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를 해결해야 디자인인가
‘디자인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모두가 골치 아파하던 한 문제 상황을 디자인적 설계로 재치 있고 멋지게 해결한 사례들을 보며 우리 모두는 어느 순간 ‘디자인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정말 멋진 문장이고, 많은 이의 공감을 샀다는 점에서 그 문장은 비유하자면 대중적 입맛으로 훌륭하게 맞춰진 좋은 음식이다. 하지만 그 말이 '디자인'을 정의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찜찜하고 어딘가 가려운 곳이 있다. 마치 텔레비전의 백종원 아저씨의 제육볶음 레시피가 대중적으로 사람들 입에 잘 맞지만 ' 백종원의 제육볶음'이 '제육볶음'이란 메뉴 전체를 대변하진 못하듯 말이다.
그렇다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디자인은 디자인이 아닌가?
우리는 생활 속에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하지만 아름다운 조형물로서 우리의 곁에 놓아두는 오브제에 대하여도 ‘매력적인 디자인이다’라는 말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문제를 해결하는 행위’란 문장은 디자인이란 단어의 정의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럼 도대체 디자인은 무엇인가?
'디자인'이란 단어는 명사와 동사로 쓰인다. 명사로서의 디자인은 어떤 이의 창작행위의 결과물을 말한다. 우리가 좋고 나쁨 아름답고 아름답지 않다 라고 표현하는 그 대상 이 바로 명사로써 쓰이는 디자인이다. 동사로써의 디자인에 대해 살펴보자. 디자인은 의도와 목적을 전제로 한다. 의도와 목적이 반영되지 않은 결과물에 대해서 우리는 디자인이라고 말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우리는 하얀 식탁보 위에 실수로 튀긴 김치찌개 국물을 두고 디자인이라 말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각자 저마다의 의도 와 목적을 가지고 디자인한다. 어떤 이는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심미적인 가치를 표현하기 위해 예술품을 디자인을 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일상의 불편한 점을 개선하기 위해 사물을 디자인한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기업의 기획자는 조직의 이익을 위하여 사람들이 구매할 수 있는 상품을 디자인한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내가 내릴 디자인의 정의에는 '목적'이란 단어가 필수적 요소란 사실이다.
'디자이너'란 말은 암묵적으로 많은 허상을 동반한다. '설계'와 '디자인'은 모두 'design'이란 영단어로 동일하지만 우리의 인식 속에 디자인은 설계보다 좀 더 고상하고 세련된 것으로 먼저 느껴진다. 실제로 현재 주위를 둘러보면 눈으로 보이는 사물이나 판촉물 등을 만들어 내는 것이 디자인이라고 많이들 칭한다. 하지만 정말 시각적 창작만이 디자인일까? 사실은 우리가 디자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더욱 광범위하다. 성형외과에서는 사람들에게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얼굴을 디자인한다. 헬스장에서도 건강미를 보여줄 수 있는 몸을 디자인한다고 말을 하고, 서비스 디자이너는 고객의 경험을 디자인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정치인은 국가의 안정과 국민의 행복 위한 법안을 디자인한다. 이렇듯 우리는 '뭐든지 다' 디자인한다. 우리는 매일 아침 스스로의 인상을 좀 더 활동적인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머리의 가르마 위치를 신경 써서 고른 후 탄탄하게 고정시키며 헤어스타일을 다듬는 것 또한 디자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어떤 이가 대상을 자신의 의도와 목적에 따라 기획하고 구현해 나가는 행위'
내 안의 파편적으로 흩어져있던 디자인에 대한 생각들을 정제하는 과정을 통해 난 나의 디자인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내리기로 했다. 내가 내린 정의에 빗대어보면 우리가 아침에 회사에 빨리 도착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가장 시간이 절약되는 루트'를 선택하는 '행위'도 디자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첫 글에서도 말하였지만 이는 철저히 개인을 위한 글이고 나의 개인적 견해이다. 지금 내가 내린 디자인에 대한 정의는 앞으로 겪어나갈 디자이너로서의 삶의 절대적 잣대로 존재하진 않을 수도 있지만, 앞으로 내가 이어나갈 고민들에 답에 가장 기초적 단서가 될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