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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순 Oct 16. 2021

구구절절한 신세한탄

                                                                              

1. 허허 다들 잘 지내시는가요? 오랜만입니다 허허(사람좋은웃음). 요새 통 정신이 없어 이 공간에 뭘 남기려는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어플에 들어오는 횟수도 줄어들고 글을 쓰고 싶은 마음도 사라져 가더라. 사실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건지도 이젠 잘 모르겠다. 무턱대고 내 일상을 올리려니 괜히 누가 궁금해 하기는 할까 싶기도 하고(애초에 올릴 만한 일상조차 없긴 하다), 요즘 드는 내 생각이나 푸념을 늘어놓자 하니 구구절절하고 찌질한 신세한탄만 가득할 게 뻔해 금방 포기했다. 근데 또 이렇게 흐린 날에 갑자기 에어팟에서 코린 베일리 래의 like a star이 나오는 거 아닌가? 이건 당장 블로그로 달려가라는 그런 신호였다. 지금 당장 블로그에 들어가 찌질하고 구질구질한 신세한탄이라도 날리라는 신호. 그래서 왔다. 할 말이 없다고는 하지만 일단 말을 시작하면 길어진다. 나란 사람이 그렇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렇게 살아왔다. 말을 줄이는 건.. 나에겐 불가능의 영역이다. 



2. 9월이 시작되고부터 정신없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연속적인 주말 근무로 인해 평일과 주말의 경계가 사라졌다. 그 말인즉슨 회사에 있는 시간이 많아진다는 것이고 자연스레 회사 사람들을 자주 오래 봐야 한다는 걸 뜻한다. 주말에 맘 편히 쉬지도 못하고 회사에 나와야 하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나 죽겠는데 보고 싶지 않은 사람까지 봐야 한다는 사실이 날 더 빡치게 만든다. 덕분에 요즘 시발이란 단어(?)를 입에 달고 사는 중이다. 난 일하는 것보다 사람을 만나는 게 100배쯤 더 싫다. 일이야 뭐 하면 되는 거고 정신없이 일하다 보면 시간이 쑥쑥 가서 오히려 더 좋기도 한데 불편한 사람을 맞닥뜨린 다는 건 정말이지 고문이다. 

올해 들어 아주 크게 깨닫고 있다. 회사 생활을 하며 날 힘들고 지치게 만드는 건 일보단 사람이다. 

문재인 대통령님이 사람이 먼저라고 그러셨는데 틀렸다. 이 세상은 사람이 먼저다 아니고 사람이 문제다.



3. 난 타고난 성질머리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걸 못한다. 모든 면에서 그러는 건 아니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난 일에서 그렇다는 거다. 회사에서 어떤 오해가 생기거나 억울한 일이 생겨서 트러블이 생기거나, 원래 말투가 좆같은 사람이 던지는 말 한마디를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저 새끼 말투 본새 봐라?', '왜 말을 저따구로 하지?', '저 새끼 나한테 악감정 있나?', '내가 뭐 잘못한 거 있나?' 등등 별생각을 다하는 동시에 '말을 왜 그렇게 하세요 혹시 저한테 뭐 화난 거 있으세요?'라고 물어보면 보통 대부분의 상대들은 한결같이 '아니? 나 원래 말투가 이런데?' 하고 말아버린다. 마치 자긴 아무 문제 없는데 니가 예민한 거라고 말하는 듯한 그런 말투. 하. 이 글을 보는 누구든 세상에서 제일 무책임한 발언 1위로  '아니? 나 원래 말투가 이런데?'가 선정됐다고 좀 널리 퍼뜨려 주시길 바란다.



4. 자기 말투가 원래 그렇든 말든, 니가 한국어를 쓰든 외계어를 쓰든 듣는 사람이 기분이 나쁘다는 걸 표현하면 '아 상대방이 내 말투에 기분이 나빴구나. 나는 그런 의미가 아니었지만 어쨌든 기분 나쁘다고 했으니 조심해야겠다.' 하는 게 당연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이것 말고도 많은 사사로운 일들이 많았지만 여기까지만 하자. 아무튼 나는 이런 식의 대화를 하고 나면 절대 쉽게 쿨해지지 못한다. 밤이고 낮이고 자꾸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화가 나는 그 대화를 나도 잊고 싶은데! 그게 안된다. 밤이 되고 다음날이 돼도 혼자 억울한 마음에 끙끙 앓고 있는데 상대방은 너무 쿨해버린다는 거지. 그게 날 더 미치고 팔짝 뛰게 하고요? 



5. 내가 너무 분해서 옆 선생님에게 내 감정을 토로하면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기세요~'라고들 말한다. 낸들 그러고 싶지 않겠나? 그게. 안된다고요. 나는. 나는! 아 저런 사람도 다 있네~ ㅋ 그렇게 살다가 망해라~ 이게 안된다고요. 자기가 뱉은 말로 내가 기분이 나빴다는 걸 꼭 알려주고 그건 잘못된 거라고 일러주고 싶다고요. 근데 이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그래서 난 늘 혼자 열받고, 스트레스 받고, 상처받는다. 받는 게 하도 많아서 배가 부를 지경이다. 



6. 짧은 시간이지만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알게 된 나의 큰 특징 중 하나는 나란 사람은 아주 나약하다는 것이다. 상대방이 쉽게 내뱉은 말들에 아주 개복치처럼 터져버리고, 사람이 많은 곳에 있기만 해도 기가 다 빨리고, 능동적이지도 못하고, 늘 죄책감에 시달리고, 생기도 없고, 건강하지도 않고, 그냥 사람이 아주 이상해진다. 원래도 우울이 많은 사람이고 여러 사람과 함께 있으면 힘들어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직장 생활은 그냥 완전히 똥 같다. 



7. 제발 나 그냥 혼자서 일하게 해주라. 이것이 서로를 위해 좋은 선택일 것이다. 근데 또 너무 혼자 일하면 일 안 하고 탱자탱자 놀다가 마감 직전에 죽고 싶어 할 게 뻔하니까 날 감시해 주는 사람 한 명 정도는 괜찮아. 대신 그 사람도 좀 멀리서 날 지켜봐 줬으면 좋겠고요? 암튼 이런 나의 성미에 나도 놀래버렸다. 꽤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강함이랑은 거리가 아주 멀더라. 




8. 그래도 괜찮다. 곧 계약기간이 끝나고 한동안 혼자만의 자유를 좀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월세의 압박에선 자유롭지 못하겠지만. 그러다 보면 또 다른 우울이 찾아올 수도 있겠지만 지금 당장은 그냥 나만의 방식으로 살 수 있는 시간만 기다려진다. 이 세상 모든 직장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아무리 거지 같아도 그러려니 하고 묵묵히 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들. 난 이거 진짜 못 해먹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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