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소개]
이 소설은
이현신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으로 밀려오는 신기술과 극단으로 분열된 사회 속에서 나약한 개인이 맞게 되는 억압과 폭력을 심도 있게 파헤친다. 문명 제일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개체 위에 만들어진 억압의 서사와 그 이면에서 작동하는 양극 체제의 갈등을 통해 해체되는 인간 정신을 성찰하고 있다. 양극화된 질서, 힘을 가진 자에 의한 사회적 폭력, 파편화된 인간관계, 신기술에 의한 인간성 상실, 가족의 해체를 말하는데도 그 자체에 국한되지 않고 또 다른 차원의 폭넓은 의미론적인 형상을 만들어 낸다. 그 결과 배달원, 성폭력 피해자, 오르가니스트 여대생, 가족을 버리는 남편을 둔 아내, 아버지를 추모하는 딸, 군의관, 정체성을 잃은 가장 등 다양한 인물 형상이 자기반성의 알레고리로 등장한다. 소설은 그 주체들이 구축한 개인의 자아를 정면으로 보여주고 있다.
「위대하고 아름다운 꿈」의 화자인 나는 음식 배달을 하는 배달원이다. 지구를 지킨다거나 인류를 구원한다는 거대 담론에는 관심 없이 내 몸 하나 건사하는 게 목표인 그야말로 평범한, 아니 스스로 루저라 생각하는 사람이다. 동료이자 친구인 종인이 배달 중 교통사고를 당하고, 사람이 없는 곳에 가고 싶다는 친구를 데리고 사막으로 여행을 떠난다. 사막에서 비로소 자기 성찰을 하게 된 두 젊은이는 희망 없는 삶에 절망하는 대신 아무것도 없어서 아름다운 사막의 일부가 되기로 한다.
그렇다. 사람들 속에 있을 때가 훨씬 외로웠다. 이를 악물고 외로움을 참았고, 보람과는 거리가 먼 일을 하며 살았다.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이집 저집의 초인종을 눌렀다. 일 년에 두 번 백화점 앞에서 밤을 지새우며 기뻐했다. 존재가 본질에 앞선다는 명제를 믿었다.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모든 게 무의미하다는 말을 믿었다. 그래서 악착같이 살아남으려고 했다.
그런데 사막에 앉아 있으니 생각이 바뀌었다. 생명이 존재하지 않아서 아름다웠다. 본질이야말로 아름다움의 근원 아닐까. 생명의 흔적이 없는 사막에 어울리려면 아무것도 아니어야 하지 않을까. 작게, 더 작게, 아주 작게 바스러져야 사막의 일부가 될 수 있는 것 아닐까. 연애와 결혼과 출산에 섹스까지 포기하고서도 그 무엇도 되지 못한 종인이와 나야말로 사막에 어울리는 존재였다. 아무것도 아니라서, 아무것도 되지 못해서 아름다울 수 있을 터였다. 저 붉은 사막의 모래알처럼. 공기가 점점 차가워졌다. (「위대하고 아름다운 꿈」)
「붉음보다 붉은」은 심리상담 현장에서 일어나는 그루밍을 다루고 있다. 나와 봄날은 친족 성폭력 피해자이다. 마라톤 대회에 후배인 봄날과 함께 참가 중인 나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잃었다. 기억을 찾기 위해 심리치료를 받는다. 봄날이 치료자로부터 성적 착취를 당하는 현장을 목격하는 순간 외삼촌에게 성폭행당하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오른다. 봄날에게 진실을 알려주고자 하나 봄날은 치료자에게 완전히 지배당한 상태다. 나는 ‘자신의 마음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만 생각하라’는 치료자의 말대로 마음을 따라서 행동하기로 한다. 마라톤 결승점에서 계획을 실행하려는 순간 치료자를 숭배하며 행복해하는 봄날의 얼굴을 보고 회의에 빠진다. 심리적 약자를 지배하는 더 큰 권력자를 어떻게 응징할 것인가 하는 의문을 던진다.
온갖 재료가 아무렇게나 뒤섞인 밀가루 반죽처럼 생각이 뒤엉켰다. 토끼를 움켜쥐던 검은 그림자와 바들바들 떨던 토끼가 떠오르며 욕지기가 났다. 손끝이 아렸다. 너무 심하게 물어뜯어서 피가 배어 나올 지경인 손가락도 있었다. 최면 치료 때 내가 본 것을 봄날에게 말해 주고 싶었다. 내가 본 토끼와 검은 그림자에 대해 죄다 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봄날이 저렇게 행복해하지 않는가? 저 얼굴이 진실 아닌가? 내가 무엇을 밝히려고 했고 무엇을 지키려고 했는지 알 수 없었다. 놀이공원에 있는 요술 거울 속의 상처럼 봄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붉음보다 붉은」)
표제작인 「음악에 갇힌 남자」는 가상현실인 메타버스에서 일어난 이야기다. 무대에 서겠다는 열정이 엄청나게 강한 오르가니스트 여대생이 연주회가 2주밖에 남지 않았는데 실종된다. 신고자는 지도 교수. 형사인 기용과 이석은 토킹바에서 가난한 그녀가 메타버스에 빠져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그녀의 닉네임은 토카타와푸가. 가상의 세계에서 토카타와푸가가 몸에 두르고 있는 것들은 모두 고가의 명품인데 준 사람은 자우어오르간이다. 자우어오르간은 IT기업의 명예회장으로 실종자와 비슷한 시기에 접속이 끊겼다. 긴 추적 끝에 두 형사는 자우어오르간의 저택을 기습한다. 메타버스 속 아바타와 꼭 같이 차려입은 아가씨가 파이프오르간을 연주하고 있다. 턱시도를 차려입은 회장이 브라보를 연발한다. 이석이 여대생에게 달려가서 구하러 왔다고 하지만 여대생은 오히려 이석을 비웃는다. 루저가 되어 사는 것보다 하고 싶은 것 다 해 보고 죽는 게 낫다며 지금 너무 행복하다고 말한다. 당신은 늘 여자들을 조종해왔고 여대생마저 그렇게 할 거라는 이석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회장은 자신은 신처럼 위대한 창조자라며 소리 내어 웃는다.
“괜찮아요? 경찰입니다. 당신을 구하러 왔습니다.”
“구하다뇨.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납치당한 거 아닌가요?”
“뭔가 잘못 아신 것 같아요. 나는 자유의지로 여기 있는 거예요.”
“지도 교수님이 실종신고를 했어요.”
“아, 부잣집 애들한테만 레슨을 길게 해 주는 그 꼰대? 내게는 30분 이상 시간을 내준 적이 없어요. 돈지랄을 하는 건지 음악을 하는 건지. 재능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학교에 안 간 거예요.”
“여기서는 진정한 음악을 한다는 말인가요?”
“그래요. 저분이 내 염원을 들어 주셨어요. 모든 지원을 하겠다는 계약서에 사인도 했어요.”
(「음악에 갇힌 남자」)
「자유낙하」는 ‘누구에게나 잊히지 않는 어느 날이 있다’로 시작한다. 행갈이도 없이 오직 한 문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화자의 남편은 화자에게 자유를 원한다고 말했다. 비행기에서 뛰어내려 자유낙하 할 때처럼 완전히 가벼워지고 싶다고 했다. 자신의 무게가 완전히 사라진 상태의 가벼움을 원한다고 했다. 가벼워지기 위해, 완전히 자유로워지기 위해 가족에게서 떠나겠다고 통보한다. 나는 그런 남편이 이해 불가다. 남편이 꿈꾸는 자유의 의미를 몰라서 혼란스럽다. 내 삶은 그에게 바쳐진 것이었다. 철저히 구속됨으로써 행복했고 영원히 구속되기를 바랐다. 아들이 수능시험을 치는 날 남편은 마침내 집을 떠난다. 이유를 모르는 나는 혼란스러울 뿐이다.
변화는 내면에서 일어난 것 같았다. 수도자를 닮아간다는 느낌이 확신으로 바뀔 무렵 남편이 가족에게서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너에게서’가 아니라 ‘가족에게서’라고. 가 족 에 게 서.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나뿐만 아니라 아들 곁에서도 떠나고 싶다니. 아내인 내게서 떠나고 싶다고 했다면, 그랬다면 이해라는 걸 해 볼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가족으로부터 떠나고 싶다고 했다. 왜? 도대체 왜? (「자유낙하」)
「잃어버린 시간」은 돌아가신 이후에야 아버지의 삶과 사랑을 이해하게 된 딸이 10년이 지난 후 비로소 아버지와 이별한다. 화자인 나는 어부였던 아버지의 꿈을 좇아 땅끝마을이라 불리는 지구 최남단 도시 우수아이아에 왔다. 1,000Km만 항해하면 남극에 가 닿는 곳, 가없는 바다를 지키는 등대가 있는 곳, 아버지를 향한 나의 염원이 서린 곳. 아버지는 언젠가는 수평선 너머로 가고야 말리라고 말하곤 했다. 아버지에게 바다는 극복의 대상이었을 뿐만 아니라 열망의 대상이기도 했다. 아버지가 어부들을 지키는 등대가 되었을 거라고 믿으며 나는 땅끝마을 등대에서 아버지에게 편지를 쓴다.
아버지는 틀림없이 거칠고 황량한 바다를 지키는 등대가 되셨을 거야. 지금은 등대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밤이 되면 아버지가 불을 밝히실 거야. 지구의 끝까지 온 어부들이 아버지가 밝힌 불빛을 보고 무사히 육지로 귀환할 거야. 나는 진정으로 그렇게 믿고 싶었다. 아버지, 사랑했고, 사랑합니다. 언제까지나 사랑할 거예요.
나는 생수병의 물을 버리고 우표를 붙인 엽서를 넣었다. 펭귄을 보기 위해 섬에 내렸을 때 가만히 생수병을 바다에 띄웠다. 잃어버린 시간의 조각들을 다시 모을 수만 있다면……. 아버지와 영원히 이별한다고 생각하니 가슴 한 자락이 허물어졌다. 무너져 내린 내 마음을 싣고 생수병이 천천히 등대를 향해 흘러갔다. (「잃어버린 시간」)
「안개는 안개일 뿐」은 논문을 쓸 때 관행이라는 미명하에 표절이나 도용을 예사롭게 행하는 현 세태와 조직적으로 은폐하는 현실을 군대라는 환경과 접목한 작품이다. 화자인 나는 장기군의관 배출을 위해 우수한 사관생도를 선발해 국가가 의사로 키운 사람이다. 그러나 의사보다 군인이 적성에 맞아서 행정 업무만 한다. 승승장구하던 나는 처음으로 조정에 실패한다. 최초이자 최후의 실패를 안겨 준 원인이 논문이다. 장군의 아들을 대형 병원에 잔류시키기 위해 논문을 쓰게 하는데 이 논문이 표절, 도용이라는 비판에 휩싸인다. 참모총장에게 투서가 빗발치고 나는 논문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녀석에게 책임을 전가하기로 한다. 그러나 실패를 거듭하다가 전역하는데 장군의 아들이 잔류를 고집한 이유가 짝사랑이라서 위안을 받는다. 청춘의 사랑은 물불을 가리지 않으니까.
피곤한 가운데서도 논문이라는 두 글자가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논문. 논문. 논문에서 이 모든 파장이 시작되었다. 군대에서 군인들이 논문 가지고 이 난리를 칠 줄은 꿈에도 몰랐다.…중략
이기자 정신으로 군 생활을 해 왔고 늘 이기는 게임만 했다. 군의관이 알바를 하다가 걸렸을 때도, 골프를 너무 자주 치다가 걸렸을 때도 내가 모두 해결해 주었다. 언론에서 아무리 시끄럽게 떠들어도 시간이 지나면 유야무야되게 마련이었고, 나는 방첩사령부와 잘 타협함으로써 군의관들이 처벌받지 않도록 도와주었다. 이따위 논문은 사건도 아니었다. 교류를 위해 쓴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을 것도 아니고, 노벨의학상을 받을 것도 아니지 않는가. 논문이 문제를 크게 일으킬 것이라는 예측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안개는 안개일 뿐」)
「맞수」는 「잃어버린 시간」과 대비되는 작품이다. 「잃어버린 시간」이 부녀 간의 사랑을 다루었다면 「맞수」는 부자 간의 불화를 다루고 있다. 아내를 사이에 두고 화자인 나는 아들과 헤게모니 다툼을 벌인다. 나는 영靈과 육肉이 피폐한 상태다. 어항에 물자라를 키우며 물자라의 부성애에 감격하는 나는 파킨슨병을 앓고 있다. 아들을 너무나 사랑했으나 아들로 인해 가장의 자리를 잃었다고 생각해서 아들이 보내는 생활비를 한 푼도 쓰지 않고 통장에 쌓아둔다. 아내가 죽자 집으로 데리고 가서 고운 옷으로 치장해주고자 하나 가족의 반대로 병원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치른다. 장례식 이후 전화 한 통 하지 않는 아들을 원망하는 와중에 아들의 사망 소식을 듣는다. 나는 저세상에서 나보다 먼저 아내를 먼저 만날 아들을 질투한다.
“아버지는 왜 그러셨어요? 오빠가 보내는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통장에 쌓아둔 이유가 뭐예요? 엄마를 잘 먹이지도 않고, 잘 입히지도 않고, 남의 집 가사도우미 노릇을 하게 한 이유가 뭐예요? 도대체 왜 그랬냐고요. 오빠가 얼마나 슬퍼했는지 아세요? 나도 슬펐어요. 엄마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났어요. 그러니 오빠 마음은 어땠겠어요. 아버지가 오빠까지 죽인 거예요.”
“내가 언제 가장 대접을 받은 적이 있었냐? 녀석이 내 머리 꼭대기 위에 있었잖냐. 우리 집 가장은 네 오라비였어. 내가 아니었다고.”
“오빠는 엄마가 편안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 싶어 했어요. 아빠만 아니었다면 엄마도 오빠도 행복했을 거예요. 어쩌면 오빠는 효도하기 위해 떠난 건지도 몰라요. 혼자 계실 엄마가 걱정되어 간 거라고요. 이제 속이 시원하세요?” (「맞수」)
차례
작가의 말
위대하고 아름다운 꿈
붉음보다 붉은
음악에 갇힌 남자
자유낙하
잃어버린 시간
안개는 안개일 뿐
맞수
♠ 작품 해설
이현신의 소설을 읽고 /박희주(소설가)
작가 정보
✍ 작가 활동 및 철학
이현신은 문학과 심리학, 명리학을 융합하여 인간의 내면과 사회 구조를 탐구하는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그녀의 글은 개인의 일상에서 출발하여 사회적 맥락을 통찰하는 깊이를 지니고 있다. 또한, 브런치 플랫폼(https://brunch.co.kr/@gmlgmlskrfkr)을 통해 다양한 에세이와 글을 공유하며 독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 학력 및 경력
이화여자대학교 문리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였으며, 중학교 국어 교사로 재직했다.
바르샤바 대학교에서 폴란드 문학 박사과정을 수료하였으며, 199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시를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했다.
보건학과 상담심리학 석사 학위 취득 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선임연구원으로 근무한 바 있다.
한국소설가협회 편집국장을 역임했다.
� 수상 경력
제14회 해양문학상 대상
제33회 전국성호문학상 대상
소설집 『10cm』 2022년 문학나눔 선정도서.
� 주요 저서
『10cm』: 개인 간의 미세한 틈을 통해 사회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든 첫 번째 소설집.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현대 사회의 구조와 개인의 내면을 성찰.
『MBTI부터 명리학까지』: 젊은 세대에게 인기 있는 MBTI와 동양의 명리학을 접목하여, 자기 이해와 삶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책.
『모래알갱이가 있는 풍경』: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시를 번역한 작품
『혼자, 괜찮아?』, 『거짓말 삽니다』, 『미니픽션』, 『2020 신예작가』 등 공저 참여
작가의 말
두 번째 소설집을 내면서 왜 소설을 쓰는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내 삶을 기록하기 위해서? 내 생각이나 가치관을 전하기 위해서? 만나고 헤어진 사람을 기억하기 위해서? 아니면 사회에 변화를 주기 위해서? 세상이 변하는 것처럼 나도 변한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라는 영화처럼 그때는 맞다고 확신했던 일들이 시간이 지나서 보니 틀린 일도 있었고, 그때는 틀렸다고 생각한 일이 지금 생각해 보니 맞는 경우도 있었다. 따라서 나의 소설 쓰기는 시행착오의 기록인 셈이다. 옳기도 했고 그르기도 했으며 얻기도 하고 잃기도 했던 지난날의 일들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기록하고 싶었다.
작품 해설
이 작품집에는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필자는 이 작품들을 읽으며 내내 긴장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습니다. 소설가는 나름의 성찰과 삶의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소설을 선택한 존재입니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실존주의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주어진 상태(피투 Geworfenheit 彼投)로 태어나지만, 자신의 의지가 확립될 시기에는 끊임없는 선택(기투 Entwurf 企投)으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요즘 부쩍 늘어나는 나이 들어 소설 쓰기는 실존의 또 다른 표출일지 모릅니다.
이현신 작가는 소설집 서두에서 왜 소설을 쓰는가에 스스로 묻고 답합니다. 자신의 소설 쓰기는 시행착오의 기록이라고. 그러기에 옳기도 하고 그르기도 하며 얻기도 하고 잃기도 했던 지난 일들에 대한 객관적인 입장의 기록이라고. 그러니 이현신의 소설은 먼발치에서 바라본 이력의 사유이며 되새김질인 셈입니다.
이현신의 소설은 젊습니다. 젊어서 그럴까요? 아프고 까다롭습니다. 소재가 다양하며 죽음과 상실감이 빈번하게 등장하고 의식의 묘사는 치밀합니다. 그러니 가독성 면에서는 끈기를 요구하게 됩니다. - 박희주(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