 고치는 방법도 생각해 보았으나 혹시라도 나쁜 일을 당할까 무서워서 시도하지 못했어.”

“그런데 지금 아무것도 없어, 내 의지만 있지.”

“아, 그거는 걱정하지 마.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는 말이 있잖아. 방법은 내가 찾아볼게”

며칠 뒤에 친구가 귀가 솔깃한 제안을 했다.

“서해안에 할아버지가 남긴 땅이 있어. 소나무가 울창한 동산도 있고 밭도 있고 논도 있는데 한 5만 평쯤 돼. 외진 곳이라 논밭은 가묘를 관리하는 친척이 농사짓고 있어. 아버지가 솔숲이 있는 동산을 내주신다는데 한 번 가 볼래? 집 지을 수 있는 땅이야.”

우 목사는 당장 솔숲을 찾아갔다. 교통이 불편하고 외진 곳이었으나 햇볕이 잘 드는 동산 아랫자락은 포근하고 따뜻했다. 환자들을 돌보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 같았다. 그 자리에 엎드려서 하느님께 감사 기도를 올렸다.

친구 아버지가 집 지을 돈을 대 주겠다고 했지만, 정화조를 묻고 집터를 다질 때만 도움을 받았다. 하루도 쉬지 않고 인근 마을에 있는 버섯농장에서 날품을 팔았다. 반나절은 농장에서 일하고 오후에는 솔밭 아래 집을 지었다. 벽돌을 제외한 자재는 모두 재활용품을 썼다. 철거하는 집에서 창틀과 문짝과 판자를 얻어 오기도 하고 중고 자재상에서 사기도 했다. 사람이 들어가서 살 만한 공간을 완성하는 데 몇 달이 걸렸다. 버섯농장 주인과 다른 일꾼들의 도움이 컸다. 농장주는 트럭으로 자재를 운반해 주었고, 일꾼들은 벽돌을 쌓고 문짝을 달고 도배하는 일을 도와주었다. 완공된 붉은 벽돌집은 서툰 사람의 솜씨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엉성했고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방 세 칸과 예배당이 딸린 길쭉한 집이었다.

집을 다 지었다는 말에 친구가 내려왔다. 시멘트 자국이 들쭉날쭉한 벽돌집 꼴에 혀를 차면서도 가구와 강대상과 의자를 마련해 주고 고모를 모셔왔다. 고모가 탄 차에는 생필품이, 친구가 탄 차에는 식품이 가득 실려 있었다.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친구와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갔다.

고모는 낯선 분위기 탓인지 며칠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방안에 틀어박혀 있었다. 우 목사는 방문은 물론이고 현관문도 창문도 잠그지 않았다. 고모는 언제든지 집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그녀가 어디에 있든지 주님이 함께해 주십사 하고 기도만 열심히 했다. 신기하게도 고모는 저녁나절이 되면 벽돌집으로 돌아왔다. 찬란한 노을을 머리에 이고 올 때도 있었고, 초저녁 어스름 속을 걸어올 때도 있었다. 그녀는 우 목사가 차려주는 밥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우 목사는 어디로 가서 무엇을 했는지 묻는 대신 밝은 미소로 그녀를 맞았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갔다. 그녀의 실종신고를 하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


3


다이어리를 읽느라 잠을 설친 성민은 아침 일찍 주방으로 갔다.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한 교수의 죽음 때문인지 칼질하는 강 사장도 국솥을 휘젓는 봉사자도 어딘지 모르게 불안해 보였다.

“원복 씨는 어쩌고 있나?”

주방장 격인 신 여사가 물었다.

“글쎄요, 식당에 올까요?”

강 사장이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한 교수가 원복 씨와 다투다 쓰러졌으니 혹시라도 큰 충격을 받은 건 아닌지 걱정하는 말투였다.

원복 씨는 성민 다음으로 장기 체류하는 사람이다. 꼬챙이처럼 말라서 들어온 사람이었다. 이제는 제법 살이 붙어서 다 나은 것 같은데 요양원에 계속 머무르고 있었다. 그는 삼시 세끼 밥만 꼬박꼬박 챙겨 먹을 뿐 일손을 거들지는 않았다. 요양원 음식 중 제일 맛있는 게 밥이다. 밥 하나는 끝내주게 맛이 있다. 현미 쌀과 현미 찹쌀을 기본으로 하고 그때그때 식자재 창고에 있는 잡곡을 적당히 넣는다. 조, 흑미, 수수, 율무, 각종 콩과 무나 시래기 혹은 고구마나 옥수수가 들어가기도 한다. 구수한 냄새를 맡고 있노라면 집 나간 입맛이 돌아온다. 가끔 칼국수나 비빔국수가 나오기도 한다. 요양원에서 만드는 빵과 국수의 재료인 통밀은 재 너머 박 씨 아저씨가 대 준다. 그는 비료나 농약을 쓰지 않고 밀을 키운다. 담백하고 고소하게 입안을 감도는 밀가루 맛은 밥과는 다른 중독성이 있었다.

우 목사에게 휴대폰을 빼앗긴 유일한 사람이 원복 씨였다. 요양원에서는 인터넷 써핑도 금지였다. 휴대폰을 내놓으라는 우 목사의 말에 원복 씨가 눈을 치뜨며 대들던 장면이 지금도 눈에 선했다.

“인터넷 좀 할 수도 있는 거쥬.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살아유. 나는 할 거예유.”

“그래요? 답은 나왔네요. 규칙을 지키지 않으려면 당장 나가세요.”

“싫어유. 여기 있을 거여유. 나는 밥 해 먹는 일이 젤로 힘들어유.”

“나가든가 휴대폰 내놓든가 양단 가운데 하나를 택해요. 어서.”

한참을 망설이다 휴대폰을 내미는 원복 씨를 보며 사람들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일기 예보를 왜 봐요? 농사라도 지을 겁니까? 맑고 푸른 하늘도, 비 오는 날의 하늘도, 노을이 지는 하늘도 모두 아름답지 않습니까? 실바람은 실바람대로, 마파람은 마파람대로, 북풍조차도 그냥 즐기세요. 뉴스? 여러분이 안 봐도 세상 잘 돌아가니 신경 쓰지 마세요.”

우 목사가 단호한 목소리로 원복 씨를 나무랐다. 그날부터 원복 씨는 밥해 먹기 싫어서 요양원에 온 남자로 정의되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있다면서 보러 가지도 않았다. 성민은 원복 씨를 볼 때마다 ‘아버지 돌 떨어져유~.’ 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버지가 돌에 깔려 죽었다는, 충청도 사람을 희화화한 농담이 떠올랐다. 원복 씨는 식사 시간이 끝나도 식당에 오지 않았다.

“성민 씨가 함 가 봐. 한 끼라도 굶으면 큰일 나는 줄 아는 사람이잖아.”

신 여사가 밥과 반찬이 담긴 쟁반을 성민에게 건네며 말했다. 성민이 원복 씨 방으로 갔을 때 그는 이불을 덮어쓰고 누워 있었다. 밥 냄새를 맡으면 벌떡 일어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식사하세요.”

“아녀, 나 같은 건 죽는 게 나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이니께.”

“왜 그러세요.”

“한 교수가 날 무시하긴 혔어도 나이도 많은 사람헌티 그러면 안 되는 거였어.”

“무슨 일이 있었어요?”

“내가 밥을 서너 번 뜨니께 게으른 놈이 음식만 밝힌다더라고. 화가 나서 한소리 혔어. 밥 얻어먹으러 온 건 피차일반 아니냐고.”

“그랬더니요?”

“내가 거진 줄 아느냐며 소리를 지르더니 내 접시를 쳐서 바닥에 떨어뜨렸어. 화가 나서 뭐 이런 영감탱이가 다 있냐고 혔지. 그 말 듣더니 한 교수가 파르르 떨면서 나를 밀쳤어. 엉겁결에 나도 살짝 밀었는데 쓰러지더라고. 살짝, 아주 살짝. 맹세코 살짝. 그게 다여.”

“신 여사님이 원복 씨 좋아하는 반찬 챙겨줬어요. 천천히 드세요.”

성민은 쟁반을 놓고 나왔다.


4


방으로 돌아온 성민은 한 교수의 다이어리를 펼쳤다. 교수라는 직업과 달리 지독하게 가난한 환경에서 자란 모양이었다.

- 초등학교 다닐 때 육성회비를 가져오라며 집으로 쫓겨 간 게 몇 번인지 모른다. 갈색 봉투에 월별 칸이 있고 납부하면 담임 선생님이 도장을 찍어주었다. 빈칸이 즐비한 봉투를 들고 터덜터덜 걸어서 아무도 없는 빈집으로 가곤 했다. 한 학급에 60명가량 되었는데 나보다 빈칸이 더 많은 아이는 없었다. 마을 뒷산에 있는 절의 주지 스님이 돕지 않았다면 중학교도 못 다닐 뻔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한의사 선배가 주는 장학금을 받았다. 대학 때는 김밥 할머니 장학금을 받았다. 매일 매일 모질게 채찍질을 해도 수석을 한 적은 없었다. 언제나 한 끝이 부족했다.

- 나의 성실함을 높이 평가한 학과장이 나를 사위로 삼았다. 결혼할 때 본가에서 받은 건 항아리 세 개가 전부였다. 된장도 간장도 고추장도 빛깔이 검고 짰다. 어느 날 보니 베란다의 항아리가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본가에서 받은 유일한 것이 사라졌으나 조금도 서운하지 않았다. 서운하기는커녕 속이 시원했다. 내용물과 항아리를 버리느라 아내가 고생했다고 생각하니 미안하기까지 했다. 명절에도 고향 집에는 가지 않았다. 가기 싫었다. 유일하게 대학을 나온 사람, 유일하게 서울에서 사는 사람, 집안을 일으킬 사람이라는 기대가 버거웠다. 누나는 나를 돌보느라 초등학교도 못 갔다고 했고, 고졸인 두 형은 학비를 보탠 것을 들먹였으며, 동생은 자신을 돌보지 않았다고 원망했다. 이 모든 말을 아내가 듣는 게 싫었다. 내게는 수치와 치욕으로 가득 찬 과거일 뿐이었다. 과외는커녕 참고서 한 권 사지 못하고 순전히 내 힘으로 공부했는데 그들이 무슨 권리로 내게 이런저런 요구를 하는가. 마침내 나는 중산층이 되었다. 강남에 아파트도 마련했고, 외제 차와 골프장 회원권도 샀다. 교수님 소리를 들으며 심포지엄이나 포럼에 참가했다. 나는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행복했다.

전형적인 자수성가 스토리? 행복했다면서 왜 혼자 요양원에 왔을까. 열심히 살았다는 건 알겠는데 그래서 뭐가 어떻다는 건지. 성민은 다이어리를 덮었다.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우 목사였다.

“박 순경이 전화했는데 한 교수 주민등록 주소지는 빈집이래.”

“빈집이라면 아무도 안 산다는 말인가요?”

“그렇대, 전기 수도 끊긴 지도 오래되었다네.”

“가족을 어떻게 찾죠?”

우 목사의 얼굴에 근심이 서렸다.

“네가 서울에 함 가 봐. 동네 사람도 만나보고. 혹 무슨 소식이라도 들을지 모르잖아.”

요양원을 나서는 성민에게 신 여사가 도시락을 건넸다. 음식 솜씨도 솜씨지만 치료에 대한 신념이나 열정도 대단한 그녀였다. 그녀의 남편인 최 씨가 요양원의 두 번째 손님이었다. 첫 번째 손님이라고 해야 하려나? 고모를 손님이라고 하는 건 어폐가 있다. 요양원 사람들은 모두 그녀를 고모라고 부른다. 요양원이 고모의 아버지 땅에 지어진 사실도 알고 있다. 언젠가 그녀가 올바른 정신을 찾게 되면 진짜 원장이 될지도 모른다. 신 여사는 우 목사가 날품을 팔았던 버섯 농장주의 여동생이고 최 씨는 그녀의 남편이었다.

최 씨가 산소호흡기를 달고 구급차에 실려 왔을 때 우 목사는 깜짝 놀랐다. 버섯 농장주가 매제를 돌보아 달라고 부탁했을 때 산소호흡기에 의지할 만큼 중환자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냥 간이 좀 나쁘다고만 했었다. 그런데 그의 배는 만삭의 여자 배보다 불렀다. 그를 방에 뉘어 놓고 우 목사는 하느님께 물었다. 도대체 저더러 어쩌라는 말씀입니까? 하고. 황망해서 한참을 앉아 있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환자는 그렇다 치고 아내는 물이라도 마셔야 할 거 아닌가. 죽염 녹인 물을 생수병에 담아서 가지고 갔다. 말없이 물병을 방 안으로 들이밀고 예배당에 가서 오랫동안 기도했다.

“아버지, 제게는 아무 능력이 없습니다. 아버지께서 알아서 해 주십시오. 아버지가 하셔야 됩니다. 저 사람이 죽으면 저는 다른 길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면 고모는 어찌합니까? ‘소자야,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고 하셨던 것처럼 저 사람도 일어나게 해 주십시오….”

기도를 마치고 환자를 보러 간 우 목사는 차마 들어가지 못하고 방문 앞에서 동정을 살폈다. 울음소리와 말소리가 섞여서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는 웅얼거림이 들렸다. 내용을 파악할 수 없었으나 분명히 환자의 목소리였다. 한참을 서 있다가 다시 예배당으로 갔다. 엎드려서 기도하는 중에 눈물이 쏟아졌다. 실컷 울고 나니 환자와 아내에게 저녁을 먹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밥을 하고 국을 끓이면서 환자에게 음식을 먹여도 되는지 몰라서 걱정되었다. 아내라도 먹여야지 싶어서 상을 차려서 들고 갔다. 노크하고 방문을 열었다. 우 목사는 자신이 헛것을 본 게 아닌가 싶어서 한발 물러섰다. 환자가 방 한가운데 떡 하니 앉아 있었다. 산소호흡기를 떼면 죽지나 않을까 걱정했는데‥‥. 누워 있기도 힘든 사람이었는데.

“목사님, 이 사람 살 거 같아요.”

환자의 아내가 소리치며 벌떡 일어나 상을 받아들었다. 우 목사는 신발도 벗는 둥 마는 둥 하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감사합니다. 목사님 정말정말 감사합니다.”

환자가 울먹이며 말했다.

“목사님이 물병을 가져다주셨을 때. 아, 물이나 실컷 마시고 죽으라는 거구나 생각했습니다. 진짜로 죽는 순간이 왔다고 생각하니 지나간 일들이 머리를 스치더군요. 잘못한 일부터 떠올랐습니다. 회개라도 하고 가야 벌을 덜 받지 않겠습니까?”

우 목사가 문밖에서 엿들은 건 그가 회개하는 목소리였다. 잘못을 다 고하고 용서해 달라고 말한 다음 그는 벌컥벌컥 단숨에 물 한 컵을 마셨다고 했다.

“병원에 있을 때는 약이 목구멍으로 넘어가기만 하면 간호사가 입 안에 남아 있는 물을 뱉으라고 했거든요. 물 한 모금 시원하게 마셔보는 게 소원이었어요.”

“그래서요?”

우 목사가 다급하게 물었다.

“눈을 감고 이제나저제나 하고 숨이 끊어질 순간을 기다렸어요. 그런데 요의가 느껴졌어요. 저 사람한테 오줌이 나올 거 같다고 했어요. 저 사람도 긴가민가한 얼굴로 부축을 하더군요. 나올 듯 나올 듯 하면서도 금방 안 나오더라고요. 변기 앞에 한참을 서 있었어요. 안 나오나보다 하고 포기하려는데 찔끔거리며 오줌이 방울방울 나오더라고요. 그러다 약하게나마 졸졸졸 이어져 나오는데 얼마나 기쁘던지. 물을 조금 더 마시고 누웠어요. 그런데 금방 또 마려운 거예요. 이번엔 아까보다 더 많이 나왔어요. 물을 또 마셨어요. 나오는 오줌량이 점점 많아졌어요.”

그는 오줌을 누지 못한 지 오래라 감각조차 잊고 있었는데 오줌이 나오더라며 활짝 웃었다.

“이이가 오줌을 콸콸 누는 거예요.”

아내가 끼어들었다. 그러고 보니 1.8L짜리 생수병이 거의 비어 있었다.

“아니, 그 물을 혼자 다 마셨어요?”

“마신 물보다 훨씬 많은 오줌이 나온 거 같습니다.”

보기에도 그의 배가 조금 꺼진 거 같았다. 손가락으로 눌러보니 바람을 잔뜩 넣은 풍선처럼 빵빵하게 부풀어 있던 배에 탄력이 느껴졌다.

“산소호흡기 없이는 숨을 못 쉬는 거 아니었나요?”

“아, 집에 도착하기 전에 죽으면 병원 책임이니까 그리 한 거 같아요. 병원에서는 산소호흡기 안 달았어요.”

우 목사는 그 자리에 엎드려서 하느님께 감사 기도를 올렸다. 너무 감사해서 눈물이 났다. 환자도 울고 아내도 울었다. 아침 일찍 달려온 버섯 농장주의 눈에서도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이런 일이 있으려고 목사님이 우리 농장에 오셨나 봅니다. 무모한 사람이라 여기면서도 어쩐지 돕고 싶었어요.”

농장주는 지금까지 요양원에 버섯을 대고 있다. 살아난 환자 최 씨는 시설을 관리하고, 아내인 신 여사는 주방을 맡았다. 그 세 사람이 성민이 요양원에 머무는 이유가 되었다. 성민이 의지할 것 역시 기적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최 씨 사건 이후 요양원에 가면 병이 낫는다는 소문이 퍼졌고 환자들이 몰려왔다. 방이 더 필요했다. 우 목사는 방을 4개 더 넣었다. 그래도 부족해 2층을 올렸고, 나중에 한 동을 더 지었다. 처음 지을 때처럼 직접 벽돌을 쌓고 문을 달고 벽지를 발랐다. 거드는 손이 많아서 빨리 완공할 수 있었다. 아픈 사람들일수록 일을 거들고 싶어 했다. 존재의 소멸을 미루려는 것처럼. 생존을 확인하려는 것처럼.

보기에 아름답지 않은 건물이었지만 불평하는 사람은 없었다. 한 교수만 빼고.


5


기차 안에서 성민은 유족을 만나면 주려고 챙겨 온 한 교수의 다이어리를 꺼내 들었다. 사람을 지칭하는 명사나 이름부터 찾기 시작했다. 아내와 정인이라는 단어가 제일 많이 나왔다.

정인이는 어렸을 때는 호기심이 많아서 귀찮을 정도로 많이 물었고, 구걸하는 사람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으며 대학 재학 중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한 자랑스러운 딸이라고 적혀 있었다. 성민은 한정인이라는 이름을 되새기며 한 교수의 집이 있는 동네로 갔다.

단독 주택과 연립 주택이 섞여 있는 동네였다. 몇 안 되는 단독 주택 중 하나가 한 교수 집이었다. 도로 쪽에는 굳게 닫힌 주차장 셔터가 있고, 담장 너머엔 절규하듯 하늘을 향해 가지를 마구 뻗친 향나무가 있었다. 정원을 가꾸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골목 초입에 있는 부동산에 가서 저 집에 누가 사는지 물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남자가 빈집 된 지 일 년이 훨씬 넘었다고 말했다.

“저 집 아저씨가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가족을 만나러 왔어요.”

성민의 말에 남자의 눈빛이 달라졌다.

“죽었다고? 언제? 왜?”

“자세한 건 말씀드리기 어려워요. 가족을 아는 분이 있으면 말할게요.”

남자가 어딘가로 전화했다. 잠시 뒤에 중년 여인이 부동산으로 들어왔다.

“이 청년한테 한 교수 집 이야기 좀 해 줘. 그 인간이 죽었다네.”

여인이 조용한 곳에 가서 이야기하자며 부동산을 나섰다. 대로변에 있는 카페에 들어간 여자가 아메리카노 두 잔을 시켰다. 성민은 한 교수가 뇌출혈로 숨졌다고 말했다. 경찰에 가족을 찾아달라고 했지만, 집은 비어 있고 딸은 사망신고가 되어 있으며 부인의 행방은 묘연하다고 해서 찾아왔다고 했다.

“죽었다니 사연을 숨길 필요 없지. 그 집이 흉가야. 터가 좋은 집으로 소문났었는데 딸이 자살하는 바람에 흉가가 되었어. 사모님도 집을 나갔고. 어느 날부터 한 교수도 안 보이더라고. 이상한 건 매물로도 전세로도 그 집이 나오지 않았다는 거야. 부동산을 하다 보니 온 동네 사정을 내가 잘 알거든.”

한 교수가 바람이 났고, 그 일로 딸이 자살했다는 내용이었다. 성민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바람피우는 사람이 한두 사람이 아닐 텐데 아버지의 외도 때문에 딸이 자살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사모님을 어디 가서 찾죠?”

“글쎄. 절에 들어갔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아 잠깐만.”

여자가 어디론가 전화했다.

“지리산 뱀사골에 정각사라는 절이 있다네. 거기 가서 석 보살에 관해 물어보래. 그 사모님 성이 석 씨야.”

“경찰에서는 왜 못 찾았을까요?”

“절간을 떠돌아다니는 사람을 어찌 찾나? 그 집이 수월찮게 나갈 거야. 대지가 넓잖아. 이혼하지 않았으니 사모님이 상속받겠네.”

“아마도 그렇겠죠. 그런데 먼저 장례를 치러야 하니까요. 못 찾으면 무연고자인 셈이라.”

성민은 고맙다고 말하고 일어섰다. 일단 남원으로 가서 자고 뱀사골로 가기로 했다. 고속버스에 앉아서 잠시 졸았다. 어젯밤에 푹 자지 못했다. 짧은 잠에서 깬 성민은 다이어리를 계속 읽었다.

- 절간도 아닌데 요양원 식사는 완전 채식이다. 간장, 고추장, 된장도 쓰지 않는다. 곰팡이가 생산하는 2차 대사산물인 아플라톡신이 있을까 해서라는데 일리는 있으나 맛은 없다. 환자들 천지니 어쩌겠는가. 내가 이해하기로 한다. 된장, 고추장, 간장의 원료인 메주가 혹시라도 오염되면 나쁜 곰팡이가 핀다. 나쁜 곰팡이가 내는 독소 중 하나가 아플라톡신이다. 아플라톡신이 간암의 유발인자이고 신장과 신경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다. 당뇨병 같은 질병의 원인이 또 다른 곰팡이 독소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고 있다.

- 볶은 콩에 죽염을 넣고 갈아서 간장 대신 쓴다. 어떻게든 맛을 내야 하니 아몬드, 땅콩, 캐슈넛, 호두, 참깨, 들깨, 아마 씨 같은 씨앗이나 독특한 향을 가진 허브로 소스를 만든다. 제철 토마토를 삶아서 병조림을 만들어 두고 일 년 내내 쓴다는데 비빔국수의 붉은색도 토마토 몫이다. 토마토가 밭에서 나는 황금이라 불린다지만 스파게티도 아니고 토마토 비빔국수라니. 김치 한 조각 없이 닝닝한 국수를 먹어야 한다. 굶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때도 신 여사가 난리칠 게 뻔해서 꾸역꾸역 먹는다. 주방장에게 밉보이면 안 된다.

- 농약이나 비료를 쓰지 않고 농사짓는 사람이 근처에 꽤 많다고 한다. 판로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요양원 부엌에서 요리법을 배워가기도 하고 새로운 요리법을 알려 주기도 한다. 저녁 식사는 끼니라는 이름을 붙이기 민망할 정도다. 아기 주먹만 한 통밀빵 두 개에 두유 하나, 아니면 잡곡으로 끓인 죽 한 공기에 과일 한 쪽이 전부다. 나는 죽을 싫어한다. 아무리 아파도 밥을 먹어야 한다.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죽이 나오는데 그때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흰 쌀밥은 일 년에 서너 번 먹는 별식이었다. 멸치도 넣지 않고 끓인 수제비나 멀건 죽이 주식이었다. 죽 그릇을 볼 때마다 고문을 당하는 기분이다.

- 요양원에서 제일 이상한 인간은 정 선생이다. 고등학교에서 화학을 가르쳤다는데 비타민을 물에 타서 식물에 뿌린다. 비타민 녹인 물을 뿌린다고 해서 식물의 비타민 함량이 높아지는 건 아니다. 그가 재배한 잎채소는 물방울이 도르르 굴러 내릴 정도로 싱싱하기는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는 쓸데없는 일에 돈을 쓰고 있다. 우 목사의 스승이라는데 어떤 계기로 환자를 위한 채소를 키우기 시작했는지는 나도 모른다. 호리호리한 몸매와 큰 키 덕분인지 삿갓을 쓰고 작업복을 입은 그의 모습은 상당히 봐줄 만하다. 나도 한때 저렇게 멋진 모습을 가진 적이 있었다. 머리카락이 빠지지만 않았어도 지금도 꽤 괜찮은 모습이련만.

- 정 선생의 아내인 순녀 씨도 남편 못지않게 기이하다. 하루 두 번 녹즙을 짜서 환자들에게 먹인다. 환자들은 아침밥을 먹기 전에 녹즙을 마시고 저녁 식사 전에 또 한 번 녹즙을 마신다. 나도 공짜니까 열심히 마신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지 않는가. 그녀의 키는 150cm를 겨우 넘는다. 작은 체구 어디에서 힘이 나오는지 엄청난 양의 잎채소와 뿌리들을 씻고 갈고 짠다. 내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한 잔에 오천 원 정도를 받는 곳이 많았다. 일이천 원이라도 받아서 귀한 종자도 사고 살림에 보태도 되련만. 남편이 제정신이 아니면 아내라도 정신 차려야 하는 거 아닐까. 부창부수라더니. 우 목사도 그렇고 하여간 여기 있는 사람들은 루저가 되기에 딱 알맞은 성품을 가졌다.

성민은 루저라는 단어를 보는 순간 피가 거꾸로 솟구쳐 올랐다. 정 선생님을 만나면 교과서에서 배우지 못한 지식을 얻게 되어 즐거웠다. 녹즙용 잎을 딸 때였다. 따야 할 것과 따지 말아야 할 것을 구별하는 게 몹시 어려웠다.

“이파리들이 비슷비슷해서 구별이 어려워요. 적당히 따면 안 되나요?”

“환자한테 먹이기 때문에 특히 주의해야 해. 음식 궁합이라는 말 들어봤어?”

“네, 돼지 수육을 새우젓에 찍어 먹는, 그런 거 아닌가요?”

“맞아. 새우젓에 있는 프로테아제가 단백질 흡수를 돕거든. 반대도 있어. 자몽주스, 오렌지주스 같은 과일주스는 알레르기 약의 흡수를 방해하지. 보기에는 비슷비슷한 저 이파리들이 제각각 다른 성분을 가지고 있어. 이것저것 함부로 섞어 먹이면 안 돼. 잘못 섞으면 몸속에서 청산가리가 생기기도 해.”

“헐, 정말요?”

“탈리도마이드라고 입덧도 완화시키고 잠도 잘 와서 임산부에게 많이 처방한 약이 있었어. 어떤 나라에서는 처방전 없이도 살 수 있었지. 그런데 갑자기 사지의 윗부분은 정상인데 아랫부분의 발육이 부진하거나 사지가 없는 아이들이 태어난 거야. 거울상 이성질체가 태반을 통과해서 태아에게 영향을 미친 거지.”

“헉, 그게 뭔데요?”

“분자식은 같은데 거울에 비춘 것처럼 정확하게 대칭성을 지니는 물체지. 하나는 약이 되고 하나는 독이 돼. 인공 감미료인 아스파탐 알지? 아스파탐의 거울상 이성질체는 맛이 써.”

“아, 신기하네요.”

“뭔가를 먹여서 사람을 치료하려면 반드시 이런 걸 공부해야 해. 촉매나 효소, 자외선 등의 영향으로 이런 이성질체가 생기는데 탈리도마이드는 동물실험에서는 문제가 없었어. 사람 몸속에서 화학반응이 일어나 이성질체가 생긴 거지. 문제가 커진 뒤에 동물실험을 다시 했더니 특정 품종의 토끼에서만 기형이 생겼대.”

성민이 지식의 유용함을 처음으로 깨달았던 순간이었다. 모름지기 사람은 배워야 한다. 아는 것이 힘이다. 한 교수의 지식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지만 정 선생님만큼 사람들에게 유익하지는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한 교수에게는 연민이 없다. 순녀 씨가 몸빼에 모자도 쓰지 않고 종일 밭에서 일하는 건 남편이 하는 일을 돕기 위함이다. 까맣게 그은 얼굴로 종종거리며 바쁘게 움직이는 그녀를 볼 때마다 저 여인은 남편을 진짜 사랑하는구나. 생각했다.

정 선생이 어떻게 작물을 키우는지 알기 때문에 성민은 시중에 나와 있는 유기농 농산물을 믿지 않는다. 진짜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지으면 마트에 내놓을 만큼 많은 양을 생산할 수 없다. 정 선생 같은 사람의 정성 덕분에 자신이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다. 성민은 한 교수의 죽음으로 경황이 없는 와중에도 정 선생에게 달려가서 인사를 드렸다.

“선생님 사랑을 정말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살아난 겁니다.”

“뭔 말을 하는 거야. 자네가 최선을 다한 거지. 축복은 내가 주는 게 아냐. 하느님이 주시는 거야. 기관차 뒤에 매달린 객차들 봤지? 그렇게 끊임없이 축복을 주실 거야. 믿지?”

“흐흐 비유도 낭만적으로 하시네요. 알았습니다. 믿을게요.”

“잘 왔어. 그러잖아도 일손이 필요했어. 버섯농장에서 배지 얻어 와서 밭에 뿌려야 해. 알지?”

정 선생님과 재회의 기쁨을 제대로 누리지도 못하고 절에 와 있다. 한 교수의 죽음으로 분위기가 뒤숭숭해서 정 선생님의 일을 도울 사람이 있을지 걱정되었다. 하루빨리 석 보살을 만나서 함께 돌아가야 했다.

예전에는 표고버섯을 참나무에 키웠다면 요즘은 배지에 키운다. 배지는 참나무와 각종 영양소, 표고버섯 포자를 뭉쳐 놓은 원통형의 막대다. 잘 부서지기 때문에 조심조심 다뤄야 한다. 수명을 다한 배지를 트럭에 싣고 와서 삽으로 으깨 흙과 섞은 다음 일정한 간격으로 일정한 양을 밭에 뿌리려면 품이 많이 든다.

퇴비 만드는 일도 보통 힘든 게 아니다. 장마가 지나간 한여름에 외양간 청소를 해 주고 소똥을 가지고 온다. 작열하는 땡볕이 기생충과 잡균을 죽이기를 바라며 아스팔트 위에 널어서 바짝 말린다. 단단해진 소똥을 삽날로 두드려서 부스러뜨린 다음 등겨, 깻묵, 채소 발효액, 물과 잘 섞어 준다. 바닥에 볏짚을 깔고 반죽을 쌓은 다음 가끔 뒤집어주면서 발효시켜야 한다.

정 선생은 밭에 비닐도 씌우지 않는다. 피복기로 간단하게 씌울 수 있고 잡초를 뽑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는데도 불구하고 결단코 비닐 쓰기를 거부한다. 매년 밭에서 나오는 검은 비닐의 양이 어마어마한데 땅에 묻으면 썩지 않고 태우면 유해 물질이 나오니 안 된다고 한다. 잡초라는 적이 있어야 약초의 생존 본능이 강해진다는 신기한 주장도 한다. 무엇보다 성민의 귀가 솔깃했던 건 식물도 서로 소통하며 산다는 말이었다.

“큰 홍수가 나는 해에는 말이야, 둔치에서 자라는 식물들이 모두 키가 훌쩍 커지거든. 물억새도 클로버도 쇠뜨기도 모두. 서로 정보를 주고받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 아니겠어?”

밭고랑 사이에 쪼그리고 앉아서 잡초를 뽑는 환자들에게 정 선생이 늘 하는 잔소리가 있다.

“이거 봐, 한낱 풀도 이렇게 살려고 애쓰잖아. 하물며 사람이 쉽게 자기 목숨을 포기하면 안 되지. 잘라 내도 잘라 내도 남은 몸으로 땅을 파고드는 잡초처럼 끈질겨야 해.”

사람들은 병이 들어서야, 목숨이 경각에 달려서야 하찮은 일을 하기 위해 몸을 내던진다. 몸을 움직이는 일이라면 치를 떨 정도로 싫어했던 과거를 잊은 듯 말이다. 비싼 돈을 내고 헬스클럽에 가면서도 차를 탔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대신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를 탔으며, 뱃살을 걱정하면서도 삼겹살을 즐겼던 사람들이 요양원에서는 무슨 일이든 돕지 못해 안달한다. 남자들이 특히 그렇다. 부엌에 들어가서 국솥을 주걱으로 젓는 남자도 있고, 수돗가에 쪼그리고 앉아서 나물을 씻는 남자도 있다. 성민도 그랬다. 집에서는 부엌일이든 빨래든 청소든 해 본 적이 없었다.

식사 시간마다 불평을 쏟아내던 사람도 정 선생이 농사짓는 모습을 몇 번만 보면 생각이 바뀌었다. 바깥세상에서는 맛보기 힘든 귀한 채소라는 걸 모두 믿었다. 일 년 열두 달 쌈 채소가 식탁에 오르는데 아삭하게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당근, 무, 배추는 달콤해서 자연의 단맛을 느끼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몇몇 나물을 제외하고 모두 날것으로 먹는다. 간장, 고추장, 된장을 쓰지 않는데 젓갈을 쓸 리 없다. 그러니 김치도 없다.


6


한 교수는 얼굴에 핏기라고는 없는 여자 입소자에게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홍 장로를 지저분한 털보라고 부르며 질투하듯 써 놓았다.

- 그녀와 닮은 여자가 요양원에 왔다. 여자는 죽은 사람처럼 창백한 얼굴로 걸어 다닌다. 나는 여자를 ‘창백한 수’라고 부르기로 했다. 지저분한 털보가 잠시도 쉬지 않고 수의 뒤를 따라다니는 통에 말 한 번 붙여보지 못했다. 수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내 눈은 수를 향하고, 내 코는 수의 체취를 맡기 위해 벌름거린다. 희다 못해 푸른빛이 도는 수의 손을 내 두 손으로 따뜻하게 데워 주고 싶다. 수의 시선은 늘 허공을 향하고 있다. 어떤 사람과도 눈빛을 교환하지 않는다. 여자들이 수를 건방지다고 흉본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도 여자들의 질투심은 사그라지지 않는 모양이다. 속물들 같으니라고.

- 털보는 서울대학교 출신이라는 걸 내세운다. 겸손이 뭔지 모르는 인간이다. 털보 입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면 어느 대학을 졸업했는지 사람들이 어떻게 알겠는가. 겨우 학부만 나온 주제에. 나야말로 서울대 출신이라는 말을 붙이기에 딱 알맞은 사람이다. 박사까지 했고 가르치기도 했으니까.

- 수를 보면 그녀가 생각난다. 나를 나락으로 빠뜨린 여자. 루저 집합소인 요양원에서 숨어 살게 만든 여자. 창백한 수와 달리 그녀는 뺨이 붉었다.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그녀의 뺨이 불꽃보다 더 붉어졌었다. 입술을 앙다문 채 그녀가 돌아섰을 때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현실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처라고 믿었다. 등산 동아리에서 그녀를 만났다. 딸 또래의 젊은 독신 여자였다. 자유분방했고 술도 잘 마셨으며 노래방에서도 차례가 돌아오면 빼지 않고 마이크를 잡았다. 교수님, 교수님, 하면서 내게도 살갑게 굴었다. 단둘이 설악산과 지리산에 올랐다. 산을 타는 내내 짜릿한 흥분에 젖어 들었다. 그러나 그녀를 스쳐 간 남자가 한둘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경악했다. 산을 타는 게 목적이 아니라 마음에 드는 남자를 찍어서 즐기려고 온다는 소문이었다. 내가 표적의 하나가 되었다는 사실에 모욕감을 느꼈고 부정하고 불결한 여자의 마수에 걸려들었다고 생각하니 울화가 치밀었다. 룸살롱에서 만나는 아가씨들과 다를 게 무언가. 방탕한 그녀 때문에 도덕적인 내 삶에 오점을 남겼다. 그녀의 전화번호를 수신 차단 목록에 넣었다.

- 나는 현실적인 사람이고 ‘지금 여기’를 중요하게 여긴다. 현재의 내 존재, 내가 머무는 이곳, 내가 하는 일,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관심이 쏠릴 뿐 거대 담론이나 추상적인 관념에는 관심이 없다. 지금도 그렇고 과거에도 그랬다. 눈앞의 목표를 따라 열심히 매진하는 하루를 보내는 것 이외에 다른 사안에 눈을 돌리지 않았다. 어머니는 잘난 아들인 나를 각별히 아끼셨다. 멀리 떨어져 계신 어머니, 고생하시는 어머니가 생각날 때마다 흐느껴 울면서도 현실에서는 언제나 냉정했다. 눈물을 흘리기는 했어도 의무감이나 끈끈한 혈연의 고리에 엮여 갈등하지는 않았다.

- 현실적인 사람이 승자가 된다. 역사가 이 진리를 증명한다. 사마천은 약삭빠르고, 눈치코치 빠르고, 마른자리만 골라 앉는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에 대해 ‘이것이 하늘의 뜻인지 정말 모를 일이다’라고 한탄했지만, 그건 사마천이 세상 이치에 무지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껏 견지한 내 삶의 태도를 바꿀 의향이 없다. 그런데 내가 모든 걸 바쳤던 처자식이 나를 괴롭힌다. 고뇌의 심연에서 허우적거리게 만든다. 정인이. 내 딸. 내가 정인이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신이 있다면 알리라.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주었고 줄 예정이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부끄럽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녀로부터 무슨 말을 들었건 해서는 안 되는 선택이었다. 그녀가 낳은 아이는 내 아이가 아니다. 이 남자 저 남자와 자고서 내 아이라고 우기다니.

- 정인이는 나를 닮지 않았다. 그 애는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다. 그녀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오류를 저질렀다. 정인이가 사랑에 빠진 녀석이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정인이가 죽은 후에 알았다. 그 자식을 죽여 버리고 싶다. 정인이는 그녀처럼 아무 남자하고나 자는 헤픈 여자가 아니다. 나는 슬프다기보다 화가 난다. 아내도 마찬가지다. 아내를 편안하게 해 주기 위해 부모 형제와 인연을 끊다시피 했는데 그런 내게 이혼을 요구했다. 나 때문에 정인이가 죽었다고 악을 썼다. 내 사전에 이혼은 없다고 하자 위선자라고 소리치고 집을 나갔다. 내가 왜 위선자인가. 내 가정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인데 내가 왜 비난받아야 하는가. 서울에서 벗어나면 고통이 줄어들 줄 알았다. 세상과 격리되어 있어서 좋기는 하지만, 낙오자들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려니 나도 루저가 된 거 같다. 낙오자. 패배자, 루저라는 소리가 방 안을 떠돈다. 모두 내 인생에 끼어들어서는 안 되는 단어들이다.

한 교수가 말하는 창백한 여자가 묵게 될 방을 성민이 청소했었다. 입소자가 오면 반가워야 하는데 완치되어서 나가는 사람보다 죽기 위해 나가는 사람이 더 많아서 늘 마음이 무거웠다.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었다더라. 라는 소문만 바람결에 들려왔다.

창문을 열어서 환기를 시키며 성민은 이 방에 들어오는 여자가 꼭 살아서 나가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거실도 청소했다. 모여서 수다 떠는 게 여자들의 낙임을 알기에 우 목사는 남자 숙소보다 여자 숙소의 거실을 더 크게 지었다고 했다. 대형 소파와 전신 거울은 고모의 오빠들이 기증했다. 그들은 매년 기부금을 내고 필요한 생필품도 공급했다. 성민은 거실의 거울까지 말끔히 닦아 두고 접견실로 갔다.

약간 마른 몸매의 여자가 접견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피부는 창백하다 못해 푸른빛인데 눈동자는 갈색이었다. 적당히 웨이브 진 머리카락이 어깨를 덮고 있었고 쌍꺼풀진 큰 눈과 오뚝한 콧대와 윤곽이 또렷한 입술을 가졌다. 얼굴만 보면 소녀 같았다. 성민이 여자의 캐리어를 들려고 하자 여자가 캐리어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제가 들고 갈게요.”

완력으로 캐리어를 빼앗아 든 성민이 마당을 가로질러 여자 숙소로 가며 말했다.

“일 층은 식당입니다. 5시 30분부터 저녁 배식을 하니 잊지 말고 내려오셔야 해요. 여기는 아무것도 먹을 게 없어요. 무인도 같은 곳이랍니다.”

여자의 대답이 없어서 성민은 오히려 더 수다스러워졌다.

“공기 하나는 끝내줍니다. 창문을 열어두면 솔향기가 방안을 채울 겁니다.”

이 층 제일 끝방이 여자의 방이었다. 캐리어를 방 안에 들여놓으며 성민이 말했다.

“식당으로 꼭 내려오세요. 환영한다는 말 하기는 어색하지만 그래도 환영합니다. 잘 오셨어요,”

여자는 고맙다는 말 대신 손을 내밀었다. 손등의 핏줄이 파랗게 비쳤고 얼음처럼 차가웠다. 몹시 차가운 손이었지만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성민의 팔을 타고 올라온 찬 기운이 어깨를 지나 심장에 닿았다. 접견실로 돌아간 성민이 우 목사에게 물었다.

“지금 그 여자분은 어디가 아프신가요?”

“음, 혈루병 환자 같아.”

“혈루병? 그런 병도 있나요?”

“성경에 나오는 혈루병 말이야. 예수님 옷자락만 만져도 병이 나을 거라고 믿었던 여자가 앓던 병.”

“아, 그런 이야기가 있군요. 저는 성경을 잘 몰라서.”

“여기 오는 사람들 대부분이 수술하고 오잖아. 그런데 그분은 수술하기 싫어서 왔대. 꼭 고쳐주고 싶다는 소망이 생겨. 너도 수술하지 않으려고 탈출한 사람이잖아. 물론 수술도 하고 항암 치료도 받으면서 여기 있어야지. 그런데 이상하게 수술하지 않은 사람에게 마음이 더 쓰여. 너한테도 내가 얼마나 신경 썼는지 모르지? 너를 위한 기도를 하지 않은 날은 하루도 없었어.”

“진짜요? 제게는 눈길도 안 주시더만.”

“그거야 네가 혼자 있는 걸 선호하는 거 같아서 일부러 그런 거지. 빚 갚는 셈 치고 그 여자분에게 관심 좀 가져 줘.”

우 목사가 허허하고 웃는 바람에 성민도 따라서 웃었다. 그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얼마나 깊이 애정을 쏟는지 성민은 잘 알고 있었다. 성민이 신신당부했건만 여자는 식당에 내려오지 않았다. 통밀빵 두 개와 두유 하나. 소박한 저녁 식사지만 이마저 먹지 않으면 속이 쓰릴 텐데. 성민은 여자 방문 앞에 접시를 놓고 문을 두드린 다음 얼른 내려왔다. 내일 아침이 되면 여자가 접시를 방으로 가지고 들어갔는지, 복도에 그대로 두었는지 알 수 있겠지.

다음 날 아침 주방으로 접시를 가지고 온 사람은 정혜 씨였다. 빵과 두유는 자기가 먹었다고 했다. 자궁암 환자라서 그런지 소화에는 문제가 없는 모양이었다. 정혜 씨는 암 진단을 받으면 천만 원이 나오고 별도로 수술비와 치료비가 나오는 보험에 가입되어 있어서 그 누구보다 형편이 좋았다. 진단을 너무 늦게 받은 게 문제였다. 초기에 자궁만 들어내면 깨끗이 나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다른 장기에 전이된 상태라 어떤 병원에서도 수술해 주지 않는다고 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고약한 냄새, 날카롭지는 않으나 둔하고 역한 냄새가 나서 아무도 그녀와 한방을 쓰려고 하지 않았다. 냄새가 그녀보다 먼저 달려오기 때문에 그녀와의 거리를 쉽게 가늠할 수 있을 정도였다. 찾아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거로 보아 직계 가족은 없는 모양이었다. 남편이나 자식에 관한 이야기를 한 적도 없었다. 그녀 앞으로 하루도 빼지 않고 오는 소포나 택배는 모두 먹거리였다. 홍삼, 게르마늄, 셀레늄, 현미 효소, 영지버섯 추출물 등등 암에 좋다는 건강식품뿐만 아니라 초콜릿이나 마카롱, 타르트 같은 디저트도 많았다. 디저트는 요양원에서 금지된 식품이다. 사무실 옆 공중전화를 가장 많이 쓰는 사람이 그녀였다. 성민은 정혜 씨가 소멸에 대한 공포와 처절한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먹는 건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혈루병이나 자궁암이나 병이 뿌리내린 곳이 자궁이라는 사실은 같다. 정혜 씨가 엄청나게 생에 집착한다면 창백한 여자는 생을 놓아버린 사람 같았다. 자궁을 들어내기만 하면 해결될 문제인데 왜 매일 피를 흘리고 있을까. 어깨 위에 얼굴만 얹혀 있을 뻔한 자신의 상황과 완전히 다르지 않은가. 몸속 기관 하나 없어져도 알아볼 사람은 없을 것이다. 조직 일부를 제거하는 게 두려운 게 아니라 살아가는 일이 두려운 거 아닐까? 성민은 신 여사에게 죽을 쑤어달라고 부탁했다. 순식간에 구수한 콩죽이 완성되었다. 성민은 여자의 방문을 두드렸다.

“식사하러 안 오셔서요. 제가 죽을 끓여 달라고 했어요. 조금만 드세요.”

여자가 죽 그릇을 받아들었다.

“빈 그릇은 나중에 식당에 갖다 놓으세요.”

계속 누워 있었는지 이부자리는 펼쳐져 있고 캐리어도 성민이 들여놓았던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여자는 요양원에 왜 왔을까. 살기를 포기했다면 굳이 이곳까지 올 필요가 없다. 앉은 자리에서 죽으면 된다. 수술을 마다하고 왔으면 밥도 먹고 산책도 하면서 생에 대한 의지를 보일 필요가 있지 않은가. 수술을 거부했다는 점에서는 자신과 같으나 태도는 정반대인 여자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저녁이 되어도 여자는 식당으로 오지 않았다. 신 여사도 마음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우리 남편도 한때는 치료를 거부하고 그냥 죽겠다고 우긴 적이 있었어. 그래도 포기하면 안 돼. 어떻게든 살리고 싶었어. 죽기를 작정하면 못 할 일이 없지. 암이라 불리는 고약한 녀석아,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끝까지 해 보자. 하고 달려들었지. 여기 있어 보니 배우자든 자식이든 연인이든 사랑하는 사람의 의지가 중요해. 꼭 살리겠다고 애쓰는 사람이 있으면 살더라고. 그저 정성이 최고야.”

“맞아요. 제 아버지도 그러셨죠. 어떻게든 저를 살리려고 하셨어요. 제가 스트레스 받을까봐 일체 간섭은 안 하셨지만 암에 좋다는 건 아무리 비싸도 구해서 보내셨어요.”

“저 여자는 그런 사람이 없는 게 아닐까?”

“글쎄요.”

“여기까지 온 걸 보면 죽고 싶은 건 아니야. 그런데 특별히 살고 싶지도 않은 거지.”

신 여사가 포도즙에 날달걀을 넣고 휘저었다.

“나랑 같이 가자. 마시는 걸 봐야겠어.”

“밥도 아니고 빵도 아니고 죽도 아닌 이런 걸? 저는 먹어 본 적이 없는데요?”

“요양원 주방장 이력이 몇 년인데. 피를 쏟는 사람에게는 단백질이 필요해.”

방문을 열어준 여자가 성민과 신 여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포도즙을 마시고 죽 그릇을 내밀며 죄송하다고 말했다. 죽은 한 숟갈도 뜨지 않았다.

“식당에 오기 싫으면 안 와도 돼요. 이 총각이 방으로 배달해 줄 거니까 먹기만 해요. 알았죠?”

여자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신 여사가 돌아섰다. 신 여사는 다음날도 포도즙에 푼 날달걀을 여자에게 먹였다. 신 여사의 남편이 멀리 가서 구해 온 건강한 닭이 낳은 유정란이었다.


7


정혜 씨가 투정을 부렸다. 자기가 훨씬 위중한데 왜 식사를 방으로 가져다주지 않는지 성민에게 따졌다. 성민은 신 여사 지시라고 대답했다. 모두 신 여사에게는 꼼짝하지 못했다. 주방장의 권위가 상당했기 때문이다. 운동을 시키고, 건강 강의를 하고, 마음의 상처를 달래주는 일은 우 목사와 외부에서 오는 강사나 봉사자들이 하지만 식당만큼은 완전히 신 여사가 지배하고 있었다. 횡포를 부리거나 마음대로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편식이나 폭식을 허용하지 않는 수준으로 군기를 잡았다.

인공호흡기를 달고 퇴원한 남편을 살려낸 여인. 의지가 아주 아주 강한 그녀는 열과 성을 다해 음식을 조리했다. 환자들의 완치를 돕기 위해 정 선생과 함께 심혈을 기울여 식단을 짜고 새로운 메뉴를 개발했다. 입소자와 직원과 봉사자를 합치면 오십 명이 넘는다. 그 많은 사람에게 건강에 좋고 맛도 있는 음식을 매끼 제공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정 선생은 창백한 여자를 위한 녹즙 처방도 따로 짰다. 정혜 씨가 차별한다며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정 선생에게 화를 내자 순녀 씨가 녹즙용 채소가 담긴 소쿠리를 정혜 씨 앞에 패대기쳤다. 한 교수는 정혜 씨를 싸가지없는 여자라고 혹평했다.

- 불쾌한 냄새를 풍기는 정혜라는 여자는 탐욕 덩어리 그 자체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도무지 식탐을 자제하지 못한다. 그녀의 전대 속에는 갖가지 먹거리가 들어 있다. 사탕, 젤리, 초콜릿, 홍삼, 등등. 자기애성 인격장애 환자처럼 사람들의 관심이나 애정이 자신을 향하기를 바란다. 얼마나 싸가지없이 굴었으면 순녀 씨가 채소 소쿠리를 엎었을까. 절제라는 미덕을 갖추지 못해 병에 걸린 거 같다. 내 아내는 부잣집 딸답지 않게 알뜰했다. 그녀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나를 그리워하기는 할까. 내게 왜 이렇게 가혹하게 구는지 이해할 수 없다.

- 도무지 숟가락을 들려고 하지 않는 창백한 수에게 뭐라도 먹이려고 신 여사가 애쓰고 있다. 어쩐지 수에게 마음이 쓰인다. 잘 먹는 모습을 보고 싶기도 하고, 씩씩하게 걷는 모습을 보고 싶기도 하다. 수는 코스모스처럼 가냘프다.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날아갈 것만 같다. 가까이 다가가 말을 걸고 싶지만 털보 녀석 때문에 기회를 잡는 게 쉽지 않다. 털보 녀석은 보기만 해도 역겹다. 반백의 콧수염이 윗입술을 덮고 있다. 여자와 키스는 어떻게 하는지. 여자들이 좋아할 리가 없을 텐데.

한 교수의 비망록에 적힌 내용은 사실이었다. 홍 장로라 불리는 오십 대 중반의 남자가 창백한 여자에게 관심을 보였다. 홍 장로는 자신이 서울대학교를 나왔다고 말하고 다녔다. 입소자 대부분이 이런 말을 들으면 싫어한다. 죽음이 목전에 닥치면 득도한 듯 만사에 초연해질 거라는 믿음은 착각에 불과하다. 단지 몇몇 사람들만이 그런 경지에 이른다. 신 여사의 남편 최 씨가 살아난 건 살고자 하는 본능조차 버리고 인생을 되돌아보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창백한 여자는 구석에 앉아서 혼자 밥을 먹었다. 그녀는 누구의 말에도 대꾸하지 않았다. 어느 날 우 목사가 이번 주 건강 강의 시간에 특별한 분이 오니 꼭 참석하라고 그녀에게 애원하다시피 말했다. 성민도 호기심이 생겼다. 도대체 누가 오기에 우 목사가 저러는지 궁금했다.

강사의 강의는 성민에게도 깨달음을 주었다. 그는 ‘상처에는 상처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갚을지라 남에게 상해를 입힌 그대로 그에게 그렇게 할 것이며’라는 성경 구절이 잔인하게 복수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계율이라고 했다. 옛날옛날 그 옛날에는 절대다수의 사람이 노예였다. 주인은 노예를 마음대로 죽일 수 있었다. 그래서 죽이지 말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처럼 꼭 같은 정도의 처벌만 하도록 규제했다는 해석이었다. 성민은 아, 그렇게 심오한 뜻이 있었구나. 하고 무릎을 쳤다. 그날 이후 창백한 여자가 빠지지 않고 건강 강의를 들으러 갔다. 그녀도 성민처럼 강사의 해석에 깨달음을 얻은 모양이었다.

한 교수의 마음과 달리 그녀의 말문이 트이도록 한 사람은 홍 장로였다. 홍 장로는 식당 근처를 어슬렁거리다가 그녀가 내려오면 슬그머니 뒤에 가서 섰다. 어떤 채소를 고를지 망설이는 그녀에게 자세하게 설명해 준 다음 마주 보고 앉아서 밥을 먹었다. 의도적으로 그녀에게 접근한다는 사실을 누구나 눈치채고 있었지만 말리거나 핀잔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가 홍 장로와 함께 산책길에 나섰을 때 성민과 우 목사와 신 여사와 정 선생은 안도했다. 우 목사는 두 사람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왜요?”

성민이 물었다.

“홍 장로는 우울증을 치료하러 왔어. 자살 시도도 몇 번 했대. 여기 온 건 타나토스에게 지기 싫어서지.”

“타나토스가 뭔데요?”

“죽음의 신이기도 하고. 심리학에서는 죽음의 본능이라고도 해. 타인에게 관심을 가지고 정성을 쏟는 사이에 극복되기도 하지.”

“그런데 왜 죽고 싶을까요? 부자이고 건강한 사람이? 여기 사람들은 모두 시한부 생명인데.”

“마음의 병도 병이지. 어쩌면 육신의 병보다 더 치료하기 어려운 병인지도 몰라.”

마음의 병이라…. 성민은 육체의 병을 극복하느라 마음의 병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8


한 교수는 9시에 소등하는 규칙을 제일 싫어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밖에 없다고 불평했다. 처음 요양원에 왔을 때 성민이 제일 불편했던 점도 밤 9시 소등 규칙이었다. 집에 있을 때는 밤 열두 시 이전에 잠자리에 든 적이 없었다. 공부 때문이 아니라 게임을 하거나 웹툰을 보기 위해서였다.

불이 꺼지면 요양원은 그야말로 칠흑 같은 어둠에 잠긴다. 달빛이라도 있어야 사물을 분간할 수 있다. 어느 달 밝은 밤에 성민은 정원에 나가서 앉아 있었다. 선선한 밤바람에 몸을 맡기고 별을 보고 있는데 느닷없이 얼굴에 불빛이 쏟아졌다.

“여기서 뭐 하고 있어?”

우 목사가 손전등으로 성민의 얼굴을 비추며 물었다.

“잠이 안 와서요.”

“어서 들어가.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잠드는 시간만은 꼭 챙겨.”

“목사님, 안 오는 잠을 억지로 자라고 하는 건 폭력 아닌가요?”

우 목사는 대답 대신 흐흐흐 하고 웃었다.

“자, 어서 들어가. 이유는 나중에 알게 될 테니. 건강 강의는 빠지면 안 돼. 알지?”

“네, 그런데 왜 예배에 참석하라는 말씀은 안 하세요?”

“그거야, 신앙의 자유가 있으니까. 나는 환자를 돌보는 거지 교인을 돌보는 게 아니니까.”

우 목사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다정했다. 성민은 순순히 우 목사를 따라 방으로 갔다. 만일 예배를 보러 오라고 했다면 요양원을 대신할 다른 장소를 찾아서 떠났을지도 모른다. 성민의 취침 시간이 점점 빨라졌다. 기상 시간도 나날이 빨라졌다. 그러나 한 교수는 성민과 달리 일찍 잠들지 못한 모양이었다. 번민이 거세져서 괴로웠다고 적혀 있었다.

- 눈을 감으면 관심은 온통 내면을 향하게 된다. 눈을 감지 않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 달빛이 환한 날에는 창밖의 소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본다. 그믐 즈음에는 완전한 암흑이다. 작은 독서 등조차 켤 수 없어서 어둠 속에서 천장을 노려보며 눈꺼풀만 깜박인다. 오래오래 눈을 뜨고 있으려고 해도 최대 이완 상태를 유지하는 게 힘든지 눈꺼풀이 저절로 닫힌다. 눈을 감으면 억압된 본능과 억눌린 욕망이 의식 속으로 들어오려고 발버둥 친다. 의식이 빗장을 단단히 걸고 막아내려고 애쓰지만 역부족이다. 의식이 무릎을 꿇으면 봉인된 욕망이 뛰쳐나온다. 욕망은 부글거리며 절제를 비웃는다. 간신히 이룬 나의 성공은 절제 위에 지은 집이다. 나라고 왜 유흥을 즐기고 싶지 않았겠는가. 술도 마시고, 연애도 하고, 세계 일주도 하고, 스카이다이빙 같은 짜릿한 스포츠도 즐기고 싶었다. 너무 가난해서 아무런 꿈조차 꿀 수 없었던 어린 시절과 아내에게 바친 젊은 날과 성공을 위해 달려야 했던 중년이 어느새 지났다. 나는 내가 절제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기뻤다. 그런데 지금은 절제에 끌려다녔던 내가 싫다.


9


뱀사골에 도착한 성민은 지도를 보며 절을 찾아 걸었다. 작은 돌에 정각사正覺寺라고 새겨져 있었다. 정각사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바르게 깨닫자는 말 아닌가. 관세음보살만 부르면 만사형통이라고 가르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규모는 작지만 갖출 건 다 갖춘 절이었다. 대웅전에 가서 한 교수의 극락왕생을 빌었다. 살아서 어떤 인간이었는지 몰라도 내세의 행복을 빌어주는 게 마땅할 거 같았다. 그리고 석 보살이라는 사람이 이 절에 있기를 바랐다.

여러 켤레의 신발이 놓여 있는 슬레이트 건물이 보였다. 공양간이라 생각되어 가까이 가서 문을 두드렸다. 미닫이문이 열리며 중년 여인이 얼굴을 내밀었다.

“점심 공양 시간은 아직 멀었는데.”

“공양하러 온 게 아니라 보살님을 찾으러 왔습니다. 석 보살님이라고 계시지요?”

성민은 알고 온 것처럼 넘겨짚었다.

“안 계신데 무슨 일이죠?”

“그분의 남편이 돌아가셨습니다. 제가 물어물어 이곳까지 온 겁니다.”

“스님과 함께 성지순례 가셨는데 며칠 있어야 오세요. 객방에 묵으며 기다리시든가 아니면 다시 오시든가.”

성민은 기다리겠다고 했다. 점심상이 나왔다. 요양원에서는 식용유를 쓰지 않는데 절에서는 쓰는 모양이었다. 버섯 부침개가 맛있었다. 기다리는 일 외에 할 일이 없어서 한 교수의 다이어리를 계속 읽었다. 장 씨 아저씨와 강 사장을 힐난하는 내용이었다. 그는 두 사람을 마구 비웃고 조롱했다. 요양원에서 한 교수는 베풀 줄 모르는 사람으로 통했다. 고혈압 약을 먹는다고는 했으나 오늘내일하는 사람과 비교할 바 아니었다. 건강한데도 낙엽을 쓸거나 설거지를 한 적이 없었다. 쌓인 눈을 판자로 미는 소리가 북북 들려도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들을 경멸했는데 장 씨 아저씨를 특히 무시했다. 성민은 장 씨를 좋아했다.

중키에 마른 체격인 장 씨는 조용하고 말수가 적은 편이었다. 웃을 때면 팔자 주름이 깊게 졌다. 석면폐증 환자인 그는 황사와 미세먼지를 피해 매년 요양원에 온다. 식당 건물을 지을 때 뒷짐을 지고 왔다 갔다 하며 공사 감독처럼 굴었다. 국내 굴지의 건설회사에서 일했다는 말이 빈말은 아닌 듯했다. 자기가 직접 하고 싶은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며 한숨을 쉬고는 했다.

“회사도 국가도 다 원망스러워. 사람 몸에 안 좋은 거를 왜 써 가지고. 나는 그저 회사가 하라는 대로 한 죄밖에 없어.”

그의 얼굴에 회한이 서렸다.

“우리 집이 진짜 가난했어. 엄마가 아홉 살 때 돌아가셨어. 아버지가 재취했는데 한 이년 남짓 사시다가 그분이 또 돌아가신 거야. 바닷가에 살았는데 워낙 없이 살아서 남들 놀고 그럴 때 나는 아버지 따라서 고기 잡으러 갔어. 조그만 배를 타고‥‥. 중학교 조금 다니다 말았지. 아버지가 새엄마를 또 얻었어. 집에 있기가 싫었어.”

“아버님이 능력 있으셨네요.”

“인물이야 훤했지. 체격도 좋고. 그런데 여자들이 자꾸 죽는 거야. 아버지한테 원인이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해. 마누라가 세 명이나 죽었는데 새장가를 또 갔다니까.”

성민은 여자들이 무슨 병으로 죽었는지 궁금했으나 그의 말을 가로막고 싶지는 않았다. 말수가 적은 장 씨가 모처럼 말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이모네 집으로 도망을 갔어. 이발소에서 청소도 하고 심부름도 하고 그냥 있는데 사촌 형이 건축 일을 했어. 강남에 한창 아파트 많이 지을 때 그 밑에서 일을 좀 했어. 그렇게 노가다 길로 들어섰지. 우리가 하는 일은 그 먼지 나는 일. 그라인더가 있거든. 공구리 다 쳐놓고 나면 미장을 안 바르고 가는 일. 그거부터 처음에 배우는 거야. 공구리 한 게 배가 튀어나온 게 있으면 뿌레카로 깐다든가 하는 일들. 이리저리 노가다 일만 죽어라 했어. 반포도 다니고 개봉동도 다니고, 인천에 가서도 하고, 하여튼 막 했어. 이 일을 안 해야 하는데, 그만해야 하는데, 하면서도….”

“안 해야 한다고 생각은 하셨군요. 그런데 왜 계속하셨어요?”

“하다 보니 기술자가 되어 있더라고. 건설 붐이 일어나서 기술자가 귀해지기도 했고.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그런 데 가서도 일을 했어. 나는 대기업에 직접 고용된 사람이었어.”

“아, 어쩐지, 식당 공사할 때 알아봤어요.”

“그래서 내가 이 병에 걸린 거야. 그냥 하도급으로 막일만 했으면 되는데, 회사 직영이라 끊임없이 일이 있었으니까.”

“…….”

“옛날에는 석면을 실지로 많이 썼어, 벽 같은데, 닥트 같은데 이렇게 싸 놓으면 단열이 잘 되거든. 햇빛이 비치면 석면 가루가 반짝반짝 날아다녔어. 일을 잘해서, 열심히 해서 내가 이런 병에 걸린 거야.”

숨이 차는지 장 씨가 말을 끊었다. 산재 환자로 인정받기 위해 변호사를 사서 재판까지 했다고 했다. 국내 굴지의 건설회사는 그가 일했다는 근거가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었다. 수소문 끝에 그 당시 대리였던 사람을 찾아내서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그 사람이 급여 명세서를 찾아 주어서 간신히 산재 환자로 등록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그저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다는 말을 또 했다. 관리만 잘하면 사는 날까지 지장은 없다고 말해 준 의사가 고맙다고도 했다.

“그래서 의사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해. 언제 약 먹어라, 하면 먹고. 정해준 거는 진짜 기가 막히게 잘 지켜. 마누라가 괜찮다 싶으면 약 좀 덜 먹어도 되지 않냐고, 자꾸 먹으면 속이 나빠지는데 왜 먹냐고 해.”

“그래도 잘 지키셔야 해요.”

“맞아. 내 몸을 관리하기 위해서 먹는 거지. 의사 선생님들이 시키는 대로 하니 살아 있는 거지 안 그랬으면 죽었을지도 모르지.”

그는 몸이 안 아팠으면 공사 책임자가 되어서 일할 수 있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는데 오십 줄에 들어서면서부터 석면폐증 환자가 되어서 억울하다고 했다. 자기 기술이 참 좋다면서, 기계가 아니고 사람이 하는 일은 거의 다 할 수 있는데, 이제 억울해도 소용없으니 한숨만 나온다고 했다.

“회사에서 매년 하는 건강검진에서 늘 건강하다고 나왔는데 왜 이렇게 되었나? 왜 검사를 제대로 안 했나? 석면이 사람 몸에 안 좋다고 하면 쓰지 말아야지. 자기들 이득을 위해서 근로자들 생각은 안 하고 쓴 거잖아. 한편으로는 벌어먹으려고 그런데 가서 일하다 이리된 거니 내게 원인이 있나 싶기도 하고. 내가 한 거 보면서 사람들이 참 잘해 놓았다고, 예술이라고 했어. 그런 말 들을 때 정말 기분이 좋았는데. 지금 아파서 아무 일도 못 하고 있으니….”

안 해야 하는데, 하면서도 계속했던 건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했기 때문 아닐까. 자기 일을 사랑했다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장 씨 아저씨는 분명 자기 일을 사랑한 사람이었다.

한 교수는 장 씨를 판단력 없는 사람이라고 적었다. 아무리 못 배워도 그렇지 분진이 자욱한 곳에서 일하면서 어떻게 폐에 나쁘다는 생각을 못 할 수가 있는지. 얼마나 어리석으면 그런 병에 걸리는지 한심하기 짝이 없다고 욕했다. 한 교수는 몸을 쓰는 직업을 천하다고 여겼다. 그가 머리로 얼마나 큰 업적을 남겼는지 모르겠으나 성민은 요양원에서 노동의 가치를 깨달았다.

한 교수는 룸메이트인 강 사장과 자주 언짢은 소리를 주고받았다. 강 사장은 한 교수에게 정리 정돈을 잘하라고 잔소리했고, 한 교수는 어차피 어질러질 거를 왜 그리 안달하느냐고 짜증을 냈다. 강 사장은 간암 환자였다. 누런 복수가 한 됫박이나 나오는 걸 보고 정신을 차렸다고 했다. 최 씨를 보며 그에게 일어난 기적이 자신에게도 일어나기를 바라며 열심히 생활했다. 매일 아침 마당에 물을 뿌리고 말끔하게 비질을 했다. 잡초를 뽑고, 채소를 씻고, 가끔은 부엌에서 칼질도 했다. 사람들이 잠자리에 들면 신발장을 정리하고 현관과 복도와 거실을 대걸레로 밀었다. 강 사장 덕분에 남자 숙소는 늘 깔끔했다. 창가에 놓인 행운목과 관음죽, 벤자민과 해피트리를 돌보는 사람도 강 사장이었다. 방바닥에 머리카락 하나만 떨어져 있어도 바로바로 주웠고 이부자리는 각을 잡아서 개켰다. 장롱 속도 군대 내무반의 사물함처럼 정리했다. 그렇다고 해서 룸메이트에게 정리를 강요하지는 않았다. 한 교수가 못 있겠다고 했기 때문에 성민이 그 방으로 갔다.

그에 대한 한 교수의 평판은 참으로 짰다. 강 사장이 건축업자라는 사실도 적혀 있었다. 모름지기 사업이란 적당히 해야 하는데 융통성이 없어서 회사를 말아먹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한 교수는 친구 건축사와 강 사장을 비교했다.

- 친구는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유명한 건축사다. 강남에 자기 빌딩이 있다. 대기업 건설사에서 현장 소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공사장 근처에 땅을 산 다음 빼돌린 자재로 건물을 지어서 팔았다. 빌딩을 지은 이후에도 자재를 빼돌리는 일을 멈추지 않았는데 건물은 여간해서는 안 무너진다는 게 친구의 지론이었다. 무너지는 데 몇십 년은 걸리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자주 말했다. 맞는 말이다. 재개발이니 뭐니 해서 이삼십 년만 되면 철거하는 마당에 무너질 걱정을 왜 하는가. 그런데 강 사장은 반드시 원칙대로 해야 한다고 우긴다. 친구는 기부도 하고 밥과 술도 잘 산다. 성공한 사람에게도 루저에게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강 사장 성질 때문에 직원들까지 일자리를 잃은 셈이다. 이혼당하고 자식은 누이에게 맡기고 신용불량자로 사는 주제에 정리 좀 잘하라며 내게 잔소리를 해 댄다. 더러운 성질 때문에 중병에 걸리고서도 성질 고칠 생각을 하지 않는 한심한 인간이다. 나는 이런 인간이 제일 싫다. 절제라면 나를 이길 사람이 또 있을까. 틀림없이 술도 많이 마셨을 거다. 간이 망가졌으니 복수가 차는 것일 테지.

성민은 강 사장이 왜 비난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원칙대로 하는 게 왜 나쁜가. 강 사장 현장에서는 다치거나 죽은 근로자가 없었을 거다. 장 씨 아저씨처럼 고통받는 사람도 물론 없었을 거고. 그리고 자신이 무슨 병에 걸릴지 미리 아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성민이 어린 나이에 후두암에 걸릴 줄 몰랐던 거처럼 강 사장도 자신의 몸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몰랐을 뿐이다. 환자들은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자신이 왜 병에 걸렸는지 분석한다. 남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유방암에 걸렸다는 아줌마도 있고, 밤낮이 바뀐 생활 때문에 백혈병에 걸렸다는 프로그래머도 있었다. 성민은 그냥 암에 걸렸다. 엄마와 같은 암에 걸린 걸 보면 아마 유전인 모양이었다. 의사는 유전이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도 성민도 유전이라고 믿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엄마가 돌아가셨다. 병원에 몇 달 계시다가 돌아가셨는데 성민이 마지막으로 보았던 엄마의 얼굴은 슬펐다. 성민의 뺨을 쓰다듬으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성민이 병원에서 탈출했을 때 아버지가 수술을 고집하지 않은 이유는 모든 치료를 다 받았지만 죽은 아내 때문이었으리라.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매한가지라고 생각한 건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성민의 선택이 죽음의 여신에게 패배를 안겨 주었지만 당시엔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네가 하고 싶은 건 다 해 보라고 했을 뿐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하지만 3년 내내 암에 좋다는 건 모두 사서 요양원으로 보냈다. 아들을 보러 오지도 않았다. 덕분에 성민은 아무런 구속 없이, 한 마리 산짐승이나 들짐승이 된 듯 마음 편히 들로 산으로 쏘다닐 수 있었다. 성민은 강 사장도 자신처럼 자유롭게 살기를 바랐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도 때가 되면 잎을 내고 꽃을 피우는 나무처럼 자연 그 자체가 되어 살았으면 싶었다. 세상도 세월도 인연도 모두 잊어버리고.

성민이 강 사장 방으로 옮겨 갔을 때, 방이 너무 깨끗해서 놀라긴 했다. 주전자도 컵도 쟁반도 반짝반짝 윤이 났다. 창틀에는 먼지 한 톨 없었다. 솔잎 하나하나를 셀 수 있을 만큼 유리창이 투명했다. 물리적 결벽증 환자가 아닐까 의심되긴 했으나 물어보지는 않았다. 강 사장의 생활 습관은 불편할 수도 있고 반대로 편할 수도 있다. 청소나 정리를 강요하면 불편할 테고 혼자 알아서 하면 편할 터였다. 강 사장과 한방을 쓰는 동안 성민은 편안했다.

식당 건물을 지을 때 성민도 품을 보탰다. 벽돌을 쌓고, 철근을 엮고, 마루를 깔고, 전기 공사 보조도 하고, 도배도 하며 집 짓는 모든 공정에 참여했다. 그때 성민은 언젠가 자신의 손으로 작은 집을 짓겠다는 소망을 품었다. 황토벽 사이사이에 색색의 빈 술병을 넣으면 멋진 집이 되지 않을까. 미적으로도 아름답고 자연 채광도 되고 단열도 잘 되겠지. 그때 강 사장이나 장 씨 아저씨에게 도움을 청해야지.


10


성민은 대웅전과 산신각 앞을 빗자루로 쓸면서도 왜 욕심을 부리며 살아야 하는지 의문이 멈추지 않았다. 한 교수처럼 매일 자신을 채찍질하면서 살기도 싫었다. 앞서가는 사람의 등만 보면서 살았다는 그의 삶이 얼마나 피폐했을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아집에 사로잡힌 채 인정머리라고는 없었던 그의 삶 때문에 자신이 여기서 비질을 하는 셈 아닌가. 내일이면 스님과 석 보살이 돌아온다고 했다. 다이어리를 어서 전하고 한 교수를 잊고 싶었다.


사람은 왜 사나? 나는 왜 살려고 하나? 살아야 하나? 성민이 삼 년 내내 되뇌었던 질문이었다. 죽기 싫었다기보다 목 속에 있는 여러 기관이 하는 일들, 말하고, 숨 쉬고, 음식을 삼키고, 하는 행위들을 하면서 살고 싶었다. 그저 그렇게 살고 싶었다. 어렸을 때도 대통령이 되겠다거나 장군이 되겠다거나 하는 원대한 포부는 물론이고 물질적인 풍요도 꿈꾼 적이 없었다. 맛있는 음식을 해 주고, 다정한 목소리로 맞이하고, 잠든 아이에게 이불을 덮어주는 엄마가 있는 집이면 충분했다. 그 소박한 소원이 깨졌을 때 신이란 신은 모조리 미워했다.

한 교수의 다이어리를 읽으면 읽을수록 아버지가 존경스러웠다. 한 교수처럼 서울대학교를 나오지도 않았고 박사도 교수도 아니었지만, 아들의 결정을 존중할 줄 알았다. 자식의 목숨이 걸린 일인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관여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기다려 주었다.

덕분에 성민은 암이라는 단어를 잊고 살았다. 아침 일찍 녹즙을 마시고 백미는 한 톨도 섞이지 않은 밥에 풀 이파리 반찬으로 아침밥을 먹었다. 배낭에 물 한 병을 넣고 인근 산으로 갔다가 점심시간이 지나서 요양원으로 돌아왔다. 주방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밭에 가서 농사일을 거들었다. 나중에는 버스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높은 산에 올랐다. 산꼭대기에 앉아서 발아래 누워 있는 작은 마을들을 무연히 내려다보았다. 가슴 깊이 스며드는 솔향을 코로 들이마실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풀 냄새도 나무 냄새도 모두 좋았다. 숨 쉴 수 있는 날까지 숨 쉬고, 냄새 맡을 수 있을 때까지 냄새 맡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말하다가 죽는 거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허공에 대고 소리를 내지르기도 했다.

“나는 아직 말할 수 있다.”

“나는 아직 코로 숨을 들이쉬고 내쉴 수 있다.”

메아리 대신 산새들이 화답해 주었다. 서울에서는 들어보지 못했던 다양한 음색의 지저귐에 귀가 즐거웠다. 산이 지루하면 바닷가로 갔다. 백사장과 자갈밭을 헤매고 다녔다. 고단한 몸을 이끌고 요양원에 돌아와 조촐한 저녁을 먹었다. 어둠 속에 누워 잠을 청하노라면 소쩍새가 솥 작다며 울었고 가끔은 부엉이 소리도 들렸다. 날이 가고 달이 갔다. 요양원에는 달력이 없었다.

화학 선생님으로 은퇴했다는 정 선생이 성민에게 각별하게 정성을 쏟았다. 환자들 대부분이 중년 이상이었는데 성민만 갓 스물도 되지 않은 소년이었다. 앳된 얼굴의 젊은이가 죽어간다고 생각하니 더 애처로웠던 모양이었다. 밤마다 약초 공부를 한다는 정 선생은 무슨 병이든 치유할 수 있는 물질이 자연에 존재한다고 믿었다. 요양원 한쪽에 있는 그의 밭에는 수없이 많은 종류의 약초가 자라고 있었다. 정 선생의 아내인 순녀 씨가 녹즙을 짜 주었다. 성민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자신에게 정성을 기울이는 정 선생 부부가 눈물겹게 고마웠다.

여름에는 고구마를 캔 뒤 정자에 앉아 미지근한 물에 탄 미숫가루를 마셨다. 환자에게 좋지 않다면서 정 선생은 찬 음식이나 음료를 못 먹게 했다. 연꽃이 피었고, 옥수수가 베어졌고, 벼가 익어가는 들판에서 허수아비가 새들을 쫓았다. 단풍이 산을 울긋불긋하게 물들이더니 눈이 내렸다. 눈과 다투던 겨울이 지나고 개나리와 진달래가 피었다.

성민은 솔밭 앞에 서 있는 목련이 질 즈음에야 일 년이 훌쩍 지나갔다는 걸 알았다. 의사는 수술하지 않으면 일 년을 버티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성민은 아직 죽지 않았다. 오늘내일 죽을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우 목사가 옳았다. 달력을 보며 날짜를 셀 필요가 없었다. 여름이 또 가고 가을이 가고 겨울을 지나 다음 봄이 왔을 때도 성민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네 번째 봄꽃이 피기 전에 집으로 돌아갔다. 삼 년 만의 귀가였다. 두려운 마음을 안고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다. 암은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깨끗이 사라졌다. 그날 아버지는 성민을 끌어안고 사람들이 쳐다보는 병원 복도에서 큰 소리로 울었다.

암이 흔적 없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요양원 식구들에게 알리기 위해 돌아온 참이었다. 그런데 도착하자마자 맞닥뜨린 사건이 한 교수의 죽음이었다. 사람이 죽어가는 과정을 고스란히 지켜본 심경이 착잡했다. 한 생명이 사라지는데 소요된 시간이 너무 짧았다.


11


뒷산을 한 바퀴 돈 성민이 이마의 땀을 씻으며 절 안으로 들어섰을 때 공양주 보살이 스님이 돌아오셨다고 말해 주었다. 성민이 요사채로 갔을 때 스님과 마주 앉아 있던 여인이 일어섰다.

“두 분이 긴히 나눌 말씀이 있을 거 같아서 여기로 오시라고 했습니다. 말씀 나누시지요.”

스님이 방을 나갔다. 여인은 석 보살, 한 교수의 아내였다.

“그 사람이 죽었다고 했다던데요?”

“네, 그래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유족을 찾아야 장례를 치를 테니까요.”

“어쩌다 죽었는데요?”

“아, 그게, 어떤 사람과 다투다 쓰러지셨는데, 뇌출혈로.”

“그 인간에게 딱 맞는 죽음의 형식이네요.”

“?”

“그런데 나는 장례 치러 주기 싫어요.”

“무슨 말씀이신지.”

“나랑 어디 좀 갑시다.”

석 보살은 갈 데가 있으니 짐을 챙겨서 나오라고 했다. 스님이 자동차 키를 내주며 잘 다녀오시라고 말했다.

“아이가 있어요. 아직 어려요.”

“네에.”

“남편의 절제하는 모습이 좋았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지독하게 이기적인 인간이었어요. 나와 딸을 위해서라고 했지만 그러면 안 되죠. 그래 달라고 한 적도 없고요.”

“네.”

“놀라지 않는군요. 무슨 말인지 묻지도 않고.”

“이 세상에 놀랄만한 새로운 일은 없으니까요. 언젠가 어디선가 일어났던 일이 또 일어날 뿐인걸요.”

“세상을 다 산 늙은이처럼 말하네요.”

“죽다 살아나서 그런가 봐요.”

성민은 한 교수의 다이어리를 읽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 인간이 재산이 상당히 많아요. 집도 있고 땅도 있죠. 현금도 꽤 될 거예요. 엄청나게 아껴 썼어요. 차도 골프채도 중고를 샀죠. 감가상각을 고려하면 그게 이익이라면서요. 그 모든 점을 나는 좋게 받아들였어요. 참 성실하고 검소한 사람이구나. 하고요. 나도 본받으려고 애썼죠. 그런데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그의 성실이 알고 보니 극도의 이기심의 산물이더라고요.”

성민은 석 보살이 말하는 성실의 의미가 뭔지 궁금했다.

“성실하다는 건 착하다는 말과 통하는 거 아닌가요?”

성민의 물음에 석 보살이 한참 생각하다 대답했다.

“누구를 향한 성실인지, 무엇을 위한 성실인지에 따라 다르겠죠. 자신의 이익만 구하는 성실도 성실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왜 그렇게 부정적으로 말씀하세요? 그래도 한 교수님이 가족을 사랑하셨고 또 보살폈잖아요. 요양원에서도 보살피고자 한 사람이 있었던 거 같은데.”

“여자?”

“네.”

“속지 마요. 극악한 이기주의자니까. 자기 자신 외에는 그 누구도 사랑할 줄 몰라요. 나도 속고 내 아버지도 속았죠.”

지옥에 가서도 자기 입장만 내세울 인간이라며 석 보살이 진저리쳤다.

“요새는 유전자 검사가 있잖아요. 검사하면 누구 자식인지 금방 나오잖아요. 그런데 모르쇠로 일관하더라고요. 끔찍했어요. 자기 사전에 이혼은 없다기에 내가 집을 나온 거예요. 우리 딸도 그 모습에 절망해서 죽은 건데 그 인간은 그걸 몰라요. 가정은 깨지 않았다면서 큰소리를 치더라니까요.”

“지금 어디로 가는 거예요?”

“아이 엄마한테. 그 인간의 죽음을 알리러.”

“네? 왜요?”

“아직 시신이 있을 때 유전자 검사를 해야지.”

“왜 그러시는 건데요?”

“아이가 상속자잖아요.”

아이의 엄마는 창백한 수와 닮아 보였다. 한 교수는 왜 자기가 버린 여자를 닮은 여인에게 수라는 이름까지 지어주며 관심을 가졌을까? 홍 장로를 질투하고 미워한 이유는 뭘까? 성민의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석 보살의 태도도 정말 이상했다. 마치 딸을 대하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이의 엄마에게 말을 건넸다. 그리고 오래오래 설득했다. 아이의 머리카락과 칫솔까지 얻고서야 차에 올랐다. 아이는 아들이었다.

“수애는 싫다고 하지만 아무리 엄마라도 아이의 권리를 빼앗을 순 없죠. 그 인간이 죽었으니 내 마음대로 결정해도 되지 않겠어요?”

석 보살이 말했다. 진심으로 재산을 나눠주려는 거 같았다. 감동적이고 신선했지만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쉬이 이해되지 않았다.

한 교수의 다이어리 말미에는 창백한 수에게 보내려고 했던 건지, 아이의 엄마인 수애에게 보내려고 했던 건지 모를 글귀가 적혀 있었다.

- 밤마다 나는 괴로워한다. 그녀에 대한 상념을 떨쳐버리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그리움은 거머리처럼 내 가슴에 딱 달라붙어 있다. 쉼없이 내 피를 빨고 정염을 빤다. 밤마다 이성과 싸운다. 가슴이 찢어진다.

그대를 너무 늦게 만나서 슬프네. 왜 이제야 내 앞에 나타난 거지? 왜 이렇게 늦게…. 내 가슴은 사춘기 소년처럼 떨리고 만나고 돌아서면 당신이 또 보고 싶어. 나이 든 남자의 소망은 사랑하는 여인의 품에 안겨서 죽는 것. 나는 그대 품에 안겨서 죽는 것을 꿈꾸는 사랑에 빠진 남자일 뿐….

한덕수 교수의 그대는 누구일까? 그는 누구를 사랑했을까? 아내? 딸? 수애? 수? 다이어리를 석 보살에게 주어야 할까? 한 교수가 사랑 때문에 괴로워했다는 사실을 알면 석 보살의 태도가 변할까?

사랑, 사랑이라. 성민은 요양원에 오기 전에는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우 목사와 정 선생과 신 여사와 순녀 씨. 버섯농장 사장님과 김 기사와 많은 봉사자들. 그들이 내준 따뜻한 품 덕분에 어렴풋이나마 사랑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몹시 혼란스러웠다.

불현듯 성민은 사랑에도 거울상 이성질체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증오만이 사람을 상처입히는 건 아니다. 사랑이 입히는 상처도 많다. 상처입히지 않는 사랑은 없을까. 당장 요양원으로 돌아가서 정 선생에게 묻고 싶었다. 물질은 편광으로 이성질체를 구별한다지만 사랑의 이성질체는 어떻게 구별하는지. (한국소설 2025년 6월호)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안개는 안개일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